소설리스트

〈 118화 〉붕괴되어가는 세상 (118/129)



〈 118화 〉붕괴되어가는 세상

"후.. 신원조회는?"


더벅머리 형사가 서류를 건네주는 신참에게 물었다. 신참이 군기잡힌 자세로 빠릿하게 대답했다.


"그게… 진짜 이상합니다. 정수아라는 신원과 지문이 일치하는데, 생김새가 완전히 달라요. 아무리 공통점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습니다."

"대체 뭐냐.. 전신수술이라도 받은 거 아냐?"

"그것도 아닌  같습니다.. 수술기록이 전혀 없어요. 불법수술을 받았다면 모르겠지만 저정도로 사람을 완전 개벽시키는 수술을 불법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네요. 아니지. 애초에저건 수술로 불가능한 수준아닙니까? 골격도 완전히 틀려요."


"씨발.. 대체 뭐야.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건 아니고?"

"근방에 정수아로 입원된 환자가 없었습니다."

"부모는 불렀어?"

"네, 박 형사님이 모시고 오고 있을 겁니다."


더벅머리 형사가 신경질적으로 서류를 책상에  집어던지듯 놓았다.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뜸 경찰서에 나타나 3대 중범죄를 신고하겠다는 여성은 빛이나는 외모와 몸매도 믿기지 않았지만 지문이 동일하지만 외형이 너무나 다른 것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문이란 개인식별을 할  있는 완벽한 수단이다. 생김새가 모두 다르듯, 지문도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헌데, 진술실 유리 너머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여성은 정수아와 지문이 일치하고 증언 또한 그간 정수아의 행적과 일치했다.

외형이 다를 뿐이지, 정수아 본인이라 믿어도 될 만큼 증언은 정확했다.

하지만 달라도 너무 다른 외형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정수아 민증사진을 그녀에게 보여주었을 때의 반응 또한 도무지 납득이 안 갔다.

[ 이건 내가 아니라고요! ]

꿈이라도 꾸는 건지.
아니면 미쳐버린 건지.
마침, 문이 열리며 부모를 데리러 갔던 박 형사가 들어왔다.

"어, 왔냐."

"최 반장님, 근데.. 부모가 참석요청을 거부하던데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씨팔."

"딸은 있지만 그 정신 나간 년은  이상 이제 우리들의 딸이 아니라면서 나가 죽든 말든 상관없다고 어찌나 악을 써대던지.."


그렇다.
강한이 걸어놓은 [딸의 존재를 부정한다]는 암시가 지속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노부부의 정신력이 그만큼 쇠약해져있다는 증거. 아마 피폐해진 그들의 정신력은 약해진 강한의 정신력보다 낮아 암시의 효과가 지속되는 모양이다.

"개씨발, 내가 이상한 거냐?  상황이 도대체 이해가  가는게?"

박 형사가 머리를 긁적였다. 동감한다는 눈치였다. 둘은 유리 너머 외로이 앉아있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이렇게 된 이상, 그녀가 지목한 이강한이라는 자를 만나볼 수밖에 없을 듯했다.

"근데 이강한이라면 일전에 시장님하고 스캔들이 있었던 사람 아니냐?"

"맞습니다. 거물신인작가라며 한때 언론이 떠들썩했죠. 박인아 시장하고도 염문설이 거의 확실시되긴 합니다. 나중에 정치판으로 가겠죠, 뭐."

"하ㅡ 섣불리 건들 수도 없겠네. 우선 가보자."

"넵."

**


산의 초입, 철조망 앞에 도착한 형사들은 수아가 증언했던 탈출구멍을 찾아보았다.


"여기 있습니다."

"확실히.. 절단기로 자른 모양이군. 일단 사진 찍어놔."


"넵."


더벅머리 형사가 철조망으로 다가갔다. 짙은 어둠이내려앉은 산기슭은 스산했다. 왠지모르게 소름끼치는 느낌이었다. 잠시 철조망을 둘러보던 형사는 문에 달린 초인종 버튼을 눌렀다. 영장도 없이 구멍을 통해 무단침입했다간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은 그 누구보다  아는 그이기에 행동에 신중을 기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신이 나가 보이는 여성의 증언은 신빙성이 부족했기에 무단침입따위의 수사를 할 필요는 없었다.

철조망 문의 오른쪽에 달린 CCTV에 빨간 불빛이 들어왔다. 형사는 뱃지와 형사증을 보여주고 들릴 지는 모르겠지만 신분을 밝혀주었다.

잠시 후, 작은 사이렌 소리가 울렸고 문이 열렸다.


"가자."

"네."

두 형사는 나머지 철조망도 지나 이윽고 한 독채를 마주했다. 더벅머리 형사가 턱을 쓰다듬으며 눈을 날카로이 떴다. 모든 상황이 수아의 증언과 일치했다. 차가 놓인 위치, 황폐한 마당, 집의 외관까지.


