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원고담-16화 (16/66)

16화.

다음 날 아침, 백아는 몸 안쪽 어딘가에서 느껴지는 불편한 감각에 눈을 떴다. 이물감을 떨어내려 몸을 뒤척이다가 아랫배를 감싸는 손길에 움직임을 멈추었다.

“백아, 일어나셨습니까?”

헌원의 목소리에 이물감의 위치와 정체를 깨달았다. 제 몸 속에 든 헌원의 양물이었다. 지난밤 몇 번이나 백아의 안에 정을 뿜어낸 양물이건만 백아의 배 속에 든 양물은 마치 어제 정사를 시작할 때처럼 기세가 흉흉했다.

뒤에서 백아를 안고 있는 헌원이 백아의 어깨에 입술을 눌렀다. 저건 입술이 아니니 셈하지 않는다. 셈하지 않는 걸 아는 헌원은 백아의 어깨와 목덜미를 마음껏 희롱했다.

아랫배를 감싼 손은 백아를 품 안 깊이 끌어당겼다. 헌원이 가득 찬 배 속에 공간은 없는 것 같았는데 양물은 더 깊게 들어왔다. 헌원의 양물이 길을 만드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백아는 지난밤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헌원은 자신이 약속을 잘 지키는 이라는 걸 몸으로 알려 주었다. 백아가 총 일곱 번의 절정에 오를 때까지도 헌원의 양물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백아는 사정에 사정을 더한 끝에 투명한 물을 줄줄 뿜어내는 제 양물이 고장 났다고 생각했다. 정신이 반쯤 나간 백아가 그 말을 하며 울먹이자 헌원은 책임질 테니 걱정은 말라 했었다.

한 번 사정한 후의 헌원은 엄청나게 무시무시해져서 백아는 감당할 수 없었다. 느릿하게 움직일 때에는 양물이 몸 안에 새겨지는 것 같았고 빠르게 움직일 때는 뱃가죽까지 구멍이 날 것 같았다. 쾌감이 힘든 건 줄 그때 처음 알았다. 나중엔 쾌감이 지나쳐 눈물이 줄줄 흘렀다.

셈 따위 안중에 없었다. 백아는 채 서른을 세지 못하고 셈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헌원이 마흔 몇 번까지 센 기억이 마지막이었다.

떠올리고 나니 통증이 밀려왔다. 온몸이 여기저기 시큰했다. 헌원이 조심스럽게 만져 주고 있지만 그때뿐이었다. 백아는 헌원에게 아프다고 투정을 부리려 했다.

“허…… 으?”

그러나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억지로 낸 목소리에 목 안쪽이 타는 듯이 쓰라렸다. 헌원이 손을 올려 백아의 목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따뜻한 체온에 쓰라림이 조금 가시는 듯했다.

“밤새 울어 목이 쉬었나 봅니다. 단이가 꿀물을 가져올 터이니 말을 아끼세요.”

백아는 고개를 끄덕이는 거로 대답을 대신하고 아랫배를 문지르는 헌원의 손 위에 제 손을 겹쳤다. 헌원은 작게 웃으며 손을 빼더니 백아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덮었다.

“느껴집니까?”

헌원이 무슨 말을 하나 의아해했던 백아는 헌원이 허리를 뒤로 빼었다가 다시 쿡 찌르자 눈을 크게 떴다. 아랫배의 살가죽 아래로 뭉툭한 것이 불룩 솟아올랐다. 백아는 그게 무언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헌원의 양물이었다.

등줄기로 소름이 달렸으나 무서움과는 조금 달랐다. 간지럽기도 하고 따끔거리기도 하는 감각이었다. 백아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으응.”

얕게 드나드는 양물이 밤새 예민해진 백아의 안쪽에서 슬금슬금 쾌감을 일깨웠다. 힘든데 즐겁고 뻐근한데 뿌듯했다. 아랫배에 불거지는 헌원의 양물이 기괴하면서도 짜릿했다.

물러났던 헌원의 양물이 다시 진입하며 백아의 안쪽 볼록 튀어나온 어느 곳을 건드리자 짜릿한 느낌이 다시 등줄기를 달렸다. 익숙한 쾌감이지만 지금은 조금 두려웠다. 백아는 이 느낌을 알았다. ‘좋은 것’. 그래서 두려움을 기대감으로 누를 수 있었다.

