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머무는 손님은 없나요? 소설에선…….”
“단화각은 여관을 겸하지 않습니다.”
백아의 질문에 대답하는 무화의 미소가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순진한 낯으로 던지는 질문에 이 음인이 무엇을 보고 가출까지 하였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무화는 얼마 전 소월이 웃으며 낭독까지 하던 소설을 떠올렸다. 소설 속의 기루는 온통 아름답고 좋은 일들만 일어나는 곳이었다. 스치는 인물들이 모두 꿈에서나 나올 법해 소월이 낭독하는 내내 다들 배를 잡고 웃었더랬다.
저렇게 아름다운 일들만 일어나면 좋을 텐데, 하는 누군가의 넋두리에 그러게 말이다, 하며 맞장구를 쳤던 것까지 기억이 난다. 이 음인께서도 그런 환상을 꿈꾸시었나. 가장 이상적인 환상을 바로 옆에 두셨는데도.
“저이들이 여기서 군무를 추나요?”
“그렇습니다. 솜씨가 아주 좋답니다.”
“와아, 보고 싶어요.”
“실컷 보시게 될 거랍니다.”
구경을 시키며 음인이 조잘조잘 떠드는 이야기에 대답하는 사이 어느새 내각에 들어섰다. 무화는 외출용의 장포를 벗어 시중을 드는 아이에게 넘기고 섭선을 받아 들었다.
“그래, 기루 구경은 즐거우셨습니까? 마음에 드시는지요?”
“예! 생각한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곳인 것 같아요.”
내각까지 스스럼없이 따라 들어온 음인은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행이로구나. 앞으로 몸담아야 할 곳인데 마음에 드는 것이 낫겠지.”
“예?”
무화는 손에 든 섭선을 가볍게 휘두르며 몸을 돌려 백아와 얼굴을 마주했다.
무화의 손짓에 시중을 들던 음인들이 입구를 봉쇄하고 백아의 퇴로를 막아섰으나 백아는 무화의 하대에 당황하여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무화는 섭선으로 토끼 눈이 되어 저를 보는 백아의 얼굴선을 훑었다.
“기루에 오고 싶다지 않았니? 음인의 몸으로 기루에 발을 들인다는 것은 그 뜻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냐?”
“아, 아니, 저는 그저.”
“그럼 무어, 다른 뜻이라도 품고 기루에 온 것이냐?”
비웃음이 섞인 무화의 말에 시립하고 있던 음인들에게서도 실소가 터졌다.
무화는 위로 향하던 섭선의 방향을 바꿔 아래로 향하며 백아의 목선을 스쳐 내려가 가슴께를 쿡 찔렀다. 백아가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으나 음인들로 막혀 있어 물러설 수 없었다. 무화는 거침없이 섭선을 내려 백아의 허리께를 톡톡 쳤다.
“나는 사내입니다!”
“누가 그걸 모른다던?”
“그, 그런데 어찌 기생이…….”
“음인이지 않느냐. 교합 시에 앞보다 뒤를 쓰는 음인. 이곳에선 여인 못지않게 애액이 줄줄 흐를 터인데? 사내를 받기 좋게 말이다.”
섭선의 끝으로 양물을 짚은 다음 허리 뒤쪽으로 섭선을 돌려 볼기 위쪽을 툭툭 건드렸다. 부러 적나라하고 천박하게 고른 말로 귀하게만 자랐을 음인에게 겁을 주었다.
무화의 섭선이 백아의 몸을 짚을 때마다 그러지 않아도 흰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설마 몰랐느냐? 이 관원도 참, 어지간히도 아낀 모양이구나? 음양의 이치조차 가르치지 않았을 줄은…….”
무화의 입에서 헌원을 지칭하는 말이 나오자 백아는 움찔 몸을 떨었다. 그 모습을 보는 무화의 미소가 짙어졌다. 생각나는 것이 많을 터다.
“하긴, 그러니 향내를 폴폴 풍기며 저자를 돌아다닐 수 있었던 게지. 참 행복한 삶을 살았구나? 제가 누리던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던 줄도 모르고 제 발로 기루를 찾다니. 어리석기는, 쯧. ……어찌 되었든 이곳에 발을 들였으니 너도 기생이다. 사내 받을 준비를 하렴.”
“사, 사내를 받는다는 게…….”
“그야 물론 네 몸 안에 사내들의 양물이 들락거리는 게지. 처음에는 꽤 고통스러울 테지만 익숙해지면 괜찮을 게다. 오히려 쾌락을 좇아 허리를 흔들게 되겠지.”
그 말이 기폭이었던 듯 백아가 몸을 돌려 음인들 틈을 비집고 뛰쳐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뒤에 선 음인들이 미리 준비하고 있던 탓에 붙들리고 말았다. 있는 힘껏 몸부림을 쳤으나 혼자의 몸으로 여러 명의 힘을 당해 낼 수 없었다.
무화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몸부림치는 백아를 보았다.
단화각에 들어설 때에 무화는 미리 답을 알려 주었다. 단화각은 여관을 겸하지 않는다. 들어온 식구에게 웃음 파는 법을 가르칠지언정 몸을 팔게 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앞의 음인은 그 말의 뜻을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어린 건가, 어리석은 건가. 무어, 나는 어느 쪽이든 재미있으면 그만이니.
