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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로 회귀했다 나 남잔데-93화 (93/103)
  • 00093 [외전] 이세계는 처음이죠, 이스마힐?  =========================

    “9써클 마법사라고 했느냐.”

    “예, 폐하. 헤르만 제국의 지존을 알현하나이다.”

    이스마힐은 자신의 앞에서 머리를 조아린 마법사를 한동안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동안 이스마힐은 마법이나 흑마법에 대해서 거의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움베르트의 영향이기도 했다.

    제국이 한 번 움베르트로 인해 큰 일을 치렀던 경험이 있었던 터라 그 비슷한 세력이 황실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도록 철저히 배제하고 있었다.

    그리고 헤르만 제국은 대륙의 다른 여러 나라와 달리 유일신을 섬기고 그 교리를 숭배해 왔기 때문에 마법을 배척해 왔었다.

    마법사를 양성하기 위해 아카데미를 세우고 능력이 좋은 마법사는 황실이나 왕국에서 등용해 기회를 주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헤르만 제국에서 마법사들이 육성되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다가 이국의 대마법사 중에 차원이동 마법을 할 수 있는 마법사가 있다는 말을 아르마리안으로부터 우연히 듣고 이스마힐은 호기심이 생겼다.

    혹시 차원이동을 해서 해민이 살던 곳에 같이 가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가는 생각이었지만 그 생각이 자주 들더니 나중에는 거기에 사로잡힐 정도가 되었다.

    이스마힐이 그 생각을 골똘히 할 때마다 해민은 이스마힐에게, 무슨 생각을 그리 열심히 하시냐고 했지만 이스마힐은 대답을 피할 뿐이었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고 한다면 해민에게 큰 선물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할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리 말을 했다가 가지 못하게 되면 해민의 상심이 클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스마힐은 해민에게 일절 함구를 하고 대신 라플리와 그 일에 대해서 상의했다.

    라플리는 이스마힐의 말을 듣고 놀란 눈치였다.

    황제 폐하께서 황비 전하를 크게 아낀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생각까지 갖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폐하. 꼭 그리 하셔야 하겠는지요. 소신은 폐하께 다시 생각해 주시기를 주청드리나이다. 황비 마마께 듣기로는...”

    라플리는 해민에게서 들었던 미래 세계에 대해서 얘기를 해 주었다.

    그곳에는 대부분의 나라에 왕도 없고 황제도 없고, 설사 왕이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명목상의 왕일 뿐 실제로 지금과 같은 권력을 가지지는 못했다는 설명도 했다.

    그것만 해도 황제 폐하에게는 큰 충격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곳에 사는 사람들이 지존을 어찌 대할지 라플리는 걱정이 컸다.

    라플리는 몇 번이나 이스마힐의 생각을 꺾고 싶었다.

    분명히 마음이 상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스마힐은 뜻을 쉽사리 굽히지 않았다.

    “그것은 전혀 상관 없다. 라플리. 그곳은 내 제국이 아니고 나는 그들의 주군이 아니다. 그들이 나를 공경하지 않고 내 명을 따르지 않는다고 내 마음이 상하겠느냐. 그렇지 않다. 그러니 그 일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하오나 폐하. 그곳의 생활을 전혀 모르시지 않사옵니까.”

    “해민은 자기가 의도하지 않은 순간에 이리로 온 것이다. 제대로 끝맺지도 못한 채.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말이야. 우리는 해민에게 빚진 사람들이다. 그렇지 않으냐.”

    “그것은, 소신도 그리 생각하고 있사옵니다만. 하오나 폐하.”

    “그대가 무엇을 걱정하는지는 알겠다. 그러나 짐은, 갈 수만 있다면 황비와 함께 그곳에 가보고 싶다. 그 후에 생기는 문제는 황비와 함께 풀어갈 것이다. 황비라면 능히 짐에게 힘이 되어줄 것이다. 그렇지 않겠느냐.”

    “폐하...”

    라플리는 폐하를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유독 폐하를 설득하는 것은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그래서 더 좋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황비 마마를 아끼고 제국민들을 아끼는 폐하이기에 그 마음을 거두시라는 설득만큼은 결코 성공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대의명분을 가진 설득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라플리는 결국 웃음을 지었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대마법사를 찾아내겠사옵니다.”

    라플리의 대답에 이스마힐은 그제야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부탁한다. 라플리. 그대는 짐을 너무 걱정한다. 짐은 어린 아이가 아니니라. 허나, 그대의 충심을 알기에 그대의 주청이 참으로 고맙다.”

    “송구하옵니다. 폐하.”

    격렬했던 논쟁은 그렇게 훈훈하게 마무리가 되었다.

    그렇게 해서 성사된 만남이었다.

    대마법사 라크레아는 소문으로만 듣고 있던 헤르만 제국에 오게 된 것을 반가워했다.

    대륙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진 나라였다.

    다스리는 영토의 면적도 넓었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제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큰지 라크레아는 알고 있었다.

    헤르만 제국이 늘 평화로웠던 것은 아니었고 주변에서 헤르만 제국에 침공을 감행한 적도 있었지만 그 시도는 언제나 수포로 돌아갔다.

