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원고담-27화 (27/66)

27화.

헌원의 다리 위로 올라타 마주 앉은 백아는 양손으로 헌원의 볼을 감쌌다. 눈을 가늘게 내리뜬 백아가 주도하는 입맞춤은 머릿속이 하얘지도록 황홀했다. 한편으론 웃음이 나는 걸 견딜 수 없었다. 방금 닫아 버린 소설의 시작 부분을 그대로 따라 하는 터라 백아의 행동이 영 어설펐기 때문이었다.

“하아, 무슨 생각 해요?”

떨어진 입술 사이로 가느다란 은사가 길게 늘어지다가 톡 하고 끊어졌다. 긴 입맞춤에 거칠어진 숨은 불룩해진 앞섶에 연신 둔부를 비벼 대는 백아로 인해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백아, 저는.”

이대로 확인하지 않고 넘어갈까 싶었지만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헌원이 아는 진원은 쓸데없는 말을 던질 인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헌원의 생각은, 또한 말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백아가 헌원의 손을 잡아 올린 탓이었다. 헌원의 손에 제 손을 겹친 백아는 헌원만이 건드릴 수 있는 매듭을 풀어 버렸다. 헌원의 손은 백아의 의지로 백아의 옷깃을 파헤쳤다.

하체마저 드러낸 백아의 몸에서 음인의 향이 물씬 풍겼다. 개화가 가까워져 오는 건가. 헌원의 하초가 백아의 향에 완전히 흥분했다. 제 옷을 거의 걷어 낸 백아가 헌원의 매듭에 손을 대었다.

“흣, 백아.”

헌원의 앞섶만 풀지 않은 백아는 옷 위로 곧추선 헌원의 양물을 희롱했다.

손가락 끝으로 선단 부근을 톡톡 두드리다가 옷째로 헌원의 양물을 쥐었다. 손바닥으로 선단을 감싸 쥐고 둥글리다가 그대로 손을 내리며 양물의 크기를 가늠했다. 장난 같았지만 헌원에겐 더할 나위 없는 유혹이었다.

읽던 책이 색서였던가? 백아의 손길을 받으며 헌원은 잠시 고민했으나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책은 빌려 온 적이 없다. 설령 백아가 골랐더라도 장가가 갖은 이유를 들어 만류했을 것이다.

이것은 그냥, 헌원의 정인의 풍부한 상상력이었다. 헌원은 백아의 상상을 좀 더 즐기기로 했다.

흰색의 얇은 능라는 백아의 손짓에 제 형태를 유지하지 못했다. 백아는 빈손을 뻗어 탁자 위 향유병을 잡았다. 지난번 탁자 위에서 한 차례 일을 치른 후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거기에도 향유를 두었던 것이 유용했다.

백아는 이로 향유병의 덮개를 벗기고 향유병을 기울였다. 헌원의 아랫도리에 향유가 쏟아져 하체가 온통 젖었다.

선단을 중심으로 척척하게 젖어 양물뿐 아니라 허벅지의 굴곡까지 그대로 드러났다. 얇은 비단은 주인의 의지와는 다르게 파르르 떨리는 살갗의 색이 비치기까지 하여 헌원은 낯이 부끄러웠다.

쌀 한 섬의 가격과 맞먹는 고급의 향유를 아낌없이 쏟아붓고 빈 향유병을 아무 데로나 던져 버린 백아는 젖은 옷 위에 하체를 겹쳤다. 양물 위에 뜨거운 무게를 싣고 천천히 허리를 흔들었다. 얇은 비단 천 몇 장을 사이에 두고 두 하체가 마찰했다.

회음을 스친 헌원의 선단이 백아의 입구를 애타게 건드렸다. 작은 입구가 선단을 머금으려다가 비단의 방해로 자꾸 미끄러졌다. 참지 못한 백아가 앞섶을 풀어헤쳤다.

찌이익-

급한 손놀림에 젖은 비단이 찢어졌다. 백아는 그대로 앞섶을 죽 찢어 버렸다. 열기를 품은 양물이 드러나며 퉁, 튕겨 우뚝 섰다. 백아는 성급한 손놀림으로 양물의 끝에 제 아래를 맞추었다. 이번엔 살갗과 살갗이 닿았다. 뜨거운 열기가 밀려왔다.

