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수연과의 조우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나는 부스스한 머리를 비비적대며 방을 나왔다. 역시나, 간밤에 뭔가 쿵하는 큰소리가 들리더니의자가 엎어지며 나는 소리인 듯했다.
의자와 함께 옆으로 꼬꾸라진 채 잠이 든 건지 기절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축 늘어져있는 그녀가 보였으니까.
탈출해보겠답시고 발악을 했었던 듯싶은데, 의자에 사지가 단단히 묶여 단 한걸음도 움직이지 못하니 그대로 잠이 든 듯싶었다. 어째 바닥에 기댄 고개가 편안해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선 안 되지.
"풋."
그녀를 일으키려던 나는 뇌리를 스치는 생각에 다시 의자를 바닥에 놓았다. 내 기척에 잠이 깼는지 그녀가 몽롱한 눈으로 고개를 틀어 나를 쳐다본다.
그러다 곧, 기겁한 표정으로 고개를 틀어버렸다.
-쉬이이..
-투두둑..
간밤에 차올랐던 방광에서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진다. 거실 바닥에 내 소변이 묻는다는 것은 상당히 불쾌했지만, 그불쾌감보다 그녀를 더럽히고 싶다는 욕망이 더 컸기에 난 마지막 한방울까지 그녀의 머리 위에 털어냈다.
"우으으으읍!"
어차피 이번 빅매치 베팅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이 지긋지긋한 골방은 안녕이니까, 아무렴 어떤가. 오히려 역한 소변냄새는 하루종일 집에 감금되어있을 그녀에게 아주 어울리는 냄새리라.
내 소변에 젖은 그녀는 웅웅대는 비명소리와 함께 바닥에서 연신 머리를 격하게 흔들어 소변을 털어내려했지만, 이미 묻은 소변은 끈질기게 털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털어내려할수록 단발의 머리칼들이 얼굴과 상체에 내 소변을 흩뿌려댄다.
난 싸늘한 냉소를 지으며 그런 그녀에게 말했다.
"잠자리가 썩 괜찮았나봐? 곱게 살려면 내 육변기 노릇이라도 해야되지 않겠어?"
"우으으우으으!!"
아직까진 체력이 남았는지 다시금 눈으로 독기를 쏘아대며 뭐라 악을 써댔다. 풋, 귀엽네.
그런 그녀에게 비아냥대는 콧방귀를 껴준 후 냉장고를 연 나는 마찬가지로 냉동식품과 밥을 데워 식탁에 앉았다. 매일 먹다시피하는 냉동식품들이지만 혼자 먹을 때와 둘이 먹을 때는 또 맛이 다르다.
뭐, 정확히는 혼자 먹는 것이긴하지만 앞에 사람이 앉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식감과 맛이 있다.
바닥에서 연신 독기를 뿜어대는 그녀를 일으켜 나와 마주하게끔 앉혔다.
간밤에 붓기가 좀 가라앉아 그녀의 반반했던 얼굴이 조금 돌아와있었다. 흠, 계속 보면 볼수록 이쁘장한 얼굴이다. 저런 얼굴로 대체 무슨 사회적 불만이 있어 극우주의자가 되어버린 걸까.
궁금하긴하다.
뭐, 나중에 물어보지. 아직 주둥아리에 자유를 줄만한 단계는 아니니까.
"오늘은 내가 일이 있어 오후에 집을 비울 거야. 뭐, 달라질 건 없겠지만은. 넌 분명히 허튼 생각을 하겠지. 하지만 밤에 느꼈듯 넌 내 도움없인 한발자국도 거기서 움직이지 못해."
그녀는 비참한 눈빛으로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죽어버리고 싶은 심정이겠지. 하지만 그런 감정조차도 아직은 이르다고. 제대로 시작도 안 했는데 말이야.
"이제 슬슬 체력적 한계도 올 거고, 니 더러운 보지에서 소변도 줄줄 세어나올테지. 최악일 때는 대변도 나올 거야. 뭐, 입이야 열어줄 수 있지만 아직 나에게 복종한다는 눈빛은 아니니.. 어디끔찍한 기분을 계속 느껴보라고.."
역시 그녀는 독기서린 눈으로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크, 저 표독스런 표정을 보고있자니 일전에 백화점 갑질녀인 이나윤과도 비슷한 듯했다. 앙칼지고, 도도한 길고양이같은?