전에도 헌원과의 ‘좋은 것’은 즐거웠지만 지금은 지나치게 좋았다. 도망가고 싶을 지경이었다.

백아는 저도 모르게 허리를 세웠다. 따라붙은 헌원의 양물이 다시 배 속을 쿡 찔렀다.

“호기롭게 장담했는데 쉰 번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것은 백아가 잠든 탓이었으나 헌원은 그에 대해선 나무라지 않았다. 백아의 체력을 고려하지 못한 것도 헌원은 자신의 잘못이라 여겼다.

느릿한 움직임에 서서히 깨어나는 감각은 평소와도 다르고 어제와도 달랐다. 잔뜩 예민해진 몸이 자극을 다르게 받아들였다. 백아는 신비롭고 낯선 기분에 휩싸였다.

“아……!”

백아는 배 속을 휘젓는 움직임 정도에 절정에 올랐다. 헌원의 양물이 그, 무어더라. 아범이 좋은 거라 말하던 그것, 아! 맞아, 미약. 미약으로 만들어지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아니면 백아의 몸 속에 가득 찬 정이 그러하거나.

지난밤 몇 번이고 사정한 양물에선 이제 물도 나오지 않았다. 백아는 사정도 없이 절정의 쾌감에 온몸을 떨었다. 백아의 절정에 헌원 또한 백아의 안에 절정의 증거를 내어놓았다. 백아의 사정을 대신하는 듯한 긴 사정이었다.

깜빡깜빡 점멸하는 시야에 헌원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쉰…… 셋. 지난밤 마흔여섯까지 세었었지요?”

헌원은 그렇게 말하고 백아에게서 양물을 빼내었다. 배 속에 가득 찬 헌원의 정이 양물과 같이 빠져나와 백아의 둔부를 적셨다. 미끈거리는 감각에 다시 소름이 돋았다. 백아는 이제 이게 쾌감인지 아닌지도 구분할 수 없었다.

헌원은 더 할 생각은 없는지 다시 양물을 넣진 않았다. 아직 그 크기를 자랑하는 것이 조금 불안했지만 노골적인 움직임은 없었다. 왜인지 모르게 안도하는 백아에게 헌원이 속삭였다.

“쉰 번을 훌쩍 넘겼는데 제게 주실 상은 없습니까?”

헌원이 백아에게 주는 상은 ‘감사 인사’나 ‘좋은 것’이었다. 백아가 헌원에게 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중에 큰 상은 ‘좋은 것’이었다. 쉰 번은 큰 상을 주어야 할 일이었다.

백아는 숨을 내쉬려다가 크게 들이켰다. 사레가 들렸다.

“흐…… 읍, 콜록.”

더는 못 한다. 더 하면 백아는 죽을 것이다. 헌원을 품은 채로 백아는 극락인지 왕생인지 거기에 오를 것이다.

백아는 뒤늦게 깨달았다. ‘좋은 것’은 좋지만 지금 백아는 힘들었다. 그러니 쉬고 싶었다. 쉰 번도 넘었잖은가. 서른 번 정도로 이야기할걸. 쉰 번은 너무 많다. 앞으로는 바늘 따위 손에 대지 않을 테다.

차마 제가 하자 조른 것과 마찬가지인 ‘좋은 것’을 싫다 하진 못하고 백아는 엉뚱한 데에 책임을 넘겼다. 바늘이 들으면 억울해할 테지만 속으로만 하는 생각이니 괜찮다.

백아는 제 논리가 그럴듯하다 여기며 반짇고리 함은 어디 깊은 구석으로 치워 버리리라 속으로 다짐했다. 바늘을 잡지 않으면 정 부인이 서운해할 테지만 백아가 사는 게 우선이지 않겠는가. 이해해 주실 거다. 이해해 주셔야 한다.

“감사 인사로 충분합니다.”

속으로야 순식간에 죽었다가 살아났지만 겉으로는 가만히 굳어 있는 백아에게 헌원이 속삭였다. 헌원도 지쳐 보이는 백아와 할 생각은 없었다. 헌원에겐 충분하지 않았지만 백아는 충분한 듯하니 그걸로 되었다.

