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감옥에 가두다.
면허는 있지만 아직 차가 없는 나는 택시를 타고 이 동네에서 가장 큰 부동산으로 향했다. 지금 사는 허름한 주택을 싸게 구했던 곳이기도하다.
"여깄습니다."
택시기사가 카드결제를 마무리짓곤 나에게 다시 카드를 건네주었다. 택시에서 내린 나는 주머니서 울리는 알림에 휴대폰을 켰다.
- 웅남BC 결제승인
- 4,500원
- 잔액 159,953,500
"큭큭."
문자메세지창을 뚫을 듯한 비현실적인 숫자에 괜스레 웃음이 세어나온다. 뭍론 이제 시작일 뿐이기에 벌써부터 좋아하긴 이르다.
때 아니게 순재의 얼굴이 스쳐지나갔지만 녀석도 잘 도피하고 있으리라 단정짓곤 쉬이 넘겨버렸다. 만약 추후 다시 녀석을 볼 수 있다면 이 빚을 갚아주리라 다짐하며, 난 부동산 문을 열고 들어갔다.
중개업자는 내 얼굴을 기억하곤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친숙하게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며 난 요구사항들을 말했고, 중개업자는 여러 곳에 적합한 매물들을 보여주었다.
기억조작이란 희대의 부가능력까지 얻었는데 왜 구태여 귀찮게 돈을 써가며 헛짓을 하냐고 할 수도 있다.
중개업자에게 MC를 걸고, 2차로 집주인까지 MC를 걸어 기억조작을 통해 나에게 집을 양도하게끔 만들면 막대한 소모금없이 값싼 세금 따위만 내도 될 테니까.
하지만, 서류가 남는 작업에는 MC가 만능일 수 없다.
적지않은 금액이거나 또는 전재산일수 있기에 서류는 날조된거라며 인정할 수 없다고 득달같이 고소를 해댈 테니 말이다.
물론 이미 서류에 서명과 도장까지 찍힌 이상 무를 수는 없을 테지만, 난 그러한 소시민들의 고소공세를 받아주면서까지 내 대업과 이 유희와 같은 인생을 소비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기에 이러한 일들은 MC의 도움없이 스스로 처리해야했다. 당연히 조금 귀찮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깔끔한 게 최고니까.
딱히 마음에 드는 곳이 없어 계속 패스를 하던 중, 한 곳이 내 이목을 사로잡았다. 한적한 산 속, 부유한 노부부가 인생말미를 보내기 위해 지은 주택이었다.
"일단 여기로 가보시죠."
"흐음, 마음에 드시려나 모르겠네요. 우선 제 차로 출발할까요?"
"네."
우린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차로 우리 동네에서 40분가량달리자 망울산이라는 산의 초입에 도착했다. 역시 가장 큰 부동산이다보니 매물보유범위가 상당히 넓다.
망울산이라는 산은 초입부터 스산한 바람소리에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평화로운 노년의 삶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보였다. 하지만 내겐 아주 흡족스러운 분위기였다.
세기말의 황폐한 감성이 물씬 풍기는 그런 분위기말이다. 그런 탓에 내 입에서 나도모르게 생각이 흘러나왔다.
"분위기가 좋네…"
"그, 그런가요?"
덜커덩대며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차는 10여분 후, 우리를 목적지에 도착시켰다. 초입부터 흡족스러웠던 것과는 달리 더욱더 흡족스러운 결과물이었다.
울창한 숲길 뒤에 굳건히 위치한 집은 허름한듯하면서도, 정갈한 외부에 빨간 벽돌에 모두 시멘트를 발라 꽤나 튼튼해보이기도 했다.
아기돼지 삼형제의 막내가 지었을 법할 정도로 견고한 외간에 더욱이, 내 시선을 아주 혁혁히 사로잡은 것은 작은 창문에 촘촘한 쇠창살이 모두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뭐, 이미 산을 오르는 와중에 인기척이라곤 느껴볼 수 없어 그것만으로도 구입결정을 내리긴 했지만 말이다.
내가 쇠창살을 보고 있는 것을 보았는지 중개사가 다가와 말했다.
"아무래도 산짐승에 인적도 없다보니 주택보안에 특히 신경을 쓰셨더라고요. 출입문 모두 도어락 설치에 창문은 모두 방탄유리입니다."
"네? 창문이 방탄유리라고요?"
"놀랍죠?노부부다보니 외부침입이 절대 안되게끔 만드셨다고 하더라구요. 그렇게 무서우면 굳이 여기에다 집을 왜 지어서 살겠다고 한 건지 모르겠지만요."
왜긴 왜야.
내 안전감옥을 위해서 아주 흡족하고도 훌륭한 건물을 지어주신거지. 무엇보다 유리가 방탄유리라니 흡족하다못해 경탄스러울 지경이다. 여성, 아니 남성조차 절대 깨지못할 창문이 아닌가.
