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기껍게 한 약조를 차마 무르지 못한 탓에, 별채엔 헌원의 뜻대로 커다란 욕탕이 세워졌다.
헌원은 백아를 위해 서쪽 숲에 걸친 별채 뒤편의 담벼락을 터 더 큰 부지를 마련했다.
북산에서 샘솟는 물길을 끌어와 담벼락 안쪽으로 맑은 냇물이 흐르도록 넓고 얕은 수로를 만들고 그 위에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화강암으로 기초를 다지고 기둥을 올려 건물을 지었다.
물이 들어오는 수로는 건물을 제외한 삼면에 빽빽하게 대나무를 심어 다른 이들의 시야를 막았다. 대나무 숲 안의 노천탕은 건물을 통해서만 출입할 수 있었다. 백아가 알몸을 하고도 편하게 오갈 수 있게 하기 위한 설계였다. 가솔들이라 하더라도 단이를 제외하고는 함부로 백아의 알몸을 보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노천탕과 건물의 내·외장은 천축의 건축 도해를 보고 응용했다. 화강암으로 마감한 너른 사각의 얕은 못에는 북산의 맑은 물이 끊임없이 흘렀다.
물이 흐르지 않는 건물 내부는 백아의 피부색을 닮은 자작나무로 기둥을 올리고 그 벽면엔 운남성의 대리석을 깎아 장식했다. 사방의 벽엔 사방 신이 돋을새김으로 자리하고 있었고 사방신 각자의 눈엔 방위에 따라 흑요석, 홍옥, 청옥, 녹옥이 빛을 발했다.
남쪽에 있는 천축에선 겨울에도 물이 시리게 차가워지지 않는다는 것은 후에야 알았다. 해서 비록 물을 데우는 설비를 추가해야 했지만 완성된 욕탕은 헌원의 초기 구상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대나무 숲을 한편에 조성한 외관은 담백하고 정갈하나 천문학적인 액수가 든 내장만큼은 황궁에 견줄 만했다.
“나 죽으면 너희가 옮겨 오는 것이 아니라 여기가 본채가 되겠구나.”
이 승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별채에 외부인은 절대 들이지 말라 일렀다. 사치의 소문을 염려한 탓이었다. 백아 외에 다른 이를 욕탕에 들일 생각이 없었으므로 헌원은 이 승상의 말씀에 얌전히 수긍했다.
헌원은 완성된 욕탕에 그 주인인 백아를 가장 먼저 이끌었다.
숲에서 길을 잃은 후였던 탓에 백아는 욕탕의 건물을 반쯤 가린 대나무 숲을 보곤 썩 좋아하지 않았다. 헌원은 손을 들어 대나무를 젖혔다. 벌어진 대나무 사이로 담벼락이 보였다.
“보세요, 백아. 담벼락 안에 정원을 가꾼 것입니다. 대나무라 길쭉할 뿐 사이로 담벼락이 보이지 않습니까? 백아가 길을 잃을 염려는 없습니다.”
이를 위해 헌원은 부러 대나무를 골랐다. 줄기 사이로 담장이 보이니 백아는 안심하고 버티던 걸음을 떼었다. 이후로 백아는 헌원이 질투할 만큼 욕탕을 즐겨 찾았다.
욕탕에 들어서니 백아는 한창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설백색과 담자색이 어우러진 얇은 욕의가 백아가 움직일 때마다 물속에서 잉어나 금어의 지느러미처럼 흔들렸다. 헌원을 발견한 백아가 손짓으로 헌원을 불렀다.
“종일 여기 계셨습니까?”
헌원 쪽으로 방향을 돌린 백아는 양다리를 모아 인어인 양 움직였다. 물에 젖은 욕의가 물 위로 올라온 다리에 달라붙어 하얀 살갗을 비추었다. 가는 아마사로 짠 얇은 욕의에는 광택이 돌아 백아가 원하는 바대로 인어의 비늘처럼 보이기도 했다.
