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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화 〉수연과의 조우 (12/129)



〈 12화 〉수연과의 조우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곧장 놈의 테이블로 걸어갔다. 멍청하게도 자기 이름을 밝혀주셨기에, 성을 알아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듯했다. 그의 곁을 스쳐지나가던 나는 불현듯 몸을 돌리며 마치 오랜 옛친구와 조우한듯, 과장스레 소리쳤다.


"어, 니 혹시 김성훈?!"


"네?"


통화를 끝낸 놈이 띠꺼운듯 나를 올려다보았다. 새끼, 기생오라비처럼 생겨서는 세상 비뚫어지게 사네. 그리 띠꺼운 표정도 오늘로써 마지막일 테니 마음껏 지으라고.

"혹시 이름이 김성훈 아닙니까? 제 초등학교 친구랑 너무 닮았는데!"

"아닙니다- 박성훈입니다-"

놈이 귀찮은듯 짜증난 어투로 얘기했지만 나는 보살스런 환한 미소로 답해주었다. 승자의 환희에  미소다. 이 씨발럼아.

"아, 죄송합니다. 하하. 너무 닮아가지고.."

"예예-"


놈은 내 사과에도 폰을 만지작대며 한손으로 마치 개를 쫓아내듯 훠이, 하는 동작을 취했다. 하,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을 보았나. 수연은 눈이 애꾸인가, 어디가 좋다고 이딴 새끼를 만나는 건지 당최 이해할 수가 없다.

남자보는 눈이 아주 호구인 듯싶다. 에휴, 그러니 나라도 나서서 그녀에게 교육을 해줘야겠지. 남도 아니고, 아주 친밀한 사이인데 말이다. 어찌보면 그녀와 관계를 맺지 못한 놈보다 내가  친한 사이지 않겠는가? 큭큭.


"죄송합니다-"

머쓱한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돌아온 나는 자리에 다시 앉아곧바로 MC를 시전했다. 수연이 나오기전에 재빨리 해치울 생각이다. 화장실에서 나왔는데 남자친구란 작자가 나사 빠진 놈처럼 멍하니 있으면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까.


아, 그런데 잠깐만..!

MC 능력에 걸린 사람은 나와 은밀한 관계가 형성이 된다고 했는데.. 이런 미친! 설마 놈도 나중에 갑자기 나한테 게이 짓거리를 하자는 건 아니겠지?

흠, 그건 정말 최악인데.


아니면 MC 시간이 끝나기 전에 건물 옥상에서 투신시켜버릴까 싶었지만 아직까진 남아있는 나의 좁쌀만한 알량한 도덕심에 내키진 않았다. 아직 살인을 저질러본 적은 없으니까. 무엇보다 투신 사건에 연루되어 쓸데없이 경찰서로 불려다니며 소모할 시간이 아까웠다.

어떤 증거도 없어 용의자 선상에도 오르지 않을 텐데, 귀찮게 불려다니며 소모하기엔 현생의 시간은 1분 1초가 값지니까 말이다.


뭐, 만약 게이짓거리를 하자고 달려들면 그때 MC로 세상하직시켜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뒤를 슬쩍 돌아보니 놈이 그녀의 잔에 가루약을 타는게 보였다. 이런 트인 공간에서 약을 타다니, 손님이 없긴해도 제법 대범한 놈이다.


아니면 멍청한 놈이거나

잠시 후, 다행히도 한번에 MC에 성공했다.

놈이 들리게끔 조용히 지시했다.


"대답하지말고, 방금 소맥  거에 약 남은거 다 타서 니가 마셔."


아까 훔쳐보았을  가루약을 조금만 타고 다시 품에 숨기는 것을 보았었다. 고로, 남은  모두  털어 먹이면 제법 볼만한 광경이 나오겠지. 아니면 복상사라도 하려나?


놈은 고분히 품에서 약을 꺼내 소맥에 모조리 때려붓고는 원샷했다. 약효과가 언제부터 나는지 모르니. 흠, 기다려야하나. 하지만 15분이란 시간 내에 수연이 나오면 상황이 조금 꼬일 수도 있다.


젠장, 데리고 나가야하나?

[ 마인드컨트롤 캐스팅 시간 내에 해지할 시엔 '마인드컨트롤 해제'라는 명을 내리면 됩니다. ]

뭐? 왜 맨날 나중에 알려주는 건데!