아아, 어서 빨리 능욕시키고 유린해 타락한 암캐로 더럽혀 버리고 싶군, 내 육봉이 아니면 살 수 없는 변태 암캐로 말이다.
"잘 생각해. 연락올 곳도 없는 네년이 살려면 누구에게 붙어먹어야하는지 말이야."
말을 마친 나는 마저남은 음식들을 싱크대에 버리곤 그릇들을 정리했다. 그리곤 옷을 갈아입고 집을 빠져나왔다. 어차피 그녀가 발악한다한들, 들어줄 이는 없을 것이다.
햇살이 눈부신 상쾌한 아침이다. 공기마저 달콤하군.
.
.
.
"어, 왔냐?"
담배를 꼬나물고있던 순재가 담배를 손가락으로 멀리 튕기며 다가왔다. 언제봐도 튕기는거 하나는 일품이다.
"어."
"쉐끼.. 진짜 할 건가보네."
"그럼, 딱 한번이야."
"그래야지. 각서도 썼는데. 니가 약속 어길까봐 행님들한테 팔목 안 아프게 자르는 방법 좀 물어봐놨다."
"팔목을 안 아프게 자르는 방법이 있다고?"
"읍다 이 쉐끼야. 존나 아프겠지. 그니까 딱 한판만이다."
"걱정마라."
순재는 나를 이끌고 동네 외곽으로 빠져나갔다. 원래 허름한 동네지만 외곽으로 빠지니 세기말, 지구멸망의 날이 아닌가싶을 정도로 황폐했다.
넓은 평지들은 잡초더미들이 즐비하게 깔려있어 농작은 불가능해보였고, 당연히 인적이라곤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흔한 똥개들조차 먹을 게 없는지 보이지 않았다.
살짝 불안감이들기도 한다. 하지만 두번의 MC 기회가 있으니 일단은 조심하되,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기로 했다. 뭐, 따지고보면 지금 놈이 나에게 갈취할 수 있는 것은 단돈 500만원밖에 되지 않기에 별 일은 없을 것이다.
예전에 술마시면서 듣기론 달에 많이 벌 때는 300만원도 번다했었으니까.
-딸칵.
차에서 내리자 커다란 컨테이너 하우스 하나가 앞에 있었다. 흔한 공사장에서 쓰이는, 언뜻보면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져 녹물이 흘러내리는게 폐 컨테이너 같기도 했다.
황폐한 주변에 녹슨 컨테이너의 조합은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다. 거기다 후웅, 하는 칼바람이 불면 화룡정점일 테지.
"뭐하냐. 얼른 텨와라."
"어, 어."
우려스러운 외부와 달리 내부는 깨끗했다. 곳곳에 사치스런 난과 장식품들도 있었고, 커다란 소파 4개도 좌우정렬로 가지런히 중앙에 있었다. 토쟁이들의 편안한 도박을 독려하려는듯 제법 값비싸보이는 가죽소파였다.
그리고 그 고급소파의 전방으로 작은 TV가 여러대 설치되어있었다. 대충 10대는 넘는 것 같다.
아마도 진성토쟁이들이 각기 다른 스포츠 경기를 틀어놓고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듯했다. 지금도 몇몇 토쟁이들이 스포츠 경기를 시청하고 있었으니까.
그냥 허름한 비닐하우스따위일지 알았는데, 제법 구색이 갖춰져있다. 내가 두리번대자 순재놈이 마치 자랑스럽다는듯 얘기했다.
"여기가 우리 사설토토방, 일명 '사또방'이라고 부르지, 큭큭. 쩌기 컴퓨터있제? 저기서 베팅하면 된다. 베팅계좌는 모니터에 적혀있으니까 거기로 이체하면 되고."
사또방이라, 네이밍센스는 썩 괜찮네. 입에 착착 감기고 말이야.
사설토토하는 방식은 합법토토와 거의 흡사했다. 승부식, 점수식 중에서 당연히 고배당 점수식으로 베팅한 나는 모니터에 적힌 계좌번호로 500만원을 송금했다.
2게임 점수 적중 시, 자그마치 1억 5천만원의 거액이 들어온다. 사설이라 그런지 역시 배당률이 제법 쎄다. 이래서 토쟁이들이 사설토토에 빠지는가싶다. 한번 적중하면 빠져나오기 힘들테지.
