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외전/과거편) 그 여자의 사정
"하앙ㅡ♡ 오빠 더 쎄게, 더 쎄게!"
동영상 속 여성이 한 남성의 용두질에 맞춰 앙앙거리며 제 젖가슴을 만지고 혀로 빨아대고 있었다. 거대하진 않더라도 적당한 크기의 젖가슴은 제 주인의 혓바닥에 핥아지며 젖꼭지를 빨딱 세운다.
남성은 그런 여성을 정상위에서 내려다보며 다리를 벌려잡은 채 거칠게 박아대고 있었다.
찰박대는 끈적한 소리가 동영상의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온다. 여성이 남성을 눕히고 그 위에 올라탔다.
남성은 그런 여성의 리드에 침대에 몸을 눕혔다. 여성이 다리를 쩍 벌리고 남성의 몸 위에 음부를 내리며 손으로 남성의 자지를 잡아 조심스레 제 음부에 문질렀다.
"으읏."
"흐응ㅡ♡ 오빠, 좋아? 얼만큼 좋아?"
"나, 지구에 있는 거 맞지?"
"아니, 여긴 안드로메다야. 호호♡"
낯뜨거운 대화를 나누며 남성과 여성은 서로의 몸을 뱀처럼 비비고 꼬아대며 뜨거운 정사를 나누었다.
"하아ㅡ♡ 힘들어."
남성의 위에서 거세게 방아를 찧어대던 여성이 지쳤는지 침대에 드러누웠다. 유려하고 깨끗한 등선이 남성의 시각을 자극한다.
남성은 여성의 매끈한 뒷태를 마음껏 쓰다듬었다. 그러다 여성의 둔부를 벌려잡았다. 여성은 일자로 엎드린 채 숨을 내쉬고 있었다.
-쑤욱!
"하아앙ㅡ♡"
"아, 안에다 싸도 돼?"
"안. 돼. 바깥에 싸. 어딜 안에다 싸려고."
남성은 거듭 묻지 않고 그녀의 둔부에다 치골을 박치기해대며 용두질을 이어가다 이내 꾸득 차오른 사정감에 그녀의 엉덩잇골 사이에다 잔뜩 싸질렀다.
-푸슛! 푸슈슛!
"하앗ㅡ♡ 뜨거워.."
이게 동영상의 전부였다.
여성의 얼굴, 남성의 얼굴이 멀끔히 드러난.
동영상의 여주인공인 서연이 자신에게 동영상을 보여주며 비릿하게 웃고 있는 남성에게 소리쳤다.
"…오, 오빠. 이건 아니잖아!!"
"왜? 동영상 유포해줄까? 이제껏 쌓아온 게 다 무너질 텐데? 날 나쁜 놈으로 만들 생각이야? 그러지마."
"...나, 나쁜 새끼!!"
서연의 좁은 미간이 짜증스레 구겨졌지만 분노에 헝클어진 머리를 연신 쓸어넘기기만 할 뿐, 사내의 협박에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사내는 그런 서연의 모습에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왜, 그 새끼가 그렇게 좋더냐? 나 차고 갈 때는 언제고, 이 걸레 같은 씨팔년."
"오빠가 쓰레기인 줄 알았으면 안 만났어!!"
사내가 인상을 험악하게 굳히며 때릴듯 손바닥을 펴들었다. 아니, 그라면 진짜 때릴 수도 있었다.
"이 씨발년이 주제파악 못하고 까불어. 하여튼 여기 보험있으니까. 가서 뽑아먹을 수 있는 거 다 뽑아먹는 거야. 말 안들으면 알지?"
사내가 휴대폰을 들어 보이자 서연은 분개한듯 치를 떨었다. 언제 찍었는지 모를 자신의 정사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었다. 그 동영상엔 자신의 은밀부위와 적나라하게 드러나있었다.
철수가 이별통보에 앙갚음을 하겠다며 집에 몰래 설치한 몰래카메라에 의해 찍힌 것이었다.