하물며 대한민국은 총기조차 불법인데 말이다.
아아, 노부부여 정말 감사드리옵니다. 잘 쓰겠습니다.
"이걸로 계약하시죠."
"네?"
중개사가 미쳤냐는듯 놀라며 반문했다. 물론 일반인에겐 미친 짓이나 다름없겠지만 일반인이 아닌, 권능의 힘을 가진 내겐 더할나위없는 주택감옥이다.
난 곧장 이곳으로 구입결정을 내렸고, 추후 집주인과 계약시간을 중개사 쪽에서 잡기로 했다.
"그럼 수고하세요."
중개업자의 차로 다시 시내에 도착한 나는 목적지 인근에서 내렸다. 바빴던 오늘의 일과 중 마지막으로 들릴 곳이다. 그리고 안전감옥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곳이기도 하고.
나의 유희와 향락과 쾌락의 복수를 위해 난 그곳으로 바삐 걸음을 놀렸다.
.
.
시내에서 골목길로 들어선 나는 사창가들이 줄지어 있을 법한 음습한 거리로 들어섰다.
일전에 순재를 따라 와본 적이 있는 거리였다. 내 동정을 떼주겠다며 억지를 부려 따라왔던 홍등가, 내가 가려는 곳은 이곳에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야하는데 우연찮게 발견했던 곳이었다.
골목길의 끝자락 즈음, 같은 분홍빛이라도 왠지모르게 '타락핑크'색이라 부르고 싶은 모호한 분홍색 간판이 보였고 난 서슴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곳은 다름아닌, 가게 이름조차없는 성인용품점이었다.
이제 세나 그 개년을 본격적으로 조교하기 이전에 필요한 물품들을 사러온 것이다. 뭐, 겸사겸사 주말에 밀프에게 쓸 것도 사고 말이다.
"어서오세요홍~"
가게 내부로 들어서자 여사장이 간드러지는 콧소리를 내며 반겨주었다. 40대 중반 쯤 되어보였는데, 스타일이 젊어서 그런지 전체적인 분위기는 30대 쯤으로 보였다.
"네. 구경 좀 할게요."
"얼마든지~"
가늘한 몸매에 얼굴도 평타 이상이었는데, 딱 한 가지 머리스타일이 이 가게와 잘 어울리는 타락핑크색이라 꼴리려던 자지도 후다닥 방광까지 후퇴해 함몰되어버릴 듯했다.
우선, 잡생각은 접어두고 각종 성기구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기구에 딱히 관심을 두었던 인생이 아니다보니 지력이 상승했다한들 조목조목 알기는 힘들었다.
물론 야동에서는 보았기에 대충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정도의 얕은 지식으론 선뜻 구매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나의 머뭇거림을 느꼈는지 여사장이 내게 걸어왔다.
또각또각, 카운터에서 나온 그녀는 짧은 치마에 망사 스타킹, 그리고 핑크색 구두까지 신고 있었다. 야릇한 모양새였는데, 머리색과 더불어 다소 과했기에 난 다시 성기구로 시선을 돌렸다.
"어머~ 이런 곳은 처음인가봐?"
"아, 뭔가 많네요."
"그래서.. 그쪽 꺼? 아니면 여자친구 꺼? 그것도 아니면 남자친구 꺼? 오호홋!"
남자친구 꺼라니, 이 요망한 아줌마가 MC 맛을 보려고 작정했나. 후, 아냐. 저런 싼티 나는 아줌마에게 쓰긴 횟수가 아깝지. 진정하자 강한아.
"여자친구 꺼요."
"아~ 그럼 이쪽으로."
여사장이 안내한 곳으로 가자 익숙한 것들이 보였다. 딜도나 바이브레이터 따위의 것들 정도, 아는 것은 그게 전부였다.
"그래서 여친 취향은?"
"취향요?"
"에헤잇~ 여친 취향도 몰라? 마조? 새디?"
아, 그런거였군.
마조히스트가 고통을 받으며 쾌감을 느끼는 성향이고, 새디스트가 고통을 가하며 쾌감을 느끼는 성향인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정상적인 연인관계였다면 그녀에게 물어봤을 테지만 우리의 관계는 철저한 주종의 관계기에 나는 무조건 마조히스트 물품으로 구매하기로 했다.
그녀가 고통을 받으며 쾌락을 느끼던 말던 상관없다. 고통을 받으면 그만이다. 난 그걸 보며 그녀가 타락하고 굴복하는 모습을 보면 그만이고.
가만 결국 내가 새디스트 성향이 되겠군.
"마조로 할게요."
"어머~ 좋은 여친 두셨네. 이쪽 코너에요."
둘러보던 중, 팬티같이 생긴 물품이 보였다.
"이건 뭐에요?"
"이건 클리토럴클램프 팬티라고, 바이브레이터 장착 팬티에요. 그쪽이 버튼만 누르면 여자친구 클리토리스를 자극하는거죠."
