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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원고담-5화 (5/66)

5화.

숨이 새어 나오는 입술 사이로 혀가 침범했다. 가지런한 치아가 살짝 열리며 안으로 미끄러지는 혀를 받아들였다. 수십 번 반복해 익숙해진 입맞춤이었다. 얽어 오는 혀의 움직임이 제법 매끄러웠다.

탁.

헌원의 입술이 백아의 입술을 완전히 덮어 버리자 작게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헌원은 눈으로만 웃었다. 눈을 감은 정인은 눈치채지 못하신 듯했다.

단이의 눈치는 이럴 땐 제법 도움이 되었다. 백아에게 으름장을 놓은 것은 주의를 시켜야 하겠지만, 그것이 꼭 금일일 필요는 없다. 나름은 백아가 부모님께 꾸중을 들을까 염려한 행동이라 크게 혼을 낼 일도 아니었다.

그저 주의만 주는 것이라도 단이는 납작 엎드릴 테니 백아가 보지 못할 때에 해야 했다. 마음 여린 백아는 단이를 꾸중하는 제 모습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눈에 눈물을 달 터이니.

단이에게 한소리 할 생각을 다음으로 미루며 헌원은 지금의 황홀경에 집중했다. 한껏 욕심을 내어 촉촉하고 말캉한 백아의 입술을 마음껏 음미했다.

“으응…….”

작은 머리통에 달린 앙증맞은 입술은 다홍빛이 도는 붉은색이 선명하고 경계가 분명하여 피부가 흰 백아의 인상을 또렷하게 했다. 덕분에 표정이 확실히 드러나는 입술은 백아가 미소를 지을 때면 미려한 호선으로 헌원의 시선을 온통 잡아끌었다.

헌원은 늘 지저귀는 새처럼 이야기하는 백아의 입술을 넋 놓고 바라보지 않으려 노력해야 했다. 하여 백아와 시선을 맞추면 헌원을 보며 빛나는 그 눈빛에 넋을 놓아 버려 헌원의 노력은 거의 매번 쓸모가 없어졌다.

어렸을 적에 헌원은 백아의 이마에 수도 없이 입맞춤을 했더랬다. 그러면 백아는 흙 묻은 손을 헌원의 양 뺨에 올려 유모를 기겁하게 했다. 헌원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냥 행복했다.

문득 지금 맞닿은 입술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했다. 헌원은 혀를 내어 백아의 입술 선을 더듬었다. 어지간한 감각으론 음미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늘게 패인 입술의 주름을 혀끝으로 섬세하게 덧그렸다.

백아는 간지러운지 입술 사이로 웃음을 흘렸다. 헌원은 그 웃음마저 아까워 입술을 더욱 진하게 마주했다.

촉…… 촉…….

물소리가 날 때마다 내뱉는 숨이 거칠어졌다. 잠깐의 틈도 아쉬웠다. 헌원은 숨을 쉬려 떨어지는 백아의 입술을 다시금 잡아챘다.

백아 또한 열중한 눈으로 열렬히 입술을 마주했다. 피부가 얇아 예민한 백아의 입술이 도톰하게 부어올랐다. 주름이 사라진 입술은 뜨거운 열기를 내었다. 헌원은 무더운 불볕더위에도 늘 그 열기가 기꺼웠다.

오전 내내 부어오른 입술로 조잘댈 백아를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헌원은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한 채로 백아의 입술을 탐했다.

감았던 눈을 슬쩍 떠 보니 백아가 온 얼굴을 발갛게 물들인 채 헌원의 입맞춤을 받고 있었다. 내리깐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눈가마저 발갛게 열이 올라 있었다. 깜빡이는 눈가에 맺힌 작은 이슬마저 사랑스러웠다.

헌원은 백아가 숨이 막혀 자신의 가슴을 두드릴 때까지 깊은 입맞춤을 하고 떨어졌다. 물기가 남은 입술만 제외하고 평소와 다름없는 헌원과 달리 백아는 잔뜩 붉어진 뺨과 부어오른 입술을 하고 색색 밭은 숨을 내쉬었다. 헌원은 짓궂게 미소 지었다.

