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새 히로인 진서연
"끄아아악!!"
"남자새끼가 엄살은. 누가 보면 칼침이라도 놓은 줄 알겠다?"
자세를 낮춰 놈에게 다가가자 놈은 기겁을 하며 뒤로 도망을 쳤다. 물기가 어린 타일 탓에 몇번을 넘어지며 도망치는 꼴이 상스럽기 그지없다.
"큭큭. 어때? 내 주먹 맛이."
고통이 조금 완화되었는지 놈이 숨을 헐떡이며 몸을 일으켰다.
"크윽.. 너 이 새끼.. 어디 식구냐.."
"식구는 지랄, 이씨 식구다. 이 씨발럼아."
"큭.. 이씨? 처음 듣는 조직인데."
"처음 듣겠지, 병신아. 우리 집안이 이씨니까."
"이, 이 개새끼가…!"
자신을 가지고 노는 듯한 상황에 눈빛에 분개함을 담아보지만 놈은 범 앞에 놓인 하이에나새끼마냥 으르렁거리기만 할 뿐 덤벼오지 못했다.
흐음, 이정도론 분이 풀리지 않는다고.
성큼성큼, 호쾌한 걸음으로 놈에게 다가가자 놈은 뒷걸음질치다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텁.
"이..이 씨발.. 글이나 쓰는 새끼가 주먹이 왜 이렇게 쎄냐고…!!"
"너가 허약한 것 같은데, 좆밥아?"
주먹을 들자 놈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자, 잠깐! 원하는게 뭐야! 서연이, 서연이를 원하는 거냐?"
"서연이라, 왜 나한테 상납이라도 하게? 때리지말라고?"
"드, 드리겠습니다!"
"필요 없어."
"??!!"
놈이 얼빠진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다 다시 고개를 굽신거렸다. 단 한 방의 펀치만으로 이 거구가 내게 고개를 조아리자 무력으로 상대를 압도했다는 쾌감이 짜릿하게 차올랐다.
"풋, 서연이를 상납하면 끝날 거라 생각 했냐."
"그, 그럼…! 대체 저한테 왜!"
인간의 통치에 가장 적합한 감정은 바로 공포다. 무력에 진압된 소시민들이 흘리는 공포는 바이러스처럼 상대에게 옮겨가 단체를 와해시키기도 한다.
난, 놈이 흘리는 그 공포심에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그간 응어리졌던, 여성들을 노리개삼아 가지고 놀아도 풀리지 않던 응어리를 재대로 풀기로 했다.
-퍼억!
이제 주먹질에도 제법 힘과 자신감이 실린다. 원래 맞아본 놈이 두려움만 이겨내면 더 잘 때리는 법이다.
"크아아아악-!! 아파! 존나 아파!! 끄아악 살려줘-!!"
또다시 바닥을 뒹굴며 로봇청소기마냥 물기를 닦아내는 놈의 복부와 둔부, 옆구리와 같은 티가 나지 않는 곳을 무자비하게 때리기 시작했다.
-퍼억!
"아프냐?"
"사, 살려주세요! 너무 아픕니다요!! 크흐어억!"
-빠악!
"이건 씨발."
-뻐억!
"니 애미가 니놈새끼를 낳으며."
-파악!
"느낀 고통이다! 이 씨발러마!"
-퍼어억!
"꾸이이이익!!"
마지막 발길질에 기어이 놈의 주둥이에서 걸쭉한 체액이 늘어져나왔다. 숨조차 쉬기 힘든지 비명도 내지르지 못하고 몸을 오므린 채 연신 꿀떡대고 있다.
하긴, 나도 느껴보진 못했지만 출산의 고통이 어마어마하다고는 하더라.
격하게 숨을 내쉬며 눈물을 훔치는 놈을 내려다보며 조소를 지었다. 통쾌하다못해 짜릿해 온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려왔다. 기분 좋은 떨림이었다.
"큭큭, 새우새끼도 아니고."
