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헌원은 손을 미끄러트렸다. 길게 뻗은 백아의 다리를 거슬러 오른 헌원의 손은 거치적거리는 하의를 벗겨 내었다.
속곳마저 벗기자 백아의 향이 진하게 풍겼다. 본디 향인은 음액에서 가장 진한 향을 냈다. 평소보다 흥건한 백아의 애액에서 나는 향에 헌원은 머리가 아찔했다. 갈증이 일었다.
“헌, 아…… 흣!”
백아의 향에 온통 취한 헌원은 하의를 벗을 여유도 없이, 백아가 헤쳐 놓은 앞섶에서 양물만을 꺼내 그대로 백아를 꿰뚫었다.
뿌리 끝까지 백아의 안을 채우고 나서야 갑자기 치밀었던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했다. 아니, 갑자기가 아니었다. 헌원은 늘 백아가 목말랐다. 곁에 묶어 두기까지 하였으나 원하는 만큼 품을 수 없어 생긴 갈증이었다.
이 병을 세간에선 상사병이라 했다. 맞다. 그때뿐 아니라 여태껏, 어린 날 처음 눈을 마주했던 날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헌원은 줄곧 상사병을 앓고 있었다.
“흐읏…… 헌원.”
신음 같은 백아의 목소리에 거친 숨을 몰아쉬던 헌원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백아, 괜찮, 괜찮습니까?”
이미 수차례 헌원을 품은 몸이지만 이렇게 단번에 열어젖힌 적은 없었다. 늘 긴 시간 받아들이기 쉽도록 부드럽게 연 후에야 조심스레 안은 소중한 몸이었는데 진한 색향에 순간 이성을 잃었다. 당황한 헌원에게 백아가 손을 뻗었다.
“아래는, 하아, 일곱으로 셈할게요. 다섯은 너무 적은 것 같아.”
헌원의 당황이나 걱정과는 달리 백아는 입가에 미소를 걸었다. 백아의 다리가 헌원의 허리에 감겼다. 장골께에 감기는 허벅지의 여린 살이 아찔했다.
“단, 절정을 한 번으로 쳐요.”
그러니 나를 만족하게 해요.
백아의 눈가에 흐르는 웃음이 매혹적이었다.
여전히 눈을 감고 있어 눈을 마주치지는 못하였지만 헌원은 그것만으로도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백아의 안에 자리한 양물이 한층 부피를 키웠다. 흥분의 증거였다.
백아는 안이 차오르는 감각에 숨을 들이켜면서도 웃는 낯은 지우지 않았다. 헌원의 시야에 백아의 웃는 낯만이 크게 와 박혔다.
헌원은 조금 전과는 반대로 느리게 허리를 빼었다가 천천히 진입했다. 느릿한 마찰 때문에 침범하는 양물이 뚫는 길이 지나치게 생생했다. 백아의 목에서 앓는 신음이 끓었다.
“으응…… 헌원.”
다시 백아의 안을 가득 채운 헌원은 움찔거리는 백아의 허리 아래에 베개를 끼우고 백아의 다리를 들어 어깨에 걸쳤다. 헌원이 몸을 숙이자 백아의 무릎이 가슴께에 닿았다. 헌원의 머리 위로 백아의 다리가 달랑거렸다.
헌원이 다시 천천히 빠져나갔다. 그리고 퍽, 백아의 안을 짓이겼다. 백아의 몸이 튀었다. 그리고 다시.
뒤늦게 대답하는 헌원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분부대로.”
백아가 숨을 크게 들이켰다. 헌원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느릿하게 울리던 마찰음은 점점 간격이 잦아졌다. 묵직하게 살을 치던 소리가 어느 사이엔가 잔뜩 젖은 소리로 바뀌었다. 헌원이 몸을 숙이고 백아의 귓불을 머금었다. 찰박이는 소리로 가득한 귓가에 질척한 물소리가 더해졌다.
“아, 응, 흐읏, 헌…….”
“……깊은 입맞춤은, 여전히 셋을 제합니까?”
헌원 자신도 처음 듣는 듯한 낮은 목소리였다. 헌원은 대답을 듣지 않고 백아의 입술을 막았다. 백아는 이제는 신음조차 내지 못했다. 헌원이 주는 쾌감이 새어 나갈 곳 없이 백아의 안에 꽉꽉 들이찼다.
