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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원고담-29화 (29/66)

29화.

입구를 막고 서 있을 수는 없는 일이라 헌원도 천천히 백아의 뒤를 따랐다. 슬쩍 물건들을 보니 장안에선 쉽게 볼 수 없는 희귀한 물건들이 더러 있었다. 큰돈을 웃돈으로 주고도 아쉬워하지 않을 만큼의 재력은 되는 사내였단 말이다.

“그래도 책은 못 주네. 불화는 자네로 끝내게.”

백아가 물건을 고르는 새에 슬쩍 다가온 사내가 속삭였다. 나름의 짐작으로 전혀 엉뚱한 곳을 짚어 건네는 말에 헌원은 그저 웃기만 했다. 씁쓸하게 웃는 헌원에게 사내는 장사치 특유의 붙임성을 발휘했다. 팔꿈치로 허리께를 쿡 찌르며 사내는 나름의 조언을 했다.

“그저 빌게. 토라진 마음은 그저 빌어 달래야지. 내 가장 귀한 것들로 보여 줌세. 그 정도 지급할 능력은 있지?”

은근슬쩍 헌원의 허리춤을 살피는 사내에게 헌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가게의 물건 정도야 기별도 가지 않는 금액이었다. 가게를 통째로 사들여도 마찬가지였고.

헌원은 다만 사내의 조언을 씁쓸하게 곱씹었다.

글쎄요, 누구에게 빌어야 할까요. 내 정인께서 정인이 아니라 하시는데.

헌원은 상아에 보석을 장식한 검집을 살펴보는 백아를 보며 착잡한 마음을 다스렸다.

“저는 백아 아닌 이에겐 좋은 것을 해 드리지 않습니다. 흑아.”

깊은 밤, 밤의 즐거움을 기대하는 백아에게 헌원은 약간의 심술을 부렸다. 낮에 자신을 모른 체한 백아에게 하는 소심한 복수이자 기대였다.

백아만을 열렬히 원하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면 좋으련만.

그러나 백아는 헌원의 말에 풀이 죽어 시무룩한 표정을 했다. 먹으로 찍은 점은 소세를 하고 나서도 지워지지 않고 흔적이 남아 백아의 표정에 애처로움을 더했다.

예상했던 대로의 반응에 헌원은 기대하는 마음을 갈무리했다. 아직은 이르다. 백아가 헌원의 말 속에 담긴 뜻을 모두 이해하기에는.

헌원은 말뜻을 눈치채지 못한 백아에게 실마리를 던져 주기로 했다.

“그러나, 그대가 해 주시는 것을 거절하진 않겠습니다.”

헌원의 말에 고개를 든 백아는 눈을 도르르 굴렸다. 생각할 때의 버릇이었다. 이내 헌원의 말뜻을 깨달았는지 표정이 밝아진 백아는 계속 백아를 보고 있던 헌원과 눈을 마주했다. 그러고는 빙긋이 미소 짓고 있는 헌원에게 달려들듯 입맞춤을 했다.

헌원은 뒤로 넘어가 침상에 누운 채로 백아의 입맞춤을 받았다. 능동적인 백아의 움직임에 헌원은 몸이 달아올랐다. 그러나 백아를 안고 싶어 움찔거리는 손을 애써 자제했다. 자신의 행동에 백아가 어찌 나오는지 좀 더 보고 싶었다.

백아는 헌원과 입맞춤을 하며 헌원의 옷깃 속으로 손을 넣어 어설프게 헌원을 애무했다. 여러 겹의 매듭으로 이루어진 옷고름을 풀어내고 헌원의 상의를 벗겨 냈다.

그동안 계속 마주하고 있던 입술은 붉게 부어올랐다. 마음이 급했는지 헌원의 상의를 벗기고 지쳐 버린 백아는 자신의 옷고름은 거칠게 뜯어내었다. 가뜩이나 오늘 성장을 한 터라 평소보다 더욱 값비싼 비단으로 만들어진 옷고름이 넝마처럼 바닥을 굴렀다.