“아아…… 읏.”

작은 입구가 선단을 머금으려 애를 썼으나 여의치 않았다. 잔뜩 흥분은 하였으나 충분히 풀리지 않은 아래는 끄트머리조차 어려웠다. 헌원은 무턱대고 몸을 내리려는 백아에게 손을 뻗어 허리를 지탱했다.

“헌원, 으응…… 싫어, 싫어요.”

“백아…… 읏, 괜찮겠습니까?”

진입이 멈추어 본능적으로 도리질 치던 백아는 헌원의 질문을 가까스로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안달한 백아는 눈꼬리에 눈물을 매달고 애처롭게 헌원을 보았다.

그 눈길에 마음이 약해진 헌원이 손에 힘을 빼자 백아는 단번에 헌원을 삼켰다. 온 무게가 하초에 실리는 자세로 인한 깊은 결합에 잔뜩 성이 난 선단이 그대로 진입해 깊은 안쪽의 입구를 건드렸다.

“하앙!”

단번에 머리끝까지 치달은 쾌감에 백아가 높은 신음을 내었다. 짜릿하게 번지는 감각에 허리를 크게 휘었던 백아는 그때까지 헌원의 어깨를 잡고 있던 손을 들어 헌원을 더듬었다.

잡을 것을 찾는 손짓에 헌원은 백아의 손을 잡아 제 목에 둘렀다. 이어 백아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두 가슴이 빈틈없이 맞닿았다.

“하…… 으, 깊어요, 헌원.”

상체의 무게를 죄 헌원에게 실은 백아는 허리를 천천히 움직이며 기분 좋은 신음을 내었다. 누워서 하는 결합으론 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헌원이 쳐올리지 않아도 깊고 깊은 곳까지 양물이 가득 차 조금은 어설픈 백아의 움직임으로도 쾌감이 밀려왔다.

아래를 꽉 조이며 허리를 낮추면 지난번처럼 헌원이 깊이 넣어 주지 않아도 쾌감이 번지는 곳에 양물이 닿았다. 그곳을 누르듯이 허리를 움직이면 백아는 스스로 쾌감을 일깨울 수 있었다.

백아는 스스로 쾌감을 즐기다가 문득 행동을 멈추었다. 헌원이 움직이지 않았다. 뜨거움 숨을 내쉬며 백아가 움직이기 쉽도록 받쳐 주고는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의아해진 백아가 헌원을 불렀다.

“헌원.”

“예.”

“헌원은 싫어요?”

“뭐가 말입니까?”

“나랑 하는 ‘좋은 것’.”

백아의 질문에 헌원이 얼토당토않다는 표정으로 백아를 보았다.

“그럴 리가요.”

“그럼 왜 평소처럼 움직이지 않아요?”

밝히는 정인의 맹랑한 질문에 순간 헌원의 배 속이 뜨겁게 끓었다.

싫기는 무슨, 백아가 쾌감을 좇는 모습에 잠시 당황했을 뿐이다. 월궁항아의 화신 같은 외양을 하고 색을 처음 안 양 움직이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만족스러워 그를 눈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을 뿐이다.

정인께서는 그게 불만이셨나. 헌원은 빙그레 웃으며 백아에게 두른 팔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힘 있게 허리를 쳐올렸다.

내벽과 빈틈없이 맞물려 맥동하던 양물이 직격으로 가장 예민한 곳을 강타했다. 스스로 얻어 낸 짜릿함과는 궤가 다른 쾌감에 백아가 눈을 크게 떴다.

“하…… 앗!”

“이것, 후…… 말입니까?”

헌원은 한번 시작한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한번 탐하기 시작한 백아의 안은 멈출 수 없는 유혹이었다. 헌원은 그 유혹에 몸을 맡기고 계속해서 그 안을 파고들었다. 길게 빼내었다가 단번에 쳐올리면 격한 움직임에 조이는 감각이 선과를 베어 문 양 달콤했다.

더 큰 달콤함을 원하는 헌원은 점점 움직임을 빨리했다. 그때마다 양물은 예민한 곳을 자극했다. 쾌감이 퍽퍽 짓찧는 감각에 백아는 계속 숨을 들이켰다. 길게도 짧게도 내쉴 여유가 없었다.

