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기자회견
수십 대의 카메라가 오와열이 칼 같이 맞춰진 수십 개의 테이블의 뒤편에 주르륵 깔렸다. 연신 셔터가 터져 나왔다. 소란스러우면서도 정돈된 아이러니한 분위기였다.
수십 개의 테이블엔 다양한 연령층의 남녀가 앉아 노트북의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려대고 있었다.
모두, 강한이 끔찍이도 경멸하는 기자들이었다. 기자라면 학을 떼는 그였기에 인아가 앉은 단상자리의 구석 벽 쪽에 서서 그들을 벌레보듯 쳐다보고 있었다.
'개호로새끼들, 또 소설 지어내기만 해봐라.'
여차하면 여기 있는 기레기 새끼들을 다 쓸어버릴 정도로 그의 이글대는 눈빛은 극대노를 담고 있었다.
진행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자, 이제 기자회견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발언권은 제가 지목하는 분만 가능하오니 장내가 소란스러워지지 않도록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전면에 앉아있는 인아의 표정은 경직되어 있었다. 하지만 공식석상이었기에 그녀는 강한에게만 보여주던 나약한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당당함과 생기를 머금은 그녀는 고개를 돌려 강한을 쳐다보았고, 따뜻한 미소를 지은 후 다시 고개를 돌렸다.
'역시, 사석의 박인아와 공석의 박인아.. 너무 다르단 말이야.'
잠시 후, 기자들은 질문이 쏟아졌다.
오늘 기자회견은 강한의 계획대로라면 여론을 완전히 뒤집어버릴 것이다. 지금 현재의 인터넷, 여론은 그 아비에 그 딸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인아를 매도하고 있었다.
아마도 적대세력들의 정치공작이겠지만, 그걸 알 리 없는 시민들은 인아를 청렴한 척 꼴깝떨었던 범죄자라며 힐난을 해대었다.
그중, 일전에 인아의 인지도를 올리고 뷔페미즘년들을 거리로 몰아내느라 강한이 지시했던 여성단체 지원금 전면 중단으로 인해 여성들의 비난여론이 상당히 거셌다.
그만큼 이슈성이 짙어졌다는 거였지만, 그만큼 위험했다. 인아의 여리한 감성이 지금의 가면 아래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말이다.
그렇기에 강한은 기자들에게 사이킥 컨트롤을 걸어 우호적인 기사를 내보내려했었지만 아무래도 카메라까지 컨트롤을 걸 수는 없었기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인아를 믿는 수밖에.
"네, 질문하세요."
진행자의 지목에 기자 한 명이 일어났다. 평범하게 생긴 여기자였다.
"UTB의 이소라 기자라고 합니다. 시장님께서 얼마전에 여성단체의 지원금을 전면중단하셨었는데요. 그 지원금이 모두 이강한 작가의 드라마 제작에 들어갔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사실인가요?"
강한이 이를 뿌득 갈았다. 평범하게 생겨서는, 또 뷔페미즘년인가보다. 하고 많은 질문들 중에 저것부터 꺼내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인아가 낮게 심호흡을 한 후, 마이크 버튼을 눌렀다.
"모두 루머입니다. 여성단체 지원금 전면중단은 모두 아버지, 박개인 의원님 지시였습니다. 중지된 지원금은 모두 시 운영 자금으로 사용 중입니다. 소년소녀가장, 저소득층가정 지원금이 대폭 늘었던 것도 그 사유입니다. 그리고 네오 스튜디오 투자 건은 모두 제 사비였습니다."
강한이 내심 감탄했다.
여리했던 인아가 아닌, 강인한 시장의 모습이 또렷하게 드러나는 것에 말이다. 막힘없이 술술 반박하는 것이 강직한 정치인, 그 자체였다.
'역시, 멋진 여자야.'
저렇게 공적인 자리에서 강직하고 고고한 여성이 제 품에선 여린 소녀가 된다는 것이 감개무량할 정도였다. 자신의 어떤 모습이 그녀의 마음을 홀린 것일까, 뿌듯했다. 입가에 미소가 만연하게 피어오른다.
그리고 여성단체 지원금 중단 건은 박개인 의원의 지시로 돌려놓았다. '지시'라는 것은 구두상으로 이뤄질 수 있기에 증거도 없으며 지금 '박게이'라며 조롱의 대상이 된 놈의 증언은 씨알도 안 먹힐 것이다.
그것을 이용해 인아의 입장이 그간 개차반 아비의 밑에서 상당히 곤욕스러웠음을 알려 그녀의 동정여론을 만드는 것이다.
