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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원고담-14화 (14/66)

14화.

최근의 정 부인은 꽤 적적해하시던 차였다. 진원도 산사에 가 있는 터라 말벗을 해 드릴 이가 마땅치 않았다. 그 와중에 백아와 할 일이 생기니 점잖으신 분이 꽤 티가 나게 즐거워하신 모양이었다.

“마음 가는 대로 하세요. 나무라지는 않으실 겁니다.”

“그건 알아요, 헌원. 인자한 분이신걸.”

헌원이 해 줄 수 있는 일은 백아의 말을 전하는 일이다. 할지 말지는 오로지 백아가 결정해야 했다. 아직은 정 부인과 보내는 시간이 좋은 듯하니 당분간은 헌원이 나서지 않아도 될 듯했다.

헌원은 대신 맞지 않는 일을 하느라 고생했을 백아의 어깨를 주물렀다. 뻐근한 것이 풀리는지 백아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새었다. 꽤 오랜 시간을 바느질거리와 보낸 듯했다.

침상에 걸터앉은 채 주무르기엔 자세가 불편하여 헌원은 침상에 올랐다. 반듯하게 누운 백아의 하체를 양 무릎 사이에 끼운 헌원은 손을 뻗어 어깨와 목을 감쌌다. 목덜미 아래로 손을 넣어 손끝으로만 조심스레 주물렀다. 백아는 한결 편안한 표정을 했다. 어깨를 주무른 손길이 허리춤으로 내려가자 백아가 몸을 뒤척이며 말했다.

“나 오늘은 쉰 번을 찔렸는데…….”

딴에는 돌려 한다는 말이 꽤 직설적이었다. 쉰 번의 입맞춤, 진한 것으로 치면 열여섯 번의 입맞춤을 당돌하게 원하는 말이었다. 실소가 터질 뻔한 헌원은 가까스로 웃음을 거두었다. 백아가 눈을 감고 있어 보지 못하는 것이 다행이었다.

만면에 웃음을 띠어 붉어진 낯을 하고 헌원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쉰 번이나요?”

백아가 쉰까지밖에 세지 못했던가.

잠시 가늠한 헌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원과 내 것 네 것 하며 익혀 백아는 셈에는 꽤 밝았다.

너무 큰 수를 내어놓으면 헌원이 많다 여길까 적당한 수를 내어놓은 것일 터다. 나름대로 머리를 굴린 대답이지만 헌원은 되레 아쉬웠다.

백아가 천 번을 말하면 천 번, 만 번을 말하면 만 번을 기꺼이 입을 맞출 터였다. 열여섯에서 쉰 번은 한 시진도 보내기 어려울 터였다.

웃음을 참느라 눌린 목소리가 다르게 들렸던지 백아는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몰라, 그 이후론 세지 않았어요.”

여지는 남겨 두는 정인이시로고.

헌원은 우선 백아가 선사한 기회를 잡기로 했다. 허리를 숙여 완전히 백아를 덮어 버린 헌원은 달콤한 입술을 훔쳤다.

“하나.”

입술을 떼자마자 셈까지 하는 것이 하나라도 모자라면 경을 칠 모양이었다.

여전히 눈을 감은 백아를 애정이 담뿍 담긴 눈으로 바라보던 헌원은 사랑스러운 이의 도화색 뺨과 날렵한 콧날, 오뚝한 콧등, 오목한 미간, 반듯한 이마에 차례로 입 맞추었다. 숫자를 세는 백아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하나, 하나, 하나…….”

이어 눈가로 입술을 가져가던 헌원은 공정하지 않은 백아의 셈을 지적했다.

“백아, 숫자를 잘 세셔야…….”

“나는 잘 세고 있어요, 헌원.”

헌원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백아가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인의 대답에 오히려 헌원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입술을 맞추는 것만 인정입니까?”

백아는 이번엔 입을 열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 맹랑한 이를 어쩌면 좋을꼬.

