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3화 〉새 히로인 정수아 (73/129)



〈 73화 〉새 히로인 정수아

"..네? 제 가슴을요?"

잘못들었는지 인아가 고개를 옆으로 들어 나를 쳐다보았지만 말없이 미소짓는 나의 얼굴에 다시 고개를 내렸다.

그리곤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과감히 셔츠 윗단추를 스스로풀어버린다. 뭐야, 보기보다 화끈한 여자였잖아?


".,이정도면.. 됐나요…?"

"그럼 어디~"

가인에게 했던 것처럼 손끝을 세워 뱀처럼 요염히 그녀의 목선을 미끄러지듯 타고 내려가 브레지어의 중앙을 간질였다. 인아의 고개가 살짝 꺾이며 간지러운듯 비음을 흘린다.

"어디~ 우리 시장님 젖꼭지가 섰는지 볼까~"


"흐읏..♡"


브레지어의 압박을 이겨내고 그 속으로 손을 넣자 팽팽하게 부풀어오른 젖꼭지가 만져졌다. 오돌토돌하고도 부드러운 젖꼭지를 손으로 유린하며 가슴 전체를 움켜잡았다.


"흐읍..♡"


아아, 이것이 권좌에 앉은 여성의 젖가슴이란 말인가. 30대 후반이란 나이가 무색한 탱글함에 촉촉하면서도 부드러움까지 안고 있는 젖가슴의 느낌은 가히 최고였다. 크기 역시 한 손 가득 차고도 살짝 넘쳐 딱 좋았다.

"시장님 가슴이 제법 훌륭하네요."

만족스런 촉감에 하물이 점점 부풀어오른다. 이참에 시장의 입보지 맛이 어떤지, 한번 맛볼까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갑작스레 가늘게 떨리는 그녀의 어깨에 그만 손을 빼고 말았다.


"흐, 흐윽…"


신음이 아닌 슬픈 흐느낌이었다. 깊게 숙여진 그녀의 고개가 흐느낌에 맞춰 옅게 너울진다.


'갑자기? 뭐, 뭐야.'

그리고 그녀의 흐느낌에 상기되어가던 흥분감이 눈녹듯 사라지고 당혹감만이 남았다.

'갑자기 운다고?'

방금 전만하여도  손길에 신음을 흘리다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그녀에 난 처음엔 그녀가 신경쇠약으로 심신이 힘든 상태일 거라 생각했다.권좌의 무게는 사람을 짓누를만큼 무거운 법이니까.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 잡았다.

그리고 그녀의 회한 섞인 넋두리가 어떤마음에서 우러나온건지 이해할  있었다. 그녀의 권좌는 스스로 앉은 것이 아닌 타의에 의해 앉혀진 것인 듯했다.


내가 궁예도 아니고 사람 마음 속을 들여다볼 순 없으니 정확한 속사정은 알 수 없겠지만, 느낌상 그녀는 누군가, 아니면 어떤 이들에게 노리개로 조리돌림 당하고 있을 것이란 촉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급작스런 상황전개가 이해되지 않았다. 심신이 미약한 정신병자가 시장직을 달고 있을 리도 없고, 분명 이러한 행위들에 트라우마 같은 게 있는 듯싶었다.


난, 그녀의 어깨에 손을 한번 얹었다가 이내 다시 떼고 말았다. 이제껏 나의 능욕손길에 눈물을 흘리던 여성이 있으면 오히려  지독하게 괴롭혔었다.

눈물은 대부분, 복수녀에게서 나왔던 것이니까.
그렇기에 복수녀가 아닌 여성의 눈물은 나를 크게 당황시켰다.

왠지모르게 그녀는 더 이상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제가.. 치부를 건드렸나요?"

다시 자리에 돌아와 앉은  측은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인아는 테이블에 놓인 티슈로 조심히 눈물을 훔쳤다.

젠장, 괜히 미안해지잖아. 이제껏 나의 손길에 눈물을 보인 여성은 단 한명도 없었기에 어떻게 반응을 해줘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눈물을 보인 여성이 있긴 했지만  눈물은 내게 희열과 짜릿함만을 주었었다.

헌데 그녀의 눈물은 달랐다.


그 어떤 희열도 쾌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복수녀가 아니라서 그런 거겠지. 아니면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나온 눈물이라 그런 걸까.


젠장, 당최  잡을  없는 여자군.
대체 무슨 과거를 가지고 있는 거야.


