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프롤로그
23세의 나이로 신천문예의 영화 시나리오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며화려한 인생 데뷔를 알렸다.
24세의 나이엔 1,000만 관객 돌파 및 역대 한국 영화 흥행 3위에 오른 영화의 시나리오를 맡아 소위 말하는 대박 성공을 이루었다.
26세의 나이엔 처음 도전한 장편소설로 각종공모전을 휩쓸며 상금만 2억원을 거머쥐었다.
28세의 나이엔 자가출판한 나의 자서전이 밀리언 셀러가 되었고, 나는 이 나이 때에 이루기 힘든 자수성가를 이루었다. 오로지 나의 힘만으로 일궈낸 성공이었다.
그렇게 나는 막대한 재력과 드높은 명예를 가졌고 이 행복은 영원할 거라 믿었다. 그간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즐기며 하루하루 행복이란 돈더미에 도취되어 웃음만이 가득했으니까.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30세의 나이에 찾아온시련은 단숨에 내 목숨줄을 옥죄었다.
한 여성단체가 나를 파렴치한 성폭행범이라며 일명 '미투' 운동을 벌였고 내 의견은 철저히 묵살당한 채, 일면식도 없는 그녀들의 거짓미투로 난 서서히 심연의 나락으로 이끌려 내려갔다.
물 한점, 바람 한점 없이 황폐한 심연의 끝자락으로.
진실에 관심없는 각종 매체들은 나에게 '타락한 청년성공가'라는 타이틀을 가슴 깊이 박아넣었고, 나를 시기했던 이들은 그 타이틀을 사방으로 퍼나르기 시작했다.
결국 그 타이틀은 나의 가시목줄이 되어 어딜가든 쫓아다녔다.
그 무거운 가시목줄 덕분에 나는 더 이상 햇빛을 바라보지 못했다. 따스했던 햇빛은 순식간에 지옥불로 바뀌었고 시원했던 가을바람은 혹한의 칼바람으로 바뀌어 나의 살갗을 벗겨나갔다.
독한 술만이 나의 벗이 되었고 나는 나의 비참한 인생을 안주삼아 매일 현실을 피해 독방으로 숨어들었다.
정신이 피폐해지자 육체는 당연하다는듯 무너져갔다.
그렇게 여성들의 삿대질과 모욕질이 무뎌져 갈 무렵, 나는 뇌졸증으로 쓰러졌고 화려했던 인생의 종장이 드디어 펼쳐졌다.
내 곁을 꿋꿋히 지키던 약혼녀는 알고 보니 애초부터 나의 재력과 유명세를 이용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녀는 내가 쓰러지자마자 집에 있던 현금과 보석을 들고 도망갔다.
하지만 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티비에 출연해 애절한 눈물연기를 펼치며 가식 떠는 그녀의 모습을 먹먹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여성단체는 그녀가 타락한 청년성공가와 붙어 먹었던 사실을 잊어버리기라도 했는지 그녀를 우둔하기 시작했고, 매체들은 쓰러져가는 나를 끝까지 지켰다며 신뢰와 의리의 가면을 그녀에게 씌워주었다.
그렇게 그녀는 화려하게 연예계에 데뷔했고, 곧 스타가 되었다.
웃음이 나왔다.
병실에 누워 티비를 보며 미친 듯이 웃고 있는 나를 간호사가 혐오스레 꼬나보았지만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남아있던 모든 것을 처분해 현금으로 만들었다.
더 이상 물욕도, 살고자하는 의지도 생기지 않았다.
그렇기에 가장 믿었던, 세상이 한 손가락으로 나를 욕해도 나의 유일한 도피처가 되어주었던 친구에게 마지막 남은 돈을 건네주며 이 돈의 일부는 가지고 나머지는 신천문학재단에 기부해달라고 했다.
비록 비참하게 끝이 나지만 나의 화려한 인생 데뷔를 선사해주었던 신천문학재단에 나의 모든 것을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그는 잠적했다.
당연히 신천문학재단은 나의 물음에 어떤 기부도 없었다고 말했고, 전화를 끊은 나는 간호사가 보는 앞에서 꺽꺽 웃어대며 창문 너머로 뛰어내렸다.
그렇게 나의 짧지만 비참했던인생은 끝이났다.
한 가지 웃긴 건, 그 허공을 비상하던 짧은 순간에 내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 재밌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뭐, 이젠 쓸 수 없겠지만.
죽었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
.
.
"아니.. 분명 창문에서 뛰어내렸는데.."
그 이후론 기억이 없으니 분명 죽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뇌졸증에 병실은 5층이었으니 살았다면 기적일 터. 게다가 날아가는 궤적으로 보아선 분명히 완충제 하나 없는 아스팔트 바닥에 처박혔을 것이다.
두개골이 박살나고 팔다리는 비정상적으로 틀어졌겠지.
하지만 내 몸은 멀쩡했고 몸 구석구석 더듬어보아도 이상한 점도, 피 한방울도 보이지 않았다.
"뭐지?"
게다가 병원도 아니었다.