"오.."
SM의 세계를 처음 접한 나는 감탄부터 튀어나왔다. 이런 팬티가 다 있다니, 우선 클리토럴클램프 팬티라는 이름조차 외우기 힘든 팬티를 장바구니에 넣었다.
고통을 가하기보단 괴롭히기 안성맞춤인 물건이다. 다시 둘러보던 나는 뭔가 비싼 빨래집게가 보여 집어들었다.
"으흥~ 그건 나도 좋아하는 건데."
이봐, 그냥 알려달라고. 20살도 어린 놈한테 개같이 능욕당하기 싫으면 말이야.
"그건 유두 클리퍼라고 흥분한 젖꼭지를 꼬집어 주는 거에요. 섹스할 때 꽂고 하면 그 느낌이 더 강렬하거든.. 흐응. 또 하고싶네."
뭐야, 나도 모르는 사이에 페로몬 분비 증가 능력이라도 생긴 거냐? 아니면 미용실이 젖가슴 부비로 영업하듯 성인용품 매장도 상대를 흥분시키는게 영업의 일환인가?
그렇다면 상당히 바보 같은 짓이라고. 당신 같은 싼티아줌마에게 꼴릴 남자는 저밖에 하릴없이 바둑이나 두고있는 말라비틀어진 노인네들 뿐일 거라고.
큼큼, 여하튼, 일단 유두 클리퍼도 넣고.
이건 유부녀인 미애에게 쓰면 딱이겠다. 걸쭉한 모유가 나오려나. 아아, 성인용품 매장에서 자극적인 기구들을 보니 나도모르게 흥분감이 서서히 올라오는 것 같다.
아무래도 상상이 되니 말이다.
"그건 휩 미 베이비라고 플러거 채찍이에요. 엉덩이나 가슴을 때리는 용도죠."
이것도 담고.
"그건 블랙패더 티클러라고. 앞에 깃털 달린 거 보이죠? 그걸로 가슴하고 사타구니, 거기 문질러주면 여자들 진짜 뿅가요."
음, 이것도 담고.
"그건 쿠란뿌스라고. 안대하고 입마개 일체형인데 동그란 입마개에 구멍이 뚤려있어서 음.. 침이 줄줄 흐르는 거죠."
이것도 담고.
"그건 일렉트릭 휩. 전류조절 가능한 거고 보다시피 파리채처럼 생겼긴힌지만 전류로 상대를 복종하게끔 만드는 거에요."
오, 마음에 드는걸? 이것도 담고.
후, 보기보다 종류가 상당한 걸? 애널 용품에, 구속도구까지 모두 담고 나니 한개의 장바구니에 모자라 두개가 채워졌다.
각종 괴롭히기 도구부터 가학, 구속, 성적 도구까지 푸짐하게 채워진 장바구니 두개를 카운터에 가져갔고 여사장은 하나하나 바코드기에 찍기 시작했다.
-삑삑..삑..삑..삑
끝도 없다. 10분여를 말 없이 바코드를 찍던 그녀가 바코드기를 내리며 말했다. 입가엔 미소가 만연하다.
"후, 거의 2주치 매출이네요. 510만원 입니다."
생각보다 많이 나오긴 했다. 하지만 난 태연히 카드를 건네주었고, 여사장은 짐짓 놀래며 카드를 긁었다. 일시불이요? 라고 물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영수증은 버려주세요."
"네~"
구입을 마친 나는 싱글벙글 웃어대며 커다란 캐리어에 포장을 해준 여사장에게서 캐리어를 인도 받았다. 제법 묵직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런 곳이 포장배달이 될리 만무하니까 내용물을 감추는 이정도로 만족해야겠지.
그렇게 캐리어를 이끌고 가게를 나가려던 나는 한 여성의 입장에 걸음을 멈추었다.
갓 20살 됐을 법한 발랄한 분위기의 여성이었다.
"엄마~ 나 왔어."
"응~ 일찍 왔네?"
어린 여성은 여사장의 딸인 듯했고 추파춥스하나를 꼬나물고 있었다. 여사장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아 외모와 몸매는 출중했고, 무엇보다 다행히(?) 스타일링은 물려받지 않아 평범한 여대생의 모습이었다.
가벼운 웨이브가 들어간 머리에 샤방한 화이트 테니스 스커트, 그 밑으론 검은색 양말 스타킹에 무난한 단화까지.
전형적인 순수 여대생 컨셉이었다. 이 퇴폐가게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런 분위기말이다. 아마도 어머니의 가게를 잠깐 봐주기 위해 나온 듯했다.
덕분에 내 머릿 속엔 음흉한 생각이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지만 말이다. 갑작스레 굴러들어온 복덩이에 난 다시금 매대를 둘러보는 척을 했다.
"얼른 가. 오늘 새아빠랑 약속있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