마지막에 조금 놀라기도 했다. 백아가 사정도 없이 절정에 오를 줄은 몰랐다. 게다가 여운도 길어 순간 백아가 잘못되지 않았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었다.

헌원의 욕심을 마음껏 채우려면 백아가 체력을 길러야 할 터다. 그러나 백아는 무예에 관심이 없으니 그 욕심은 요원한 일이었다. 헌원이 참는 것만이 답이었다. 그래도 백아가 헌원이 참는 만큼 욕심을 내어 주니 헌원으로서는 감사할 일이었다.

헌원의 말에 백아는 안심한 듯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힘겹게 몸을 돌려 상을 기다리는 헌원에게 입을 맞추었다. 만족스러운 후희였다.

입술이 떨어지자 까무룩 잠이 든 백아는 하루하고도 한나절을 일어나지 않았다. 의원을 데려왔으나 그저 지쳐 잠들었다는 대답만 들었다.

염려하신 정 부인의 물음에 헌원은 그대로 고하기는 낯부끄러워 고뿔이라고 둘러대었으나 사정을 알고 있는 단이가 바로 고한 탓에 정 부인께 꾸중을 들었다.

백아는 일어나자마자 정성스레 달인 쓰디쓴 보약을 마셔야 했다. 헌원은 아침저녁으로 투덜대는 백아의 보약 시중을 들었다. 백아는 보약을 들고 들어오는 헌원을 원망을 담은 눈으로 보았다.

헌원은 그래도 좋았다.

백아는 보약을 먹는 내내 기분이 저조하여 헌원에게마저 데면데면했다. 헌원이 꼬박꼬박 약을 챙긴 탓이었다.

그동안 백아는 이야기나 책에 관해 말도 꺼내지 않았다. 억지로 들이밀면 쳐다보지도 않을 성정이라 헌원은 지어 온 약첩이 동난 후에야 슬그머니 서책을 백아의 시야가 닿는 곳에 놓아 두었다.

한동안은 눈길도 주지 않다가 다시 책을 잡은 백아는 꽤 즐거워했다. 내심 마음을 졸였던 헌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단순히 쓴 보약을 먹기가 싫었던 모양이었다.

오랜만에 백아를 안고 책을 펼쳤다. 뺨을 스치는 머리칼의 감촉이 반가웠다.

“에취!”

품에 안은 체온이 높다 했더니 결국 간지러운 기침을 토해 냈다. 이마를 짚어 보니 미열이 있었다. 훌쩍이기까지 하는 것을 보니 이번엔 둘러대는 말이 아닌 진짜 고뿔이었다.

헌원은 백아를 재우려 했으나 백아가 책장 덮는 것을 막았다. 열이 오른손이 고집스럽게 헌원의 손을 붙잡았다.

“열이 납니다, 백아.”

건강이 우선이라며 나무라려던 헌원은 책에 눈길을 주고 있는 백아의 모습에 그것이 아님을 알았다.

영악한 거다 이것은. 저 아픈 것을 헌원이 알면 책을 읽어 주지 않을까 봐 헌원의 순진한 정인은 한껏 영악함을 부려 본 거다.

단이를 불러 꿀물을 가져오라 일렀다. 그동안만 책을 읽어 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백아는 꿀물을 다 마시고 나서도 책장을 꼭 붙든 손을 놓지 않았다.

백아는 눈에 졸음이 밀려오는 것이 보이는데도 한사코 이야기를 더 들으려 고집을 부렸다. 양보는 여기까지였다. 헌원은 단호하게 말했다.

“백아, 누우세요. 누우셔야 읽어 드릴 것입니다.”

고집이 통할 것 같지 않자 백아는 침상으로 몸을 던졌다. 제법 날랜 움직임에 헌원은 조금 기가 막혔다.

고집을 부릴 만큼 정신도 있고 몸을 던질 만큼 기운도 있으니 심한 고뿔은 아닌 모양이었다. 헌원은 기다리는 백아의 곁에 모로 누워 팔베개를 해 주었다.

[다음 편에 계속....]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