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화 〉시장 박인아와 순애씬
"푸훗. 정치인이 원래 죄송하단 말을 버릇처럼 하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만, 이렇게 자주할 줄이야."
어색하게 굳은 분위기를 풀기 위해 시답잖은 농담을 몇번 나누자 이내, 우린 처음 들어왔을 때 정도의 분위기를 다시 맞출 수 있었다.
"그나저나 작가님 정말 멋있으셨어요. 드라마 찍는 줄 알았잖아요. 한 주먹에 한 명씩 처리하시다니, 격투기 같은 걸 배우신 거에요?"
"음.. 뭐 비슷한 거죠. 어서 먹어요. 식겠다."
"네."
그녀가 울음을 터뜨린 이유에 대해선 굳이 묻지 않았다. 그녀역시 구구절절 변명하지 않았고.
인아가 슬픔을 감추려는듯 애써 웃어보이며 말했다.
"맛있네요. 오랜만에 먹어보는데."
"전 즐겨 먹어요. 주식이 변하면 배탈나기 마련이니까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제껏 숱한 고통에 시달려온 울분이 일순간 주체할 수 없을만큼 터져나온 것이겠지. 대외적으론 당대표에게 휘둘리며, 내적으론 지 아비에게 휘둘리는, 가시밭길 같은 상황에서 꿋꿋이 버텨오다 결국 터져버린 것이다.
누구도 모르게 묵혀두었던 울분이 내 앞에서 터져버린 것이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누군가의 기댐을 받는다는 건 부담스러우면서도 기분 좋은 일이다. 내 편이 한 명 늘어나는 것이니까.
그렇게 울고 웃으며 야식시간을 마친 우린 잠에 들기로 했다.
시간은 어느새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거실 통유리창으로 보름달의 밝은 밤이 들어오고 있었다.
안방을 내어주고 게스트방에서 자려했지만, 너무 부담스럽다며 끝까지 거절한 그녀는 끝내 배게와 이불을 훔치듯 가지고선 게스트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언제 보아도, 정치인이라 믿기 힘든 그녀다.
철부지 소녀 같기도 하고.
안방으로 들어온 난 방문을 닫고 침대에 몸을 뉘였다. 절로 '어흑'하는 깊은 한숨이 세어나왔다. 고단한 하루였다. 난생 처음 병원균 치료라는 신체개조능력발현과(물론 치료가 될진 모르겠지만), 스무명 장정을 쓰러뜨리기까지.
시스템을 가진 이후로 인생 참 스펙타클하게 흘러가는 듯싶다.
스탠드 등까지 모두 소등하고 휴대폰을 켠 난 또 다시 어울리지않는 정치시사뉴스 탭으로 들어갔다.
내일이면 말레이시아 남서쪽 지방에서 대지진이 일어난다. 진도 7.9로 유래없는 강진이었는데 그때문에 수만명이 사망하고 수십만명의 이재민이 생겨났었다.
세계적으로도 큰 이슈거리였었기에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 내일 오전에 말레이시아에서 지진 일어날듯 ]
앞전과 같이 적당한 기삿거리에 심플하면서도 담백하게 댓글을 달고 휴대폰 화면을 껐다. 두 건의 자연재해 적중으로 이제 슬슬 인터넷상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할 것이다.
뭐, 시간텀이 길다보니 주목을 받을진 장담할 수 없지만.
눈을 감았다.
골방에서 잘 때는 뭔가 아늑한 맛이 있었는데.
펜트하우스처럼 넓고 고급진 집이 좋기도 하지만, 요즘 가끔씩 타자기 앞에서 골머리를 싸매며 허름하지만 좁아 안락함이 느껴지는 이부자리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희안한 일이다.
성공을 너무 쉽게 이룬 탓일까?
그래서 마음 한켠에 왠지모를 공허함이 남아있는 것 같다. 노력의 결실이 성공인데, 노력이 없었기에 이리도 공허할까.
"배부른 소리."
잡념을 치우고 눈을 감았다.
내일부터 정치권 두 새끼들을 처단하기 전까진 바쁜 나날이 될 것이기에 이만 잠을 청하려했다.
그런데, 그순간 스르르 방문이 열렸다. 깜짝 놀라 경기를 일으킬 뻔했다. 혹여 정치권 놈들이 보낸 작자일까싶어 경계했지만 이내 숨소리가 인아인 것을 눈치채곤 잠든 척을 했다.