-띵동.


초인종이 울렸고, 안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더니 이내 문이 열렸다. 강한이었다. 상당히 초췌해보이는 그의 몰골에 더벅머리 형사는 우선 신분을 재차 밝히며 방문목적을 얘기해주었다.


"중부경찰서 강력범죄반 박화수 형사라고 합니다. 신고가 들어와서 그런데, 혹시 집안을 살펴볼 수 있을까요?"

박 형사가 상당히 공손한 태도를 취했다. 이강한, 그는 톱스타보다 유명한 작가이자 상후돔 시장과 염문설이 있는 인물이다. 게다가 정치판 입문도 점쳐지는 인물. 그렇기에 본능적으로 그의 앞에서 저자세가 되었다.

강한은 그런 그의 태도에 옅게 웃으며 그들을 집안으로 들였다.


"들어오세요."


"그럼."


형사들이 집 내부를 스윽 훑었다. 수아가 얘기한 대로, 집 구조는 동일했다. 비록 신분이 불명한 여성이긴하지만 이정도로 상황진술이 맞아떨어진다면 그녀의 말이 모두 허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를 추궁할 생각은 없었다.

고위직과 연관된 사람을 건드려 좋을 것이 없다는건 형사들끼리의 불문율이었다. 더욱이 뒷돈, 검은 돈 횡령 따위로 목숨을 연명하는 그에게 정의감은 지나가던 똥개가 싸지른 똥과 같은 것이었다.

피해야하는 그런 하찮은 존재.
정의감을 불 태우다 모가지 날라간 동료만해도 20년 형삿밥에서 셀 수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아첨과 비리로 목숨줄을 이어온 그는 강한에게서 돈냄새가 풀풀 날리고 있다는걸 느끼고 있었다.


"이강한 작가님 맞으시죠?"


"네."


"그게, 정수아라는 여성이 작가님을 신고를 했습니다. 죄목은 납치, 강간, 감금인데.. 우선 뭐, 신분도 불명확하고 반쯤 정신은 나가보이긴 하지만요."


박 형사는 이미 그를 친근하게 '작가님'이라 존칭하고 있었다. 보통 수사대상에게 친근한 존칭을 붙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작가님이라는 그의타이틀을 내세워주고 있었고 그것은 곧, 자신이 그의 편임을 넌지시 시사하는 것이기도 했다.


강한이 피식 웃었다.
흐릿한 정신이지만 형사가 자신을 옹호하고 있는 것을 알  있었다. 게다가 이미 그녀를 정신 나간 여성으로 단정짓고 있었다. 다행히 시스템 없이도 일이 수월하게 풀려갈 듯싶다.

"그렇습니까. 정수아라.. 처음 들어보는데.."

"하하, 그렇죠? 저희도 신고가 접수됐으니 형식상 수사를 나온  뿐입니다. 어차피 신분도 불명확해서 우선 신분증명이 우선이기도 하거든요. 그러니 너무 염려치 마십시오."


 탐문없이  형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강한에게 악수를 건넸다. 인연을 두어 떡고물이나 하나 챙겨보려는 심산의 악수였다. 시스템의 능력이 건사하지 못한 강한은  악수를 받아주었다.


다행히 시스템을 쓰지 않아도 당분간은 잠잠할 듯싶다. 그런데.


"여기 지하실은 무슨 용도죠? 잠겨있네요?"

둘이 대화를 나누던 사이, 김 형사가 지하실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는 베테랑 박 형사와 정반대인, 신참형사로 아직 정의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었다.

박 형사가 그를 급히 책했다.

"어이,  형사. 오늘은 수사하러  게 아니니 어서 가자고. 볼 것도 없는데 뭘."

"아.. 그래도 진술내용과 동일한 점이 한 두개가 아닌데 이대로 가시려구요?"


"어허이. 저 자식이 아직 세상 물정을 모릅니다요. 신경쓰지마십쇼."

박 형사가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강한에게 얘기했다. 하지만 강한은 쉬이 답하지 못했다. 지하실엔 세나가 포박되어 갇혀있다. 들통이라도 나는 날엔 이곳에서 결단을 내야할 터.

한계를 무릅쓰고 다시 컨트롤 능력을 개방한다던지, 아니면 무력으로 둘을 진압한다던지. 만약 불상사가 발생 시엔 둘 중 하나는 선택해야할 터였다.

아마 후자를 택할 것이다.
근력이라면 자신있었으니까.

그의 불안한 눈빛에 박 형사의 허리춤에 차인 리볼버 권총이 보였다. 사이킥 컨트롤은 분명히 마인드 컨트롤보다 높은 정신력이 소모될 것이다. 그렇기에 박 형사의 손을 빌려  형사를 정리하고 박 형사에게 모든 것을 덮어 씌우면 그만.

