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화 〉수아의 탈출
몇달만에 나오는 바깥세상에 세나의 어깨가 잔뜩 움츠러들어있다. 두렵기도하고, 뭔가 설레기도 하는 것이 묘한 기분이다.
집문은 신발 한짝을 끼워두어 잠기지 않게끔 해두었다. 일종의 그녀만의 도피방법이었다. 혹여 위험이 들이닥치면 잽싸게 도망칠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다.
그만큼 세나에겐, 강한이 만들어놓은 안전감옥이 안식처가 되어주고 있었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엔 전기충격기가 들려있었다.
주인님이 혹시나 수아가 돌발상황을 만들면 쓰라고 쥐어준 것이었다. 바깥엔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니 혹시나싶어 들고 나온 것이다.
"밖은 이제 봄이 되어가는구나.춥지는 않네."
세나가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철저히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서 몇달을 지냈다. 물론 티비에서 날짜를 확인했었지만 이렇게 체감하니 새삼 신기한 것이다.
"어디로 가셨지. 아, 저기 불빛이다."
그녀가 두려움을 무릅쓰고 바깥으로 나온 이유는 하나였다. 주인님을 돕기 위함. 더욱이 주인님은 아무 방비도 없이 나갔기에 전기충격기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얼른 가자."
세나가 발소리를 죽여가며 빠르게 불빛으로 접근했다. 어느정도 가까워졌을까, 날카로운 비명이 산기슭에 울려퍼졌다.
-꺄아악!
흠칫.
놀란 세나가 어깨를 잔뜩 움츠리며 전기충격기를 꼭 쥐었다. 수아 목소리였다. 세나는 콩닥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시금 불빛 쪽으로 걸음을 움직였다.
이윽고 다다르자 그녀가 환히 웃으며 입을 열려했다. 그런데 제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황급히 입을 닫고 나무 뒤편으로 숨었다.
난생처음보는 주인님의 폭력이었다.
수아를 장난감다루듯 거칠게 다루며 발길질을 하고 등을 내리찍는 등, 그녀가 보기엔 다소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아.. 아, 주, 주인님? 어째서..'
물론 자신에겐 단 한번도 폭력을 휘두르지 않았지만 수아에게 가해지고 있는 무자비한 폭력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심장이 쿵쿵뛰었다. 자애롭던 주인님, 늘 따스한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던 주인님이었는데 지금 눈앞에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사람은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게다가 입은 웃고 있었다.
폭력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세나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아, 아냐. 그래도 주인님인걸. 수아가 무슨 잘못을 했을 거야. 그래서 주인님이 화가 나신 거야.'
애써 마음을 추스려보지만 희번득 뜬 눈으로 웃으며 수아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주인님의 모습이 적응되지 않는다.
수아가 안쓰러웠다.
얼굴도 벌겋게 부었고, 발길질 당한 곳을 감싼 채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발이 동동 굴려진다.
'아아.. 그, 그만 하시지..'
저 아름다운 피사체에 흠집을 낼 곳이 하나도 없는데 폭력을 휘두르는 주인님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얻어맞는 수아에게 걱정이 드는 자신도 이해되지 않았다.
며칠 전만해도 볼기짝을 후려치고, 항문에다 거대한 딜도를 쑤셔넣지 않았던가.
자신도 그녀에게 폭력을 가했던 것이다.
'그, 그치만 난.. 주인님의 조교명령을 따르기 위해 했을 뿐이야!'
세나가 고개를 휘저었다.
자신은 다르다고 굳게 생각했다.
명령을 따랐던 것이고 그 과정에서 생긴 것은 폭력이라 보기엔 어려웠다. 폭력보단 체벌에 가까웠다. 주인님을 모독하는 것은 죄이니 벌을 준 것이다.
하지만 지금 주인님이 휘두르는 것은 분명 체벌이 아닌, 폭력이었다.
전기충격기를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수아를 구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주인님을 배신할 수도 없었다.
우매했던 자신을 거둬주고 일깨워주신 분이 아니던가, 그런 분을 배신해선 안 된다. 하지만 연신 이어지는 수아의 비명이 귓가를 찌르고, 주인님의 섬짓한 웃음이 뇌리를 파고들었다.
