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원고담-22화 (22/66)

22화.

“랑이라, 백아가 마음에 들었다니 저 또한 좋습니다.”

“랑아!”

헌원의 대답에 백아가 지체 없이 랑이를 불렀다. 백아의 외침에 어디선가 랑이의 왕! 하는 대답이 들렸다.

이내 모습을 보인 랑이는 백아가 부르는 대로 왕왕 짖으며 백아의 발치에서 꼬리를 흔들었다. 익숙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니 헌원이 귀가하기 전에 몇 번이나 불렀던 모양이었다. 랑이는 백아와 달리 쉽게 제 이름을 받아들였다.

“윤하.”

헌원의 부름에 랑이를 보던 백아가 의아한 눈으로 헌원을 보았다. 눈이 둥그레진 것이 왜 저를 그 이름으로 부르냐는 물음일 터다.

몇 번의 서신 왕래로 결정된 백아의 이름은 정작 본인이 잘 인지하지 못했다.

헌원이 잠자리에 들기 전, 이것이 네 이름이다 몇 번씩 불러 주어도 금세 잊어버리고 다음 날이 되면 잘 반응하지 않았다. 백아라는 아명이 너무 익숙해진 탓이었다.

거기에 글공부를 가르치려 데려왔던 스승이 백아를 이름으로 부르니 글공부를 싫어해 도망갈 궁리만 하던 백아가 나중에는 제 이름을 들어도 못 들은 체를 하였다. 나중에는 어머님이나 진원이 불러도 열에 아홉은 대답하지 않았다.

백아의 반응에 헌원은 내심 서운했다.

그나마 위안으로 삼을 수 있었던 건 헌원이 부를 때는 곧잘 귀를 기울이는 백아의 행동이었다. 적어도 다른 사람들이 부를 때처럼 들은 체 만 체하며 딴청을 피우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아명은 벌써 접어 두어야 하는 지금까지도 백아는 본명보다 아명으로 더 자주 불리고 있었다.

“이야기책을 읽어야 할 시간입니다.”

백아는 헌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랑이에게 인사를 하였다.

“내일 보자.”

말을 건네는 목소리가 왕자님을 이야기할 때처럼 명랑했다. 랑이를 등지고 헌원에게로 다가오는 백아의 표정이 즐거워 보여 헌원의 입가에도 미소가 스몄다.

아니 어쩌면, 헌원 자신도 조금은 기뻐하는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그 이름으로 백아를 부르는 것은 오직 저 하나였으니.

오늘 백아가 골라 온 것은 산속에 버려져 늑대처럼 자란 청년과 만난 소녀의 이야기였다. 제목을 보고 랑이를 떠올려 골라 왔음이 보여 헌원은 백아 몰래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하나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분이시로고.

“정말 수인이 존재할까요?”

마지막 장을 덮자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백아가 물었다. 청년은 인간이 아닌 수인이었고, 소녀에게 사랑을 느낀 청년은 소녀의 위험에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걸었다. 순수한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작가의 말로 소설은 끝을 맺었다.

“성성이나 인면수라면 모르겠지만 수인은 글쎄요, 들어 본 바가 없습니다.”

약간은 딱딱한 목소리에 백아가 헌원을 돌아보았다.

백아가 손을 들어 굳어 있는 헌원의 입가를 부드럽게 문질렀다. 자신의 사랑을 비웃는 듯한 소설의 끝맺음에 헌원이 저도 모르게 표정을 굳혔던 모양이었다.

헌원은 애써 입꼬리를 끌어 올렸지만 백아의 손길에도 헌원의 착잡한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나 백아가 자신을 걱정하며 저를 보고 있었기에 헌원은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며 말을 이었다.

“소설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라면, 아마 소녀는 청년을 만나자마자 죽었을 겁니다. 짐승들은 저보다 체구가 작은 것을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않아요. 오히려, 먹이라 생각하고 달려들지요.”