“……!”
어느 순간 한계에 도달한 백아가 길게 사정액을 뿜어냈다. 늘 포근했던 전과는 전혀 다른 찌르는 듯한 쾌감에 백아는 몸을 잔뜩 굳히고 바들바들 떨었다.
“큿…….”
백아의 사정에 내벽이 죄었다. 한계까지 부풀린 양물에 가해진 압박에 헌원이 잇새로 신음을 흘렸다. 사정감을 참아 낸 헌원은 절정 중인 백아를 다시 꿰뚫었다. 이미 한 차례 사정한 백아는 이번엔 전보다 묽은 정액을 울컥울컥 뱉어 냈다. 절정 중의 절정이었다.
헌원 또한 이번엔 참지 않고 정을 분출했다. 백아와 함께 오르는 극상의 절정이었다. 헌원은 백아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막았던 입술을 떼고 대신 이마를 맞대었다. 백아는 절정의 순간에서 헌원이 듣고 싶은 말을 들려주었다.
“하으…… 헌원…….”
절정이 지나가고 백아는 힘이 빠진 손을 들어 헌원의 뺨에 얹었다.
“예, 백아.”
헌원은 고개를 돌려 손바닥에 입 맞추고 백아의 입술도 가볍게 훔쳤다. 백아가 작게 미소 지었다.
“절정 중의 절정은 ……몇을 제해야 할까요?”
백아의 말에 다시 입을 맞추려던 헌원은 하려던 행동을 잊고 말았다. 여유로운 척 입맞춤의 셈을 물었던 헌원은 절정에 오른 순간 셈 따윈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헌원의 정인께서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던 건지.
“……푸 ……하하하하.”
헌원은 백아의 얼굴을 마주 보지 못한 채 웃음을 터트렸다. 백아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으나 좀체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눈물을 쏙 빼도록 웃자 배가 당길 지경이었다.
어이가 없다고 해야 할까? 화도 나지 않았다. 절정에 달하면서도 셈을 하고 있었을까? 서운할 일인데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아니 사죄를 청해야 할 일인가? 백아를 황홀경으로 이끌지 못했으니. 여유가 없었던 건 헌원 저뿐이었던 것 같다.
사죄를 청하려 고개를 들어도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백아는 갑자기 파안대소를 하는 헌원이 이해되지 않는지 의아한 표정이었다.
헌원은 한참 후에야 가까스로 진정했다.
“흠, 흠, 제가 부족했나 봅니다.”
“뭐가요, 헌원?”
“얼마나 모자랐으면 백아가 셈을 할 여유가 있었겠습니까?”
헌원의 말에 백아가 당황한 듯 그때까지도 꾹 감고 있던 눈을 크게 떴다. 오늘 밤엔 처음 마주하는 눈이었다. 반가운 눈동자에 경악이 담겼다.
“아니야!”
“아닙니까?”
“아니에요, 헌원! 아니야!”
백아는 정말 놀랐는지 헌원을 잡는 손이 미끄러지기까지 했다. 격렬한 부정에 헌원이 되레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 헌원은 몸을 숙여 백아가 자신을 붙드는 것을 도왔다.
가까스로 헌원의 목을 끌어안은 백아가 헌원의 귓가에 중얼거렸다.
“아니야, 정신을 잃을 정도로 좋았어요.”
아직 옷을 벗지 않은 채라 옷과 함께 백아가 미끄러졌다. 헌원은 버둥대는 백아를 단단히 받치며 마주 안았다. 백아는 있는 힘껏 헌원에게 매달렸다.
정인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사죄는 보류해야 할 듯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백아가 즐겁지 않았다면 ‘좋은 것’은 제게 아무 쓸모가 없어요.”
헌원은 진정하라는 듯 백아의 등을 쓸었다. 익숙한 동작에 백아의 숨이 잦아들었다. 백아는 헌원의 어깨에 뺨을 문지르고 고개를 들었다. 헌원이 고개를 기울이자 백아는 헌원의 귓가에 속삭였다.