“이런 걸 말한 겁니다.”

“하지만 헌원이……!”

모든 곳에 호승심이 있는 백아는 성공했다 여겨 득의양양했던 ‘깊은 입맞춤’이 틀렸다는 소리에 볼을 부풀렸다.

백아는 ‘깊은 입맞춤’을 하려 했다. 헌원이 입을 열지 않아 입술만 마주한 거다. 그러니 백아의 탓이 아니다.

부아가 난 백아의 속내가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헌원의 눈엔 마냥 사랑스러운 표정이었다. 헌원은 백아의 부아가 더 커지지 않도록 애써 웃음을 삼켰다.

“압니다. 이건 사죄입니다.”

백아가 하려던 일을 헌원이 방해하여 하지 못한 셈이다. 헌원은 기꺼이 그 사죄를 청했다. 헌원의 사과에 백아는 잠시 고개를 기울였다가 이내 다시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죄는 받아들일 테니 이젠 헌원이 감사 인사를 해 봐요.”

부은 입술을 하고 백아가 그렇게 말했다. 참지 못한 헌원이 실소를 흘렸다. 바로 답해 오지 않는 헌원의 모습에 백아는 다시 심통 난 낯을 했다.

발갛게 달아오른 입술과 볼이 한껏 부풀려지자 헌원은 참지 않고 백아에게 고개를 숙였다.

“흠, 흠.”

다시 백아를 품에 안고 입술을 가까이 하던 헌원은 밖에서 나는 단이의 헛기침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지체한 등청을 아주 잊어버릴 뻔했다. 헌원은 앞선 입맞춤으로 부풀어 오른 백아의 입술에 도장을 찍는 정도로 아쉬움을 달래고 입술을 뗐다.

입술과 함께 떨어지는 눈에서 아쉬움이 뚝뚝 흘렀으나 헌원은 애써 자신을 다잡았다.

어디까지나 자신은 출근 중이었고 더 지체되면 밤에 잠든 백아와 마주하게 될 터다. 자는 이에게 인사를 할 수야 없지 않은가.

헌원은 상기된 백아의 얼굴을 뒤로하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 * *

최근에 헌원이 읽어 주는 것보다 이르게 내용을 이해하는 눈치여서 한번 읽어 보라 하였더니 제법 막힘이 없었다. 책을 펴기는커녕 겉장을 보는 것마저 질색하던 이가 읽는 데에 주저함이 사라졌다.

“이제 슬슬 글자가 눈에 들어오십니까?”

헌원의 품에 기대앉은 백아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영민하십니다, 백아.”

헌원의 칭찬에 어깨를 편 백아는 조금 전부터 흘깃거리던 주전부리에 당당하게 손을 뻗었다. 백아는 먹기 좋게 잘라 놓은 사과에 손을 뻗다가 마음을 바꾸었는지 붉고 푸른 색을 넣어 꽃 모양으로 곱게 빚은 당과를 집어 들었다.

헌원이 핀잔을 줄 리도 없건만, 책을 읽을 때는 지레 눈치를 본 모양이었다. 헌원은 빙그레 웃으며 백아의 귓가에 가볍게 입맞춤했다. 완벽하다기엔 어렵지만 장족의 발전이었다.

모르는 문자는 대충 얼버무리며 비슷한 단어를 뇌리에서 꺼내 뜻만 맞추었지마는, 기실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엔 그 방법이 정석이었다.

괜히 의욕이 넘쳐 모르는 문자를 일일이 찾아보며 시간을 보내다간 흥미마저 잃어버리곤 한다. 지금의 백아는 흥미를 유지하는 게 더 중요했다.

“으응, 거기 말고.”