    헤르만 제국의 제국민들은 황실에서 따로 병사로 차출하지 않아도 그들이 살아내던 삶을 잠시 내려놓고 모두가 스스로 나섰다.

    헤르만 제국에서 살던 사람들은 결코 이스마힐 황제가 아닌 다른 왕국의 폭정을 견딜 수 없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식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은 황제께서 베푸시는 선정에 대해서 늘 황공한 마음을 가졌고 자신들의 충심으로 그것을 갚아냈다.

    그런 헤르만 제국이었기에 외세의 침략은 번번이 성과 없이 끝이 나 버리고 말았다.

    이스마힐은 선하고 자애로운 황제였지만 헤르만 제국을 공격한 나라에 대해서는 일절 자비를 베풀지 않았고 공정하게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적극적으로 산정된 손해배상액으로 헤르만 제국은, 공격을 감행했던 나라의 영토 일부를 양도받았다.

    그리고 이스마힐은 친히 나서서 제국을 지켜내려 했던 제국민들에게 그 부산물을 넉넉히 나눠주었다.

    헤르만 제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공격을 했던 나라 때문에 오히려 헤르만 제국은 더욱 공고해지는 결과가 되었다.

    대륙의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눈과 귀가 있었다.

    그들은 헤르만 제국의 황제와 제국민들이 서로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알고 있었다.

    대륙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월등히 낮은 세금만 부담하면 되었기에 헤르만 제국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헤르만 제국은 늘 문을 열어두었다.

    라크레아도, 만약 기회가 된다면 헤르만 제국에서 아카데미를 세워 마법사들을 가르치며 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가져보기도 했었다.

    그러던 차에 부름을 받았으니 기쁘고 영광스런 마음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대륙에서 가장 강성한 나라의 황궁이라고 해서 엄청나게 화려하고 사치스러울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보기보다 훨씬 소박하고 검소한 외양에 처음에는 실망이 되었지만 라크레아는 곧 그것이 헤르만 제국의 방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존의 존귀함과 권위는 그런 구조물에 의해서 세우지 않아도 스스로의 존재로 증명되고 있었다.

    라크레아는 이미 라플리를 통해 얘기를 어느 정도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스마힐에게서 다시 한 번 이야기를 들었다.

    이스마힐은 한껏 기대를 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대마법사의 활약에 대해서는 많이 들었소. 이 일을 성사시켜 주기만 한다면 짐은 그대에게 헤르만 제국의 작위를 수여하려 하오.”

    제국의 작위라는 말에 대마법사는 어떤 작위인지 듣기도 전에 기분이 좋아졌다.

    헤르만 제국의 낮은 귀족이라고 해도 다른 왕국의 고위 귀족들이 함부로 하지 못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었다.

    그러나 걱정되는 것이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작위를 주지 않는다고 해도 호의로라도 황제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좌표를 알지 못하는 곳으로 차원 이동을 한다는 것은 아무리 대마법사인 그라고 하더라도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라크레아는 황제 폐하가 더 꿈에 부풀기 전에 진실을 알려드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폐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이스마힐은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안 된다는 말만큼은 절대로 듣고 싶지 않았다.

    “황공한 말은 아뢰지 않으면 어떻겠소. 대마법사.”

    이스마힐이 진지하게 말했지만 라크레아는 굴하지 않고 진실을 털어놓았다.

    “폐하. 저에게 충분한 마나가 있다면 저는 마법진을 만들어 차원이동을 시켜드릴 수 있을 것이옵니다. 단. 가시려 하는 곳의 좌표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옵니다.”

    라크레아는 분명히, ‘충분한 마나가 있다면’이라는 전제 조건을 달았지만 이스마힐은 그 말이 가지는 의미를 알아듣지 못했다.

    라크레아도 따로 설명을 하지 않았다.

    마나의 문제가 해결이 되어도, 이미 좌표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없을 거라고 생각됐기 때문이었다.

    “좌...표라 하였소?”

    이스마힐은 라크레아가 하는 말을 아직 알아듣지 못했다.

    옆에 서 있던 라플리는 그 말을 알아듣고 뒤늦게 난처한 기색을 했다.

    “폐하. 본시, 마법으로 차원이동을 하려 하면 좌표가 있어야 하옵니다. 좌표가 없이 차원이동을 하면 어느 차원으로 이동하게 될지도 모르고 어느 곳으로 이동하게 될지도 모르옵니다. 운이 좋지 않을 경우,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차원이동이 잘못될 경우에...”

    라플리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냐.”

    이스마힐이 물었다.

    “그러하옵니다. 폐하. 좌표를 모르는 채로 차원이동을 하면 어느 곳에서 나오게 될지 모르는 것이옵니다. 그곳이 바닷속이 될 수도 있고 땅 속이 될 수도 있고 창공이 될 수도 있을 것이옵니다. 그곳에서 몸이 나타난다고 하면. 그 후에는 어찌 될지 생각해 보옵소서.”

    라플리의 말에 이스마힐의 얼굴에 근심이 서렸다.

    이국의 대마법사만 만나면 차원이동이 가능할 거라고 기대에 부풀어 있다가, 좌표 때문에 갈 수 없다는 말을 듣게 되자 실망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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