"크흐으윽… 크헉… 사, 살려주세요..."
"앞으로 눈깔 착하게 뜨고 나 보면 깍듯하게 인사해라. 알겠냐."
"네, 넵. 형님."
"형님은 지랄. 얼굴도 좆도 삭은 주제에. 니가 형님이라 부르면 존나 나이들어 보이잖아. 그냥 부르지 마라. 듣기도 싫으니까."
"..넵!"
"명심해. 매너가 사람을 만드는 거야."
영화 속 주인공처럼 멋드러지게 한 마디 내뱉은 후,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다시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식사를 마친 가인이 나를 쳐다보았다.
"오래 걸리셨네요?"
"아, 철수씨가 큰 볼 일을 보는데 휴지가 없대서 구해다 주고 왔어요."
"그러시구나. 그럼 우린 먼저 일어나요. 서연아. 법카로 계산해."
"넷."
서연이 다소 걱정어린 눈길로 나를 쳐다보았지만, 난 무시해버렸다. 어차피 가오가 육체를 지배했었던 철수 놈은 내게얻어 맞고 마트서 떼 쓰는 애새끼마냥 화장실 바닥을 굴렀다고 그녀에게 절대 말 못할 것이다.
해봐야 뭐, 발을 헛디뎌 미끄러졌다고 하는게 최선이겠지, 큭큭.
'두 썅년놈들 두고두고 처발라주마.'
서연을 경멸스레 한번 흘기곤 가인을 따라 식당 밖을 나섰다. 빌딩 사이의 골목길이라 식당을 들어갈 땐 공기가 텁텁했지만 이제는 상쾌해져버린 공기에 나도 모르게 시답잖은 감상이 흘러나왔다.
"아~ 공기도 좋고, 날이 좋네요~"
가인이 흐릿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의뭉스레 나를 쳐다보았다.
"이런 날씨를 좋아하시나봐요?"
"뭐, 그런 셈이죠. 하핫."
남자새끼를 줘패는 것도 재미가 나름 쏠쏠한 듯싶다. 열 받는 일이 있을 때마다 호출해서 샌드백마냥 줘패야겠다. 시나리오가 잘 안 써질 때도, 아니면 그냥 생각나면 불러서도.
.
.
"철수 씨는 안 보이네요?"
"아, 몸이 안 좋아서 오늘은 저 혼자 갔다오라네요."
내 물음에 서연이 석연찮은 눈빛으로 말했다. 큭큭, 웃음이 나오려했지만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그녀의 술잔에 잔을 채워주었다.
물론 일개 매니저가 회식자리에 참석하는 건 드문 일이지만 그는 사내에서도 공식적으로 서연의 남친이란 입지가 있기에 회식에 참석했었어도 그 누구도의문을 품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보기 두려워 자리를 피한 것일 터.
지금쯤 복통에 또 어디서 구르고 있으려나, 큭큭.
회식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거물신인작가 환영회라는 명목하에 자기네들끼리 퍼마시면서 즐기기 바빴다. 그래도 흡족스러운 것은 지금 회식 참석인원만해도 성비율이 2대8이다.
물론 남자가 둘, 여자가 여덟.
총 열 명이었는데, 듣자하니 드라마 제작지원팀이라고 했었던 것 같다. 나를 제외한 남자 하나는 이번에 웹드라마 제작을 맡은 감독이었는데, 무난한 성품의 중년 남성이어 그와 큰 얘기는 나누지 않았다.
딱히 나누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이렇게 꽃밭인데 말이다.
"어서 마셔."
"네.."
난 서연에게 계속 잔을 따라주며 취하게끔 만들고 있었다. 철수새끼가 없는게 아쉽긴했지만, 그렇다고 이 기회를 그냥 넘길 수야 있겠는가.
더욱이 색골 이선생의 하물이 오늘 한번밖에 회포를 풀지 못했으니 귀가하기 전에 한번 더 깔끔하게 회포를 풀 생각이었다.
