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화 〉일확천금 (6/129)



〈 6화 〉일확천금

일수가방을 허리춤에 낀 채 껄렁대며 들어오는 놈은 다름아닌, 전생에서 내 곁을 끝까지 지키다 결국 남은 전재산을 들고 잠적한 놈이다.

이름은 이순재, 나이는 나와 동갑이고 지금 현재는 유일한 친구라 부를  있는 놈이었다.


하는 일은 나와 정반대인 깡패인데, 어쩌다 우리가 친구가 되었는진 모르겠다. 학창시절에 따돌림 당하던 나를 도와주긴 했었는데 지금도 그때 왜 도와줬냐 물어보면 시큰둥하게 남이 나를 괴롭히는 게 꼴보기 싫었다고 한다.


나는 오직 위대한 이순재만이 괴롭힐  있다나 뭐라나.

그때나 지금이나 참 이상한 놈이다.

여하튼 녀석은 아직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래도  곁을 끝까지 지켜준 놈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딱히 남자놈에게 복수랍시고 할 것도 없으니까.


죽이는 것 외에  할 게 있겠는가.


여자처럼 육변기로 쓴다던지, 노예로 부린다던지 할 수도 없으니 그저 쓸모없는 놈일 뿐이다. 그렇기에 예의주시하다 뒤통수를 후리려하면 MC 능력으로 이승하직 시켜주면 그만일 터.


순재가 의자에 눕듯이 대충 앉으며 다시 말했다.

"뭘 그리 등신 같이 서있냐. 라면 하나 가져와."

미애 아줌마가 대신 답했다.

"순재 왔니? 늘 먹던 라면?"

"네. 얼큰~하게 해주이소~"

"그래. 잠시만 기다리렴~"


노란색 스포츠머리에 옆통수에는 스크래치까지 넣은, 평범하디 평범한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순재는 자신만의 트레이드마크라며 늘그랬듯,껌을 씹고 있었다.

아마도 라면이 나오면 껌 뱉기가 귀찮다며 그냥 삼키고 라면을 먹을 것이다.

"근데 이 시간엔 왠일이냐."

"아, 씌바꺼 도박쟁이 한 놈이 돈을 안갚아가꼬 찾아봉께  근처에 살대. 그래가꼬 돈 걷으러가기 전에 배좀 채울라꼬 왔지."

그러고보니  놈이 몸 담고 있는 조직이 도박을 전문적으로 한다고 했던 거 같은데..

"아, 맞다. 너희 조직에서 하던도박이 뭐였지?"


"뭐 많지. 빠칭꼬도 있고~ 마작도 있고~ 화투패는 당연한기고. 그거 말고도 제일  나가는게 토토지. 사.설.토.토."

 생각을 간파라도 한 건지 마지막 사설토토란 단어를 스타카토로 끊어 말한다. 이 배은망덕한 놈이 도움이 되려는 듯싶다.

"그래? 사설토토에 자리 있냐?"


순재가 의외라는 얼굴로 반문했다. 자기도  것이다. 내가 자신과는 다른 부류라는 것을.


"오? 네가 어쩐 일이냐? 시나리오 쓰는게 잘 안되더냐?  글쟁이쉬꺄?"

"아니. 그냥 재미삼아 해볼까 싶어서."

"쉐끼. 재미로 들어왔다 발목 잘리서 못 나가는 놈 많다~ 때리 치아라~"


자식, 그래도 아직까진 우정이란 게 있긴 한지 걱정해주는게 우습기도 하다. 하긴 순재란 놈은 지금 당시부터 내가 죽기 전까지 늘 투박하게 내 걱정을 해주던 놈이었다.

그렇기에 몇  되는 전재산을 맡긴 것이었고.

이렇게 믿음직해보이는 놈이 배신을 하다니,  돈이란 게 무섭긴 무서운 것이다. 돌이켜보면 돈을 건네준 그날 이후, 그는 연락두절이 되었고 장학재단에 기부된 사실이 없다는 것만 전해들었었다.


이미 삶의 막장, 죽음을 기다렸던 나는 곧장 창문에서 뛰어내렸으니 내가 성급했는지도 모른다.

내막에는 그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으니까,  면상 앞에서 바람 났음을 시인하고 그간 선물들까지 죄다 가져간  뻔뻔스런 씹년하곤 다르다면 다를 수 있다.

