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강한의 반격
"잘 자네."
해가 중천까진 아니더라도 하우스를 밝힐만큼 충분히 떴건만 인아는 계속 자고 있었다. 누가 업어가도 모를 지경이다. 보통 완전 잠에 빠지면 얼굴근육이 풀려 아름다운 얼굴도 볼품없어지는데, 그녀는 정말 아름다웠다.
그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던 걸까.
이리도푹, 이리도 오래 자는 걸 보면 말이다.
방문을 조심스레 닫고 나온 난, 정장을 갖춰 입고 펜트하우스를 나섰다.
예고했던대로, 놈들을 만나러갈 생각이다.
원래라면 다른 일정이 있었지만 역공을 당하기 전에 찍어누르는것이 상책이기에 인아의 휴대폰으로 알아낸 아비의 휴대폰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몇번의 신호음이 흐른 후, 수화기 너머로 노쇠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누구시오.
"나다. 이 씹새끼야."
잠시 전화가 끊긴듯 고요하다 이내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니놈이냐.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는데.
"지금 어디냐. 귀한 얼굴 좀 뵙게."
- 지금? 그나저나 뉴스는 한번 보셨는가?
"..뭐?"
- 허허. 이 양반, 소식이 느리구먼. 이만 바쁘니 끊지. 용무가 있으면 다시 전화하게나.
전화가 끊겼다.
인터넷 어플을 키고 곧장 뉴스탭으로 들어갔다. 심장이 두근댔다. 놈의 엄포가 허투루하는 것이 아님을 잘 알기 때문이다. 정치권 놈들이 하는 '뉴스는 봤는가'라는 안부인사는 '너 좆 됐다'라는 것과 일맥상통하니까.
조폭놈들이 실패할 때를 대비해둔 모양이다.
역시, 정치권놈들의 짱돌이란.
아니나다를까, 메인 뉴스에 나와 인아에 대한 기사가 실려있었다.
내용은 복잡했다.
이미 헐뜯고싶은 가십거리에 신이난 기자들은 인아와 나의 연상연하의 관계를 어긋난 사랑이라며 비난했다. 벤치에 같이 앉아있는 사진까지 첨부하며 말이다.
나는 사랑을 미끼로 인아를 꼬득여 네오스튜디오에 불법투자를 유도했다며 범죄자 취급을 하고 있었다.
불법투자는 아니었지만 이미 여론은 불법투자로 몰아가고 있었다.
불법부동산투기도 아니고, 성공할 지도 모르는 드라마 제작에 투자한 것이 불법이라니, 게다가 그녀의 사비로 한 것인데 말이다.
참으로 가당치않은 얘기였지만 역시나 대중들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전생과 마찬가지로 안줏거리 하나 생겼다는 것에 기뻐날뛰고 있을 뿐이었다.
"하여튼.. 기레기 씹새끼들 인성쪼가리는 인정해줘야한다니까. 괜히 기레기 새끼라고 불리는게 아니지. 개쓰레기새끼들. 좋다고 짖어대는 거 봐라."
순식간에 기사들이 연이어 터져나왔다.
분노가 치밀었다.
전생의 좆 같았던 기억이 겹쳐지며 심장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손이 떨려오고 현실감이 아득히 멀어져갔다.
수습하는 것은 그다지 큰 일이 아니었지만, 놈들에게 또다시 인생을 유린당한 것 같은 기분에 욕지기가 치솟아 속이 메스꺼웠다.
그때, 전화가 다시 울렸다. 놈인가싶어 발신자를 보았는데, 예상외로 가인이었다.
"여보세요."
- 자, 작가님! 뉴스 보셨어요?
늘 냉철했던 그녀의 목소리마저도 상당히 격앙되어있었다.
"네, 안 그래도 지금 보고 있네요."
- 흐윽.. 그거 뿐만이 아니에요. 지금 금감원하고 국세청에서 동시에 회사로 들이닥쳐선 세무조사하고 금융거래조사를 하겠다며 헤집고 난리에요!
먼지 털어 아무 것도 안 나오는 회사는 없다. 더욱이 규모가 있는 회사라면 먼지가 있을 수밖에.
아니, 놈들은 이잡듯이 잡아뒤져 만약 깨끗하다면 남의 먼지도 끌어와서 덮어 씌울 것이다. 정치권의 보복은 1을 당하면 2를 갚는게 그들의룰이니까.
뭐, 이정도나 유난을 떠는 것보면 인아의 성접대 이외에도 뭔가 켕기는 것이 많은 듯했지만.
"…"
결국 나로 인해 벌어진 일이기에 딱히 뭐라 대답해줄 수 있는게 없었다. 분노가 치밀다못해 머리뚜껑이 열리고 용암처럼 분출되어가는 듯했다.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몇분간 우두커니 슨 채, 복잡한 머리를 정리했다.
그러다 이내 피식, 실소가 나왔다.
"개새끼들, 예상은 했지만 잽싸네."