“백아?”
헌원이 백아를 불렀으나 백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물속에서 들어 올린 상체에 헌원은 온통 시선을 빼앗겼다. 넋을 잃고 백아의 자태를 좇던 헌원은 백아가 물을 뿌려 퍼뜩 정신을 차렸다. 헌원이 백아를 보자 백아는 사르르 웃으며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마음이 분주해진 헌원은 급히 욕의로 개의했다. 헌원이 물에 들자 물장구를 치며 기다리던 백아는 헌원의 품에 안겼다. 젖은 욕의는 살갗과 다름이 없어 탄력 있는 백아의 감촉이 그대로 전해졌다.
헌원은 백아와 덜 닿기 위해 부러 큰 동작으로 백아를 안았다. 헌원에게 상체를 기댄 백아는 다리를 접어 헌원의 무릎에 앉았다. 인어를 흉내 내느라 양다리를 동시에 움직여 행동이 자연스럽지 않았다.
덕분에 백아의 다리와 옷자락이 헌원의 살갗을 스치며 감겼다. 젖은 마찰에 헌원의 노력이 무색했다. 차라리 알몸인 것이 덜 자극적일 터였다.
“목소리를 잃은 겁니까?”
헌원의 예상대로 백아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헌원은 슬쩍 물속에서 제멋대로 흩날리는 백아의 옷깃을 여몄다. 어릴 적에 궁여지책으로 권유한 욕의였으나 지금에 와서는 아쉽기도 했다.
욕탕을 막 지었을 때에는 알몸으로 탕에 들었다. 별채로 거처를 옮기며 부부에 큰 의미를 둔 건 헌원뿐, 백아는 개의치 않았다. 그래서 헌원은 그로 인해 곤란해질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알몸으로 들어서는 헌원의 중심을 백아가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헌원은 백아의 시선을 따라가다가 그 시선이 닿은 곳을 알아차리고 급히 제 중심을 가렸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그래도 백아가 시선을 떼지 않아 헌원은 무릎을 굽혀 허리까지 물에 담았다. 찰랑이는 파문에 보려던 부분이 가려지고서야 백아가 고개를 들었다.
“커요!”
대뜸 뱉은 말의 의미를 헌원은 잠시 후에야 알아챘다.
“헌원은 신장도 크고, 중심도 커!”
욕탕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시중을 들러 같이 탕에 들어 있던 단이가 망측해하며 귀를 막았다. 욕탕을 관리하는 아범이 껄껄 웃음소리를 내다가 고개를 돌리기도 했다. 때문에 귀까지 열이 오른 헌원은 난생처음 말을 더듬었다.
“배, 백아. 말씀이…….”
“내 것은 내 한 뼘만 한데, 헌원의 것은 이만해!”
겅중겅중 물을 가르며 다가온 백아가 중심을 가린 헌원의 손을 덥석 잡았다. 당황한 헌원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꿈지럭대다가 제 하초를 백아의 눈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말았다.
백아는 헌원의 양손이 제 시야를 방해하지 못하게 붙들고 흔들리는 하초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긴장으로 헌원의 배가 크게 일렁였다.
파문으로 물 아래가 잘 보이지 않자 백아는 손을 뻗어 덥석, 헌원의 양물을 잡았다. 놀란 헌원이 펄쩍 뛰어올랐으나 백아는 크기를 재느라 여념이 없었다. 손바닥으로 둘레를 재고 손가락을 펴 길이를 재는 백아의 손은 거침없이 헌원의 뿌리와 기둥과 선단을 스쳤다.
명확한 의미로 다가온 백아의 손짓에 헌원이 반응했다. 심장이 뛰고, 낯이 붉어지고, 아래가 부풀었다. 곧추서며 부피를 키우는 양물을 백아가 신기해하며 바라보았다.
“배, 백아, 저, 그, 저기…… 이, 이건.”