회귀에 전능한 시스템까지 얻어서 그런가.

조금, 마음이 넓어진 것 같기도?

물론 놈을 이용하면서 뒤통수는 항상 조심할 것이다. 태생이 길바닥 출신인 그를 믿었던 내가 바보가 맞을 수도 있으니까.

미애 아줌마가 라면 한 그릇과 김치를 담은 쟁반을 들고 순재 앞에 놓아주었고, 난 당연하다는듯 젓가락 하나를 잡아 그의 앞에 앉았다.

순재가 낌새를 눈치채곤 라면 그릇을 품에 숨긴다.


"아 한입만 먹자."


"식당서 알바하는 쉐끼가 뭔 식탐이 많아. 이 탐욕에 가득찬 지방덩어리 쉐꺄. 손모가지를 확 조사뿔라."

"원래 식당 알바가 제일 배고픈 거 모르냐. 하긴 니가 이런 건실한 일을 안 해봐서  턱이 있나."


"한 입 줄랬드만 때리 치아라."

"아. 미안. 미안."

겨우  젓가락을 얻어먹은 나는 진지한 말투로다시 말했다. 놈을 어르고달래 사설 사이트에 꼭 가입하고야말 것이다.

"진짜 딱 한판만 할거야. 나 좀 끼워주라."


순재가 못미더운 눈치로 뜸을 들였다. 그럴수 밖에. 불법도박 시작한 놈치고 '한 판만' 하는 놈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될 테니까.


하지만 나는 진짜다.


빅 매치에 한탕하고 시원하게 뜨는 거다. 뭐, 자발적이 아니라 타의적으로 쫓겨나는게 될 테지만 아무렴 상관없다.

그리고 메이저급 사설 사이트는 먹튀논란이 붙으면 기존 고객들이 대거 이탈하기 때문에 쉬이 먹튀하진 못할 것이다.


고객층이 매우 넓기 때문에 한  돈 주기 싫어 베짱 부렸다간 잠재적 큰 돈을 차버리는 것과 같으니까. 등신이 아니고선 먹튀할 이유가 없다.

"흠.. 진짜 약속하는 거냐? 한판만 하기로?"


"약속. 부랄 건다."

"니 곪아터진 부랄은 쓸데도 읍다."

"아 그래서 끼워줄 거냐 말 거냐."

순재가 어느새 라면을 국물까지 깨끗이 헤치우곤 그릇을 식탁에 탁, 놓았다. 배때지가 불러서 그런가 눈빛에 제법 힘이 들어가있다. 친구가 아니었다면 오금까진 아니더라도 쭈굴모드로 들어가기  좋은 눈빛이었다.

새끼, 건달 아니랄까봐.

"한판 만 안 하모 우짤기고."

"약속 어기면 진짜  하라는대로 할게. 뭐든."

"뭐든?"

"물론."

순재가 품 속에서 종이 한장을 꺼냈다. 흰 백지였는데 대충 무슨 종이인지 알 것 같다. 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내든 순재는 말 없이 무언갈 적어나갔다.

왠지모르게 침이 삼켜진다.

"자. 여기 싸인해라."

"각서?"

"니 만약에 한판만  한다는 소리 지껄이믄  팔목 하나 자른다는 내용이다. 이정도 각오는해야 안 쓰것나? 아니모 때리 치아고."

풋.


변호사도 대동하지 않은 채 작성한 이깟 종이 한장에 싸인한다해서 법적효력이 생기지 않는 건 상식아니던가. 무엇보다 녀석이 잘 알텐데 말이다. 뭐, 나를 떠보거나 위협주기 위함이겠지.


그리고 추후에 녀석이 뒤통수를 후려칠 낌새가 보이면 마인드컨트롤로 각서 따위는 찢어버리면 그만이다.


나는 마치 보란듯이 크게 싸인한 후 종이를 다시 건넸다. 순재가 놀라는 눈치로 종이를 받아 고이 접어 품에 다시 넣었다.

"쉐끼 각오 단다이 했는가베. 오늘은 바빠서  되고 난주 연락주께."

"당장  거는 아니다."


"고래? 그럼 언제 할라꼬."


"그건 나중에 얘기해줄게."


"흐음.. 알따 그믄 수고해라."

"그래 니도."


 문을 나서려던 순재가 다시금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어깨를 으쓱해보이자 녀석은 고개를 갸웃하곤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어지간히 믿기지 않는 모양이다.