그런 건 특성치소개해줄 때 같이 해줘야하는거 아니냐?!


하지만 역시나  할 말만 하고 다시 묵묵부답이다. 상황마다 틈틈히 알려주는 걸로 봐서 나중에 또 엄청난 능력이 있는 거 아냐?


뭐, 쨋든 수연이 나오기 전에 얼른 해제시키기로 했다.

"마인드컨트롤 해제."

잠시 후, 놈의 어벙한 말들이 등뒤로 들려왔다.

"으음? 뭐야.  취했나…? 이상하네.."

놈이 혼자 중얼거리고있자 때마침 수연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나저나 순재 이놈은 토라도 하고 있나? 새끼, 산전수전 다 겪다보니 이제 술이 물같다더니 맛이 갔나보군.


화장을 고치고 나왔는지 화장품을 가방에 넣으며 수연은 나를 지나쳐 다시 착석했다. 교육의 효과를 십분 더 발휘하기위해 우선은 내 정체를 숨기기로 했다.

오로지, 놈의 만행에 집중해야할테니까. 수연은 제 남친이 발정제를 한가득 처먹은 것도 모른 채, 다시금 비음 섞인 애교 목소리로 놈에게 말했다.


"미안. 많이 기다렸징."

"조금? 그래서 여기 소맥 한잔 시원하게 말아놨어."


"응? 빈 잔인데?"

"뭐? 어라? 뭐지? 아까 탔는데?"

놈이 당황하는 것이 등 뒤로 혁혁히 느껴졌다. 큭큭, 웃음이 자꾸만 세어나온다.

"뭐, 뭐야. 약도 없네?"

"응? 무슨 약?"

"이런 씨발 뭐지?"

그때, 순재가 화장실을 열고 나왔다. 좀비마냥 힘 없이 벌어진 입술을 훔치는 초췌한 꼬라지를 보아하니 구역질을 거하게 치루고 온 모양이다. 난 그런 그를 보며 비아냥댔다.

"술이 물 같다더니 넌 물 마시고 토하냐?"

"쉐끼.. 물도 많이 마시면 토하는 거 모르냐? 좀 게워내니까 낫다.  잔들어."


"미친놈, 자."


"적셔."


"적셔는 지랄, 허세는 어디 안 갔네."

"이제 막잔하고 때리 치아자."

그럴 수는 없지. 잠시 후면 아주 볼만한 서커스가 시작될텐데 말이다. 녀석의 잔에 술을 채워주며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왜. 쉐끼야. 내일 일찍 일어나야한다. 때리 치아자."


"재밌는 구경은 하고 가야지."


"뭔 개소리고."

그순간, 드디어 고대하던 재미난 독무대가 시작되는 듯했다. 등 뒤에서 수연의 비명소리가 들려왔으니까.


"꺄악!"

"하악하악! 섹스! 당장 섹스를 해야겠어. 당장! 이 씨발년아  벗어. 얼른! 하악하악!"


고개를 뒤로 돌리자 발정제의 과다복용으로 눈이 까뒤집힌 놈이 테이블에 놓여있던 밑반찬과 술을 바닥으로 쓸어내치고는 수연을 엎드리게끔 만드는게 보였다.


"꺄악! 뭐야! 오빠 왜이래!!"


"이 씨벌년 니가 안대주니까 존나 하고 싶잖아!! 하악하악! 잔말말고 보지 벌려 씨발!! 난 지금 꼭 해야겠다고!! 부히익!"


놈은 여기가 마치 모텔인마냥, 엎드린 수연의 치마를 걷어올리곤 곧장 팬티를 잡아내렸다. 오, 분홍.. 아, 아니. 갑작스레 짐승으로 돌변한 남친에 꽃사슴 수연은 어찌할 줄을 몰라했다. 그 모습이 조금 안쓰럽긴하다. 하지만 모든 일은 업보라고.

만약 내가 나서지 않았다면 그녀는 얼굴까지 적나라하게 찍힌 야동이 전국적으로 퍼졌을 거고, 이 한정적인 공간에서 당한 것보다 더욱  심적 고통에 아파할 것이다.

그러니, 짧고 굵게 가자고.


수연이 무릎팍에 내려간 팬티를 황급히 끌어올리며 소리쳤다.