잠자코 지켜보고 있자 인아가 코를 훌쩍이며 냅킨으로 눈물을 훔친 후 아무 일 없다는 척을 하며 옅게 미소를 지었다.


누구나 선망하는 고위관직 자리에 앉은 여성이 보이는 눈물이 왠지모르게 안타깝고 이상하게도 보호본능을 자극한다.


'웃긴 일이군.'


보호 받아야할 사람은 소시민인 나이건만, 오히려 시장을 보호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니, 쓸데없는 주책이다.


'젠장, 괜히 건드린 건가..'


"휴.. 죄송해요. 이제.. 끝났나요..?"

그녀의 자조적인 물음에 괜히 시선을 피해버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용 당해졌을까, 그러지 않고선 시장이란 권좌의 자리에 앉아 저리 서글프고 통탄스런 표정과 말을 뱉을 수 없을 텐데.


'끝이냐니..'

그리고 그 자조적인 말과 그녀가 앉은 권좌는 누군가의 노리개 짓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거란 생각이 짙어졌다.

뭐, 추측일 뿐이지만.
아니면 나의 쓸데없는 과대망상일 수도 있고.


서류철을 옆구리에 끼고 자리에서 매몰차게 일어섰다. 더 지켜보고 있다간 이상한 감정이 생길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세상에 사정 없는 사람 어딨겠는가. 어쨌든 그녀는 시장이란 권좌에 앉았고, 그때문에 나에게 이용 당하는 것일 뿐이다.

"..다시 연락드리죠. 시장님."

"..네.."

뭔가 아쉬운 듯한 눈치의 인아를 뒤로한 채, 난 카페를 벗어나 곧장 작업실로 향했다. 50장의 서류파일에 있을 면상떼기들을 둘러볼 기대감으로 찝찝한 기분을 털어내기로 했다.

.
.
.






"미쳤네. 단단히 미쳤어. 마가 끼었나."

지금 나는 푹신한 소파의자에 몸을 기댄 채 아무 것도 없는 천정을 응시하며 미쳤다는 말만 대뇌이고 있었다. 굳게 다문 서류봉투의 뚜껑은 열지도 않았다.

다소 충격적인 장면의 목격에 정신을 가다듬을 시간이 필요했다. 진짜 내게 무슨 액운이 끼인 걸까, 아니면 뷔페미즘 쿵쾅이들한테 저주라도 당한 걸까.

아니고선 왜 계속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는지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필 내가 취직한 이곳이 바로 뷔페미즘 소굴이었단 사실이 말이다.

때는 바야흐로 10분 전.


인아와의 짧은 만남을 마치고 다시 회사로 복귀한 시각은 오후 1시 10분여쯤.


그땐 회사규칙상 3분여의 스트레칭 음악이 나오며 직원들은 모두 제 자리에서 일어서 스트레칭을 한다.

그리고 스트레칭이 끝나면 각층 사무실의 넓은 출입구에 모여 팀장이 오후 업무에 대해 브리핑을 한 후 구호를 외친다.

아니, 외치는 것 같았다.

점심시간에 맞춰 도착한 적은 처음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구호가 바로..

""걸스 캔 두 애니띵!!""

..이었다.


뷔페미즘의 대표구호를  자그마한 공간에서 듣게 될 줄이야, 그리고 설마설마했던 불길한 느낌이 진짜일 줄이야. 젠장, 불길한 생각은 하여튼 틀리는 적이 없다니까.

"미친, 그러면 가인은 뷔페미즘의 보스인 건가?"


그런 얼굴과 재력과 권력을 가진 여성이 비뚤어질 것이 뭐가 있어 뷔페미즘에 빠질까, 아닐 거야. 아니어야 돼.


그리고 한 가지 웃긴 것은 어제 같이 회식했던 웹드라마 제작감독이 청일점으로 그곳에서 홀로 걸스   애니띵!을 외쳤다는 것이다.


가장의 어깨란.. 참으로 무겁도다. 아니면 떡고물이나 떨어질까싶어 허벌나게 핥아대는 프로보빨러이거나.


여하튼 그렇게 난, 작업실에 도착해 10여분간 내가 뷔페미즘 악당소굴, 그리고 내 전생의 찬란함을 깨부숴버린 것들과 같은 족속들이 운집해있는 곳에 취직했단 사실에 경탄과 경악을 금치 못하는 중이었다.