가인의 보지를 노리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철수 놈을 줘패느라 마컨 기회를 써버려 오늘 잔여횟수가 남아있지 않았다.
게다가 회식치고는 이른 여덟시였기에 자정을 넘기긴 힘드리라, 보통 대표이사란 직위는 1차에서 회식비를 계산하고 빠져주는게 국룰이었으니까.
내가 계속해서 잔을 든 덕에 두 시간여만에 사람들은 거나하게 취해가기 시작했다.
"작가님을 위하여-!"
"우리 네오 스튜디오 대박나게 해주세영-!"
"이번 웹드라마 대박날 것 같아용!"
저마다 내게 찬사를 보냈는데, 여성들의 끊이지 않는 찬사에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우러러보는 눈빛과 기대하는 눈빛, 그리고 몇몇은 내게 유혹하는 듯한 눈빛도 보냈으니 기분이 나쁠 리가.
남자란 자고로 돈과 권력이 있으면 껍데기가 어떻든 매력치가 극상에 달하기에 오랜만에 쏟아지는 뭇 여성들의 시선을 마음껏 즐겨본다.
물론 여성들이 내게 저런 과분한 시선을 보내는 것은 앞으로의 나의 행보에 거는 것이다.
메가히트작 시나리오 하나만 써도 3대가 먹고 산다는 말도 있으니까, 그 가능성에 가까워진 내게 대대손손 좋은 유전자를 물려주고픈 아녀자들이 자궁을 떨어대고 있는 것이다.
큭큭.
마음 먹으면 여기서 두 명 정도는 시스템 능력없이도 따먹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퀘스트 완수조건인 인지도 150의 여성이 없었고, 무엇보다 외모들이 수려한 가인과 서연의 옆에 있으니 열대어에 붙어다니는 플랑크톤 같달까.
그닥 따먹고 싶은 얼굴들이 없었다.
고로 오늘은 서연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전생에 내게 한 짓을 갚으려면 몸으로라도 떼워야지 않겠는가. 오늘 제대로 골뱅이로 만들어 양념 팍팍 쳐서 맛있게 먹어버릴 생각이다.
회식 전에 집에들러 기구들도 준비해왔고, 큭큭.
"어서 마셔."
"네.. 근데.. 이제 취해여…"
"술은 취하려고 마시는 거야. 어서 마셔라."
물론 시끌벅적한 소리에 우리의 대화는 묻혔다. 서연이 몽롱한 눈으로 술잔을 들이킨다. 절대복종 암시로 한 여성을 내 마음대로 조련하니, 알콜이 선사하지 못하는 쾌감이 아찔하게 정신을 달군다.
"그럼, 난 가볼게요."
술이 쎈 건지, 아니면 나처럼 몰래 버린 건진 모르겠으나 가인은 평소 그대로의 냉철한 모습으로 회식자리를 벗어났다.
이제 1차는끝물이다. 대부분이 거하게 취해있었고, 서연은 그들의 곱절로 술을 먹였기에 이미 테이블에 엎어져 자고 있었다.
'개간년, 잘도 자네. 푹 자둬라.'
"자, 다들 일어나시죠?"
가장 상급자인 감독이 휘청대며 일어나선 회식 마무리를 선언했고, 회식대원들은 하나같이 좀비마냥 흐느적대며 가게를 빠져나갔다.
몇몇 여성이 내게 은근슬젖 비비며 기대려했지만, 민첩만렙도적으로 빙의한 난 잽싸게 피해버렸다.
아아, 성공한 남자의 인생이란 고달픈 것이구나.
어장에 잉어만 꼬여야하는데, 붕어새끼들도 꼬여대니 말이다.
"감독님, 서연씨는 어떡하죠?"
"흐으음… 그러네… 철수도 없고.. 집도 모르는데…"
귀찮은 골칫덩이에 감독이 턱을 쓰다듬으며 난감해했다. 요즘 시대엔, 특히나 한 자리 꿰찬 남자가 여성에게 호의랍시고 베풀었다가 호되게 당하는 경우가 많기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감독을 보던 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만든 골뱅인데, 무치는 것도 내가 하는게 상도덕이지.
