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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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원, 서원 누님이 오셨어요!”
귀가하니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조만간 들른다던 헌원의 둘째 누이 서원이 별채의 마당에서 랑이를 쓰다듬고 있었다. 백아가 이가에 들어올 때 이미 황후였던 희원과 달리 서원은 백아 나이 여덟 때에 성혼했던 터라 둘의 사이는 꽤 살가웠다.
“누님!”
“오랜만이다. 잘 지냈니?”
반갑게 서원을 부르는 목소리에 서원이 서글서글하게 웃었다. 랑이를 놓고 일어난 서원은 다가선 헌원을 끌어안고 머리를 헝클었다. 여전히 괄괄했다.
“부모님께 인사는 드리셨습니까?”
“뵈었으니 여기 있지.”
“형님은 어디 계십니까? 인사를…….”
“아, 회임을 하여, 먼 거리 여행은 힘들어 남았단다.”
뜻밖의 소식에 헌원의 눈이 둥그레졌다. 서원 부부는 둘 모두가 무관인지라 아이가 잘 들어서지 않았다. 올해 일곱인 첫아이 이후로 오랜만의 소식이라 헌원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축하드립니다, 누님. 돌아가시면 형님께도 전해 주십시오.”
“그래, 전하마.”
오랜만에 만난 누이와 할 이야기가 많았다. 계속 마당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는 일이라 실내로 자리를 옮겼다. 서원은 자리에 앉으며 헌원이 기겁할 만한 이야기를 꺼냈다.
“너희도 슬슬 아이를 보아야지? 백아도 성년을 맞았고. 은근히 기다리는 눈치시던데.”
서원의 부군 자휼의 회임 소식에 저희 이야기까지 나온 모양이었다. 다른 말이 없으시기에 크게 바라지는 않으신가 보다 여기고 있었는데 그도 아니었던가.
헌원은 옆에 앉은 백아를 보았다. 같이 산 세월이 길어 기대하시는 부모님의 마음도 이해는 되었으나…… 저나 백아나 아직 부모가 되기엔 일렀다. 배워야 할 것이 아직 한참 남았다.
“아이요?”
헌원이 난처해하는 사이 백아가 서원에게 반문했다. 서원은 백아의 머리를 쓸어 넘겨 주고는 다정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래, 아이. 헌원 닮은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니?”
“누님!”
“무어, 너도 벌써 슬하에 두셋은 두어도 어색하지 않을 나이거늘.”
뒤늦게 헌원이 제지하려 했으나 서원은 태연했다. 헌원이 백아에게 마음에 두지 말라 이야기하려던 차에 백아가 조그맣게 ‘아이…….’ 하고 중얼거렸다.
“헌원을 닮은 아이라면 좋아요.”
백아의 대답에 헌원의 마음은 기쁨 반, 한숨 반이었다. 아이가 들어서면 좋기야 하겠지만 사내 음인인 백아의 몸이 크게 상할까 염려됐다. 강건한 무관인 자휼도 회복에 꽤 시간이 걸렸다 들었는데…… 헌원의 눈에 백아는 아직 여리기만 했다.
“헌원은 싫어요?”
머릿속에 걱정이 가득한 헌원이 침중한 표정으로 앉아 있기만 하자 백아가 의아한 듯 물었다. 헌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싫을 리가요,”
다만 걱정이 되어 그러지요.
“저는 백아를 닮은 아이였으면 좋겠습니다.”
헌원의 대답에 백아는 큰 고민에 빠졌다. 헌원을 닮은 아이와 자신을 닮은 아이. 백아야 헌원을 닮은 아이가 좋지만 헌원이 원한다는데…… 저를 닮은 아이도 귀엽기는 할 텐데…….
“너희도 곤혹스럽겠구나.”
말이 없어진 백아를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며 서원이 입을 열었다. 역시 백아를 보던 헌원이 의아한 눈으로 서원을 보았다.
“호칭 말이다. 보통 낳은 이를 어머니라 칭하는데 우린 다르잖니.”
헌원이 생각해 보지 못한 문제였다. 이 승상과 정 부인은 평인들과 성별이나 역할이 다르지 않아 헌원의 형제들은 그에 혼란을 겪은 적이 없었다.
“어찌하셨습니까?”
“나는 아버지가 탐이 났고, 자휼은 어머니를 탐내었으나 평인들처럼 부르기로 합의를 보았다. 우리 욕심에 아이가 혼란을 겪게 하기는 싫어서. 무어라 부르든 우리의 아이잖니.”
일리가 있는 말이라 헌원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너희가 더 어려울 수도 있겠구나.”
서원의 눈길이 다시 백아를 향했다. 백아는 아직 앳된 티가 나긴 하여도 여인이라 오해받을 용모는 아니었다. 서원을 따라 백아를 본 헌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고민은 나중의 일이었다.
“그럼 둘 낳아요!”
고민을 끝낸 백아가 외쳤다. 헌원을 닮은 아이 하나, 저 닮은 아이 하나. 둘이 있으면 딱 좋을 듯했다. 백아의 대답에 헌원이 답했다.
“첫아이 이야기입니다. 저는 양보하기 싫습니다, 백아.”
헌원의 대답에 백아가 다시 말이 없어졌다. 큰아이는 헌원을 닮는 게 의젓할 텐데. 이것만은 백아도 양보하기 싫은 듯 미간이 좁아졌다.
