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철수의 반격
그래야 니놈 형님이 그 웅성댐을 진정시키기 위해 내게 덤벼들 테니까, 아니나다를까 제 자존심을, 그것도 똘마니 부하들이 있는 자리에서 건들자 두 주먹을 부들부들 떨어댄다.
"이, 이 씹새끼가 내가 언제 울었다고 지랄이냐!!"
사실 운 적은 없다.
비명을 지른 적은 있어도.
아, 찔끔 눈물이 일렁인 적은 있었지.
하지만 그런 사실들은 아무런 상관없다.
중요한건 똘마니들 앞에서 그의 자존심을 끝까지 깎아 내리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그러면 자존심 회복을 위해 이성을 잃어버릴 테고, 무리 뒤에 숨는 치졸한 짓은 절대 하지 못할 것이다.
난 여전히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쫄았다는 기색이 보이는 순간, 똘마니들이 하이에나처럼 물어뜯으러 올 테니까.
"똘마니들 앞이라고 자존심 세우긴, 큭큭. 왜 오늘 또 눈물 질질 싸게 해주리?"
"이, 이 씹새끼가!! 어디서 약을 쳐?!!"
얼굴이 불그락푸르락 시시각각 변하는게 어지간히 흥분한 모양이다. 그렇담, 마지막 한방을 날려줄 차례다. 난 여전히 날카롭게 눈을 뜬 채 놈에게 조소를 날려주었다.
"풋, 약을 치는지 아닌지는 직접 똘마니들한테 보여주면 될 거 아냐? 어디 이렇게 비실비실해서 형님 소리 듣겠어?"
"크윽.. 이 개새끼가 감히..!!"
놈이 이를 뿌드득 갈며 나를 노려보았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어버렸으니 여기서 만약 나의 도발을 무시한다면 놈은 쫄보라는 타이틀을 달 것이고, 그것은 곧 자신의 위계질서가 무너지는 꼴이라고 보면 되기에 놈은 절대 내 도발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조직세계에서 한번 호구취급 당하면 서열붕괴가 순식간이란 건나보다 놈이 더 잘 알테니까.
물론 일대일로 맞짱을 뜬다면 사실 나도 그에게 한방을 꽂아넣을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이전의 상황들과는 달리, 놈은 내 불주먹에 제대로 데여봤기에 극도로 경계할 것이다. 아니, 사실상 놈과 전면전을 붙는다면 가능성은 희박할 수도 있다.
주먹세계에서 나름 잔뼈가 있는 놈이라면 내 허술한 주먹 정도는 가볍게 피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기에 전술은 딱 하나다.
무대포 돌진.
조련사에게 무작정 돌진하는 성난 투우마냥 머리부터 들이밀고 보는 것이다.
어쭙잖게 각을 재다간 내 풀에 내가 지칠 수도 있다. 놈은 내게 그 어떤 주먹질도 하지 못하겠지만 혹여 놈의 똘마니들에게 내 기세가 허풍이었다는 것이 들통나면 오늘 여기가 묫자리가 될 지도 모른다.
고로, 한방에 보내진 못하더라도 단숨에 놈을 제압해야했다. 내 허술한 주먹이 만천하에 들통나는 날엔 뒤에 깔린 무리 놈들이 형님의 말 한마디에 벌떼처럼 덤벼들 테니까.
지금 나의 이 호전적인 기세가 허풍이었다는 것을 알면 놈들은 자신들을 우롱한 괘씸죄까지 얹어 나를 완전히 묵사발로 다져버릴 것이다.
그렇기에 무조건 놈을 일격에 보내기 위해선 빈틈을 이끌어내야한다.
"야, 형님이 이길까?"
"음, 난 이긴다에 5만원 건다. 그래도 우리 형님인데."
"나도 이긴다에 5만원."
"음.. 난 패쓰. 저 새끼가 저러는 이유가 있을 수도."
"미친놈, 그냥 뒤지고 싶어서 객기부리는 거겠지."