내일 단이가 보면 얼마나 한숨지을지. 그리고 백아는 그런 단이의 눈치를 보느라 바쁠 터다. 그 모습을 바로 상상한 헌원이 목을 울려 웃자 백아가 얄미운 듯 헌원의 입술을 깨물었다.

“헌원, 정말…….”

“그대는 흑아라 하지 않았습니까?”

잠시 떨어진 입술 새로 자존심이 오갔다.

아직까진 자신의 말을 번복하긴 싫은지 백아가 여유로운 헌원의 얼굴을 흘기며 붉어진 입술을 앙다물었다. 표정마저 굳힌 백아는 몸을 띄운 헌원을 다시 밀어 완전히 넘어뜨리고 아직 벗기지 못한 하의마저 벗겨 내었다.

거기까지 퉁명스러울 생각은 없었기에 헌원은 순순히 협조했다. 갈무리했던 기대가 다시 솟아올랐다. 어쩌면, 조금은 알아줄지도 모른다.

상의보단 수월하게 다리속곳을 벗겨 낸 백아가 우뚝 솟아오르는 헌원의 우람한 양물을 보고 안심한 표정을 했다. 혹여 헌원이 흥분하지 않았으면 어쩌나 내심 걱정을 한 모양이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백아.

헌원은 속으로만 말을 걸었다. 마주한 눈빛이 다정해졌다.

그러나 백아가 꽤나 긴장을 했던 모양이었다. 거추장스러운 것을 다 걷어 낸 백아의 몸은 앞도 뒤도 충분히 젖어 있지 않았다. 지난번의 경험으로 겁이 없어진 백아는 이번에는 향유도 쓰지 않고 무턱대고 위에서 앉으려 했다. 헌원이 백아의 행동을 막았다.

“잠시만요, 백아.”

“흑아예요.”

고집을 부리는 백아가 얄미웠지만 어디까지나 역할극이다. 백아가 다치는 것은 아니 된다. 헌원은 백아의 손을 끌어당겨 자신의 타액으로 손가락을 적셔 주었다. 혀가 손가락 사이를 스치는 느낌이 생경한지 백아가 가만있지 못하고 움찔거렸다.

헌원은 입 속의 백아와 장난을 쳤다. 양물을 애무하듯 혀로 감쌌다가 빨아올리고 손가락 사이의 여린 살을 혀끝을 세워 콕콕 찔렀다.

조금 익숙해진 백아가 손가락으로 혀를 잡아 오자 재빠르게 혀를 놀려 피했다. 입 속을 헤집는 손가락 마디마디를 핥으며 미꾸라지처럼 손가락 사이를 거닐었다.

넘쳐흐른 타액이 헌원의 입가를 타고 내렸다. 그 모습을 본 백아의 숨결이 조금씩 거칠어졌다. 흥분한 백아가 헌원의 몸에 둔부를 비벼 대었다.

헌원은 타액으로 흠뻑 젖은 백아의 손을 백아의 뒤로 인도했다. 백아는 예상치 못했던 듯 놀란 눈으로 헌원을 보았다. 그러나 곧 헌원이 자신에게 해 주었던 것을 기억해 냈다. 각오한 듯 숨을 들이켠 백아는 근처에서 방황하던 젖은 손을 자신의 밀부에 밀어 넣었다.

“흐읏……!”

각오하고 밀어 넣었으나 겁이 났다. 백아는 매우 천천히 손가락을 들락였다. 내벽이 제 손가락을 무는 감촉이 생경했다. 이상한 느낌에 백아는 울상을 했다.

느릿한 움직임이 감질나게 헌원의 시야를 자극했다. 백아가 스스로를 자극하는 모습은 헌원의 예상보다 훨씬 예뻤다. 그러나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헌원은 그 다음을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해서 백아의 자위를 지켜보던 헌원은 백아의 뒤에서 나는 물소리가 질척해지자 허리를 밀어 백아에게 자신의 존재를 일깨웠다.