두 눈에 살기를 가득 담은 채, 하우스를 빠져나와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 전면전이다. 어디 일개 인간 따위가 이 시스템 능력을 감당할 수 있는지 보자고.
-뚜르르르ㅡ
- 어ㅡ 자넨가. 어때 내 선물이.
"근데,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냐? 딸내미 성접대 사실을 은폐하려는 것치곤 너무 과한데?"
- 허허. 젊은 녀석이 눈치는 빠르군. 일부러 과하게 하는 걸세. 만약 너희 두놈들이 입을 다물고 있지 않을 시에는 이보다 더 가혹한 보복이 있을 거란걸 미리 깨닫게 해주는 거지. 가끔 멍청한 놈들이 견딜만 하다며 기어오르려해서 말이야.
"흠, 미안하지만 크게 감흥은 없어서 말인데 더 쎈건 없나?"
- 허허. 배짱이 대단하군. 힘들게 이룬 성공인데 그다지 무겁진 않나봐. 마음에 드는 녀석이야. 얼굴이나 한번 보지.
풋, 나의 으름장에 놈이 아닌 듯하면서 꼬리를 내린다. 자존심을 지키고 주도권을 빼앗길 수는 없다는 거겠지. 아마도 네오스튜디오 강압수사철회를 협상카드로 내밀거나, 아니면 또다시 나를 죽이려들 것이다.
뭐가됐든, 오늘 놈이 내게 짓밟히는 건 다름없겠지만.
난, 놈이 말한 장소로 곧장 악셀을 밟았다.
인아의 전화를 무시한 채.
* * *
"오~ 진짜 혼자 왔구만."
"허허, 그러게. 자네 말대로 베짱이 두둑한녀석이군."
놈들이 나를 부른 곳은 일전에인아를 구했던 경현상가의 2층이었다. 공사 명목으로 입구부터 통제되고 있는 것을 보니 놈들이 성가신 놈을 처리하기 위해 자주 애용하는 듯했다.
공사자재도, 공구도 하나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있는 거라곤 스무명이 넘는 남정네들과 무기들 뿐.
그 스무명의 남정네들을 이열 횡대로 세워놓곤 그 앞에 마치 던전 마지막보스인 것처럼 거만하게 의자에 앉아있는 놈들은 나를 비아냥대고 있었다.
가소로웠다.
그리고 기름지고 역겨운 면상판을 조우하니 분노가 치밀기 시작했다. 저 육중하고 더러운 몸으로 감히 내 육노예를 건들다니.
오늘 죗값을 아주 곱절이상으로 받아내버릴 것이다.
시스템을 빽으로 둔 난 전지전능하니까.
"풋. 고작 이게 다냐? 이 씨발새끼들아?"
내 욕지거리에 스무명의 장정들 중, 가장 앞에선 자가 '저, 씹새끼가 감히'라며 발정돼지놈들에게 아첨을 떨어댄다.
"워워, 진정하게. 자네 그 주둥이가 참으로 가볍구만."
"니미 씨발련이다. 개새끼야. 난 주둥이라도 가벼운데 너희 돼지새끼 두 놈은 가벼운 곳이라곤 있냐?"
돼지새끼들 중,좌측에 앉아 지팡이를 짚고 있는 놈이눈을 시퍼렇게 뜨며 말했다. 인아의 아버지란 탈을 쓴 금수새끼다.
"허어.. 명줄을 끊고 싶어서 환장을 했구나. 협상을 하려 했더니, 목숨값이나 받아야겠어."
"받든지 말든지, 이 좆돼지새끼야. 국민들이 낸 세금을 얼마나 삥땅쳤으면 배때지가 그렇게 기름지냐. 역겨워서 못 봐주겠네."
"아무래도 미쳐버린 모양이군. 여기 뒤에 애들이 이전과 같은 놈들이라 생각하는 거냐? 모두 아마추어 혹은 프로 싸움꾼들이다. 이전에 상대한 놈들하곤 차원이 다른 애들인데, 세상 물정 모르고 그렇게 날뛰다 비명횡사하는 수가 있다네."
"그딴 새끼들 열 트럭 갖고 와봐라. 풋."
나의 신랄한 힐난에 돼지새끼 두 놈이 분노를 표출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전혀쫄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겁을 먹는다면 등신새끼겠지.
나를 위협하려거든 마컨이 통하지 않는 인공지능 로봇정도는 되어야할 터다.
그렇기에 난, 설전은 이쯤하기로 하고 본게임에 바로 돌입하기로 했다. 시간은 금이다. 근데 금을 돼지한테다 쓸 수는 없지 않은가.
우선 뒤편에 있는 놈들까지 모두 내 시야에 들어오게끔 도발을 하기로 했다.
"어휴, 국민을 위해서 일하라고 쳐뽑아놨더니.. 아주 양아치새끼가 따로 없구만. 니깟 놈들이 백날 협박해봐라. 내가 쪼는가."