골방에 박혀 글이나 쓰던 놈이 무슨 바람이 불어 불법도박을 하겠다는 건지 믿기 힘들겠지.

여하튼 녀석 덕분에 막막했던 사설 사이트 가입이 손쉽게 이루어져 다행이다. 이제  매치가 오는 날까지 지력을  찍어 두어 흐릿한 기억을 복구시키는게 안전할 듯싶지만, 하필 퀘스트가 3천만원 모으기니 어려울 듯싶다.


고로, 시나리오 작업을 마무리하며 하루하루 마인드컨트롤로 즐기며 보내는 수밖에.

그리고 지력이 오른 덕에 신천문예 당시 심사위원들이 피드백했던 내용들이 떠올라 시나리오를 조금 수정할 생각이다.


운이 좋다면, 신인상과 동시에 대상을 거머쥐는 거물급 신인의 탄생을 알리게  지도.


"어. 순재는 갔니?"


"네. 밥만 먹고 갔어요."


난 식탁 위에 놓인 3천원을 미애 아줌마에게 건네주었다. 새끼, 건달놈이 계산 하나는 똑부러지게 한다.

가게 손님도 없고, 그 개차반 애새끼도 없어 미애 아줌마를 한번 더 따먹을까 생각했지만 애석하게도 2번의 마인드컨트롤이 모두 실패하며 난 고이 생각을 접었다.

하긴, 어제가 확률이 대박인 날이었지.

하, 그래도 아쉽네.

이제 2단계라 확률도 60퍼센트고 무엇보다 시간도 15분인데 말이다. 평균 섹스타임이 20분인 나에겐 아직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전희, 후희를 즐기기엔 나쁘지 않은 시간인데.


그나저나 상대가 1명으로 지목되어있다면 단계가 올라갈수록 시전상대자가 늘어난다는 말이겠지?

그럼 그 말로만 듣던 쓰리썸 포썸도 가능하다는 건가. 상상만으로도 황홀하군, 미애 아줌마의 보지에 박아대면서 수연의 보지를 개처럼 핥아대는.. 워워, 진정하자고. 아직 알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까.

하, 복수에 현생의 포커스를 맞춰야하는데  마인드컨트롤이라는 어마한 능력에 자꾸만 색무새로 빙의되는  같다.


좀 더 건실하게 쓸 방법은 없을까?

이를테면 뭐..


남의 집에 쳐들어가 전재산을 달라고 한다던가…?


생각하는 수준하고는.. 그건 건실한 방법이 아니지 않니?

어휴, 색무새에 완전히 씌여버린 걸까 15분의 MC능력으로 건실하게 무언가를 이룩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생각을 말자..'

그렇게 잡념에 잠겨있던 사이 손님이 새로 들어왔고, 나는 마감시간까지 미애 아줌마의 육감적인 몸매를 흘깃흘깃 훔쳐보며 다시 일을 시작했다. 이미 한번 따먹긴 했지만, 미슐랭 스타셰프가 만든 요리보다 훨씬 황홀했을 맛에 자꾸만 군침이 고인다.

하, MC가 아니라 진짜 정상적인 상태에서 그녀를 따먹고싶다.


"안녕히 가세요~"


마지막 손님까지 모두 나가자 나는 재빨리 식탁을 치우고 퇴근 준비를 했다. 집에 가면 심사위원의 피드백에 맞춰 시나리오를 수정할 생각이었다.

시원한 캔맥주 하나를 딴 채 말이다.

그간 확인해본 결과, 돈을 모으는 퀘스트는 최대 금액의 수치가 기록되는 것으로 돈을 쓴다고 해서 기록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즉, 지금 1100만원 가량의 돈에서 100만원을 쓴다해도 2000만원을 모으는  아닌 1900만원만 모아도 퀘스트가 완료되는 거다.

당분간 딱히 쓸 일도 없지만 말이다.


캔맥주 따위에 쓰는 것외에는.

주방에 식기류와 접시를 모두 가져다주고 마지막으로 바닥청소를 하고있자미애 아줌마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뭐지?

"저.. 강한아."


부탁이라도 있는 건가?


"네? 시키실 일이라도?"


"아니.. 그게 아니구. 오늘 마치고 뭐해?"

음?

처음 보는 전개인데? 그녀가 나에게 퇴근 일과를 물어보다니 말이다. MC 능력 부가효과인 친밀감 상승으로 그런 건가?