동영상에는 자신의 남자친구,강한과 나눈 뜨거운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인간이 막되먹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진작 헤어졌어야하는데, 하고 후회해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저 동영상이 퍼진다면 이때까지 힘겹게 쌓아올린 커리어가 와르르 무너져내릴 것이기에 사실상 그녀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나보고 어떡하라고!! 이 개새끼야!!"
서연의 신경질적인 외침에 사내는 비릿하게 웃으며 계획을 얘기했다.
"가서 우선 니가 받은 선물하고 집에서 챙겨나올 수 있는 건 다 가져와. 그리고 놈이 찍소리 못하게 내가 들어가서 존나 팰 테니까 넌 나가고. 알겠냐?"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어? 때릴 필요는 없잖아! 어차피 지금 제정신이 아니라 아무 것도 못해!"
"개잡년이 그냥 하라면 하라는대로 해. 짜증나게 하지 말고."
서연은 어떻게서든 제 남친의 피폐해진 정신을 붙잡아주고 싶었지만, 제 눈 앞에서 조소와 겁박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사내는 그 어떤 생각도 허락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어차피 너도 돈 필요하잖아. 애미라고 있는게 통원치료한대도 약값이 어마하겠더만. 그러니 반반 떼준다할 때 곱게 처들어라. 이런 평등하고 파격적인 조건이 또 어딨겠어, 크하하!"
서연의 표정에 당혹감이 차올랐다. 그에게 어머니의 이야기는 일절하지 않았었다. 가족 이야기는 가족에게만남기고 싶었으니까.
"..미친 새끼가! 뒷조사까지 했어?!"
"풋, 그게 뭔 대수라고. 그러니까 이 씨팔년아 약값도 충당할겸 한다 생각해. 그럼 마음 편하잖아? 인지도도 없는 니년이 그 약값 어떻게 충당할라고, 왜 몸이라도 팔라고?"
"닥쳐! 이 쓰레기새끼야!!"
"흐음~ 니 와꾸가 쓸만 하니까 스폰 땡겨도 월 천은 우습게 벌걸? 그러니까 그런 짓하기 싫으면 정신 똑바로 챙겨라잉. 넌 전남친의 협박에 못이겨서 하는 것뿐이야. 그럼 가책 느낄 것도 없잖아? 크하학!!"
결국 그녀는 사내에게 이끌려 남자친구, 강한의 집으로 향했다. 거짓미투로 인생의 정점에서 나락까지 떨어진 그의 모습을 바라만 봐야한다는 것도 힘들건만, 그에게 남은 것들마저 모조리 갈취하라는 사내의 계획에 원망스럽기만 하다.
그럼에도 자신의 커리어가 무너질까 사내의 계획에 끌려가는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집앞에 도착한 서연은 힘겹게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제 속도 모르고 초인종에선 경쾌한 벨소리가 흐른다. 철제대문과 높은 담벽에는 빨간 락카를 이용해 적어놓은 각종 저주스런 글귀들이 시선을 이끈다.
인터폰 속 답을 기다리며 그 글귀를 읽던 서연은 오직 자신만이 알 것이라 생각했다. 그가 결백하다는 것을.
"씨발새끼, 집은 존나 좋네."
등뒤에서 들리는 사내의 뒷담을 무시한 서연은 인터폰 화면에 등장한 강한의 초췌한 모습에 시선을 피해버리고 말았다.
- 왔어?
"으, 으응.."
강한은 별 의심없이 문을 열어주었고, 서연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도축소처럼 터덜터덜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뒤따라 사내가 들어왔다.
"하~ 집이 으리으리한데 좀 뺏아도 티도 안나겠네, 큭큭."
제집인냥 건들대며 바닥돌을 걷는 사내를 고개돌려 쳐다본 서연은 더러운 벌레를 보듯 경멸스런 시선으로 흘기곤 다시 고개를 돌렸다.
마음 같아선 죽여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개새끼..'