헌원은 즐거운 나머지 인상을 잔뜩 일그러트렸다. 어찌하긴. 원하는 대로 실컷 기쁘게 해 드려야지.

혼자 자문자답을 끝낸 헌원은 다시 백아의 얼굴에 입술을 가까이 했다.

목표했던 눈에 입을 맞추고 다시 뺨으로 향한 헌원은 숫자는 나 몰라라 백아의 귓가에 숨을 불어 넣었다. 원하는 입술과 멀어지는 입맞춤에 애가 탈지 즐거워할지 헌원은 모르는 일이었다. 숨이 가쁜지 백아의 가슴이 크게 오르내렸다.

“아니면, 여기를 맞추는 것도 괜찮아요, 헌원.”

귓불을 질척하게 적시고 길게 뻗은 목덜미에 입술을 묻은 헌원에게 고개를 돌린 백아가 잔뜩 잠긴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와 함께 백아의 보드라운 발이 헌원의 다리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많이 뛰어놀았지만 단이의 부단한 노력으로 백아의 발엔 굳은살 한 점 박이지 않았다. 희고 매끄러운 발이었다.

비단으로 지은 옷감에선 사르륵거리는 소리가 났다. 허벅지를 스친 엄지가 양물 근처를 문질렀다. 꼼지락거리는 백아의 발이 헌원의 음낭을 짓눌렀다. 함의를 가득 담은 움직임에 헌원은 오금이 저렸다. 지탱하던 팔이 꺾여 헌원의 어깨가 백아의 가슴에 닿았다.

“그런 말은 어디서…….”

“아범이 얘기하던걸.”

백아의 대답에 헌원은 흥분과는 별개로 울컥 화가 치밀었다.

백아의 앞에선 입조심을 하랬는데도! 좋은 것 귀한 것만 보고 듣고 먹어도 모자란 이였다. 그런 정인의 귀에 감히 상스러운 소리가 들게 하다니!

헌원의 기색을 읽었는지 백아가 헌원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헌원은 백아가 이끄는 대로 몸을 숙였다. 백아가 헌원이 백아에게 해 주던 것처럼 천천히 등을 쓸었다.

“혼내지 말아요. 내가 몰래 들은 거야.”

백아의 다독임에 머리끝까지 올랐던 열감이 조금은 사그라졌다.

세상 물정 모르고 해맑기만 한 백아의 모습은 헌원의 처사였다. 상스러운 것, 나쁜 것과 더불어 싫은 것까지 백아는 몰라도 될 일이었다.

그로 인해 아쉬운 적이 없었다고는 말하지 못하지만 잘못한 거라고 여기진 않았다. 타고난 성품이 고운 백아는 헌원이 아끼고 보호하여 어디 한 곳 어두운 곳 없이 성인이 되었다. 앞으로도 쭉 이렇게만 있어 주면 되는 사람이었다.

헌원이 잠잠해지자 백아는 아범을 변호하는 말을 조금 더 늘어놓았다.

“그냥 맞춘다고만 하던걸.”

잠든 공주에게 입을 맞춘 왕자는 잠에서 공주를 깨어나게 하고…… 아범과 어멈은 입도 맞추고 다른 곳도 맞추었을 거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보통은 배를 맞춘다고 지칭하지만 그런 관용구 따위 들어 본 적 없는 이 맹랑한 정인의 머릿속에선 좀 더 직접적인 곳을 맞춘 모양이었다.

백아의 발은 여전히 헌원의 사타구니를 거닐고 있었다. 적나라한 촉감에 헌원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범은 나중의 일이고 정인께 답부터 해야 했다.

아니, 감사해야 하는 건가.

백아가 문지르는 대로 서서히 일어서는 양물의 감각에 헌원은 쓴 미소를 머금었다.