백아와 하는 ‘좋은 것’을 싫어하다니. 전혀, 절대. 헌원이 절대 그럴 일은 없었다. 헌원은 백아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꼭 붙잡았다. 다시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하도록 할 작정이었다. 헌원은 그 어떤 때보다도 격렬하고 강렬하게 백아를 몰아쳤다.

“하, 윽, 응, 헌원, 읏, 아! 아흣, 응, 좋아, 헌, 으흥, 흐원!”

우와, 굉장하다.

백아는 정신없이 헌원을 받아들였다. 헌원이 움직이자 백아가 스스로 움직이며 끌어냈던 성감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쾌감이 백아의 온몸을 정신없이 내달렸다.

백아는 헌원에게 감상을 말해 주려 했으나 계속해서 흔들리는 통에 헌원의 이름을 부르는 것 외에 말을 하기엔 무리였다. 말보단, 차오르는 숨을 뱉는 것이 먼저였다. 백아는 그 대신 헌원을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헌원은 이것만으로도 백아의 마음을 알아줄 것이다.

오래지 않아 헌원과 백아는 동시에 절정에 도달했다.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가자 헌원은 다시 진원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스스럼없다는 말은 무슨 의미였을까. 진원이 백아를 의식해 피한다는 느낌은 그저 내 기우일 뿐일까.

“백아, 저는.”

“으응, 헌원.”

아직 헌원의 양물을 품고 있는 백아는 제 허리 아래를 다시 슬쩍 헌원에게 문지르는 중이었다. 스스로 후희의 쾌감을 찾는 백아는 헌원의 부름에 스스럼없이 답했다. 거리낄 것 없이 주어진 쾌감을 만끽하며 달아오른 표정이었다.

헌원이 부르기만 하고 말이 없자 백아는 슬쩍 허리를 뒤챘다. 내밀한 사이에서나 가능한 재촉이었다. 백아는 늘 스스럼없이 솔직했다.

“이 ‘좋은 것’을 백아와만 하고 싶습니다.”

결국, 입 밖으로 나온 말은 그저 바람이었다. 백아를 믿음과 동시에, 아니 그 이전에 헌원의 마음속에서 돋아난 설마는 당연한 것조차도 당당히 묻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언제 내가 이런 겁쟁이가 되었는가.

헌원은 빠르게 오르내리는 백아의 가슴팍에 머리를 기대었다. 백아에게 제 씁쓸한 표정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헌원이 가만히 기대고만 있자 백아가 팔을 들어 올려 헌원의 머리를 감쌌다. 백아는 헌원이 등을 쓸어 주던 것처럼 헌원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나는 헌원, 같이 침상을 쓰는 사람이 헌원밖에 없는데요.”

머리 위로 들리는 백아의 말은 천인이나 선인의 옥음처럼 감미로웠다. 그 옥음은 헌원의 마음을 파고들어 불안과는 다른 감정으로 가슴을 설레게 했다.

불안이 가신 헌원은 고개를 들어 백아를 보려 했으나 백아는 여전히 헌원의 머리를 감싼 채였다. 헌원은 백아의 가슴팍만 문지른 셈이 되었다. 가슴에 비벼진 머리카락이 간지러운지 백아가 작게 웃음을 흘렸다.

“백아-.”

“우리의 침상은 셋이 쓰긴 좁을 것 같아요. 헌원.”

어이쿠, 이건 또 무슨 말씀이신지.

잠시 당황했던 헌원은 금세 백아의 말뜻을 파악했다. 누구인지 모를 백아 머릿속의 정인은 백아와 헌원 사이를 끼어들지 못할 것이다. 너무나도 간단한, 침상이 좁다는 이유로.

단순한 생각의 흐름에 헌원은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그리고 자신과의 사이에 다른 이를 끼우는 백아의 맹랑한 상상에 어찌하여야 하나 고민하다 역시 웃는 것을 택했다.

백아 또한 헌원과 같이, 자신의 옆자리는 헌원이 일 순위라 말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헌원은 백아가 말한 ‘우리’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었다. 그 ‘우리’엔 헌원과 백아밖에 없었다. 헌원은 백아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오늘은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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