"오, 오빠 왜이래 진짜! 여긴 술집이라고!! 오빠 제발!!"

"술집이든 뭐든 당장  씨발걸레보지 따먹어야겠다고!! 그니까 궁뎅이 벌려 이 씨발년아!! 부히익히익!"

이렇게 섹스에 미친 인간이 무서운 법이다.


어휴, 절레절레. 나는 절대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발정기에 접어든 맹수로 변한 놈은 침을 질질 흘리며 바지를 내리곤 겁에 질려 벌벌 떠는 수연을 강간하려했다. 수연은 그의 우악스런 만행에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반항을 거두었다.

흐음, 그렇겐 안 되지.

이정도면 수연도 충분히 알았을 것이다.

"오빠! 오빠!!  돼 안 된다고!"

"돼! 이 씨발년아. 오늘 니 보지에  박아야한다고! 보지, 보지를 보자 보지!! 하아악! 부힉!"

고개를 돌린 나는 순재를 쳐다보곤 어깨를 으쓱했다. 취기 탓에 순재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짐승이 아녀자를 겁탈하려는 경악스런 장면이지만 취기 탓에 그저 황당한 모양이다.

"니가 말한 재밌는 구경이 이거냐?"

"저 새끼가 약 타더라고, 그래서 담배 피러 나갔을 때 슬쩍 잔을 바꿔놨지. 큭큭."

"쉐끼, 대학 나왔다고 머리 똑똑네."

나 고졸인데.. 무슨..

순재는 이글대는 눈빛으로 한잔 시원하게 원샷때리곤 수연의 보지에 침을 발라 곧장 삽입하려던 놈의 자지를 시원하게 걷어차버렸다.


으윽, 본능적으로  다리가 오므려진다.

-퍼억!

"으아악!"


놈은 하물을 부여잡은  짓밢힌 지렁이마냥 바닥을 누비며 고통스러워했지만, 순재는 여기서 그칠 놈이 아니다. 비록 밑바닥 일을 해도 자신의 구역(?)에서 만큼은 정의의 사도니까.

-퍽!퍼억!퍽퍽퍽.

"끄아악!"

"이런! 미친! 새끼가! 좆도! 작은게! 어디서! 지랄이야! 어후!!"


사정없이 갈비뼈를 밟고 얼굴을 걷어차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윗옷도 벗어 패대기 치곤 아예 파운딩자세로 놈의 얼굴에 주먹을 매다꽂기 시작한다. 놈의 얼굴은 금세 피떡죽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하는 일이 그렇다보니 순재의 주먹은 격투기 선수와 비견해도 될 정도로 묵직하고 치명적이다. 재미삼아 해본 펀치게임에서 단방에 앞전 기록을 묵살시켜버렸으니까.

덩치는 그다지 크지 않은데, 아마 타고난 듯싶다.

-퍽퍽퍽퍽!

"좆만한 새끼가 미쳐가지고 말이야! 어! 개새야! 어디 씨부리봐라!"


"끄어어…"

가게는 어느새 사장 밖에 남지 않았다. 여사장이었기에 말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오똑해오똑해'만 연발해대고 있다.

눈이 뒤집힌 순재는 나도 말리지 못한다. 그렇기에 휴대폰을 열곤 112에 신고했다.

"아, 여기 발정난 돼지가 처맞고 있어요. 여기 술집요. 이도지까. 네~ 네네~"


1타 2피다.


순재 녀석도 골탕 먹이고, 성가신 수연의 남친도 보내고. 아, 이젠 전 남친이려나.

신고를 마친 나는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팬티를 올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벌벌 떨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윗옷을 덮어주었다. 팬티를 올려주었다간 또 언제 미투를 당할지 모른다.


 명심하자. 하려면 MC걸고 해야한다.


"괜찮으세요?"

"..흐으윽! 흐아앙!"

결국 눈물을 쏟아내며 내 품에 안기는 수연, 큭큭. 난 피떡이 되어가는 놈의 얼굴을 보며 승리의 미소를 날려주었다.


아, 가만 그러고보니 수연과도 은밀한 관계가 형성되었겠군. 삽입까진 아니더라도 은밀한 짓은 했으니, 친밀감이 제법 상승했겠지?


"수연씨 괜찮으세요?"

