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라이징 스타 작가 탄생
"오랜만이시네요."
딱히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나와의 만남이 오랜만이라 여기는 모양이다. 나를 의지하는 마음이 큰 탓이겠지.
왜 그녀가 이러는지 당최 모르겠다.
마컨 상태에서 관계를 가진 것도 아닌데, 그녀정도의 미모와 지위만 있으면 솔직히 마음만 먹으면 톱스타도 만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잠시 함께 바스라지는 석양의 노을을 쳐다보았다. 불그스름한 노을을 보며 감상에 젖었던 지가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개잡년들이 나를 거짓미투로 고소한 이후, 그리고 매스컴에서 내 이야기는 철저히 묵살 당한 이후론 '감상'에 젖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대체 그녀들은 나에게 왜 그런 걸까?
고작 자서전에 뷔페미즘에 대한 비판을 적었다고 그렇게 무자비하게 한 사람을 죽여버린 걸까?
자유민주주의 시대에 비난은 힘들지언정, 비판은 누구나 할 수 있지 않은가. 하긴.. 뷔페미즘 년들 뇌 속엔 우동사리가 차있으니 비난과 비판의 차이를 모르려나.
뭐, 나도 선입견이겠지만 적어도 그 당시 자서전에는 그들을 전체화시키지도 않았으며 그들의 이중적인 잣대를 나타내는 증거들도 제시하며 페미니즘을 가장한 다수의 뷔페미즘이 남녀평등인 페미니즘의 본질을 오히려 엉뚱한 방향으로 이끈다했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 그들을 분개하게 만들었을까?
젠장, 궁금해해서 뭐하겠는가.
미래에 일어날 일이고 지금 그 보스년을 잡는다한들 내 궁금증을 풀어줄 수는 없겠지.
"부탁드린건요?"
내 냉담한 반응에 인아의 얼굴에 아쉬움이 스쳐갔다. 음? 그런데 선글라스 아래 가려진 그녀의 눈두덩이 뭔가 이상하다. 내 시선에 얼굴을 급히 피하는 것도 그렇고.
인아는 고개를 옆으로 자연스레 돌린 채 내게 유에스비 하나를 건네주었다.
"여기 담겨있어요. 아무래도 종이출력은 힘들 것 같아서요. 메일도 증거가 남으니 좀 그렇고.. 그래서 만나자고 한 거에요."
굳이 묻지 않은 말까지 이어하는 것을 보니 그녀에게도 귀여운 면이 있는 것 같았다. 누가 뭐라했나, 괜히 자신의 마음이 들킨 것 같아 부끄러운 모양이다.
아니면 내게 도움을요청하는 건지도.
우선 유에스비를 받아 호주머니에 넣은 뒤, 벤치에 앉은 몸을 살짝 돌려 등받이에 한팔을 걸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우물대며 고개를 홱 틀어버린다.
"시장님? 얼굴 좀 봐도 될까요? 선글라스 벗고."
"네? 네?"
인아가 당황해했다.
그걸로 진짜 가려질 거라 생각한 건가.
조금 더 짙은 선글라스를 끼던지, 아니면 어두운 곳에서 만나자던지.
흠, 오히려 그 반대로 내게 은연 중에알리고 싶은 건가?
잠시 후, 인아가 선글라스를 벗었다. 내 부탁을 들어줘야하는 암시 탓에 그녀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잠시 머뭇대던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내게 얼굴을 보였다.
"…."
뭐라 말하기 힘들었다.
한쪽 눈두덩이 적보라색으로 온통 물들은데다 벌에 쏘이기라도 한듯 퉁퉁 부어있었다. 거기다 그 부어오른눈두덩 사이의 눈빛이 애잔한 것이 꼭 남편에게 얻어 맞은 아내 같기도 하고.
"…."
생각보다 처참한 눈두덩에 당혹스러웠지만, 이내 그 당혹감은 분노로 승화되기 시작했다.
"그 놈들.. 짓인가요?"
하지만 동요치 않았다.
왠지 모르게 그녀에겐 내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기억 못할지언정, 결국 나도 그녀들에게상처주었던 남자들 중 하나에 불과하니까.
"..네."
우선, 그녀의 진심어린 생각을 확인해볼 필요는 있었다. 정치판 인간들은 배신과 음모가 일상인 족속들이니까.
"혹시 제게 무언가 원하는게 있어서 의도적으로 일을 꾸미고 있는 건가요?"
그녀의 눈빛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결국 내 질문도 부탁의 일종이다. 고로 그녀는 진실되게 답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요.일을 꾸미지도.. 이런 모습 보여드리기도 싫었어요."
"흠.. 그럼 굳이 오늘 만나지 않아도 되지 않았나요?"
"급하신 것 같아서.."
"정치인이시면서 숨기는 걸 잘 못하시는군요."
"…미안해요."