헌원의 재촉에 백아는 반가운 얼굴을 했다. 백아는 재빨리 뒤에서 손가락을 빼내곤, 단단하게 솟아오른 헌원의 양물을 밀부의 입구에 맞추었다. 뒤를 적실 때처럼 조심스럽게 허리를 내렸다. 지난번과는 다르게 천천히 차오르는 양물에 백아는 숨을 헐떡였다. 백아의 허리가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흔들렸다. 헌원은 조금 마음이 약해졌다.

“백…… 아직도 흑아입니까?”

헌원의 질문에 백아가 헌원을 노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헌원은 위태롭게 무너지려 하는 백아를 받쳐 주지 않았다. 헌원의 선단만을 간신히 품은 백아는 잠시 진입을 멈춘 채 숨을 골랐다. 들락이는 백아의 숨소리에 원치 않는 비음이 간헐적으로 튀었다.

가쁜 숨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누워서 헌원을 품을 때와는 영 달랐다. 그때엔 느리게 몸을 파고드는 양물이 좋았지만 지금은 버겁기만 했다.

숨을 고르려 어깨를 들썩이던 백아는 결심했다. 지난번처럼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숨을 크게 들이쉰 백아는 허벅지에 힘을 빼고 몸을 내렸다.

“하읏!”

“흣……!”

갑작스러운 진입에 백아와 헌원 모두 신음성을 내었다. 깊은 진입에 백아의 교성도 한 단계 높은 음을 내었다. 바짝 세운 허리는 여전히 위태롭게 부들부들 떨렸다.

백아가 양손을 헌원의 배 위에 올려 중심을 잡고서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익숙하지 않은 체위에 서툰 움직임이 주는 자극이 감질났으나 헌원은 참을성을 좀 더 발휘하기로 했다.

얻어 내고자 하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쉽지 않았다. 온몸을 붉게 적신 채로 제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백아의 모습이 헌원에게 너무도 자극적이었다. 스스로를 위로하던 모습을 보던 것과는 그 느낌이 전혀 달랐다. 서로 깊이 이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헌원은 냉정한 표정을 유지하려 노력했지만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풀어졌다.

백아가 저를 품은 채 움직이는 모습이 그렇게 만족스러울 수 없었다. 백아의 젖은 손이 헌원의 배 위에서 미끄러지는 감촉마저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백아는 영 성에 차질 않았다.

스스로 몸을 움직여 느끼는 곳을 자극해도 감질나기만 할 뿐 원하는 쾌락이 오질 않았다. 연결이 깊은 체위라 양물이 깊은 곳까지 들어와 자리했지만 그뿐이었다. 지난번과 비슷한, 어쩌면 더 깊은 결합인데도 무언가 허전했다. 쾌감이 지난번처럼 백아를 가득 채우지 않았다.

헌원의 협조가 없는 혼자만의 움직임은 힘만 들고 만족스럽지 않았다. 헌원이 남 일 보듯 지켜만 보고 있어 수치스럽기까지 했다.

이런 건 싫다. 헌원의 손이 자신의 온몸을 누비며 만져 주는 감각을 원했다. 헌원의 양물이 제가 잡아챌 수 없이 거세게 속을 탐하길 원했다.

그러나 헌원은 자신은 백아가 아니라며 어쩔 수 없을 때 이외에는 손도 대려 하지 않았다. 문득 서러워졌다. 서러워진 백아의 눈가가 젖어 들고 목소리에 물기가 섞였다.

“헌원, 흑, 헌원.”

“우셔도 소용없습니다. 저는 백아가 아닌 이에겐 좋은 것을 해 드릴 의향이 없습니다.”

울먹이는 백아가 안쓰러웠으나 헌원은 마음을 다잡았다. 한 번쯤은 유희로 즐길 만했지만 두 번은 싫다. 헌원은 백아가 저를 모른 체하는 상황을 장난으로라도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못됐다고 하여도,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하여도 상관없었다. 헌원으로서도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나, 백아, 백아예요. 헌원.”

“흑아라 하지 않았습니까.”

져 주지 않는 헌원의 말에 백아가 백기를 들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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