자신의 이름이 들리자 수연이 훌쩍거리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아, 절세미녀가 짓는 서글픈 눈망울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구나. 상황이 이렇지만 않았다면 연신 감탄했을 얼굴이다.

"흐윽.. 누.. 누구…?"

"저 모르시겠어요?"


"아…! 토토!"

..나를 토토로 기억하고 있다니. 뭐, 기억하고 있는게 어디인가. 이제 나를 알아봤으니 은밀한 친밀감이 형성되겠지.

아니나다를까.

"흐으윽…!! 흐아아앙!"

안도감이라도 들었는지  품에 쏘옥 파고들며 다시금 울음을 터뜨린다. 그런 그녀를 나도 꼬옥 안아주며 들썩이는 어깨를 토닥토닥, 다독여주었다.


한동안 그녀는 놀란 가슴이 진정되기 전까지 내 품에서눈물을 쏟아내었다. 그덕에 취기는 고스란히 날아가버렸다. 그리고 취기가 가시자 이성이 조금 돌아왔다.

이성이 돌아오자 품에서 대성통곡을 해대는 그녀에게 조금 미안해졌다. 이 지경까지 만들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녀에게 트라우마를 남긴 것 같아서 말이다.

발정제의 효과가 이정도일 줄은 전혀예상 못했다. 그래도 이성이 있는 짐승이 될지 알았는데,이성상실 안하무인 미친 발정돼지가 되어버릴 줄이야.

 사죄의 마음을 담아 그녀의 머리를 하염없이 쓰다듬어주었다.


그러다 문득 스치는 생각에 난 피식, 웃고 말았다. 참, 나란 놈도 어쩔  없는 놈인가보다.

'보지에서도 물을 흘리고 있을까?'


….


왜.. 미애 아줌마도 쳐다보기만해도 젖는다고 했으니까..


왜.. 뭐, 뭐…


나만 쓰레기야?

.
.
.


하, 이제야 집으로 가는군.


순재 녀석은 폭행 건으로 발정돼지랑 같이 경찰서로 끌려갔고, 나는 신고인이자 참고인의 자격으로 같이 끌려가고 말았다.

수연은 제대로 진술이 힘들 정도로 아직 패닉 상태에 빠져있었으니, 신고자인 내게 목격진술을 요청한 것이다.

덕분에 지금 시간은 새벽 1시다.


발정돼지의 불법약물투여가 사실로 확정되었고, 놈은 범행사실을 시인했다.  약을 먹었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경찰에게 그는 여자를 약물로 강간하고 동영상 유포까지 하려한 희대의 쓰레기로 낙인 찍혀 버렸으니까.

그덕에 순재는 오히려 경찰관들의 열띤 칭찬 속에 훈방조치가 되었다. 아이러니한 현실이지만, 이게 곧 참된 정의이리라.

순재는 자기 할 몫은 다했다며 집으로줄행랑을 쳐버렸고, 결국 나는 수연을 데려다주어야했다. 그녀에 대한 사죄의 의미였다. 지력이 상승했음에도 발정제의 효과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했었으니까.

눈이 까뒤집힌 짐승으로 변모할지는 결단코 몰랐다.

"여기에요?"


아직 딸꾹질을 멈추지않은 그녀가 나의 손짓에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난 입을  벌렸다. 우리 동네에 이런 집이 있었나싶을 정도로 으리한 2층 주택이었다.

넓은 정원이 있고, 대문 역시 쇠창살이 엮인 큰 철제문이었다. 혼자서 열기 힘들어보일 정도였다.

알고 보면 아버지가 수연이 일하는 은행의 은행장인 거 아니야?

띵동, 초인종을 누르자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감회가 새롭다. 사실 전생에서 나도 이런 곳에서 살았었는데 말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잘 다듬어진 정원과 연못, 그리고 집으로 연결된 돌길이 보였다. 내가 딱 꿈 꿨던 집이다. 전생의 내 집은 주택만으로만 본다면 이곳과 흡사했지만 아쉽게도 앞마당은 조금 좁았었으니까.


그녀를 부축한 채 돌길 끝에 다다르자 한 여성이 마중을 나왔다. 앞치마를 두른 채, 공손한 걸음으로 다가오는 그녀는 아마도 이 집의 가정부인 듯했다.

"어머~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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