순조로웠다.
"시장님, 아버지 박개인 의원의 비리 사실을 모두 알고도 은폐하신 건가요?"
"비리에 대해선 몰랐고, 당연히 몰랐으니 은폐를 할 수 없었겠죠."
"시장님, 사비로 네오스튜디오에 투자하셨다했는데, 금액이 제법 큰 것으로 압니다."
"금액이 크든, 작든 사적재산으로 투자한 것에 대해서 구태여 이유나 변명을 달 필요가 없습니다."
"시장님, 이번 집단 성문란 사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아버지의 성적 취향이고, 그것이 풍기문란죄에 해당되면 응당 법적처벌을 받아야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우려했던 질문이 드디어 튀어나왔다.
"시장님, 박개인 의원이 경찰에 시장님을 당대표에게 성접대 시켰으며 자신 또한 친족인 시장님을 성폭행했다, 라고 진술했는데요. 사실인가요?"
일순간 소란스러웠던 기자회견장에 무거운 침묵이 찾아왔다. 기차 신호등마냥 깜빡대던 카메라 셔터들도 시간이 멈춘듯 모두 침묵에 동조했다.
질문을 한 기자의 얼굴은 조심스러웠다.
아마도 모두가 하고 싶었던 질문이지만, 총대를 매기 힘들었던 질문이리라. 기자들 모두 숨 죽여 그녀의 입에서 나올 말을 받아적을 준비를 했다.
강한은 눈을 날카롭게 뜨며 인아를 쳐다보았다. 인아가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 다시 고개를 들었다. 강직했던 두 눈동자에 눈물이 일렁였다.
"…사실입니다."
그 짧은 말 한마디에기자들은 먹잇감을포착한듯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타이핑을 해댔고, 침묵으로 동조하던 카메라 셔터들도 서글픈 그녀의 얼굴을 담기위해 미친듯이 깜빡댔다.
"자자, 다들 정숙하세요."
다시금 불이 붙은듯 소란스런 장내에 진행자가 진정시켰다.
그러다 기자 한 명이 다시 민감한 질문을 꺼냈다. 남자기자였는데 사실.. 이목이 모두 인아에게로 쏠린 사이 강한이 슬쩍 마컨을 걸어두었던 기자였다. 아직 이정도론 여론을 바꾸기도, 당대표로 올라가기도 부족했다.
그렇기에 강력한 한방이 필요했다.
대중들의 심금을 울릴.
"시장님, 혹시 지금 심경 좀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다시금 장내가 숙연해졌다. 그녀의 심정이 참담하기 이루 말할 수 없을 거란걸 이곳에 있는 모든 이가 공감하고 있기 때문일 터.
인아가 눈물을 일렁이는 눈빛으로 다시 마이크 버튼을 눌렀다. 뭐, 여담으로 강한은 사실 이 상황을 인아와 이미 합을 맞춘 상태였었다.
심경토로의 질문이 나오면 눈물을 쏟는 시장 컨셉으로 말이다. 질문이 나오지 않자 강한이 조금 손을 썼을 뿐이고.
"후.. 심경이라.. 친족에게 이용 당하는 심경은 끔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성적 노리개가 되어 이용 당해도 꿋꿋이 참았던 이유는 바로 우리 상후돔 시민들 때문이었습니다."
감정 좋고, 연출 좋고.
관객 반응도 좋고.
"많이 힘들었었습니다. 여성의 인격체가 짓밟히고 박인아란 자아가 사라져갔죠. 하지만 더 끔찍했던 것은 정치인이면서 각종 비리로 국민들에게 사기를 친 제 아버지, 박개인 전 의원의 딸이라는 것과 최창기 전 의원의 당원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역시 정치인이라 그런가 말마다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으로 어느새 몇몇 기자들은 타이핑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인아에게 몰입하고 있었다.
여성기자들이었다.
같은 여자로서 성적으로 유린 당하는 아픔을 남자들보다 십분 더 공감하는 듯했다.
물론 남자기자들 역시 홀린듯 인아를 쳐다보면서 타이핑을 치고 있었다. 여신의 아름다움을 가진 여성이 흘리는 눈물은 그 어떤 환각제보다 상대를 쉽게 홀린다.
더욱이 그 눈물이 같은 남성에 의해 흐르는 것이었기에, 몇몇 남성기자들은 그녀의 눈에 눈물이 나게 만든 두 의원 놈들에게 분노를 느끼는지 눈썹이 잔뜩 꺾여있었다.