낯설지 않은 작은 방 안, 그리고 케케묵은 익숙한 냄새.
이곳은 다름아닌 나의 방이었다.
그것도 성공하기 전, 신천문예 신인상을 위해 쉰내 풀풀 풍겨대며 시나리오를 써대던 작은 골방이었다.
"뭐, 뭐야."
당황한 나는 나사 빠진 프랑켄슈타인마냥 굳어버리고 말았다. 이 골방이 아직 있을 리가 없었다. 나의 꿈을 키운 이곳, 아니 이 동네 전체가 재개발로 인해 불도저와 포크레인에 깨끗이 밀렸었으니까.
재개발 이후, 성공한 나는 감회에 젖어본답시고 다시 들렀을 땐 인부가 벽돌을 나르며 공사 중인 것을 두 눈으로 또렷히 보았기에 이 공간이 남아있을 리 없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골방 한켠에 걸린, 왠 아녀자가 제 분홍빛 소음순을 벌리며 박아달라는듯 유혹하는 사진 밑의 작은 활자들을 쳐다보았다.
"2017년..9월…??"
일자까지는 모르겠으나 달력은 분명 2017년 9월에 펼쳐져있었다.
"서, 설마 과거로 돌아온 건가?"
믿을 수 없었다.
내가 과거로 회귀를 했다고?
그럴 리가, 그딴 건 소설 속에서나 일어나는 일이지 않은가.
나는 주먹을 불끈 쥔 채, 심호흡을 한번 내뱉곤 그대로 얼굴을 가격했다. -퍽. 으윽! 맹렬한 고통과 함께 볼이 얼얼해지는 것으로보아 분명 꿈도 아니다.
그렇다면 정말 과거로 돌아왔다는 건가?
후들대는 다리에 나는 우선 눅눅한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그러다 아차싶어 주머니에서 부리나케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금이 간 액정 아래, 날짜는정확히 2017년 9월 14일로 표시되어있었다. 진짜다. 나는 진짜 과거로 돌아온 것이다.
"아니, 어떻게…?"
분명 지금쯤 아스팔트 바닥에 처박혀 머리에선 뇌수를 입에선 각혈을 게워내며 죽었어야하는데, 대체 누가 어떻게 왜 나를 과거로 보낸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테레사 수녀처럼 남을 위해 헌신하며 살았던 인생도 아니고, 사냥개처럼 이용 당하고 버림 받는 인생일 뿐이었는데.
"설마 뭐.. 불쌍한 인생에 대한 보답…? 뭐 그런 건가?"
그렇다면 딱히 거절하진 않겠다만은, 보통 이런 일이 생기면 악마나 천사 같은 것, 아니면 신이란 존재가 나타나 회귀의 보상으로 목숨 따위나 영혼 같은 것들을 요구하지 않던가?
혹여 어떠한 소리가 들려올까싶어 잠시간 기다려보았지만 작은 방 안은 쥐죽은듯 고요했다. 정겹기도한 윗집의 개소리만이 들릴 뿐. 컹컹컹, 아주 지독하게도 짖어댄다.
"뭐지.. 뇌사상태에 빠져서 이런 환각 같은 걸 보는 건가?"
그 뒤로도 몇 시간에 걸쳐 수많은 가설과 추측들이 내 머릿속을 어지러이 돌아다녔지만 이 초자연적인 현상에 딱히 이렇다할 답은 나오지 않았다.
소설 속에서나, 게임 속에서나 보았을 과거로의 회귀는 현실에선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니까.
아니면 사후세계나 가상현실인가?
가상현실이라기엔 전생의 내가 살던 2024년에도 그런 기술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니면 정신병에라도 걸려 자살했다고 착각하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시나리오를 쓰다 잠이 들어 기나긴 꿈을 꾼 건가?
"하, 대체 뭐야."
복잡한 머리에 마구 머리칼을 헝클어본다.
하지만 다시 뜬 눈에는 여전히 이 추레하고도 허름한 골방만이 보인다.
진짜 회귀한 걸까?
**
우선 집 밖을 나온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역시 그대로다. 여느 빈민가 못지않은 너저분한 골목길과 집들, 거리를 돌아다니는 똥개들에 온갖 음란한 낙서가 가득한 담벼락들 까지.
새삼스레 내가 이런 곳에서 살았다니,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성공하기 전의 나는 이런 삶에 익숙했기에 당연시 여겼지만 말이다.
악취나는 골목을 벗어난 나는 지금 당시 아르바이트를 했던 가게로 향했다. 각종 음식을 파는 요리가게였는데 시나리오 쓰는 일이 당장은 돈이 안 됐기에 평일 알바를 하는 곳이었다.
가끔 사장이 안 보일 때, 손님들이 남기고 간 음식을 싸가기도 했기에 빠듯한 가게살림에 제법 도움도 됐던 곳이었다.
[ 아줌마 분식 ]
최악의 네이밍센스라 봐도 무방한 허름한 간판은 그 시절 빛바랜 그대로였다.
가게는 간판 이름 그대로 사장이 아줌마이다. 그것도 미모의 30대후반의 유부녀, 즉 미시아줌마이다.