“우와! 더 커져요, 헌원!”
뒤돌아 귀를 막고 있던 단이가 슬쩍 손을 떼려다 다시 울리는 백아의 목소리에 질겁하며 다시 귀를 막았다. 헌원은 더 견디지 못하고 후다닥 물러났다.
욕탕에서 사라졌던 헌원은 자신의 포를 걸쳐 몸, 특히 앞섶을 꼼꼼히 감싸고 한 손엔 백아의 포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의아해하는 백아를 마주 보지 못하는 헌원은 고개를 돌린 채 백아에게 가져온 포를 둘러 주었다. 변명처럼 주워섬기는 말이 잘 들리지 않을 만큼 빨랐다.
“아, 아무리 부부지간이라도 알몸을 보이는 건 부끄러운 일이에요. 그러니 앞으론 욕의를 입어요, 백아. 욕탕에 들기 전에 말씀드린다는 걸 이, 잊어버렸어요.”
지금보다 더 순진했던 헌원의 정인은 그 규칙을 쉽게 수긍했다. 헌원은 허리끈을 매어 주자 다시 물로 뛰어드는 백아를 보며 마음을 다스렸다. 어렸을 적의 일이었다.
헌원은 안겨 오는 백아를 결국 온몸으로 받아 들며 지난날의 그 처사를 후회했다. 어릴 적의 일이라 옷을 입으면 가려지겠거니, 그저 포로 몸을 감추는 것에 급급하여 젖은 포를 걸친 백아가 더 매혹적이라는 걸 몰랐다. 젖은 천으로 가린 나신은 보는 이의 상상을 자극했다. 차라리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것이 낫겠다 생각하며 헌원은 수없이 눈을 피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백아의 나신을 몇 년간이나 충분히 눈에 담지 못했다. 헌원이 다시 백아의 나신과 마주한 건 몸을 섞기 시작한 후부터였다. 그간 달라지는 백아의 모습을 눈에 담지 못한 것이 이제 와 아쉬웠다.
늘 보아도 그리운 백아인데 제 어리석은 판단으로 몇 년이나 마주할 기회를 잃고 말았다.
백아는 고개를 들어 헌원에게 가볍게 입술을 맞댔다. 헌원이 놀라는 사이 품에서 빠져나간 백아는 여전히 양다리를 붙이고 인어인 양 헤엄쳤다.
무릎을 살짝 덮는 물의 깊이는 헌원이 운신하기엔 턱없이 얕았다. 그러나 헌원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백아와 장단을 맞추었다. 긴 팔로 얕은 물에서 헤엄치듯 움직이자 백아를 따라잡았다.
쭉 뻗은 손끝에 백아의 허리띠가 잡혔다. 잡아끌자 가볍게 묶은 매듭이 풀리며 백아의 앞섶이 벌어졌다. 백아는 몸을 돌려 눕듯이 젖히고 다시 헌원에게 멀어지려 욕탕의 바닥을 박찼다.
헌원은 재빠르게 백아의 발목을 낚아채어 그대로 끌어당겼다. 물을 가르며 슥 끌려오는 백아를 다시 품에 안았다. 어깨에만 걸쳐진 욕의는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헌원은 백아의 알몸을 당겨 안았다.
“왕자는 분명 후회했을 겁니다. 이런 아름다운 인어를 보기만 한 것을요.”
“…….”
백아는 여전히 인어 흉내를 내며 소리 없이 입만 벙긋대었다. 손가락이 허리끈을 가리키기에 헌원은 잡고 있던 끈을 휙 던져 버렸다.
눈이 커진 백아의 입술을 훔치며 헌원은 벌어진 옷깃 사이에 손을 넣어 젖은 살갗을 쓰다듬었다. 백아의 알몸에 당황하여 도망한 건 어렸을 적의 일이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다가오시는 정인을 헌원은 거절할 생각이 없었다. 이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것이 오히려 죄가 아닌가 말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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