"풋, 이게 바로 운명의 데스테니인가.."


피식, 실소가 나왔다. 어처구니가 없어 여느 소설 속 주인공의 한탄처럼 지껄여보았다.

이정도면 전능하신 누군가께서 이 세상을 악으로 물들이는 뷔페미즘 쿵쾅이들을 처단하라고 나를 회귀시킨 게 아닐런지 모르겠다.

바늘과 실처럼 떼어낼래야 떼어낼 수 없는  같은 황당한 조합.


만약 이곳의 여성들이 정상적인 페미니즘 사상에 물들었다면 괘념치 않았을 것이다. 그건 올바른 사상이니까.

남녀평등.

하지만 지금 현세의 페미니즘이 왜 뷔페미즘으로 불리겠는가. 뷔페에서 좋아하는 음식만 골라먹듯 여성에게 이득이 되는 일들만 하고, 이득이 되지 않는 일과 불평등을 겪으면 빼애액대며 세상 무너지는 것처럼 보상을 요구하는, 그런 변질된 사상에 물든 여성들은 더 이상 내게 생체오나홀의 존재조차 되지 않는다.

세상은 절대 평등하지 않다.


그건 세상의 이치이자 섭리이다.


남자라서 힘이 쎄기에 짊어지는 것들.
여자라서 섬세하기에 짊어지는 것들.

그 역할에 따라 이득을 볼 때도, 손해도  때가 있는 법.


그 불평등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시작된 사상이 페미니즘이건만, 작금의 페미니즘은 썩어빠졌다. 남녀평등사상의 가면을 두른 여성우월사상으로 말이다.


그렇기에 난 분노할 수밖에 없다.

그 여성우월사상으로 인해 내 전생의 찬란했던 성공이 파도앞의 모래탑처럼 속절없이 무너져내렸으니까.


고로.

이 네오스튜디오, 뷔페미즘의 운집지는 내게 혹독한 벌을 받을 것이다. 물론 당장 어쩌진 않을 것이다. 적어도 미니드라마의 제작까지 완성되고나면 하나하나 아주 씨발라 먹어줄 테다.


"개년들, 멀쩡하게 생겨가지고서는."


우선 가인과 서연의 사상검증부터 해둬야겠다. 선의의 피해자, 음.. 서연은 제외하고, 가인이 선의의 피해자가 되어선 안 될 테니까.


분노의 이를 곱씹으며  우선 다시 서류봉투를 다시 열어 내용물을 꺼냈다.


-툭.

"많기도 하다.  씨벌련들."


A4용지에는 작은 사진들과 그들의 활동수치, 개인정보 등이 빼곡히 들어차있었다. 시장 박인아가 아니었다면 절대 구하지 못했을 자료, 이 종이에 과연 내 기억 속의 얼굴이 있을지 눈으로 훑어보았다.

"있어라.."


한 장, 두 장..


열 장을 넘기는 동안 비슷한 얼굴은 있었어도 딱 꼬집을 수 있을만한 얼굴은 없었다. 하긴, 5년이란 시간동안 강산은 못바뀌어도 여성의 얼굴정도 변하긴 충분한 시간이니, 없을 지도 모른다.

열다섯 장이 넘어가자 기대감이 점점 실망감으로 바뀌어갔다. 거기다 넘기다보니 사진이 모두 증명사진인 듯했다. 하나같이 민증에 나올 법한 사진들이었는데 현실 얼굴과의 괴리를 생각한다면 내가 찾는 여성을 보았다한들, 알아보지 못할 가능성도 높았다.


내가 아는 정보라곤 오로지 이름 뿐이니까.

다행인 것은 단체의 대표의 성은 알고 있었다. 매스컴에서 항상  대표라며 떠들어댔었으니까.

회귀할  알았다면.. 미리 정보를 알아봐놓는 건데.

어느덧 마지막 장만 남기고 있었다.

이제껏 추려낸 비슷한 얼굴들은 총 다섯명.

마지막 장에도 만약 없다면 비슷한 얼굴로 추적을 해보는 수밖에.

"제발.. 있어라."

기어코 마지막 장이 펼쳐졌다. 마지막 장이다보니 인원 수도 몇 되지 않는다.

"흐음.."

다행히도 여덟명의 얼굴 중 가장 낯이 익은 얼굴이 있긴 했다. 애석하게도 막보스 장 대표는 아니었는데 그래도 후보들  가장 비슷한 얼굴이었다.