'저, 정신 차려! 저분은 주인님이라고!'
하지만..
수아가 처한 상황이 자신에게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세나가 눈에 불을 켰다. 주인님도 처음엔 수아를 보는 눈빛에 애정을 담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애정은 증오로 바뀌었고, 손길은 폭력으로 바뀌었다. 자신을 대하는 주인님의 태도 또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어, 어떡해..'
축 늘어진 수아의 모습에 세나가 안절부절했다. 그녀의 아름다운 피사체에 홀리기라도 한 것일까, 그녀를 구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주인님에 대한 충성보다 서서히 높아지기 시작했다.
'주인님이 어디 아프신 거야! 그러니 내가 주인님을 도와드려야해.'
세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주인님의 정신이 약해져 온전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정신을 차리면 주인님도 수아를 폭행하는 것에 대해 백퍼센트 후회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기에 말려야한다는 생각이 확고하게 들어찼다. 그리고, 무엇보다 처음 보는 주인의 모습이 두려웠다.
'말려야해! 주인님을 위한 일이야!'
결심한 세나가 발꿈치를 들고 도둑고양이처럼 서서히 다가갔다. 어느새 주인님은 수아를 폭행하고, 그녀의 육체까지 모조리 탐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나는 그의 폭행이 멈추었음에도 전기충격기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두려웠다. 짐승, 아니. 짐승 그 이상의 괴물로 변한 것 같은 그의 폭행이 자신에게도 이어질 듯해 두려웠다.
더욱이 지금 자신의 행동은 이미 주인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아마 먼저 그를 기절시키지 않는다면 자신이 기절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내동댕이쳐진 수아가 제 음부에다 손가락을 집어 넣고 긁어대며 울부짖고있었다.
"흐으으! 더러워! 더러워!"
"목이 찢어져라 울어도 달라질 것은 없어. 어서 집으로 돌아가자."
강한은 그런 수아를 바라보며 옷을 모두 입었고, 수아에게 얘기하는 사이 근접한 세나가 전기충격기로 그의 목덜미를 지졌다.
"주, 주인님.. 죄송해요…!"
-파지지직.
*
강한이 맥없이 쓰러진지 1분여가흘렀다. 제 주인님을 공격했다는 사실에 세나는 충격을먹었는지 공격자세 그대로 굳어버렸고, 수아 역시 예상치 못한 세나의 도움에 얼떨떨하게 그녀를 쳐다보았다.
"..뭐, 뭐야. 갑자기 무슨 짓이야."
세나의 갑작스런 변화에 수아가 믿지 못하는 눈초리로 말했다. 그녀의 입장에선 세나도 한 패다. 그렇기에 그녀의 공격이 자신을 위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흐으… 지, 진짜 주인님을 공격하다니…"
"대체 뭐야. 날.. 도와준 거야?"
"그, 그건 아니지만.. 주인님이 위험해보여서 그랬을 뿐이에요. 이런 모습은 보이신 적이 없으니까.."
"..쨌든 고마워."
수아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강한에게 다가가 쓰러진 그를 걷어차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힌 걷어차려는 동작이 있었지만 그의 몸에 닿기 전 발이 멈추었다. 세나에겐 없는 암시가 그녀에겐 걸려있었으니까.
"이 개새끼…! 쓰레기새끼!! 카악, 퉤!!"
제 발이 닿는 것조차 혐오스러운 수아가 침을 화난 낙타처럼 뱉어댔다. 씩씩대던 수아가 세나를 쳐다보았다.
"..앞으로 어쩔 거야."
"모르겠네요.. 주인님께서 일어나시면 저를 가만히 두시지 않을 확률이 높겠죠.."
"같이 가자, 그럼."
"네, 네?"
세뇌당한 이후, 이제껏 세나는 바깥 세상으로 나간다는 생각을 일절해본 적이 없었다. 강한이 만들어준 작은 세상이 모든 것이라 생각하며 안락하게 보냈었고, 그러다보니 바깥, 그리고 이전 삶에 대한 갈망도 없어졌었다.