헌원은 품에 안은 백아의 목덜미에 짐승처럼 이를 가져다 대었다. 가지런히 묶은 머리칼 아래로 여린 목덜미가 무방비하게 빛났다.

헌원은 흰 살갗에 이를 박아 넣는 상상을 했다. 붉은 자욱이 흰 피부 위에 아롱지면 누구라도 백아를 넘보지 못할 것이다. 가려지지 않는 붉은 자국에 백아가 울상을 하며 옷깃을 여미길 바랐다. 그 자국이 선명한 동안에는 헌원만이 백아를 독점할 수 있을 터였다.

살갗에 닿는 헌원의 뜨거운 숨결에 백아는 마른침을 삼키며 숨이 가빠졌다. 두려워하기보다는 그 뒤를 기대하며 흥분하는 듯했다.

백아는 몸을 숙여 헌원의 숨결을 피하려 했지만 허리를 단단히 붙든 채로 따라오는 헌원으로 인해 몸의 중심을 잃었다. 엎어지듯 탁자를 짚었다.

헌원은 백아의 등 위로 제 몸을 포개 백아의 목덜미를 살짝 물었다. 백아가 흠칫 몸을 떨었다.

“……짐승은 상대를 제압할 때, 이렇게 뒤에서 목을 공격합니다. 이곳이 가장 약한 부분인 까닭입니다.”

짐승과는 다른 의미로 백아 또한 목덜미가 약했다.

말을 하느라 움직이는 입술이 백아의 목덜미에 스치자 백아는 견디지 못하고 목을 움츠리며 파드득 떨었다. 사냥감이 된 가련한 짐승 같았다.

백아의 모습을 보며 헌원은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난폭한 짐승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제 거친 몸짓 아래 흔들리는 백아가 보고 싶었다. 다시 뽀얀 목덜미에 입술을 묻고 꾹 누른 채로 진하게 빨아내었다. 허리를 감은 손이 옷깃 사이로 숨어들었다.

“아…… 흣, 하아.”

백아의 목을 입술로 희롱하며 헌원은 백아의 매듭을 풀었다. 붉은 칠을 한 탁자 위로 하얗게 드러나는 어깨를 바라보며 자신의 옷도 벗어 버렸다. 고급의 비단이 바닥에 어지러이 흩어졌다.

달아오른 몸에 닿은 공기가 차가웠다. 백아도 선뜻한 모양인지 손에 닿는 피부가 도톨했다. 헌원은 뒤에서 백아와 몸을 겹쳤다. 자신의 몸으로 백아의 몸을 덮어 체온을 나누며 백아를 어루만졌다. 조금은 과감한 손길이었다.

민감한 곳들을 훑어 내리는 헌원의 손길에 백아가 움찔거렸다. 이쯤에선 침상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지만 오늘은 왜인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짐승들은 ‘좋은 것’을.”

“히익……!”

별다른 전희 없이 백아의 안에 진입했다. 짧은 애무에도 젖어 있던 내부는 조금은 빡빡하게, 그러나 무리 없이 헌원의 양물을 받아 내었다.

언제나 좁디좁은 백아의 내부가 헌원의 침입에 거세게 저항하긴 하였으나 그보다 더 거친 헌원의 기세엔 역부족이었다. 두꺼운 선단이 내부를 짓이기며 미끄러졌다.

한 번에 뿌리 끝까지 깊게 꽂힌 물건에 백아는 교성도 지르지 못하고 자지러졌다. 대비치 못한 빠른 진입에 허리를 바짝 세우고 바들바들 떠는 백아를 다시금 당겨 안은 헌원은 백아의 귓가에 짐승이 으르렁거리듯 속삭였다.

“이렇게 합니다.”

짐승의 자세로 하는 교합은 유달리 깊었다.

백아의 내부로 파고든 헌원의 선단 끝에 아직 열리지 않은 다른 입구가 비벼졌다. 아직 준비되지 않아 아직은 누구도 반기지 않는 입구였다.