헌원은 그 모습을 보며 미소 지었다. 사실은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다. 정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니. 그러나 화두가 던져진 이상 조만간 백아와 진지하게 이야기해 보아야겠지.
백아의 각인을 확인한 날에도 헌원은 결을 포기했다. 결을 하면 회임을 하게 될 확률이 그냥 색사를 나누는 것보다 현저하게 높았다. 백아의 동의 없이 멋대로 하기엔 저어되는 일이었다. 백아가 아이를 갖고 싶어 할 때 해도 늦지는 않을 터다. 헌원은 기꺼이 기다릴 수 있었다.
헌원은 고민에 빠진 백아를 따스하게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직은 ……이른 것 같습니다.”
* * *
“헌원, 아, 그만, 그만! 아…… 흣!”
고조되는 흥분에 몸짓이 빨라지는 헌원의 품에서 고개를 흔들며 백아가 몸부림쳤다. 그러나 말과는 달리 헌원과 연결된 안쪽은 헌원을 집요하게 물어 왔다. 흥분이 지나쳐 나오는 관성적인 탄성이었다. 그만하란다고 정말 멈추면 백아가 크게 역정을 낼 터였다.
해서 헌원은 오히려 속력을 높였다. 헌원의 가슴에 등을 기대 앉은 백아가 제멋대로 흔들렸다. 거칠어지는 몸짓에 중심을 잡지 못한 백아는 몸을 지탱하고 있는 헌원의 손 위로 제 손을 겹쳤다.
백아와 완전히 몸을 포갠 헌원은 만족한 미소를 흘리고는 백아를 기쁘게 하는 데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한껏 흥분해 있던 둘은 오래지 않아 동시에 절정에 다다랐다.
헌원은 절정의 여운을 즐기며 백아의 어깨와 등, 목덜미에 입맞춤했다. 이제 한 차례 절정에 오른 터라 백아의 체내에 머물러 있는 헌원의 양물은 아직 성이 난 채였다. 백아와의 색사는 한 번으로 끝나는 일이 없었다.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헌원은 백아의 허리를 천천히 움직였다.
“아흥, 헌원. 살살. 글씨가 흐트러지, 으흥, 잖아요.”
헌원이 백아의 핀잔에 행동을 멈추었다. 그사이 붓을 든 백아가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꼭, 지금 써야 합니까?”
저와의 색사가 적나라하게 써 내려지는 광경에 헌원은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한마디 하고 말았다. 헌원의 말에 손을 멈춘 백아는 붓을 떼지 않은 채 글자 꼬리를 길게 늘이고는 화선지 위로 붓을 뱅글뱅글 돌렸다. 화선지 위의 먹이 점점 크게 원을 그렸다.
“하지만, 지금 쓰는 게 가장…….”
나중에 읽었을 때 생생하게 떠오르는데, 하는 말은 헌원의 입 속으로 사라졌다. 헌원도 몇 번이나 들어 알고 있는 대답이었다. 그러나 헌원은 매번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내용엔 헌원에 대한 칭찬과 경탄만이 가득해서 더욱 그랬다. 숨기는 법이 없는 백아는 표현마저 정직하여 헌원의 낯을 활활 타오르게 했다.
백아의 감상을 읽을 때면 아랫도리가 화끈해져 와 아주 싫기만 한 것은 아니었으나 눈앞에서 이렇게 써 내리는 것은 언제나 부끄러워 절로 만류하게 되는 것이었다.
백아는 그 마음을 헤아리는 양, 헌원이 부끄러워할 때면 말없이 헌원이 하는 대로 따라와 주었다.
“으응…….”
지금도, 다시 붓을 놓고 헌원과의 입맞춤에 몸을 떨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저 ‘좋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헌원은 백아의 몸을 제 쪽으로 돌려 안아 든 채로 침상으로 향했다. 탁자 위에 올려놓고 하기엔 나중을 위해 고려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생활의 필수 정보라 해야 할까.
격정이 휘몰아친 지난 어느 밤, 헌원과 백아는 앞뒤 재지 않고 탁자 위에서 뒹굴었다. 그러나 그 이후 온통 먹으로 물든 옷 세탁과 탁자 청소에 울상을 하는 단이의 한숨과 글을 적은 종이가 알아볼 수 없이 물들거나 찢어져 속상해하는 백아의 원망을 들어야 했다.
가장 큰 원망은 스스로였다. 백아의 몸에 새겨진 목욕으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검은 얼룩들을 보면서 과거의 자신을 얼마나 책망했는지.
헌원에게 백아의 몸은 항상 경탄스럽다. 저와 몸을 섞을 때에 선홍색으로 변해 가는 꽃잎의 색을 보면 더욱 그러했다. 이제 헌원은 백아가 최고조의 행복이나 흥분에 달했을 때의 꽃잎의 색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럴 때의 백아를 몰아치면 헌원 또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쾌락을 얻었다.
헌원은 다짐한다.
백아의 꽃잎이 언제나 선홍색을 유지하도록 할 것이라고.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 양면에서 백아를 만족하게 해 언제나 행복을 줄 것이라고.
헌원은 그렇게 다짐을 한다.
그리고, 직설적인 문체와 숨넘어가는 행위 묘사가 특징으로 꼽히는 색서 한 질이 저자를 휩쓸게 되는 것은 그리 멀지 않은 훗날의 이야기였다.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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