"정수아…라.."


이름도 낯이 익은 것 같고.
주소는 상후돔 시에서 남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곳이었다. 일명 부자동네라 불리는 서원구 의창동.

"집이 잘 사는가보군.."

우선 이곳을 먼저 가보기로 하고, 나머지 후보들이 들어간 종이를 제외하곤 모두 파쇄기에 넣어 흔적을 없애버렸다. 여긴 뷔페미즘 소굴이고 내가 자기네들 명단을 들고 있다는 얘기가 돌면 상당히 난처해질 테니까.


더욱이 명단에 네오스튜디오 직원도 몇 있었다.


대충 흔적들을 정리한 난 다시 책상에 앉아 서연과 철수가 출근하길 기다리며 시나리오 마무리 작업에 들어갔다.

어차피 서연에겐 절대 이곳을 벗어날  없다는 암시를 걸어놓았기에 조만간 출근할 것이고, 철수는 그녀의 껌딱지기에 같이 출근할 터.

그럼 이 작업실에 가둬놓고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성노예와 샌드백으로 계속 굴려주리라.


"보자~ 마무리 지어볼까."

.
.




"여긴가.."

시나리오 작업을 마무리하고 스리슬쩍 회사를 빠져나온 난 가장 비슷했던 얼굴을 가진여성의  앞에 도착했다. 으리으리한 저택이었다. 수연의 집과도 비슷했는데, 연식은 조금 되어보인달까.


초인종도 없었다.


그옛날, 사자모양의 대가리와 그 아가리에 걸린 원형 손잡이만이 있었는데 손잡이를 잡고 철제문을 쿵쿵 크게 두드리자 잠시 후, 현관문 쪽에서 끼이익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나오는 듯했다.

"누구세요~?"

늙고 노쇠한 목소리였다.
난 미리 생각해두었던 대로 답해주었다.


"아, 정수아씨 부모님 되시나요?"


"네, 그런데요?"


"전 계류대학교 학생관리실에서 나왔습니다. 수아씨가 요즘들어 결석이 잦아서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이렇게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인적사항을 토대로 학교에 전화를 걸어 수아 아버지인 척을 했다. 그리고 수아의 학교생활, 근태를 확인했었었는데 요즘들어 거의 출석을 아예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당연히 계류대학교에 학생관리실 따위의 부서는 없었다.


 너머로 걱정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수아의 어머니인 듯했다.

"…우리 수아가요?"

그리고 의문스레 묻는 것으로보아 자기 딸이 학교무단결석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르는 듯했고.

큭큭. 일이 수월하게 풀리겠네.

잠시 후, 걱정스런 표정으로 어미가 문을 열어주었다.


-끼이익.


"들어오세요..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하네요."

"하하, 아닙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학생관리실의 김두한 주임입니다."

어미는 제 딸의 일 때문인지  의심없이 집 안으로 나를 들였다. 조금 너저분하긴해도 수연의 집처럼 굉장히 넓었다. 가정부는 딱히 없어보였다. 그럼 이 너저분함이 설명이 안 될 테니까.


"수아씬 집에 있나요?"

"아,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어미는 차를 한잔 내어준 후, 계단을 올라 이층으로 향했다. 긴장됐다. 과연 그 개년이 맞을지 말이다. 민증상 사진은 뽀샾이 가미된 것이기에 믿을 수 없다. 본판을 보면 확인할 수 있을 터.

본판이 기억과 다르다면 대충둘러대고 빠져나오면 그만, 만약 맞다면 그때부턴 조금 복잡해진다.

세나의 경우엔 하나뿐인 가족과도 거의 연락을 하지 않았고, 또 떨어져 살았으며 교우관계도 없었다. 그렇기에 편히 안전감옥에다 가둔 것인데, 수아의 경우엔 교우관계는 없어도 가족들과 같이 살기에 빼내기 위해선 제법 짱돌을 굴려야한다는 것.


가족들의 기억을 지우는  쉽지만, 주민등록등본만 떼도 나오는 딸의 흔적에 가족들은 의문을 품을 것이다. 고로 확실한 방법이 필요했다.

단순히 기억을 지우는 것이 아닌, 딸을 내게 양도한다는 느낌으로.


잠시 후, 이층 계단이 끼익끼익 크게 울어댔다. 소리가 범상치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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