"뭐.. 딱히 없네요."

"그래? 그럼 아줌마하고 맥주 한잔 할까?"


그녀의 눈빛이나 말투, 분위기로 보아서 뭔가 야릇한 전개로 빠지는  같은데 뭐지?

"저야 좋죠. 어쩐 일이세요?"

"아..  얘기도 있고해서."


"어디서 마셔요?"


"여기서 마시자 이제 가게 문 닫을 거니까."

김칫국이 될 수도 있겠지만 한 가지는 확인하고.

"아들은 오늘 늦나봐요?"


"아, 수학여행 갔어. 내일 올 거야."

뭐야!

이거 완전 망가에서나 보던 떡각 야무지게 나오는상황인데?

하지만 친밀도가 상승했다해도 그녀가 내게 섹스를 제안할 리가 없었다. 말그대로 '친밀감'이 상승했을 뿐이지, 성적욕망이 상승했을 리는 없으니까.


더욱이 특출난 것도 없는 평범한 내게뭐가 아쉬워서 동네남성들의 아랫도리를 울리는 미시아줌마가 섹스를제안하겠냐는 말이다.

뭐, 동네남성들보다 잘난 게 있다면 대한민국 평균을 웃도는 성기 사이즈랄까. 대중목욕탕에서 나름 주름 잡을 수 있는 크기니까.


워워.

김칫국 급하게 마시면 사래들리는 법이다.


하지만 왠지모를 기대감이 샘솟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정신지배 상태가 아닌, 맨정신에서 미시유부녀와 섹스를 한다는 것은  사주엔 눈곱만큼도 없을 일이니까.


난 테이블을 셋팅하기 위해 식기류를 가지러 일어났다.


"그래요? 그럼 자리 셋팅할게요. 안주 맛있는 거 해주세요."

"그럼! 걱정마. 얼른 해가지고 올게."

잠시 후, 먹음직스런 술상이 셋팅되었고 나는 냉장고에서 캔맥주 두개를 꺼내와 그녀에게 건네었다.


-치익.

분위기 탓인지 탄산 빠지는 소리마저 훌륭하다.

"짠할까요?"

"응. 짠!"

그녀는 하루의 고단함을 시원하게 풀듯, 맥주를 거의 원샷할 기세로 목구멍에 들이부었다. 땀에 젖어 윤기흐르는 유려한 목선이 꿀꺽대자 절로 침이 삼켜진다.


게다가 대충 올려묶은 머리에서 몇가닥의 머리올들이 삐져나와 그녀의 볼과 귀에 어지러이 묻어있어 뇌쇄적인 퇴폐미까지 살짝 묻어나왔다.

이런 마누라를 두고  남자는 아쉬워 어떡하냐.

미안하지만 대신 잘 먹겠습니다.

"그나저나 할 얘기가 뭐에요?"


내 물음에 그녀가 잠시 뜸을 들이다 말문을 열었다. 맥주 탓인지 볼에 옅은 홍조가 띤 게, 정말이지 꼴려서 미칠 것 같다.


"아.. 진지하게 들어줘.  절대 미친 거 아니니까."

"왜왜. 뭔데요."

"아니.. 어제 요리했던 기억이 없다했잖아.. 근데 기억이 딱 돌아왔을 때.. 끄응…"


차마 말을 잇기가 민망한지 캔맥을 다시금 벌컥벌컥 들이킨다. 아,  목선을 마음껏 핥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뱀파이어처럼 말이다. 땀에 젖은 뽀얀 목선을 혀끝으로 간질이다 혓바닥으로 핥으며 쪽쪽 맛보는, 그런게 포상이지.


"푸하-! 취기가 좀 올라와야 말할  있을 것 같아."

그러곤 냉장고에서 캔맥을 하나 더 들고 오더니 다시 원샷을 때려버린다. 꿀꺽, 꿀꺽.


그녀의 옅게 올라온 목젖이 몇번 울컥댔고, 캔맥을 탁! 테이블에 놓은 그녀는 볼이 발그래진 채 자신의 아랫도리를 가리켰다.

수줍으면서도 대담한, 손짓이었다. 난  손짓에 본능적으로 시선을 따라붙였다.


"하.. 취한다.. 그니까 음… 어제 기억이 돌아왔을  요..기.. 밑에가 엄청 젖어있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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