"다 끝났다."
"오이오이, 함 보자."
"봐서 머할라고."
"쉐끼, 조또 븅신짓했나싶어서 그러지."
순간, 녀석이 내 휴대폰을 낚아채갔다. 역시나 음지에서 일하는 놈이다보니 손이 상당히 날쎄다. 휴대폰 화면엔 입금 확인 문자와 함께 베팅 내용이 도착해있었다.
문자내용을 확인한 순재의 미간 중앙이 치솟는다. 그리곤 미친놈보듯 날 쳐다보았다.
"야이 이런 이 쒸 쒸바 야이."
어찌나 흥분했는지 말도 더듬어댄다. 피식, 실소를 내뱉은 나는 다시 휴대폰을 가져왔다.
"왜 불만있냐?"
"야이 개호로쌍니미우라질십할년아. 500만원 기부하러 왔냐?"
이해하기 힘들 테지, 이변의 게임이니까. 하지만 난 확신하고 있었다. 두번째 게임이 조금 애매하긴 하지만, 내 기억이 맞을 것이다.
어차피 틀려도 시간이 조금 딜레이될 뿐,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됐고. 술이나 한잔 빨자. 내가 사께."
"안 마셔이. 이 쒸바로마. 최후의 만찬이라도 하잔 거냐?"
"킥킥, 뭐래. 오늘 꿈자리가 좋아서 그래. 내가 따면 어쩔 거냐?"
"따면 얼마든데."
"1억 5천."
"..?"
사고회로에 마비라도 왔는지 순재가 고인돌마냥 굳어버렸다. 그러다 얼음땡이라도 당한듯 다시 호들갑을 떨어댄다.
"미, 미친새끼! 1억 5천이고 지랄이고 500만원 날리게 생겼구만 지랄은."
"따면 좀 주께. 걱정 마라. 술이나 한잔하자니까."
"하.. 미친놈. 이거 완전 내보다 더 또라이네."
"그러면 그 친구에 그 친구지. 가자."
그렇게 500만원 베팅을 마친 난 순재 차를 타고 다시 동네로 돌아왔다. 후, 이제 2틀 뒤면 결전의 날이다. 술 한잔 걸치기엔 이른 시간이라 우리는 우선 피시방에서 시간을 버티기로 했다.
중간중간, 차 빌려간 이유와 의료용테이프를 받아간 이유에 대해 물어서 변명을 해주느라 귀찮긴 했지만 말이다.
녀석은 아마도 내가 여성과 SM 섹스플레이를 즐긴 줄 아는 모양이다. 뭐, 완전 틀린 것은 아니지만? 큭큭.
.
.
날이 저물고 동네 허름한 술집에 들어간 우리는 배 채울겸 옛날도시락 2개와 오뎅탕 하나를 시켰다. 문득 집에 있을 그년이 걱정되었지만 쓴 소주 한잔에지워버렸다.
아, 걱정은 당연히 그년의 안위에 대한 것이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 혹여나 내 명석해가는 두뇌를 뒤엎는 반전의 탈출이 있을까, 걱정이 된 것뿐이다.
-짠.
그렇게 한잔 두잔 걸치고 있자 취기가 살살올라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절대 취할 정도로 마시진 않을 생각이다.
행여나 취해 녀석에게 시스템의 능력을 발설할 수도 있으니까. 물론 녀석은 내게 시나리오 쓰다가 미처버렸냐며 육두문자나 시원하게 휘갈겨버릴테지만 말이다.
그 뿐만 아니라 아무도 믿지 못할 것이다.
내가 시스템으로 여자들을 능욕하고 조교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혹여나 만취해 집으로 들어갔다가 어떠한 실수 때문에 골치 아픈 일이 생겨선 안 되기에 오늘은 소소하게 마실 생각이다.
-짠.
잔을 기울이는 그때, 가게문이 열리며 한쌍의 커플이 들어왔다. 개년놈들, 낙엽이 우거지는 이 가을날에 붙어있으니 옆구리 시리진 않겠다.
어, 가만.. 낯이 익은데?