다행히 등뒤의 무리놈들은 제각기의 의견을 내며 철수놈이 내게 덤벼들도록 종용하고 있었다. 고마운 새끼들, 만약 내 새끼들이었다면 술이라도 사먹였을 것이다.
"아까 그 기세는 어디 갔냐? 왜, 똘마니들 앞에서 얻어 터지긴 싫더냐?"
"아가리 닥쳐라…!"
놈이 내 치욕적인 도발에도 주먹만 부들댈 뿐, 섣불리 덤벼들지 못했다. 자신도 잘 알 것이다. 나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저열한 미소를 지으며 오히려 먼저 놈에게 다가갔다. 시간 끌어서 좋을 것은 없다. 긴 혓바닥은 언젠가 치부를 드러내기 마련이니까.
"풋, 그럼 내가 먼저 가리?"
"이, 이 씨발! 야! 이 새끼 족쳐!"
쥐새끼가 궁지에 몰리니 발악을 하지만 다행히 아직까진 내 허풍이 먹히고 있기에 열 명의 놈들 중 선뜻 내게 덤벼드는 놈은 없었다. 서로 치열하게 아웅대고만 있다.
"야, 니가 먼저해."
"좋은 건 아우 먼저."
"병신들, 가위바위보하자."
"이 씨바. 다같이 한꺼번에 덤비면 되지. 이 븅딱들아."
"으윽, 갑자기 배가…!"
"..뭐?!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자기들을 이끄는 형님이란 놈이 잔뜩 쫀 사내인데, 어떻게 감히 덤비겠는가, 큭큭.
어느새 전세는 내게 기울어있었지만, 오래가진 못할 것이다. 고로 이제 모 아니면 도다.
"치졸한 새끼, 이리 와. 오늘 좀 맞자."
"이, 이 병신새끼들아!! 너흰 열명이잖아! 다구리 치라고!!"
제 형님의 절박한 외침에도 놈들은 서로에게 미룰 뿐, 누구도 먼저 나서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일 뿐, 수세에 몰리면 누구든 먼저 덤벼들 것이다.
고로, 철수 이 새끼에게 압박을 넣기로 했다. 먼저 놈이 흥분해 나를 공격해야한다. 아니면 겁먹은 소라가 제 껍데기 끝으로 숨어버리듯 무리 뒤로 줄행랑을 쳐버릴 것이다.
그러면 진짜 좆되는 거다.
복잡하고도 급박한 심정과 달리 여유로운 걸음으로 놈에게 다가갔다.
"이, 이 씨발! 오지 마!"
"아깐 가지 말라며? 그래서 안 가고 있잖아? 남자 주둥이가 왜 이렇게 가볍대. 고추 떼는게 낫겠다. 이리 와. 떼줄 테니까."
"이 개새끼가! 오냐, 너 죽고 나 죽자!"
결국 궁지 끝까지 몰린 철수가 주먹을 휘둘렀다. 오른쪽 어깨가 크게 뒤로 빠지며 주먹이 완만한 포물선을 그린다. 하지만 쫄 것 없다. 놈은 나를 치지 못하니까.
주먹을 황급히 피한 다음, 곧장 놈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어설픈 반격이기에 데미지는 약하지만, 암시 덕분에 놈은 다시금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퍽.
"끄아아아아악-!!"
"풋, 개새끼. 그러니 적당히 깝쳐야지."
그 격렬한 반응에 뒷무리들을 흘금 쳐다보자 하나같이 얼빠진 표정으로 콩벌레로 변한 제 형님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피식, 비록 실수로 위기는 맞았었지만 완벽한 전술로 열 명의 무리를 압도시켰다.
물론 암시 효과가 없었다면 내 옆구리가 줘터졌을 테지만, 잘 활용했으니 됐잖아?
"끄으으윽! 흐으으읍!"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복병이 등장해버린다. 날카로운 목소리 하나가 대뜸 골목길에 울려퍼졌다.
"이 개새끼들아!! 뭐하는 거야! 그렇게 계속 멍청하게 서있을 거야?!"