생각과는 다르게 웃음을 거둔 무화는 백아를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백아는 겁에 질린 눈으로 다가오는 무화를 바라보았다.
“보, 보내 주세요.”
“내가 왜? 제 발로 걸어 들어온 돈 덩어리를 내가 왜 보내 주어야 하지? 네 알몸을 보고 뒤를 쑤시고 싶다는 이들이 문밖까지 줄을 서 내게 금은보화를 가져올 텐데 말이야.”
“금은보화라면 내게도 많아요. 헌원, 헌원에게 연락하면…….”
“네가 그를 떠나오지 않았니?”
빠져나가려 잡힌 손을 비틀어 대던 백아의 움직임이 멎었다. 새까만 동공이 무화를 향했다.
“네 발로 떠나왔는데 그에게 돌아갈 염치가 있니? 그가 널 찾아 주길 바라는 거니? 어디로 갈 거다 연락처라도 남기고 왔어? 신기라도 있니? 처음 본 나를 만나리라 미리 알기라도 했어?”
무화의 말이 한마디씩 보태어질 때마다 무화에게로 향한 동공이 바람에 흩날리는 소맷자락처럼 흔들렸다.
“설령 그가 널 찾는다고 해도, 그때의 넌 다른 사내의 정을 실컷 받고 난 뒤일 거란다. 그런 네가 그에게 매달릴 수 있을까? 그가 받아 줄 것 같니?”
이런, 너무 과했나?
무화는 새까만 동공에 가득 찬 충격을 보고 약간 죄책감이 들었다.
무화가 본 헌원은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정인을 외면하기보단 단화각을 잿더미로 만들 사람이었다. 갖은 모욕도 참아 내던 사람의 분노가 한계를 넘으면 어떠한 일을 벌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그러나 정작 그이의 정인께서는 그만큼의 확신이 없으신 듯했다.
도망가려 몸부림치던 조금 전과는 달리 무화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없이 그저 서 있기만 했다. 울 줄 알았는데 눈이 텅 비어 있었다.
“익숙해지면 나름 나쁘지 않은 삶일 테니 잘 적응해 보려무나. 초야는 내 최대한 배려를 해 주도록 할 터이니.”
이쯤 하면 되었겠지. 이제는 저이의 부군이 오시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될 터다.
“데려가서 도망가지 못하게 잘 감시하거라.”
“단장을 시킬까요?”
“아니, 관두거라. 기생의 매듭보단 저 매듭을 푸는 것을 좋아할 치들이니.”
무화의 말에 백아가 제 옷고름을 부여잡았다. 언제나 단이가 곱게 매어 주던 매듭이다. 이것은 헌원밖에 손을 댄 사람이 없다. 헌원이 아닌 다른 사람이 제 몸에 손을 대는 것은 상상조차 해 본 일이 없다. 싫었다.
헌원은 집 안 가솔들을 모두 동원하여 백아를 찾았다.
근처에서 발견되면 좋으련만.
백아가 지나갔을 법한 열린 문을 찾았지만 그뿐이었다. 혼자 둔 시간이 길어 언제쯤 나갔는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초조함만이 늘어 갔다.
기루를 찾아간 것은 아니리라 믿었다. 설마하니 그리 무모한 짓을 할 리가, 아니 사실 그 가능성이 커 더욱 애가 탔다.
혹여 백아가 잘못된다면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다.
백아의 성정이 어떠한지 가장 잘 아는 이는 다름 아닌 헌원이었다. 그를 모르지 않으면서 나중에 데려가 주마 하며 달랬으면 될 일을 단호하게 끊어 냈다. 자신의 잘못이었다.
제 아둔함에 화가 나 입술을 짓씹었다. 이에 짓이겨져 터진 입술에서 피 맛이 났다.
산속을 헤매었던 어린 날과는 달랐다. 담장을 넘은 백아의 발자국은 오가는 사람들로 다져진 오솔길에서 흔적이 사라졌다. 자갈이 섞인 길은 흔적을 남기지 않아 어디로 향했는지 알 수 없었다.
당장에라도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혹여 그사이 백아가 돌아와 길이 엇갈릴까 움직이지도 못하는 자신이 한심했다. 말아 쥔 손에 핏물이 비쳤다. 헌원은 손톱이 파고드는 통증도 느끼지 못했다.
“이 관원을 뵙고자 청합니다.”
대문 밖에서 누군가가 목청을 높였다. 목청이 꽤 큰 낯선 목소리는 대문 앞 마당에 서서 백아의 소식을 기다리던 헌원에게도 들렸다. 헌원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시간에 헌원을 찾을 이는 몇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관청의 일이라도 뒷전이었다.
“어찌할까요? 작은 마님.”
“이 와중에 무슨. 돌려보내거라.”
헌원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몸을 돌리는 아범을 보았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들었다. 헌원은 제 말을 전하려 뛰어가던 아범을 불러 세웠다. 그리고 그 판단은 옳았다.
“단화각의 각주 무화가 드리는 전갈입니다. 찾으시는 분을 보호하고 있사오니 늦기 전에 데려가라 하십니다.”
불려 온 이가 아뢰는 말에 헌원은 지체할 것 없이 준비한 말에 올라탔다. 말의 배를 걷어차며 헌원은 인상을 한껏 찡그렸다.
하필이면 기루에. 그것만은 아니길 바랐는데.
예상했던 수많은 상황 중에 최악의 상황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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