방문을 등지고 누워있던 터라 내가 잠든 줄 알 것이다. 갑자기 인아가 식칼로 나를 찌르는 서스펜서스릴러 장르로 변하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잠든 척을 하고있자 인아가 이불을 살며시 걷으며 이불 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곤 뭔가 움찔대며 머뭇거렸는데 그에 난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안아도 됩니다."
흠칫 놀란 듯하더니 이내 인아가 수줍은 몸짓으로 내 등을 백허그로 감싸안았다. 허리를 살짝 들어주자 밑으로 손을 쏘옥 넣어 완전히 나를 감싸안고는 완전 몸을 밀착시켰다.
그녀의젖가슴과 부드러운 허벅지가 내 몸의 감각을 일깨운다.
"…고마워요."
이렇게 가녀리고 약한 여자가 어떻게 시장직을 달고 있으며 정치판에서 전전하고 있는 걸까. 그것도 지 아비에게 훈련받은 탓인가?
인아는 내 등에 얼굴을 파묻곤 말없이 그렇게 누워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내가 정말 자기의 남자가 되어주길 바라는 걸까?
"작가님.."
"말씀 낮추셔도 됩니다. 나이도 많으시고 직함도 높으시니까요."
"아.. 그, 그래. 고마워.. 너무나."
"딱히 시장님을 돕는 거 아닙니다. 두 작자들이 저를 노리고 있으니 응당 방어는 해야하니까요."
"미안해.. 나 때문에."
사실상 그녀는 본인이 아닌, 나 때문에 겪지 않아도될 수모를 겪은 것이다. 내가 의도적으로 접근치 않았다면 공사판에서 먼지에 구르며 목숨의 위협을 느끼는 일도 없었을 테지.
그것을 잘 알기에 사과를 받아들이진 않았다.
대신몸을 돌려 그녀와 마주했다. 그녀의 따스한 온기와 야릇한 맨살의 촉감이 내 음욕을 건드려 어느새 하물이 부풀어있었다.
헝클어진 머리를 귀 뒤로 넘기자 그녀의 서글픈 얼굴이 드러났다.
"..근데 이제 어쩔 셈이야."
걱정스런 그녀의 물음에 난 대수롭지 않다는듯 미소를 지었다. 따지고 보면 정말 대수롭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걱정 마세요. 제가 다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시장님은 이곳에서 쉬면서 몸이 안 좋단 핑계로 당분간 대외활동은 전면중단하세요."
"…그래도 될까?"
"저만 믿으세요."
인아는 정말, 나를 만난 것을 감사해야할 거다. 뭐, 나도 많은 도움을 받았긴 했지만.
"정말 고마워..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할지…"
"으음, 하나 있긴 한데…"
"응? 정말?"
인아가 장화신은 고양이처럼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며 순수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은혜를 갚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잔뜩 차오른 얼굴이다.
..
생체오나홀이야.
그녀는 내 육노예이자 생체오나홀이라고.
"아, 아닙니다. 어서 자죠. 피곤할 텐데."
급히 등을 돌리고 누워버렸다. 고난과 역경이 가득한 삶을 살아놓고도 어떻게 저런 순수한 표정을 지을 수가 있는 거지, 게다가 40대 초반의 나이를 가진 여성이 말이다.
예전 같았으면 치녀로 밝혀지기 이전의 순수은행원 수연에게 했던 것처럼 그저 순수함을 더럽히는 욕망과 쾌락에 사로잡혀 마구 범했을 텐데, 왜 인아에게는 그렇게 대하기가 힘든 걸까.
눈을 질끈 감았다.
물론 그녀가 옆에 있는 이상, 쉬이 잠들지 못할 것을 잘 알지만 일단 감았다.
그런데..
인아가 다시 내 등에 몸을 붙이며 손으로 내 하물을 감싸쥐었다. 놀란 내가 고개를 틀어 그녀를 쳐다보았다. 인아가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눈은 슬프지만 입꼬리는 웃는, 그런 얼굴이었다.
"너는.. 다른 남자들과 다른 것 같아."
..다르다마다요.
다를 수밖에 없지요.
어느 남정네가 이렇게 온갖 여자들을 쑤시고 다니겠어요. 하지만 근질거리는 입을 꾹 닫고 당황한듯 말했다.
"시, 시장님."
"나 할 수 있어.. 너한텐 해주고 싶어. 그리구.. 누나라고 불러주면 안 돼..?"
자신이 말을 편하게하며 가까워진만큼 나도 편한 호칭으로 자신과 가까워지길 바라는 듯했다. 잠시 머뭇거렸다. 쉬이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에 인아가 아쉬운 눈초리로 내 등에다 입을 맞추었다.