꼭 닫힌 입구는 침입을 거부했지만 헌원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들어가야 할 입구였다. 조만간 백아가 개화를 하면 그땐 이 안도 헌원으로 가득 찰 것이었다. 헌원의 것이었다.

백아의 깊은 곳에 자리한 다른 입구는 눌리는 것만으로도 백아에게 진한 쾌감을 선사했다. 입구가 눌리는 둔중하고도 아릿한 쾌감은 백아가 느껴 보지 못한 새로운 감각이었다.

“아…… 아!”

백아는 본능적으로 쾌감을 좇으려 허리를 흔들었다. 그러나 백아의 움직임으론 입구와 헌원의 양물이 잘 맞닿지 않았다.

아쉬움에 쾌감을 바라는 백아의 속살이 내부에 자리한 헌원의 양물에 빈틈없이 감겨들었다. 헌원 또한 잠시 맞닿은 입구가 아쉬웠으므로 다시 한 번 입구에 선단을 마찰했다.

“헌, 아, 거기, 흐으응!”

선단이 입구를 건드릴 때마다 백아가 움찔거리며 반응했다. 하지만 무르익지 않은 입구는 선단을 피하기만 했다. 수차례의 시도에도 입구는 헌원에게 길을 내어 주지 않았다. 백아가 느끼는 쾌감만큼의 압력이 헌원의 양물에 더해졌을 뿐이다.

헌원은 아쉬운 만큼 진한 압박감을 느끼며 백아의 내부에 있던 양물을 선단만을 남겨 두고 뽑아내었다. 빠져나오는 마찰에 백아의 교성이 튀었다.

이번엔 천천히 아래를 겹치며 몸 또한 완전히 겹쳤다. 백아는 탁자에 몸을 기댄 채 숨만 헐떡였다. 이윽고 다시 백아의 안에 양물이 가득 찼다. 백아는 덜덜 떨리는 다리로 간신히 몸을 지탱하면서도 둔부를 헌원에게 더욱 가까이 했다.

헌원은 백아의 허리를 꽉 움켜쥐고 백아의 둔부에 맞닿은 사타구니를 문질렀다. 깊게 꽂힌 양물이 백아의 안에서 휘저어졌다. 달라붙은 양물이 온통 진탕이 되었다. 백아의 입이 벌어졌으나 소리가 새어 나오진 않았다. 짧은 숨만이 간헐적으로 내뱉어졌다.

헌원은 다시 선단으로 입구를 찾았다. 결을 해서 강제로라도 열어젖혀 볼까. 순간 드는 것은 흉포한 본능이었다. 준비처럼 짧게, 또한 강하게 내부를 짓이겼다. 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면 모조리 정복할 것처럼.

쿵, 쿵, 쿵, 쿵. 차나 다과를 위한 탁자가 헌원의 힘에 못 이겨 조금씩 밀려났다.

헌원이 탁자를 당기기 위해 위로 손을 뻗은 순간 백아의 다리가 휘청였다. 무너지는 백아를 받치며 헌원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헌원은 숨을 고르며 백아를 살폈다. 백아는 신음마저 제대로 내지 못한 채 과한 쾌감에 스스로 몸을 지탱하기도 버거워하고 있었다. 한번 꺾인 다리는 힘이 들어가지 않아 허리에 감은 헌원의 팔이 백아를 지탱했다. 사냥감처럼 애처로운 모습이었다.

난폭한 짐승은 여기까지.

더 이상은 백아가 견디기 힘들 터다.

잠시 자신을 다스리기 위해 몸을 빼었던 헌원은 천천히 백아의 내부에 진입했다. 백아에게 남아 있는 쾌감의 잔재는 느린 진입을 하는 헌원을 끈질기게 방해하며 감겨들었다. 아찔한 감촉이었지만 헌원은 자신을 다스렸다. 오늘은 지나쳤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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