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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로 회귀했다 나 남잔데-95화 (95/103)
  • 00095 [외전] 이세계는 처음이죠, 이스마힐?  =========================

    “라플리. 이것을 대마법사에게 보이도록 하여라.”

    이스마힐의 명을 받고 라플리는 곧 라크레아에게 그것을 보여주었다.

    이스마힐은 라크레아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제발 그것이 좌표가 맞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폐하. 이것은 좌표이옵니다. 이것이 폐하께서 가시고자 하는 곳의 좌표인 것 같사옵니다. 두란트 대공의 말이 맞는 것 같사옵니다.”

    라크레아가 말하자 라플리는 곧 의심의 눈초리로 두란트를 바라보았다.

    차원이동에 대한 말을 누구에게도 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두란트가 갑자기 좌표를 가지고 나타난 정황이 심히 의심스러웠던 것이다.

    그리고 이스마힐이 잘못된 좌표로 차원이동을 해서 혹시 돌아올 수 없게 된다면 제국은 다시 두란트의 손아귀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라플리는 더욱 긴장했다.

    이스마힐도 합당한 의구심을 품었다.

    두란트는 자기가 그런 의심을 받는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라크레아를 보고 말했다.

    “이 좌표로 그대가 먼저 차원이동을 해 보시오. 그리고 그곳에 대응 마법진을 그려놓고 돌아온다면 내가 사례하겠소.”

    모두가 숨을 죽인 채 그의 말을 들었다.

    두란트가 말을 마쳤지만 라크레아의 대답이 나올 때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좌표라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어디의 좌표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었다.

    자기가 왜 그렇게 경솔하게 말을 해 버렸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너무 늦기 전에 정정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하필 두란트가 먼저 말을 해 버린 것이다.

    “대마법사님만 간다면 그곳으로 간 것이 맞는지 확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안전을 위해서라도 제가 같이 가는 것이 좋을 듯 하옵니다.”

    제르반이 나서자 라크레아와 두란트는 모두 수긍했다.

    라크레아도 뜻을 굳혔다.

    이렇게 된 이상, 가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일단 마음을 정한 후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나는 충분했다.

    마법사들 중에는 그것이 두란트의 농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감히 그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의심을 품었던 사람들도 헤르만 제국의 황제와 그의 신하들과 호위무사들의 표정을 보면서 조금씩 믿음을 가졌다.

    어떤 상황에서도 냉철함을 잃지 않고 지금까지 제국의 부흥을 이끌어온 자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그들 역시 이제는 대마법사의 무사 귀환만을 바라고 있었다.

    라크레아는 마법진을 그리고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마법진에서 빛이 쏘아졌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함성 속에서 라크레아와 제르반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때부터 이스마힐과 라플리는 초조하게 그들을 기다렸다.

    두란트는 표정이 없는 얼굴로 마법진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시간이 한참이나 지나도록 라크레아와 제르반이 돌아오지 않자 이스마힐은 점점 초조해졌다.

    괜한 고집으로 자기가 제르반과 대마법사의 목숨을 헛되이 버리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마저도 들었다.

    이스마힐이 차마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서성거리고 있을 때였다.

    마법진에서 다시 빛이 쏘아지더니 그곳에 라크레아와 제르반의 모습이 나타났다.

    “돌아왔구려! 제르반. 돌아왔구나. 무사한 것이냐.”

    이스마힐은 제르반을 향해 달려갔고 제르반은 황송하다는 듯이 허리를 숙였다.

    “다녀왔사옵니다. 폐하.”

    “그래. 그곳은. 해민이 말한 대로더냐.”

    제르반 역시 해민에게서 그곳에 대한 얘기를 가끔 들었던 터라 이스마힐과 비슷한 정도로는 그곳에 대해 상상할 수가 있었다.

    제르반의 눈에 웃음이 지어졌다.

    “어서 말하지 않고 무얼 하느냐.”

    “폐하. 그곳은 참으로 신기한 곳이었사옵니다.”

    “아름답더냐. 멋지더냐.”

    “제가 살고 있는 곳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절실히 깨닫게 해 주는 곳이었사옵니다. 폐하.”

    제르반의 말에 이스마힐은 실망한 듯 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하더냐.”

    “소신은 늘 마음 한 구석으로, 황비 마마께서 그곳을 그리워할 거라고 생각했사오나 그곳을 보고 오니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사옵니다. 헤르만 제국이 그곳보다 훨씬 아름답고 풍요롭사옵니다.”

    “그리 느껴지더냐. 대마법사. 그대가 보기에는 어떠하였소.”

    “신기하였사옵니다. 마나는 이곳보다 훨씬 적었사옵니다. 그래서 휴식을 취해도 마나가 빨리 채워지지 않아 돌아오는데 시간이 걸렸사옵니다.”

    좋더라는 말은 없었다.

    잔뜩 기대하고 있던 이스마힐은 조금 힘이 빠졌지만 이내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곳이 황비가 살던 곳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황비에게 다시 그곳을 보여줄 것이다. 황비는 그곳에서 좋은 방식으로 떠나지 못했다. 나는 황비가 좋은 기억을 갖고 그곳을 마음에서 놓아주길 바란다.”

    이스마힐은 그곳에 모여있던 신하들에게 말했다.

    “그리 될 것이옵니다. 폐하. 그곳에 대응 마법진을 만들어두었으니 저희가 돌아온 것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돌아오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라크레아는 자신이 보고 온 세계에 대한 흥분감으로 아직도 들떠 있는 것 같았다.

    라플리만은 여전히 두란트를 의식하고 있었다.

    황제 폐하가 자리를 비운 동안 두란트가 무슨 짓을 할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스마힐은 그런 라플리의 마음을 짐작하고 말했다.

    “염려할 것 없다, 라플리. 우리가 아무리 지키려고 해도 신이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그것을 지킬 수 없느니라. 신께서 두란트에게 좌표를 주셨다면 우리가 두란트에게 숨기려고 해도 신께서 알게 하실 것이다.”

    라플리는 이스마힐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두란트는 자신의 충정을 믿어달라느니, 자기는 아무 것도 도모하지 않을 거라느니 하는 말을 하지도 않은 채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스마힐은 스베인과 아르마리안을 불러 자신의 공백을 채우라 당부했다.

    해민만은 그때까지도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해민이 이스마힐과 함께 마법진 위로 올라가고 그들이 올라선 마법진에서 빛이 쏘아지는 그 순간까지도, 해민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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