"그럼 제가 집까지 어떻게든 데리고 가볼게요."
"어어어, 그래그래."
취기 탓에 표정관리가 안 되는 감독이 환하게 반색하며 도망치듯 가게를 빠져나갔다. 서연과 단 둘이 남게된 난, 그녀를 등에다 업고 가방을 들었다.
"에라이 씨발년, 뼈가 두껍나. 몸은 말랐는데 왜 이렇게 무거워."
다리가 후들댄다.
젠장,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지.
난 힘겹게 그녀를 업은 채 가게를 빠져나와 인근을 살핀 후, 후미진 골목 사이로 들어갔다. 이미 가게에 들어오기 전부터 주변 탐색은 마친 후였다.
CCTV의 존재파악과 촬영각도까지 세밀하게 파악해놓은 난 사각지대를 교묘히 파고들며 미리 봐두었던 여관으로 들어섰다.
근데 여관은 처음이다.
처음엔 익숙한 무인모텔로 가려했지만 가는 길에 사람들의 시선이 많아 섣불리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었다.
'뭐,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떼우는 거지.'
"저..기요?"
내부는 온통 홍등이 켜져있어 시뻘겠다. 피를 온 벽에다 칠갑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 음란하고도 기묘한 색감에 왠지모르게 주눅이 든다.
사방이 막힌 경비실 같은 공간의 유일한 소통구인 작은 창문이 열리며 뽀글파마를 했을 것 같은 중년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실, 숙박?"
"숙박요."
"여기, 203호로 가."
"아, 잠시만요. 혹시 옆방들 비어있나요?"
"양쪽 다 비어있지. 그건 왜?"
"다 주세요. 어차피 사람들 더 올거거든요."
단방에 방 세 개를 빼자 여사장은 비음을 섞으며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내게 열쇠를 건네주었다. 당연하게도모텔에서 줄 법한 일회용품들 따위는 없었다. 열쇠도 리얼 19세기 말에 사용했을 법한 투박한 열쇠다.
"호홍, 여기 202호, 203호, 204호 열쇠. 좋은 시간 보내~"
방으로 들어서자 저렴한 요금에 걸맞는 저렴한 시설들이 나를 반겼다. 역시나 칙칙한 붉은빛의 등이 켜진 방 안에는 단종됐을 법한 브라운관 텔레비전과 간이 화장대, 그리고 두툼한 이불이 깔린 이부자리, 진짜 그게 다였다.
벽면엔 쌩뚱맞게 가운 두 개가 걸려 있었고, 간이 화장대 위엔 드라이기 하나가 외로이 놓여있었다.
건조하면서도 그래도 있을 건 다 있는 뭐, 어차피 아늑한 숙면을 위해서 온 것이 아니기에 난 그녀를 던지듯 이부자리 위에 팽개치곤 가방을 열었다.
"흐음~"
골아떨어진 서연을 옆에 두고 콧노래가 나온다. 이 시간이 가장 즐겁다. 내인생을 유린한 년을 처음으로 괴롭히는 이 시간이 말이다.
"아, 그거 먼저 해야겠네."
가방에 든 가학적인 성기구들을 다시 놓곤 서연에게 다가갔다. 이국적이지 않은, 토속적인 얼굴의 서연이 새근새근 잠든 모습을 보고 있자니 육욕이 들끓는다.
우선 그녀의 가방에서휴대폰을 꺼냈다. 회식자리에 있으며 잠금이 지문으로 되어있는 건 미리 파악해둔 터였다.
그녀의 엄지손가락으로 잠금을 푼 나는 메시지 어플을 열어 철수에게 톡을 보냈다.
- 오빠, 나 화미여관 203혼데.. 데리러와줄 수 있어? 너무 힘들어…
"어서 오너라, 큭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