“셈을 한 건, 정신을 차린 후예요. 너무 좋아서, 한 번으로 끝내긴 아쉬워서, 헌원은 늘 절정에 오른 후엔 잠자리에 들자 하잖아. 나는 조금 더 하면 좋은데…….”
죄를 고하듯 속삭이는 백아의 말에 간신히 진정했던 헌원은 다시 웃음이 터졌다. 헌원의 웃음에 백아는 당황했다가 길어지는 웃음소리에 입술을 비죽였다. 백아는 헌원에게 두른 팔을 들어 헌원의 등을 두들겼다. 그런데도 헌원은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헌원의 정인께서는 한 번 하고 그칠 것이 아쉬워 헌원이 물러날 구석이 없도록 셈을 하셨단 말이었다. 이이를 어쩌면 좋을까.
물론 지난 숱한 정사에서 헌원이 먼저 물러난 건 사실이었다. 한 번 절정에 오르고 나면 백아는 반쯤 감긴 눈으로 헌원을 보았으니까.
헌원이야 사흘 밤낮을 정사로 보내어도 다음 날 새벽같이 일어날 수 있었지만 백아는 그렇지 않았다. 잠든 이를 붙들고 정사를 치를 수야 없는 일 아닌가.
한데 백아는 그게 아쉬웠다고 말했다.
“자신 있으십니까?”
“뭐가요, 헌원?”
헌원은 대답 대신 백아의 둔부에 손을 뻗었다. 말랑한 살집 사이로 파고든 손가락이 헌원의 정을 가득 머금은 곳을 헤집었다. 뒤늦게 헌원의 질문을 이해한 백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라면 이것으로 충분한 답이 되었겠지만 지금의 헌원에겐 조금 모자랐다.
“대답해 주세요, 백아.”
“……으응, 헌원.”
백아는 헌원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대답은 충분했다. 헌원은 오늘 밤 백아가 원하는 만큼 절정과 절정 사이에서 노닐게 할 것이다.
침상에 다시 백아를 눕힌 헌원은 그 위에 몸을 포갰다. 흰 허벅지를 넓게 벌리자 백아가 안에 든 손가락을 죄었다. 이미 한 차례 정사를 치렀건만 백아의 안은 여전히 좁았다.
어느새 두 개로 늘어난 손가락이 입구를 부드럽게 문질렀다. 안에 가득 찬 정액이 흘러나와 향유가 필요하진 않았다. 헌원은 천천히 손가락의 수를 늘렸다.
“쉰 이후론 세지 않았다 하였지요?”
이번엔 충분히 안을 넓힌 헌원이 어느새 다시 일어선 양물을 백아의 입구에 포개었다. 손을 빼낸 헌원은 천천히 준비된 입구에 양물을 밀어 넣었다. 백아는 헌원의 품 안에서 쾌감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몸을 떨었다.
“절정 중의 절정은 절정에 하나만 더 셈하세요. 그래야 쉰까지 오래 걸릴 터이니.”
자신만만한 헌원의 말이었다. 절정을 일곱이 아닌 다섯으로 셈해도 하룻밤 안에 쉰을 채울 자신이 헌원에겐 있었다. 백아는 곧바로 답했다.
“으응, 헌원.”
“……그럼 지금 열둘입니까?”
헌원의 말에 백아가 눈을 도르르 굴리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열…… 흐응, 셋.”
몸을 완전히 겹친 헌원은 백아와 눈을 맞추었다. 헌원을 마주 보던 백아가 뒤늦게 생각난 듯 눈을 감았다. 못 말릴 정인이시다. 헌원은 백아의 이마에 제 이마를 콩 부딪쳤다.
“쉰 따위는 가볍게 넘길 터이니 눈을 보여 주세요. 이 헌원이 있는데 어디 백아가 잠을 잡니까?”
헌원의 으름장에 백아는 길지 않은 고민을 했다. 사실은 보고 싶다. 헌원과 마주 보며 ‘좋은 것’을 하는 게 더 즐거우니까. 헌원이 장담하였으니 더는 눈 감고 있지 않아도 된다.
백아는 슬그머니 눈을 떴다. 그 눈에 헌원이 비친 것을 확인한 후에야 헌원은 허리를 움직였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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