"...내가 성급했지? 미안해.."
눈치보는 것이 정치인의 삶이기에 그녀는 자연스레 생각을 접었다. 아직 모르겠다. 호칭을 누나로 해버리면 그녀에게 내 마음을 모두 줘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쉬이 결정내리기가 힘들었다.
단순한 호칭일 뿐인데 말이다.
인아가 하물을 잡은 손을 천천히 움직이며 엄지로 귀두를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여성의손길이 닿은 하물이 기둥을 단단하게 세웠다.
"진짜 괜찮아요? 뭐.. 이미 우리가 관계를 나눴다해도 오늘 힘들었을텐데."
"힘들었어도 너가 와줘서 이젠 괜찮아."
"그럼.."
결심을 굳힌 난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한 이불 아래 서로를 바라보며 누워있자 마치 연인사이가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수록 마음 한켠이 불편해지고 복잡해져갔다.
안전감옥에만해도 두 명의 여성이 내게 감금당한 채 정신개조를 당하고 있다. 누군가 알면 파렴치한 범죄로 당장 세간의 질타를 받을 일이다.
전생에서 마저 붙이지 못한 온갖 부정적이고 추접한 수식어들이 내게 붙을 것이다. 그런 내가 과연 그녀와 마음을 나누어도 될까.
아니.
절대 안 되지.
그저 도움 받은 것을 갚아준다 생각하며 이렇게 기회가 닿을 때 그녀의 육체를 취하면 그만이다. 깊이 생각할 것 없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난 그녀의 위에 몸을 포갰다. 고급 침대 스프링이 내려앉으며 인아의 몸이 푹 꺼졌다.
"흐읏.."
그저 몸을 포갰을 뿐인데도 그녀는 낮은 신음을 흘렸다. 그녀의 매혹적인 얼굴을 내려다보며 파자마 잠옷을 모두 벗었다. 그리고 그녀의 와이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강한아…"
"네?"
"여자랑.. 자본 경험 많아?"
갑자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일까, 흡사 그녀의 물음은 20살 처녀들이나 할 법한 것이었다. 사랑하는 남친의 첫 관계가 자신이었으면하는 부질없는 기대가 담긴 질문이랄까.
난 그 질문에 옅은 미소로 답해주곤 단추를 모두 풀어 와이셔츠를 젖혔다. 새하얀 피붓결과 분홍빛 브라가 눈에 들어왔다.
42살의 나이에 분홍색은 확실히 어울리지 않는 색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에겐 잘어울렸다.
그런데, 유방선 위쪽과 어깨라인에 자잘한 상처가 눈에 띄었다. 아문 정도로 봐서 오늘 생긴 상처는 아니었다.
일전에 관계를 가졌을 때에도 본 기억이 없다. 고로, 그 후로 생겼다는 건데..
내 시선이 상처에 머문 것을 보았는지 인아가 젖혀진 와이셔츠를 다시 여미어 상처를 가려버렸다.
"미안… 보기 흉하지."
"그놈들.. 짓이에요?"
"..응."
"휴.. 대체 왜 그렇게 휘둘리고 사는 건데요?"
답답함에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인아가 내 뒷목을 끌어안고 깍지를 꼈다. 그리고 늘 서글프던 그 눈동자로 나를 응시했다.
"오늘은.. 아무 것도 묻지 말아줘. 강한이 너랑.. 있는 이 시간을 방해 받고 싶지 않아...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곳인걸."
한숨이 나왔다.
이렇게 순진하고 여리니 이용이나 당하는 거지.
비록 나도 애시당초 그녀를 이용하기위해 접근했던 것이기에 할 말은 없지만, 그녀의 순종적이고 여린 모습에 옅은 분이 생겨났다.
다소 날카로워진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다 이내, 입술을 포갰다. 그녀의 뜨거운 숨결이 내 입 속으로 흘러와 기도로 빨려들어갔다.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녀는 내 뒷목을 여전히 끌어안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혀와 혀가 견우직녀처럼 만나 딥키스를 나누며 그녀의 브라끈 쪽으로 손을 넣자 그녀는 곧바로 가슴팍을 들어 끈을 풀기 쉽도록 해주었다.
그러면서도 허리는 요염히 움직이며 곧게뻗은 하물을 음모로 문질러댔다.
전부터느낀 거지만 그녀와의 관계는 뭔가 접대를 받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화가 난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