밑도 끝도 없는 도발과 으름장에 되레 돼지새끼들이 주춤한다. 아마도 내가 믿는 구석이 있어 이리 간이 배밖으로 나온 짓을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들리지 않게 서로 밀담을 주고 받던 돼지새끼가 내게 말했다.
"..좋다. 이렇게 하지. 네오스튜디오 수사건은 철회해줄테니 인아를 고이 넘기게나. 그리고 어떤 발설도 하지 않는다는 각서도 쓰고 말이야."
"풋. 꼬랑지내리는꼴이라니. 하여튼 너희 같은 병신종자들이 모여있으니 나라꼴이 잘 돌아갈 턱이 있나. 에라이 칵ㅡ 퉤ㅡ!"
놈들을 향해 가래침을 뱉었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던 가래침이 둘의 발 앞에 떨어졌다. 그 침의 낙하가 거듭된 능멸의 화룡정점을 찍었는지 돼지새끼들의 얼굴이 불그락푸르락 변하기 시작했다.
"이, 이 개새끼가! 안되겠구만. 목숨은 살려주려했더니 오늘 여기가 니놈 묫자리가 되겠구나. 야들아. 저 놈 입 좀 다물게해라."
"가오 잡기는 좆돼지새끼가."
"이.. 이.."
"어어어ㅡ 혈압 올라 객사하실라. 진정혀. 틀딱새끼야. 너흰 오늘부로 틀니 무기한압수다. 개좆방맹이들아."
"야이 새끼들아! 저 새끼 쳐죽여!!"
그렇지.
드디어 장정 스무명이 일사분란하게 흩어지며 내게 접근했다. 후방에서 덤비는 이가 없도록 서서히 뒷걸음질을 치며 놈들과의 아이컨택을 지속시켰다.
-턱.
벽면에 등이 닿았고, 난 전방에 깔린 놈들을 주시하며 곧장 사컨을 시전시켰다.
-딱!
"자, 모두들 잠시 기다리세요."
노예로 변한 놈들을 대기시키고 그들을 지나쳐 돼지새끼들에게 갔다. 두 돼지가 당황해서는 바락바락 침을 튀기며 소리를 쳐댄다.
"야! 야이새끼들아!! 뭐하는 거야!"
"푸훗. 쟤들 다 내 똘마니들이야."
"그, 그래서 그렇게 기고만장을!"
"필요없고, 야 너희 둘. 나 쳐다봐봐."
-딱.
-딱.
두번의 마컨 시전으로 비로소 장내의 모든 사람들이 나의 충실한 노예가 되었다. 우선 돼지새끼들에게 지시해 네오스튜디오의 수사를 철회시켰다. 그리고 다신 보복하지 못하도록 설정한 뒤, 이제 내가 놈들에게 보복하기 위한 판을 짜기 시작했다.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어플을 열었다.
동영상촬영용이었다.
"자ㅡ 나의 노예들아. 모두 옷 벗는다. 속옷까지 전부. 실시ㅡ!"
"""네."""
스무명이 넘는 남정네들이 한곳에 모여 고추를 까발린 광경은 이상하다못해 조금 무서울 지경이었다. 변태게이 스무명에게 둘러쌓인, 게이야동의 수가 된 것 같달까. 괴이한 광경에 몸에 닭살이 돋아났다.
절로 인상이 찌푸러졌다.
"으, 개 더럽네. 자, 여기 일렬로 쫙 서."
저팔계마냥 젖이 늘어진 돼지새끼 두 놈을 앞에 세우고 한 놈은 다리를 벌리고 눕히고 한 놈은 누워있는 놈의 성기 위에 얼굴을 두고 무릎 꿇고 엎드리게 만들었다.
그럼 무릎 꿇고 엎드린 놈의 성기 아래에다 또 한 놈을 눕혔고, 그렇게 스무명을 모두 자세잡아주자 참혹하고 끔찍하기 그지없는 지옥고추열차가 생겨났다.
아, 일전에 시전대상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는 암시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개빡대가리로 내게 깨닫게해준 고마운 녀석은 맨 뒤에 세웠다. 보답이다. 적어도 자지가 깨물릴 일은 없을 테니까.
"워후, 씨팔. 내가 만들었지만 진짜 개좆같네."
-짝짝짝ㅡ
미친 광경, 지독한 혼종, 그 자체다.
게이야동에 이런 컨셉이 있으려나.
뭐, 게이야동을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만 만약 있다면 이 끔찍한 광경을 현실로 끄집어낸 감독의 좆같은 상상력에 경이를 표한다.
"자자, 이제 열차 출발합니다ㅡ"
혐오에서 경탄의 지경에 이르른 지옥고추열차를 이제, 출발시키기로 했다. 땔감은 고추요, 바퀴도 고추요, 레일도 고추인, 그야말로 고추에서 고추로 끝나는 개족같은 지옥고추열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