현관문에 도착한 서연은 문을 두드렸고, 퀭한 몰골의 강한이 문을 열어주었다. 진하게 풍기는 술냄새에 서연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진다.
"들어와.."
힘없이 처진 목소리에 서연은 또다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강한이 먼저 들어갔고, 서연은 사내의 명령대로 문을 완전히 닫지 않고 들어갔다.
어지러운 거실이 강한의 심정을 대변해주었다. 거실 탁자에는 몇병인지 세기도 힘들 정도로 술병이 깔려 있었고, 각종 음식물 덩이들이 흐트러져있었다.
"안주라도 좀 챙겨 먹지…"
진심어린 걱정으로 잔소리가 나왔지먀 그에게 남은 것을 뺏으러온 자신에게 잔소리할 권리가 없음을 깨닫곤 입을 닫아버렸다.
며칠을 감지 않아 기름지고도 헝클어진 머리를 한 강한이 소파에 주저앉아있는 모습에 그녀는 급히 시선을 피해버렸다.
"안주라도 하나 해줄게.. 오뎅탕 좋지?"
대답이 없음에도 서연은 주방에 들어가 능숙하게 식기도구들을 꺼내 오뎅탕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묵묵히 테이블 위에 놓인 술병과 음식물들을 정리했다.
"많이도 먹었네.. 그러다 진짜 술 때문에 죽겠어.."
자격이 없음을 알지만 계속 잔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죽어도 상관 없겠지.."
".."
그의 자조작인 말에 순간, 울분이 치밀어올랐지만 한숨으로 삭혀 내보냈다.
테이블을 깨끗이 치우고 그위에 오뎅탕을 놓고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 놓아주었다. 잔도 찬장에서 새 것으로 꺼냈다.
"오뎅탕 꼭 먹어. 속 썩어."
"이미 다 썩었어."
"그러지 말고.."
강한은 다시 테이블 앞으로 내려와 앉아 소주를 글라스잔에 가득 따랐다. 벌컥벌컥, 반잔을 들이켰다. 소주가 식도를 독하게 달구지만 강한은 물을 마시듯 편안히 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여친인 서연의 노력을 생각해 숟가락으로 오뎅탕 한술을 떴다.
서연은 그저 묵묵히 어지러진 거실을 정리하고 침실을 정돈하고 설거지까지 마무리지었다. 워낙 더러웠던 탓에 끝나자 두 시간이 흘러있었다.
어느새 강한은 취해 거실바닥에 그냥 널브러져있었다. 술이 깨지도 않았는데 계속 술을 들이붓자 빨리 취해버린 것이다.
서연은 그런 그를 안쓰럽게 쳐다보다 안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지갑이었다. 그의 카드비밀번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미안해..'
그리곤 강한이 숨겨두었던 금은보화를 능숙하게 찾아 가방에다 챙기곤 폰으로 사내에게 연락했다.
잠시 후, 사내가 거실로 들어섰다.
"븅신, 잘도 자네."
"진짜.. 할 거야?"
"개소리말고 챙긴 거 다 들고 차에 가있어."
"하지만.."
"이 씨발. 빨리 안 꺼져?!"
사내의 겁박에 결국 서연은 울며겨자먹기로 집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죽을 힘을 다해 힘겹게 쌓아온 커리어를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다.
집에 남은 사내는 강한이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릴 때까지 거실에 앉아 술을 마시며 티비를 보았다. 취기에 기억 못하면 안 되니까.
세 시간쯤 지났을까, 히히덕대는 사내의 기척에 강한이 부스스 눈을 떴다.
"아이고, 씨바. 오래도 기다렸다."
사내는 몸을 일으키며 찌뿌둥한 몸에 기지개를 크게 켰다. 강한이 놀라 소리쳤다.
"뭐, 뭐야!!"
"뭐긴 뭐야 이 씨벌놈아. 서연이 남친이다!"
-퍼억!
사내는 강한의 얼굴을 냅다 걷어차버렸고 크게 고개가 꺾였던 강한의 입가에서 피가 흘렀다.