서연이었다.
내게 치욕과 수치의 능욕을 당한 그녀는 씩씩대며 나를 경멸스레 노려보고 있었다. 젠장, 생각해보니 마컨 상태에서 관계를 나눈 것이 아니기에 서연에겐 마컨 후유증인 친밀감 상승이 발현되지 않은 것이다.
오늘따라 예상치 못한 복병이 계속 등장하는군.
기력을 차린 서연의 악에 받친 외침에 무리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젠장, 이러면 나가린데.'
서연은 철수의 여친.
그것은 즉, 무리 놈들에겐 하늘과 같은 형수님인 것이다. 거기다 미모의 여성이 내리는 명령은 제 형님이 내리는 것보다 더 심금을 울렸고, 놈들은 슬금슬금 경계하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철수 또한 출산을 마쳤는지 비틀대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입가에 번지르르하게 흐른 체액을 소매로 훔치며 뇌까린다.
"이.. 씹새끼, 오늘 니 제삿날인 줄 알아라."
서연 역시 분노를 가득담아 악에 받힌 소리를 다시 내지른다. 거, 목청 한번 더럽게 좋네. 배우가 아니라 가수를 했어야 했겠는데.
"저 새끼 죽여!!"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여친이나 남친이나 하여튼 추접스런 것들끼리 잘 만났네. 형님과 형수님의 명령에 열 명의 무리가 각자 고개를 꺾거나 팔을 체조하듯 돌리거나, 주먹소리를 내며 완연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그래, 뭐 시바꺼 열 명인데 어떻게 안 되겠냐."
"맞아. 한 명한테 쫄아서 도망갔다해봐라. 꼬꼬마새끼들도 우릴 무시할 걸."
"도망치는 새끼 꼬추 짜르자."
꼭 이럴 때는 단합이 잘 된단 말이지. 그러니까 하이에나새끼들도 사냥할 땐 항상 떼거지로 몰려다니며 약삭빠른 짓이나하지. 딱 잘 어울리는군.
그나저나 무리는 열 명.
그리고 등신 하나에 꼽사리년 하나.
총 열두 명.
근데 남은 마인드컨트롤 횟수는 하나도 없네?
음..
이거..
그냥 좆 됐는데?
-퍼억!
"크윽!"
뒷통수를 강타하는 무언가에 의해 난 허무하게도 기절하고 말았다. 두뇌가 명석해졌다해서 두개골이 두꺼워지는 건 아니니까.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근력도 같이 올리는 건데. 그럼 이정도 상황은 힘으로 제압할 수 있었을 런지도 모르는데..
'이봐, 스텟초기화는 안 되겠지? 지금 필요한 건 근력인데 말이야.'
[ 죄송합니다. ]
'그래, 뭐.. 기대도 안 했다.'
인간은 후회하는 동물이랬던가, 역시 옛말은 하나도 틀린게 없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근력도 올리는 건데 말이다. 뭐, 그렇다한들 이 열 명의 장정들을 상대할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짧지만 좋은 인생이었다.'
그렇게 난, 전지전능한 시스템과 함께 이름 모를 골목길에서 눈을 감고 말았다. 지금은 초겨울이지만 때이른 한파로 혹한의 추위가 엄습했기에 이대로 눈을 감으면 백퍼센트 동사할 터다.
볼에 닿인 길바닥이 완전 얼음장이다.
아직 남은 두 년에게 복수의 대업을 완성시키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지만 그래도 전무후무한 압도적인 능력으로 성적 판타지라도 충족시켰으니 아쉬우면서도 만족스러운 회귀였다.
그렇기에 한번 더 빌어본다.
'또 회귀시켜주면 안 되려나?'
풉.
회귀가 뉘집개이름도 아니고.
한번도 기적인데 두번이나 일어나는건 기적이 아니겠지.
아아, 잠이 몰려온다.
피부를 에워싸는 송곳추위가 따갑건만, 어찌 이리 잠이 몰려오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