그렇기에 수아의 제안에 세나가 머뭇거렸다. 수아와 자신을 위해서였지만 강한을 공격한 것조차 그녀에겐 커다란 충격이었기에 선뜻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그치만.. 주인님을 이대로 두고 가기엔.."
"정신차리라고!! 이 멍청한 년아!! 저건 주인이 아니라 범죄자일 뿐이야!"
"그치만.. 저를 일깨워주신 걸요.. 안락한 삶도 제공해주시고.."
"어휴ㅡ!! 씨바알ㅡ!!"
속에서 천불이 들끓는지 수아가 가슴팍을 퍽퍽 때리며 답답해했다. 세뇌가 아주 제대로 된 모양이다. 그리고, 이곳에 계속 있었다면 자신도 저렇게 되었을 거란 생각이 미치자 섬뜩했다.
"미친년.. 니 맘대로 해라."
어서 이곳을 도망쳐야되겠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세나에게서 전기충격기를 뺏은 수아가 강한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지, 지금 뭐하시는."
"도망쳐야할 거 아냐! 이 옷들이 필요하다고!"
시체마냥 널브러진 강한의 옷을 모두 벗긴 수아가 철조망으로 달려갔다. 안절부절 못하던 세나도 휩쓸려 얼결에 그녀를 따라 뛰었다.
철조망에 도착한 수아가 옷가지들을 위로 던졌다. 철조망을 넘어갈 생각이었다. 3미터의 높이보다 위에 설치된 가시철길이 문제였다. 끝이 날카로울 가시철길 위를 몸으로 짓뭉개며 지나갔다간 살점들이 가차없이 뜯겨나갈게 뻔했다.
그렇기에 옷가지를 가시철길 위에다 겹쳐 가시철길로부터 살갗을 보호하려는 것이었다.
"됐다!"
만족스럽게 옷가지가 가시철길 위로쌓이자 수아가 환하게웃으며 폴짝 뛰었다. 저정도면 충분히 넘어갈 수 있을 듯했다.
수아가 곧바로 철조망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철망 틈이 좁아 발을 걸기가 마땅치 않았다. 결국 첫번째 등반은 허무하게 미끄러지며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언제 강한이 깨어날지 모를 다급함에 욕이 튀어나왔다. 열불이 머리 끝까지 차올랐다.
"이런, 씨발!!"
하지만 입에 물고 있던 전기충격기를 그냥 뱉어버린 후, 다시금 철조망 등반에 열을 올린다. 원래라면 그녀는 강한이 허락하지 않는한 이곳에서 도망칠 수가 없었다. 철조망에 막혀서가 아니다. [배신해선 안 된다]는 암시도 그녀에게 걸려있기 때문이다.
철조망을 쳐놓은 이유는 그녀를 감금하기 위함이고, 그것을 오르는 행위는 탈출이기에 그녀는 철조망을 오를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거침없이 철조망을 부여잡고 오르려하고 있었다. 강한의 정신력이 약해진 탓이다. 그렇기에 암시효과가 옅어졌고 그녀는 탈출을 감행하고 있는 것. 물론 그녀가 안전감옥을탈출한 것 또한 암시 위배 행위지만, 그것은 강한이 의도한 상황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씨바알ㅡ! 왜 이렇게 미끄러워!!"
세나는 그런 그녀를 뒤에서 바라보며 갈등에 휩싸였다. 그녀를 막아야할지, 지금이라도그녀를 막고 주인님께 용서를 비는 것이 옳은지, 수많은 갈등들이 어지럽게 휘날렸다.
'어, 어떡해야돼..'
그녀를 막아 주인님을 깨운다면 자비롭게 용서해주실 지도 몰랐다. 하지만 자신이 용서받는다해도 수아는 주인님께 또 언제 폭행을 당할지 모른다. 저 아름답고도 황홀한 육체에 흠집이 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녀를 순순히 보내준다면 주인님의 발길질이 자신에게 향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체벌이 아닌, 폭행은 절대 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상, 이미 자신은 주인님을 실망시켰고 그 죗값은 기정사실화가 되어있었다.
세나의 시선 끝에 전기충격기가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