덕분에 알바를 하며 간혹 묵직해지는 아랫도리에 곤혹을 치르곤 했는데 거짓말 조금 보태어 가게사장의 얼굴보려 분식집을 찾는 손님이 절반이상이라 보아도 되었다.
중학생의 아들도 있지만 처녀시절의 외모에 몸은 야들하게 농익었으니 남자들이 환장할 만도.
어째 보면, 이런 곳에 알바를 했던 나는 행운아였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가게 앞에서 쓸데없는 감상에 젖어있던 나는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갔다. 노쇠한 문이 쇠긁는 소리를 내며 열렸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세요~ 어?"
"안녕하세요."
식탁을 닦고 있던 아줌마가 때 아닌 나의 등장에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허리를 굽힌 채 식탁을 닦고있던 터라 늘어난 티의 목선 위로 그녀의 젖가슴이 아스라이 비쳤다.
그때도 느꼈던 거지만, 일부러 보여주는 건가싶다.
영업의 일환으로?
여하튼 나는 어색한 상황을 만들기 싫어 급히 시선을 돌렸다. 미애 아줌마가 내려온 머리칼을 귀 뒤로 쓸어넘기며 나에게 다가왔다.
"어? 너가 주말에 왠 일이니?"
"아.. 지나가다 들렀어요. 오늘이 2017년 9월 14일 맞죠?"
"그렇지…? 근데 그거 물어보려 온 거니?"
역시, 맞다.
바꾸는 방법도 모르는 휴대폰 시계를 못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당최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으니 믿기 힘든 것은 사실이었다.
다소 황망하게 나를 쳐다보는 그녀에 난 뒷머리를 긁적대며 잠시 마땅한 답을 생각해보았다.
"아. 하하. 아니요. 혹시 바쁘시면 도와드릴까 싶어서요."
"어머~ 너가 어쩐 일이니? 근데 봐서 알겠지만 지금은 손님이 없구나."
"하하. 그렇네요. 그럼 수고하세요."
말을 마친 나는 문을 닫곤 도망치듯 나왔다. 진짜다. 진짜 2017년 9월 14일로 돌아오다니, 기뻐해야하는 걸까, 아니면 우려해야하는걸까.
복잡한 심정이다. 나에게 아무런 피해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회귀로 인해 세상의 이치가 깨지는 등의 블록버스터급 재앙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아, 아니 아직 속단하기는 일러."
난 또 다시 어디론가 걸었다. 마지막으로 확인할 생각이다. 이것이 누군가의 농단인지 아니면 진짜 소설처럼 회귀인 것인지.
"하.. 뭐지 진짜 꿈은 아니려나."
아무리 생각해도 믿기지가 않는다. 현실감으로보아 꿈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전생이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타임머신 기술을 가진 시대도 아니고.
무어라 누가 설명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그렇게 내가 복잡한 머리를 싸매던 그때..
기계음이 섞인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스텟 업그레이드 시스템 및 퀘스트 시스템이 활성화됩니다. ]
[ 퀘스트 1 : 1,000만원을 모으시오. ]
[ 완료 시 특성치 1단계 마인드컨트롤 및 포인트 5개가 지급됩니다. ]
"에엣?!"
마치 귓가에 누군가 얼굴을 들이밀어 얘기하는 듯한 생동감에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옆으로 피하며 소리쳤다. 굉장히 바보 같은 소리와 행동이었다. 마치 엉성한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다행히 한적한 길거리는 사람이 없어 창피함은 덜었지만, 왠지 모르게 저 앞에서 신나게 폭풍 교미를 해대는 똥개의 표정이 한심스레 보이는 건 기분 탓이겠지?
"누, 누굽니까!"
설명해달라는 생각에 반응을 한 것인가? 무례한 그 귓가전언을 끝으로 다시 세상은 고요해졌다.
뭐야, 갑자기 시스템? 활성화?
그렇게 내가 얼 타고 있는 사이, 시야의 좌측 하단에반투명한 글씨가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효과처럼 스르륵 나타났다.
[ 퀘스트 1 : 1,000만원을 모으시오 / 진척 1,100,400 ]
[ 스텟 ]
[ 근력 : 10 ]
[ 지력 : 10 ]
[ 매력 : 5 ]
[ 체력 : 15 ]
"뭐, 뭐야. 진짜 시스템인 거냐?"
혹시나싶어 손으로 글자를 휘적여보지만 역시나 지워지지 않았다. 글자를 떼어내려는듯 시선을 마구 돌려보지만 역시나 어딜보든 좌측하단에 다시금 희미하게 나타났다.
"오.. 신기한데, 가상현실인가?"
하나의 물음이 끝나기 전에 두 세개의 의문 공세에 멀쩡했던 정신도 흐트러질 판이다. 우선 두통약이 시급하다. 시나리오 작업할 때보다 더 지끈대니 말이다.
"그나저나 특성치? 스텟? 어떻게 올리는 거지?"
그때, 여성의 목소리가 다시금 불쑥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