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단이에겐 절대, 절대 비밀이에요. 단이가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고 했어.”
백아는 헌원에게 거듭 강조를 하며 비밀을 다짐했다. 단이가 그리 눈에 불을 켜고 입단속을 한 것은 헌원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는데도. 제 정인은 그저 단이에게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 생각하며 헌원의 귓가에 그 앙증맞은 입술을 가까이 하고 속내를 줄줄 불었다.
그래서 헌원은 조금 속이 상했다. 어린 나이부터 옆자리가 자연스러워 저를 연애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내심 기대하는 마음이 없진 않았다.
머리가 굵어지면 저를 봐 주겠거니 하며 기다렸는데 아차 하는 사이 백아는 먼 곳을 보고 있었다.
저어하는 기색도 없으니 저는 백아의 왕자님 후보에도 들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이를 어찌 구슬리누.
울적한 마음으로 백아를 보는 헌원의 시야에 갑자기 백아가 다가왔다. 속이 타 말라 버린 입술에 물기를 가득 머금은 촉촉한 입술이 닿았다.
자연스레 치열을 가르며 섞어 오는 혀는 이제 제법 능숙해져 있어 입술을 마주하는 헌원을 아찔한 황홀경으로 이끌었다. 이제껏 뇌리를 가득 채웠던 고민과 근심은 삽시간에 어디론가 흩어졌다.
“감사 인사예요, 헌원.”
이래서 헌원은 미워하거나 원망할 수가 없다. 언제나 감사만이 온 마음을 채운다. 의도하지 않아도 백아의 모든 행동은 헌원을 기쁨으로, 행복으로 충만하게 했다.
“에그머니!”
양손으로 눈을 가리고 고개를 수그리는 단이를 눈짓으로 물렸다. 헌원은 여전히 입술을 마주한 채로 백아를 번쩍 들어 올렸다. 자연스레 목에 팔을 감아 오는 백아를 침상에 눕히고 앞섶에 매달린 다섯 겹의 매듭을 풀어내니 눈을 뜬 백아의 눈이 의아함을 담았다.
“오늘은…….”
“백아가 제 뜻을 잘 헤아려 주시니 응당히 누리셔도 될 기쁨입니다.”
궤변이다. 헌원의 말은 온통 궤변이었다. 그러나 백아에겐 그것이 세상 올바른 가치와 진리였다. 아무런 의구심 없이, 헌원의 말이니 당연히 옳은 거라 받아들이는 백아의 미소가 헌원은 기쁘고도 서운했다.
이 때문에 헌원이 백아의 후보에 들지 못한 것이리라. 응당히 거기 있는 게 당연한 사람이라. 새롭고 설레는 사람은 되지 못할 거라서. 헌원에게 백아는 늘 설레는 사람일진대.
“으응, 아직 다 들어온 거 아니죠?”
아직 개화하지 않은 백아의 몸은 여리고 보드라웠다. 준비되지 않은 백아의 몸에 부담이 갈까 천천히 진입하면 백아는 항상 저 물음을 던졌다. 백아의 안은 늘 좁디좁아 헌원을 품기엔 모자랐으나 백아는 헌원을 밀어내지 않았다.
“이제, 삼분지 일 정도. 버겁습니까?”
대답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대답이 좋아 헌원은 항상 같은 질문을 하곤 했다. 백아는 이제는 제 대답을 알지 않느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헌원은 침상 위로 흐트러지는 머리칼을 매만졌다.
“아니, 이 즐거움이 짧을까 저어되어.”
백아는 천천히 아래가 차오르는 감각을 즐거움이라 말하며 즐겼다. 처음엔 낯선 이물이 주는 통증에 울먹이던 백아는 오래지 않아 그 이물이 주는 쾌락을 깨우쳤다. 백아는 그 감각을 음미하며 곧잘 헌원에게 감상을 이야기하곤 했다.