미안하다며 고개를 힘없이 숙이는 그녀의 모습에 그녀가 내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런데 애시당초 내가 자신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전능한 시스템이 없다면 난 오히려 놈들의 먹잇감일 뿐인데 말이다. 도움은커녕 둘다 개박살이나 나고 말테지.
난 어디 쥐도 새도 모르게 드럼통에 담겨 시멘트와 함께 이름모를 해역의 어딘가에서 뼛속까지 썩어문드러질 때까지 잠겨있을 텐데 말이다.
뭐, 어디까지나 시스템이 없는 나약한 이강한일 때의 이야기긴 하지만.
마인드컨트롤을 넘어 광역 스킬, 사이킥 컨트롤까지 발현된 난 가히 반신이라 부를 수도 있는 전능함을 가졌으니까.
머리만 잘 굴린다면 공권력, 군사력을 거머쥐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물론 그럴 생각은 없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흐음…"
잠시 생각에 빠졌다. 우선 그녀는 내 뒤통수를 후릴 생각은 없고 무슨 일도 꾸미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 그녀의 이야기일 뿐.
그녀를 노리개로 일삼는 당대표와 아비란 작자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겠지.
그녀와 붙어먹었단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리고 그녀가 내게 과거의 이야기를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나를 족쳐야할 명분은 충분할 테니까.
아버지란 작자의 행실로 봐선 딸을 감시한답시고 지금 이순간에도 끄나풀을 붙여 미행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
생각보다 간단하게 결론이 나왔다.
이래나 저래나, 한번 만나뵈야겠는걸?
두 새끼 모두.
그리고 어차피 두 번째 거사계획은 연예계를 뛰어넘는 일이기에 정치판의 장애물을 미리 손봐두는 것도 괜찮겠지. 딸을 노리개로 바치는 인간이나, 그녀를 성노리개로 갈취하는 인간이나 곁에 둬서 이득될 건 하나도 없을 테니까.
그녀에게 느낀 사사로운 감정이 아닌, 철저히 내 앞길에 걸리적댈 장애물을 미리 제거하기 위함이다. 뭐, 겸사겸사 그녀에게도 선한 영향을 끼치게 되겠지만.
벤치에서 일어선 난 조심히 들어가라는 싸늘한 말만 남긴 채, 돌아섰다.
.
.
시간은 단숨에 한달이 흘러갔다.
미니 드라마는예상대로 초초초대박이었다. 평균 시청률 54프로로 지상파 드라마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로 가히 기적이라 일컬을 정도였다. 지상파 미니드라마 평균 시청률이 10퍼센트대인 점을 감안한다면 기적이라할 수밖에 없었다.
주연배우들은 당연히 라이징스타가 되었고 조연들 역시 큰 주목을 받으며 내게 감사인사를 전해왔다.
연일 매스컴에서는 드라마에 대한 기사가 쏟아졌고, 나의 정체에 대한 기사들도 수없이 쏟아져나왔다.
작가들의 등용문이라 불리는 신천문예재단 시상식에서 최초로 신인상과 대상을 휩쓸었다는 히스토리부터 지금의 드라마 시나리오를 쓰기까지를 장대하게 풀어주었는데 쓰는 것마다 초대박을 내는 작가로 스타작가의 수식어도 부족하다며 칭송을 해댔다.
뭐라더라.
유치하게 레전드작가라던가.
오글거리는 표현이었다. 기자양반이 창의력이 부족한 모양이다.
매시간마다 인터뷰 요청이 쏟아졌으며 난, 네오 스튜디오를 탑급 메이저 회사로 우뚝 세우는 공신이 되었다.
모든 직원들은 눈빛에 존경과 부러움을 담아 나를 우러러보았으며 난, 비로소 전생에서 가진 나의 명예를 회복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전생의 성공보다 더 찬란한 업적이었다.
NTBC방송국은 내가 쓰는 시나리오의 드라마에 채널우선선점권과 시간선점권까지 보장한다는 파격적인 조건에 제작지원까지 전적으로 보장한다는 조건까지 내걸었다.
공중파 방송국에서 스카웃제의가 왔었지만, 어디에 몸을 담고 있는 지는 크게 중요치 않았기에 거절했었다.
무엇보다 네오스튜디오엔 아직 먹지 못한 흑표범 가인이 있었고, 나의 복수녀인 진서연도 있었으니까.
시청률 고공행진을 하던 드라마는 결국 해외에 판매되었고 전세계 42개국에서 방영되는 기염까지 토해냈다.
이쯤 되니 믿기 힘든 업적이었다.
회귀에 지력투자로 생긴 기억회복에 애초부터 타고났던 시나리오 집필능력이 더해진 탓일까, 솔직히 이정도로 대박이 나리라곤 예상치 못했었다.
만약 드라마 방영이 연말보다 조금 일렀다면 작가상은 이미 따놓은 당상이었을 것이다. 뭐, 솔직히 이젠 상이 크게 의미가 없을 정도였지만.