마치 앵그리버드처럼.
"제가 상처받은 것보다 제 가족에 의해 상처 받았을 국민여러분들께 더욱 죄송스럽습니다. 누군가 말씀하셨죠. 나라에 돈이 없는게 아니라, 나라에 도둑놈이 너무 많다고요. 저 박인아, 제 가족이 진 빚까지 모두 갚으며 국민들께 봉사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인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90도로 공손히 허리를 꺾어 인사를 올렸다. 기자들이 다시 연신 플래시를 터뜨린다. 성공적이었다. 기승전결의 완벽한 스토리텔링까지.
인아가 다시 자리에 착석했다. 음울한 표정은 여전히 유지한 채.
이제 슬슬 기자회견이 막바지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무수히 쏟아지는 질문을 뒤로하고 강한은 휴대폰을 열어 인터넷을 켰다.
실시간으로 업로드되는 기사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세간을 떠들석하게 만든 지옥고추열차의 이슈성을 이어받아 인아의 기자회견은 댓글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ㄴ 어떡함.. 한남들 때문에 위대한 여성이 피해보자나!
ㄴ 불쌍.. 애비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기죽지 마세요!
ㄴ 이런멋진 정치인이 있어서 그래도 다행.
ㄴ 애비새끼 처죽이자!
ㄴ 시장을 국회로!
ㄴ이미 국회의원인데 뭔 개솔
ㄴ 그니까 좀 더 높은 직으로 가자고!
ㄴ 상후돔시는 좋겠다.. 저렇게 예쁘고 멋진 정치인을 시장으로 두고 있다니.
ㄴ 우리 시장님이심! 상후돔시는 썩어빠진 한국에서 떨어져나갑시다! 상후돔국 만세!
네티즌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그녀를 응원하거나, 동정하고 있었다. 뷔페미즘년들도, 여성들도, 남성들도 모두가 말이다.
예상한 반응에 흡족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인아가 슬쩍 강한 쪽을 쳐다보았고, 그는 흡족히 고개를 끄덕였다. 인아 역시 그만이 알아볼 수 있는 옅은 미소를 지은 후 다시 회견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강한은 마치 프린세스메이커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왠지모르게 짜릿했다.
일명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
그리고 세상을 손으로 직접 주무르고 있는 것 같아 통쾌함과 희열감이 이제껏 느껴보지 못했을 정도로 맹렬히 느껴졌다.
'큭큭, 이정도 여론이라면 민중당 차원에서도 이미지 쇄신을 위해 그녀를 당대표로 올려 민중당 간판으로 만들려 하겠지.'
지금 민중당은 풍랑 앞의 돛단배였다.
당장은 풍랑이 드세지 않지만, 그렇잖아도 달아오른 화촉에 불씨 하나만 붙어도 돛단배는 그대로 침몰해버릴 것이다.
대통령을 등에 업었다고해서 능사가 아니다.
이미 대통령도 비리에 연루된 것 아니냐며 국민들이 불신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고로 민중당 입장에선 당의 이미지를 쇄신시켜줄 인물이 필요한 것이다. 슬로건 또한 비리개혁과 잘 어울리는 인물로.
그렇기에 민중당에서 유일하게 드센 동정여론과 응원을 받고 있는 인아를 당대표로 세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녀를 앞에 세우고, 비리개혁과 정치갱생이라는 슬로건으로 몰락해가는 민중당을 억지로 끄잡아 올리려 할 것이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강한이 미소를 지었다. 성공적인 기자회견에 뿌듯한 미소였다. 그때, 회견장 옆문이 열리며 레이나킴이 들어왔다. 쪽문이라 이목이 쏠리진 않았다.
그녀 역시, 강한의 뜻대로 인아를 적극지지해주기로 했었다. 레이나킴이 적적히 웃으며 강한의 옆에 섰다.
"호호, 이미 아시겠지만 여론이 완전히 돌아섰어요. 축하드려요. 작가님."
당연한 결과다.
못 생긴 자가 구하는 귀동냥보단, 아름다운 자가 구하는 귀동냥이 수십 배는 수완이 뛰어나니까. 어쩔 수 없는 세상의 이치다.
하지만 자고로 여론이란 또 언제 그랬냐는듯 웃음기를 싹 지워버릴지 모르는 일이다.
"아직 방심하긴 이릅니다. 나머지 당들이 연합해 또 어떤 변수를 꺼낼지 모르니까요."
"그렇겠죠. 그래도 오늘 축배 한 잔은 들어도 괜찮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