헌원이 어디를 찔러 올릴 때 좋았어요, 하고 상기된 낯으로 종알거리기도 하고 물러날 때엔 서운한 낯으로 칭얼대기도 했다. 어느 아침엔 밤새 헌원으로 가득 차 있던 내부가 비어 버리니 허전하다며 천진한 낯으로 속삭여 헌원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리고 백아는 꼭, 칭얼거리듯 한마디를 덧붙였다.
“헌원의 양물은 너무 커.”
제 딴엔 입이나 속으로 쉽게 품지 못함을 떠올리며 아쉬워하는 것이지마는, 정인께서 하시는 칭찬에 헌원이 기꺼워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
그럴 때마다 헌원은 저를 품은 정인께서 한껏 기쁨에 취하실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해 그 몸을 쾌락으로 이끌었다. 희디흰 피부가 발갛게 물들도록 백아의 몸을 달궈 놓았다.
제 안에 자리한 헌원의 양물을 만끽하던 백아는 빠져나갈 땐 아쉬워하고 들어갈 땐 한껏 반기며 ‘좋은 것’을 즐겼다. 그 모습에 헌원이 속도를 높이면 헌원을 있는 힘껏 끌어안고 듣기 좋은 교성을 내지르며 헌원에게 감겼다.
“그만, 아흥, 헌원, 그만!”
절정에 다다른 백아가 사정을 하면 헌원이 자리한 내부도 조여들었다. 그 압박을 가르고 헌원이 더욱더 몰아치면 백아는 절정 중의 절정에 도달하여 이번엔 맑은 물을 토해 냈다. 사정 전의 끈적함도, 사정액의 혼탁함도 없는 맑은 물이 백아에게서 뿜어져 나올 때에야 헌원도 백아의 안에 자신을 깊게 파묻고 힘껏 정을 뿜어내었다.
“하응, 흐읏.”
헌원의 욕망이 담긴 뜨거운 정을 받은 백아는 늘 만족한 교성을 흘렸다. 끝까지 다다랐던 절정이 지나고 나면, 참았던 숨을 터트리며 거칠게 들썩이면서도 백아는 헌원과 눈을 맞추며 웃었다. 헌원은 그 시간이 특히 행복했다. 곧 다가올 시간이었다.
“제가 곁에 있는 것으로는 부족합니까?”
문득 떠오른 서운함을 한숨처럼 흘려 보지만 한껏 절정에 취한 백아에겐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성감을 주체하지 못해 가로젓는 고개가 마치 저를 거절하는 것 같아 헌원은 속이 쓰렸다.
오늘은 헛헛한 마음에 몰아붙인 것이 과했는지 절정에 달한 백아의 몸이 쉬이 늘어졌다. 바로 잠이 들 것처럼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밭은 숨만 연거푸 내뱉었다. 연결된 아래에 가해지는 압박이 조금은 약해져 헌원은 슬쩍 움직여 상체를 낮추며 백아에게 밀착했다.
양팔과 양다리로 백아를 속박하고 날숨마저 입 안에 가두었다. 백아는 헌원의 입 속으로 신음을 흘리며 나른한 움직임으로 헌원에게 팔을 감았다. 반쯤 뜬 눈과 마주친 시선에 백아는 그제야 헌원을 바로 보며 미소를 지었다. 헌원은 그 영롱한 눈동자가 눈꺼풀 아래로 사라질 때까지 백아의 미소를 눈에 담았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제 품에서 어린아이로 남아 계시면 좋을 텐데요.
헌원은 이뤄지지 않을 바람을 속삭여 본다.
2
오늘은 백아의 기상이 늦었다.
평소라면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헌원의 기척에 백아도 잠에서 깨어 품에 파고들거나 슬쩍 뜬 눈으로 미소를 보여 주거나 하는 아침이 일상이었다.