거기다 몇주 뒤에 시작된 웹드라마는 내가 집필했다는 기사가 나가고부터 조회수가가파르게 수직상승하더니 너튜브에서 총 조회수 1억뷰를 달성하는 사상초유의 사태까지 일으켰다.
꿈만 같았다.
난 모든 작가들의 롤모델로 손꼽혔으며 여기저기서 나를 스카웃해가려난리도 아니었다. 나를 붙잡아두려 네오스튜디오뿐 아니라 NTBC에서도 발벗고나서 사수했으며 그 결과, 난 작가데뷔 몇개월만에 연봉이 30억까지 오르는 대업을 일구어내었다.
물론 작품으로 생기는 인센티브는 별도였고.
사실상, 인센티브가 연봉을 압도했기에 연봉은 크게 감흥도 없었다. 미니드라마 대성공으로 받은 인센티브만 회당 1억이었으니까.
만약 장편드라마였다면 100억도 우스웠겠지.
"인생, 진짜 재미지네."
안전감옥과 별개로 시가 20억상당의 고급펜트하우스를 구매했으며 차 역시 벤츠에서 벤틀리로 바꾸었다. 벤틀리 뮬산이라고 차값만 5억원이다.
이 두 개를 구입하느라 돈을 거의탕진하긴 했지만 이제 돈은 알아서 들어올 것이다. 아직 미니드라마 방영이 종영된 것도 아니고, 차기작 역시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 집필 중에 있었으니까.
30층 펜트하우스에서 상후돔시를 내려다보았다.
세상이 발아래 놓인 통쾌한 기분이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복잡하게 도로를 수놓은 자동차들. 모두 가소롭게 보였다.
"크ㅡ 아메리카노는 아직도 쓰네. 어유."
최고급 커피머신에 원두를 썼건만 이 아메리카노라는 놈은 영 적응이 안 된다. 난 다시 주방으로가 늘 먹던 스틱커피를 타다시 창가로 돌아왔다.
집이 넓으니 좋긴 한데, 이동하는데 거리가 멀어서 불편한 것도 있다.
물론 그 불편함도 기분 좋은 모순이 있긴 했지만.
"하ㅡ 역시커피는모카골드지. 달달한게 좋아."
창가에 놓인 흔들의자에 앉은 내 손엔 종이가 들려있었다. 인아에게서 받은 유에스비 속에 담긴 신상파일을 추려내 뽑은 것이었다.
물론 양이 너무 많아 순차적으로 뽑으며 확인해보고있었다. 총 150여 페이지 중, 어느덧 100페이지 째였다.
눈에 노이로제가 걸린 느낌이다.
하도 찾다보니 이제 중년여성만 보면 그 썅년의 얼굴이 오버랩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 썅년의 얼굴이 나타나길 바라며, 커피 한모금을 홀짝인 후 다시 종잇장을 스캔해가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 씨바, 장씨 성을 가진 아줌마가 뭐이리 많은 거야."
허탕.
100번째 허탕에 이젠 크게 탄식이 나오지도 않았다.
"흠.. 지금 시기엔 상후돔 시민이 아니라는 건가.."
그렇다고 대한민국 모든 장씨 아줌마를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젠장, 꼴에 마지막 보스랍시고 꽁꽁 숨은 모양이다.
미드 CSI에 나오는 것처럼 얼굴만 가지고 사람을 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
오?
음, 문득 제법 괜찮은 방법이 떠올랐다. 으음, 그래. 직접 이렇게 눈 빠지게 찾는 것보다.. 그 년이 내게 찾아오게끔 만들면 되잖아?
물론 성공확률이 백퍼센트 보장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눈좆 다빠지게 찾아다니는 것보단 훨씬 효과적인 방법일 듯했다.
"좋아, 좋아.. 그렇게 하면 되겠군."
계획정리를 마친 난 쓸모없는 100번째 종잇장을 던져버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물론 나머지 50장의 인원도 모두 확인해볼 것이다. 100번을 했는데 50번을 더 못할까.
두번 째 계획은 50번이 모두 허탕쳤을 때를 대비하는 것이다.
"음,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어느새 시간이 저녁 6시를 지나가고 있었다.
오늘은 무려 NTBC방송국장 주최로 성대한 연회을 연다고 했다. 네오스튜디오 임직원이 모두 참석하며 주인공은 당연히나였다.
벽면 버튼을 누르자 벽이 열리며 옷장이 나왔다. 그중, 군청색의 슈트를 꺼내 입고 명품 시계를 착용한 후 펜트하우스를 빠져나왔다.
-부웅ㅡ
벤츠SUV의 거친 배기음도 좋았지만, 역시 차는 정숙성이지.
묵직하고도 정숙한 배기음과 함께 연회장으로 곧장 향했다. 오늘 연회장에서 드디어, 나의 타도페미 군사들의 혈투를 관람해볼 생각이다.
이제 드라마 제작은 거의 끝이 났으니까.
"큭큭, 과연 어떤 육탄전을 보여주실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