백아가 엿들었다니 아범과 어멈에게 큰 잘못은 없다. 그저 평소처럼 신변잡기를 주워섬기다 백아에게까지 흘렀을 터다. 이 집안의 다음 안주인인 백아의 일거수일투족이 가솔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백아가 이틀이나 어머님과 바느질을 하였으니 이야기가 나올 만도 하고.

되레 덕분에 백아가 헌원은 짐작조차 하지 못한 유혹을 던진 격이었다. 내일은 송아지라도 한 마리 잡으라 할까. 하나 그 전에.

헌원은 손을 내려 복사뼈가 도드라진 발목을 잡아챘다.

“여기 말입니까?”

헌원은 사타구니를 문지르는 백아의 의도를 짐짓 모른 체하며 백아의 발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발톱이 가지런한 엄지발가락을 덥석 물었다. 놀란 백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아니. 거기 말고요, 헌원.”

백아는 손까지 내저으면서도 정작 헌원이 쥔 발에는 힘을 주지 않았다. 그 모습이 내심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헌원은 물러나는 대신 백아의 발가락 사이로 혀를 넣었다.

발가락 사이의 여린 살을 혀로 쿡쿡 찌르듯 문지르자 백아가 간지러운지 웃음을 흘리며 발가락을 움츠렸다. 움츠린 발가락에 혀를 감아 접은 틈새로 파고들자 백아는 발가락을 움찔거리다가 힘을 뺐다.

항복을 받아 낸 헌원은 발가락 하나하나를 백아의 혀를 희롱하는 양 문지르고 감아 올렸다. 가늘게 뜬 눈 사이로 백아의 양물이 힘을 얻는 것이 보였다.

헌원은 한참 후에야 백아의 발을 놓아주었다. 백아의 발은 헌원의 타액으로 온통 젖어 있었다.

헌원은 이번엔 백아의 발바닥 한가운데 여린 살을 혀를 내밀어 핥았다. 간지러워 움찔거리는 발에 제 입술을 묻었다. 잡아먹을 것처럼 이로 긁기도 했다. 백아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으응…….”

“싫은가요?”

“그건 아닌데…….”

자신이 싫은가 아닌가 진지하게 고민하며 답하는 모습에 헌원의 입에서 바람이 샜다. 저런 모습을 어찌 아니 예뻐할 수 있을까. 늘 어여뻤다, 헌원의 정인은.

백아는 헌원의 입김이 닿은 발가락을 움칫거렸다. 타액으로 젖은 살갗이 헌원의 날숨에 가볍게 소름이 돋았다.

헌원이 다시 발가락을 입에 넣으려 하자 백아가 다리를 물렸다. 무릎께를 짚었던 헌원이 손을 미끄러트려 다시 발목을 잡아채려 했으나 백아의 발은 그보다 먼저 헌원의 다리 사이에 자리해 있었다.

진득하게 발가락 사이를 애무하던 헌원의 혀처럼, 백아의 발가락이 헌원의 반쯤 일어선 양물을 매만지듯 문질렀다.

“거기 말고, 헌원.”

백아의 의도야 눈치챈 지 오래였으나 헌원은 짐짓 모른 체를 했다. 제 양물을 짓이기려는 것처럼 문지르는 백아의 발을 다시 감싸 쥐고 헌원은 웃는 낯으로 백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제게 닿은 백아의 몸은 여기밖에 없습니다, 백아.”

“으으응!”

헌원이 계속 모른 체를 하자 백아는 금세 부풀어 오른 볼을 하고 도리질을 했다. 좁아진 미간과 찡그린 눈이 헌원은 마냥 사랑스럽기만 했다. 헌원을 보채는 정인이 어찌 사랑스럽지 아니할까.

백아가 발가락에 옷고름을 감아 헌원의 허리춤 매듭을 풀어냈다. 발가락 사이에 비단으로 된 긴 끈이 스르르 미끄러졌다. 의도한 듯 의도하지 않은 행동들에 헌원의 숨이 거칠어졌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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