그렇게 머릿속으로 재빠르게 시나리오를 써놓은 강한이 고개를 돌려 김 형사를 쳐다보았다.


"거긴 악취가 심해서 사용하지 않는 곳입니다. 산기슭의 지하다보니 너무 습해 곰팡이가 장난아니거든요. 문을 열면 아마 기절하실 겁니다."

"흐음.. 그렇습니까."

"어이! 김 형사! 어서 가자고!"


행여나 강한의 심기를 건드릴까싶어 박 형사가 그에게 손짓을 하며 현관으로 향했다. 비리경찰의 아주 바람직한 모습이었다. 박 형사의 타박에 김 형사는 아쉬운듯 지하실을 바라보며 현관으로 따라나섰다.


어차피 영장도 없어 문을 강제로 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강한이 내측도어락의 버튼을 눌러 문을 열어주었다. 형사방문에 대비해 안쪽으로 설치해두었던 이중 도어락은 뜯어낸 상태였다.

하지만 이 성가신 김형사가 다시금 의문스레 물었다. 나름 형사라고 눈썰미가 있는 모양이다.


"문에 피스자국이 많이 있네요?"

"아..  주인이 이것저것 인테리어한다고 박아뒀더라고요."


"..그렇군요."


미리 생각해두었던 거짓말로 자연스레넘어간다. 하지만 더 이상은 무리다. 더 파고 들었다간 거짓말이 들통날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으윽…"

강한이 머리를 부여잡으며 크게 휘청였다. 두통이 지끈대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휘청일 정도는 아니었다. 어서 성가신 놈들을 쫓아내기위한 액션이었다.


"어어, 괜찮으십니까?"

박 형사가 수행비서마냥 잽싸게 다가와 강한을 부축해주었다. 권력자에게 비굴한 전형적인 간신배 스타일인 듯했다.


"아, 괜찮습니다. 요즘 컨디션이 영 안 좋네요."


"몸조리 잘 하십쇼. 저흰 얼른 가보겠습니다."


"아, 형사님."

급히 집을 나서려는 박 형사를 강한이 불러세웠다. 쫓아낼 것에 정신이 팔려 가장 중요한 말을 빼먹을 뻔했다.


"네. 작가님."


"그.. 정수아라는 여자. 한번 볼 수 있을까요? 저한테 무슨 감정이 있어 그러는지 궁금하군요."


박 형사가 곤란한 눈짓을 했다. 신고인과 신고대상자의 대면은 아무래도 민감한 사항이었다. 신고인이 거부하면  아무리 형사라해도 대면을 성사시키긴 힘들었다.


하지만 김 형사 몰래 들어오는 악수에 명함이 꽂힌 것을 보곤 그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명함의 전달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돈과 권력에 야망이 있는 그에게 시장라인을 탈 수 있을까, 하는 희망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박 형사가 비릿하게 웃으며 강한의 귓가에 속삭였다.


"뭐, 조금 힘들긴하지만  안 될 것도 없죠. 걱정마세요.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조심히가세요."

형사들이 물러갔고, 그는 다시금 소파에 쓰러지듯 파묻혔다. 정신력의 회복이 우선이다. 지하실에 있을 세나가 신경쓰이긴했지만 당장은 풀어주지 않을 것이다.

안정이 최우선이다.









****






새하얀 벽.
눈을 떠보니 티끝하나 없이 새하얀 벽이 보였고,  중앙엔 벽을 강조하듯 백열등이 작열하고 있었다.

뭐야.
어디지?

몸을 움직이려 했으나 뭔가에 단단히 고정된듯 꿈틀댈 수만 있을 뿐, 자유롭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고개를 돌려보았다. 새하얀 공간엔 아무 것도 없었다. 정말이지, 공허한 공간이었다.


문득 왠지 모를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속박된 몸에 새하얀 방. 대체 뭐야.


"저기요! 풀어주세요!!"

소리를 쳐보자 목소리는 정상적으로 나왔다. 두려움에 심하게 몸부림을 쳐보았지만 역시나 꽁꽁 묶인 몸은 미라가 된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씨바알ㅡ!! 이거 풀라고!!"


내가 할  있는 것이라곤 소리를 지르는 것밖에 없기에 미친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목이 고정되어있는 탓에 누가 들어왔는지  수가 없었다. 씨발. 무섭다.


존나 무섭다.


기척이 몇 사람은 들어온 듯했다.

"제, 제발 풀어주세요! 저한테 왜 이러는 건데요!!"

하지만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고, 팔을 통해 무언가 뜨거운 액체가 들어오는게 느껴지더니 이내 난 다시 눈을 감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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