당과가 아직 입 안에 있는지 백아의 말투가 어눌했다. 귀를 만지작거리며 배시시 웃는 백아의 뜻을 알아챈 헌원은 칭찬의 의미로 입술을 마주했다. 백아는 입 안에서 굴리던 당과를 혀를 섞어 오는 헌원에게 건넸다. 헌원은 얼결에 당과를 입에 물고 놀란 눈으로 백아를 보았다.

“사과는 물고 있으면 맛이 없어져요.”

헌원에게 단물이 빠진 사과를 건네기 싫어 당과로 바꾸어 물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헌원은 조금 전, 사과 앞에서 멈칫했던 백아의 손을 떠올렸다. 당과를 집어 든 이유가 그것이었던가.

평소 헌원은 단것을 즐기지 않았다. 침소에 마련된 주전부리는 대부분 백아를 위한 것이었다. 백아의 대답을 들은 헌원은 미소를 지으며 물고 있던 당과를 맛있게 넘겼다.

자신이 좋아하는 당과를 헌원도 맛보길 원하는 백아의 마음이 감미로웠다.

“그 이야기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습니까?”

“으응.”

백아는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턱에 닿아 오는 고운 결의 머리카락이 간지러웠다. 견딜 수 없어진 헌원은 다시 한 번 백아의 볼에 입맞춤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볼이 아닌 입술이 닿아 와 헌원은 다시 놀란 눈을 했다. 헌원의 기척에 백아가 고개를 돌린 탓이었다. 백아는 헌원과 입술을 마주한 채로 입꼬리를 올렸다.

잠시 후 입술을 뗀 백아는 헌원과 눈이 마주치자 눈을 가늘게 접으며 웃었다.

“이건, 작은 감사 인사.”

백아의 머릿속은 훤한 헌원이었지만 내심 짐작을 하면서도 부러 물었다.

“‘작은’은 무언가요, 백아?”

“감사 인사로 하면 오래 걸리잖아요. 나는 이야기가 궁금해요, 헌원.”

절충안, 또는 타협안. 감사 인사를 하고픈 마음과 뒷내용을 마저 알고 싶은 마음 둘 다를 포기하지 못한, 아니 선택한 백아의 결론이었다. 너무도 백아다운 결론이라 헌원은 크게 웃고는 다시 입맞춤을 돌려주었다.

“한 번은 아쉬우니까요.”

헌원의 말에 백아의 답례, 다시 헌원의 답례. 가벼운 입맞춤이 긴 입맞춤을 할 시간만큼 이어졌다.

잠시 후에야 헌원은 손에 든 이야기책을 떠올렸다. 헌원은 백아가 울상이 되기 전 다시 작은 감사 인사를 되돌려주고 재빠르게 읽던 이야기를 마저 읽어 내렸다. 다시 입을 맞추려던 백아는 헌원의 뺨에 하는 거로 인사를 대신하곤 헌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백아의 마음이 달갑기도 하고 금세 는 글 읽기가 기특하기도 하여 한껏 칭찬하며 기운을 북돋워 주었더니 흥이 난 모양이었다. 다음 날 백아는 헌원이 등청한 사이에 그날 밤에 읽어 주려 했던 이야기를 먼저 읽어 버렸다.

지난밤 책을 다 읽은 후에 또 입술을 맞대었다. 방해할 것이 없어지자 백아는 양껏 헌원을 입술에 담았다. 헌원 또한 호응하여 백아가 원하는 만큼 돌려주었다.

헌원은 밤이 깊어져 백아의 눈에 졸음이 가득해질 때까지 다디단 입맞춤을 하고 떨어졌다. 헌원은 자신만큼 아쉬워하는 백아의 주의를 돌리며, 상을 미끼로 마무리를 지으며 예고를 했었다.

“다음은 좋아하는 왕자님이 나올 겁니다, 백아.”

슬쩍 운을 띄워 둔 것이 호기심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백아는 대문 밖까지 헌원을 마중 나와 기다리다가 헌원이 들어서자 냉큼 달려와 헌원의 앞에 섰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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