눈을 다시 뜨고보니 남자의 팔짱을 낀 채, 들어오는 여성은 다름아닌 수연이었다. 스쳐보긴 했지만 어찌 저 얼굴을 잊을 수 있겠는가. 미모는 둘째치고그녀의 야릇한 얼굴을내려다보며 입안에다 잔뜩 사정했는데 말이다.
큭큭, 능욕 당시의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뭐가 웃기냐. 니취팔라마."
"아, 아니다."
그녀는 내 뒤의 테이블에 앉았다. 내 등뒤에 그녀가 있는 것이다. 묘한 흥분감이 척추신경을 휘감는다. 능욕한 당사자, 거기다 남자친구까지 한 곳에 있다니.
취기 탓에 움틀대는 하물에 급히 다리를 꼬았다.
-아~ 이거 먹어봐.
-으응~ 자기 먼저 먹오.
그녀는 딱히 내게 원한을 사진 않았지만 왠지모르게 저 남자친구란 작자가 아니꼽게 보였다.
소유욕일까?
이 세상 여자는 앞으로 모두 내 성노예라는?
흠, 굉장히 중2병 같은 생각인데. 이러다 진짜 미쳐버릴런지도 모르겠군.
술 한잔에 잡생각을 털어낸 나는 둘의 대화를 엿듣기 싫었지만 테이블이 뒤편이라 본의아니게 염탐하게되었다.
-우리 여보랑 여행가고싶당.
-가면 되지.
둘은 사귄지 얼마되지 않았는지 꽁냥꽁냥해보였다. 하, 나도 저런 여자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회한이 들었다.
이쁘고 성격좋은.
하지만 이제 여자친구란 개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당장 집에만 가도 꽁꽁묶인 여성이 감금되어있는데, 그리고 아직 남은 두 년을 족치기 전까진 나에게 여자친구란 걸림돌따위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전생에서 난 여성들에게 이용당하고 착취당하다못해 벼랑으로 내몰렸으니까. 앞으로 내게 여성이란 생체오나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잠시 후, 혼자 연거푸 술잔을 들이키던 순재가 화장실로 향했고 뒤이어 수연도 화장실로 향했다.
음, 드라마나 소설보면 뭔가 사건이 터질 것 같은 상황구도인데?
아니나다를까, 내 귓구녕 속으로 남자친구란 작자의통화내용이 들려왔다. 그런데 그 내용이 상황을 극적으로 이끌어가기 충분하고도 남았다.
-아, 행님 저 성훈이요. 개 같은 년이 존나 튕겨서 억지로 술집 데리고 왔습니다. 큭큭. 내가 쓴 돈이 얼만데 개년이 비싼척 존나 안대준다니까요?
-예예. 약 챙겼지요. 이거 먹으면 존나 발정난다고요? 미친 개마냥? 크학학, 좋아좋아. 오늘 따먹고 인증샷 보내줄게요. 약값은 해야지여. 동영상? 오키 좋지. 행님 나만 믿고 기다리세여. 개꼴리게 얼굴까지 뽝 찍어가지고 보내드리께요.
후. 황당함에 헛헛한 미소가 나왔다.
이거이거, 오늘은 집에 손님도 와있고 가만히 넘어갈랬더니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들어주신다.
감히 내 오나홀을.
아, 아니.. 내 음.. 남자친구란 놈이 여자친구를 따먹고 뭐? 약도 먹이고 동영상 촬영까지? 그것도 모자라 동영상 유포까지?
MC 능력으로 여자들을 생체오나홀로 쓰는 내가 할 말은 아니다만, 저거 완전 재활용도 안 될 쓰레기네.
최소한 나는 소소한 내 욕구(?)만 '몰래' 달래고, 아니면 천인공노할 썅년만 공개능욕을 하는데 말이다. 물론 자기합리화일 수도 있겠지만은 적어도 저런 쓰레기랑만은 다르다고 생각하고 싶다.
게다가 난 저런 절대쓰레기를 처단하고 심판해주지 않는가. 하, 전지전능한 이 몸 앞에서 개처럼 부려달라고 용을 써대니 아무래도 그에대한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겠다.
덩달아 수연에게서 영영말을 붙이지도 못하게끔 해줘야겠어, 그녀는 내 사랑스런 섹스토이니까.
이름을 알아낼 방법을 찾아야겠군.
음, 자연스러운 방법이 뭐가 있을까..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