"크윽.. 서연이 남친은 난데.. 넌 뭐야…!"
"나 최철수가 서연이랑 10년을 사귀어왔는데, 무슨 개소리냐, 킬킬."
"헤어졌다고 했는데..크윽.."
"헤어지긴 누가 헤어져. 이 개새끼야."
철수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강한의 머리채를 잡아 고개를 들었다. 아직 취기가 완전히 가시지 않아 흐릿한 강한의 눈을 노려보며 미소지었다.
악독하기 그지없는 미소였다.
"헤어지긴 큭큭, 우리가 얼마나 뜨겁게 사랑하고 있는데. 암튼 긴말할 거 없고, 오늘부터 서연이랑 연락 안 될 거니 찾지마라. 넌 걔한테 이용 당한 거 일 뿐이야. 븅딱아, 큭큭."
강한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그 흔들림은 잦아들었다.
"만약 어떤 이유에서든 우리를 찾으려하면 니놈이 서연이를 수 년간 성폭행했다는 기사를 보게될 거야. 알겠냐?"
강한은 침통한듯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잠시 후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믿기지 않는 현실의 연속에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가 웃기냐?"
"그냥.. 현실이 코미디인데 어째 안 웃겠냐.. 푸하하…!"
"미쳤구만 드디어, 쨌든 잘 알아들었을 거라 생각한다. 이 븅신아."
-퍼억!
웃는 얼굴엔 침도 뱉지 않는다했건만, 철수는 강한의 웃는 얼굴에다 주먹을 날렸고, 묵직한 주먹에 강한은 웃음기를 잃고 바닥에 널브러지고 만다.
.
긴 잠에서 깨어난 강한은 휑하게 싸늘해진 집안에서 몸을 일으켰다. 입가에 굳은 피도 닦아내지 않고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와 탁자에 놓았다.
그런데 외로이 틀어진 텔레비전에서 낯익은 얼굴이 나왔다. 뉴스 생중계였는데 반원탁에 앉은 낯익은 얼굴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그는 위치와 권력을 이용해 저를 붙잡아두고 매일을 성폭행했습니다.. 흐윽.. 하지만 저항할 수 없었어요. 저에게 약을 먹이고 쓰러진 저의 육체를 담은 카메라로 저를 끈임없이 협박했습니다.. 폭로하면 앞으로 작품활동은 절대 하지 못할 것이라면서..
처음엔 그녀가 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철수 놈인지 알았지만, 그 화살이 자신에게 향한 것을 알곤 허탈하게 미소지었다. 어차피 두 년놈들을 찾을 생각도 없었고, 어차피 이젠 그들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었다.
그렇기에 더 이상 놀랍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더 이상 내려갈 바닥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차피 대중들은 자신의 얘기엔 귀를 닫아버릴 것이고, 그녀의 얘기는 진실이 되어 퍼져나갈 것이다.
이젠 해명하고픈 생각도 없었다.
그는 한때 사랑했던 여성의 거짓고백을 안주삼아 소주를 또다시 들이부었다. 피맛과 뒤섞인 비릿한 소주 맛이 썩 입에 착 감긴다.
"크~ 술맛좋네~ 하핫."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그녀의 소속사사장은 철수의 친구였고, 사장은 이참에 서연보다 더 유명해진 강한을 이용해 그녀의 인지도를 올리잔 계획을 했고, 그녀는 결국 사장의 계략에 어쩔 수 없이 뉴스에 출연해 일생일대 최선의 연기를 펼치고 있다는 것을.
- 마음 고생이 심하셨겠군요.
- 아닙니다..
"푸하하! 으하하하핫!"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강한은 병나발을 불며 점점 취해갔다. 분노도 차오르지 않았다. 그저 재밌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쓴다면 대박나지 않을까, 하는 허사스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인생 참 재밌어~"
그옛날 누군가 그랬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근데 자신의 인생은 왜 멀리서 봐도 비극, 가까이서 봐도 비극인 걸까.
어서 이 비루한 인생이 끝나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