그러나 금일 아침의 백아는 헌원이 눈을 꼭 감은 백아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아침의 찬 기운에 냉기라도 스밀까 이불을 여며 주는 동안에도 눈을 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난밤은 백아가 침소에 돌아온 시간이 어중간하여 이야기책은 읽지 않았다. ‘좋은 것’을 하다 깊은 밤에 잠들지도 않았다. 백아가 정 부인이 계시는 안채로 건너가 꽤 늦은 시각에서야 침소로 돌아온 까닭이었다.
침상에 눕자마자 잠들어 얼굴도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다. 백아가 없어 무료했다며 말이라도 걸어 보려던 차에 곤히 잠든 숨소리가 들려 헌원도 마지못해 잠을 청했다. 한데 아침에마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일어나려니 괜스레 마음이 헛헛했다.
약간의 서운함과 함께 드는 마음은 걱정이었다. 고작 안채를 돌아다녔을 뿐인데도, 밤늦은 시각까지 돌아다닌 백아가 몸이라도 상하였나 싶은 것이었다.
고뿔이라도 걸렸나 하여 이마를 짚어 보니 열은 없었다. 하긴, 어머님이 백아가 열감을 보이는데 잡아 둘 분은 아니었다.
되레 어머님의 도닥이는 손길이 아쉬운 백아가 괜히 헌원과의 작은 이야기를 주워섬기며 시간을 보냈을 터였다. 어머님과 백아가 이야기꽃을 피울 때면 아버님마저 안채에 들어가시지 못할 때가 많았다. 도란도란 들려오는 정다운 대화에 문 앞에서 서성이셨을 아버님을 떠올리니 절로 웃음이 비어졌다.
소세를 먼저 하고 백아가 일어났나 보려는데 단이가 웬 꾸러미를 들고 들어왔다.
“무엇이냐.”
“부인 마님께서 작은 마님께 주라 하셨습니다.”
“어머님께서?”
“작은 마님께서 놓고 가셨답니다. 지난밤에 보내시려 했는데 밤이 늦어…….”
“놓고 가거라.”
“예.”
탁자 위에 놓인 꾸러미는 반짇고리 함이었다. 겉을 감싼 비단을 살짝 헤쳐 보니 칠보와 은으로 된 구슬로 면마다 장식한 팔각의 함은 유명한 칠보 장인의 작품이었다.
가는 은사로 형태를 잡고 사이사이 오색의 유약을 채워 넣어 구운 칠보 장인의 작품은 일 년에 고작해야 열 점 안팎의 작품을 내는 데다 주로 황궁에 진상되는 터라 돈을 주고도 구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큰누님을 통해 구하신 겐가. 얼마 전 어머님께서 입궁하셨던 게 기억이 났다.
헌원은 정 부인의 반짇고리 함을 떠올렸다. 옻칠한 소박한 함은 모서리가 닳아 반질반질했는데 정 부인이 성혼하기 전부터 쓰던 물건인 탓이었다.
이 승상부터 큰누님, 작은 누님, 헌원까지 좋은 함을 볼 때마다 구해 와 정 부인께 드렸으나 정 부인은 귀한 함들은 부담스럽다며 여전히 그 함을 쓰고 계셨다. 남만에서 온 상아, 북적의 비취, 서융 산의 벽옥으로 장식된 그 함들은 정 부인의 침소에 곱게 놓여 있기만 했다.
헌원은 괜스레 비단 자락을 만지작거렸다. 본인은 그러하셔도 주신 것은 또 가히 보물이라 할 만한 물건이라. 백아를 위해 어렵게 구해 온 물건이건만 백아가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 뻔하여 조금 염려스러웠다.
풀어 보는 건 주인인 백아가 해야 할 일이라 헌원은 함에서 손을 떼고 침상 쪽을 살폈다. 아직 단잠에 빠져 있는지 백아는 기척이 없었다. 헌원은 살그머니 다가가 침상에 걸터앉았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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