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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로 회귀했다 나 남잔데-90화 (9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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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비엔이 바보가 아닌 바에야, 어차피 대답을 얻지는 못하고 주먹만 얻어내는 질문을 계속 하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도 라비엔은 소리를 바락바락 질렀다.

    사람들은 신기하다는 듯이 라비엔을 응징했다.

    나중에는 몸이 마차 바닥으로 깔려버렸고 라비엔이 몸을 뒤집지 못하도록 여러 사람의 발이 라비엔의 등과 허리, 다리를 거칠게 누르고 걷어찼다.

    차라리 감찰부에 있는 것이 나았겠다는 생각이 일시적으로 들었다가 나중에는 라비엔의 머리도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감찰부에서 나를 놔 준 것은 사적인 응징을 당하도록 하려던 수작이었구나.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나를 넘기려고 그런 거였어!’

    라비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꿈틀거리는 라비엔의 얼굴 위로 검은 천이 떨어졌다.

    그것 때문에 라비엔은 더욱 답답해졌다.

    죽이려고 이러는 것인가.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철옹성에 숨어서 일을 꾸미기만 해 봤지 이런 일을 당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헤르만 제국 황후의 남동생이었고 이제는 황태자 저하의 외삼촌이 되는 자신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런 일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비명을 질러도 누구 하나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없었고 소리를 지르면 지를수록 그에게 쏟아지는 발길질은 더욱 거칠어졌다.

    입에서 침이 흐르더니 나중에는 비릿한 맛이 났다.

    누군가 악의적으로 머리카락을 쥐고 바닥에 박더니 피가 흘러 입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통증이 무서웠다.

    경험해보지 않은 것을 처음으로 겪는 그에게 모든 것이 무서웠다.

    라비엔은 울음을 터뜨렸다.

    소리를 내어 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자존심이 덜 상하거나 공포심이 덜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마차는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한참을 더 달렸다.

    한 시간은 족히 달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 긴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발길질을 하는 사람들이 처음보다 지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마침내 마차가 멈추었을 때 라비엔은 주위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럴 필요도 없었다.

    누구도 라비엔의 눈을 가리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다시는 살아서 이곳에서 나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그런 생각까지 들었을 정도였다.

    마차에서 내려 위를 올려다 보았지만 저택을 제대로 올려다볼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여기저기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 몇 사람이 더 다가왔다.

    그들 역시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것을 본 라비엔의 몸은 급속도로 굳어버렸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보았지만 저에게 호의를 베풀어줄 것 같은 사람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생긴 것은 달랐지만 그들에게 뿜어져나오는 분위기는 라플리의 쌍둥이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이제 어떻게 해?”

    누군가 말했다.

    생각지도 못한 미성이었다.

    게다가 아주 어린 것 같았다.

    “지하감옥으로 끌고 가는 게 좋은가?”

    이 자들은 자기를 그곳에 끌고 오면서도 계획을 세우지 않았던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이 모든 일들을 즉흥적으로 꾸몄다는 말인가 하면서 라비엔은 더욱 긴장했다.

    예측할 수 없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이 때로는 더 위험하고 불편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라비엔이었다.

    “지하에는 바람이 불지 않잖아.”

    그게 무슨 말일까.

    라비엔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라비엔을 제외한 사람들은 그 말을 알아들은 듯했다.

    “어쨌든 살려서 돌려보내기는 해야 되니까 이 옷은 더러워지면 안 돼. 옷을 벗겨라.”

    명령을 하는 사람이나 명령을 받는 사람들 사이에 어떤 위계 질서가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라플리가 말한 것처럼 그들은 서로를 형제라고 생각하면서 의지하고 연합하는 것 같기도 했다.

    차가운 손이 라비엔에게 닿았고 라비엔의 옷이 벗겨졌다.

    단순히 옷이 더러워지거나 상할까봐서 벗기는 것이라면 겉옷 몇 개만 벗기만 될 것 같았지만 시시덕거리고 웃으면서 마지막 한 장까지 남김없이 라비엔의 옷을 벗겨낸 사람들은 라비엔을 저택 앞 작은 광장의 한 가운데로 끌고 갔다.

    그곳에 설치된 구조물을 보기는 했지만 설마 자기를, 토비어스 가문의 계승자인 자기를 그곳에 묶는 파렴치한 짓을 저들이 저에게 할 거라고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자기는 헤르만 제국의 황제를 시해하라고 명령을 내렸던 사람이라는 자각 따위는 이미 라비엔의 머릿속에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한동안 그의 주위에서 왁자지껄하게 떠들어대던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져버렸을 때 라비엔은 처형당하는 죄수처럼 광장의 형틀에 묶여 있었다.

    한 두 시간이 지나면 풀어줄 줄 알았다.

    생각보다 가혹한 형벌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안심하기도 했다.

    두 팔이 위로 높이 들려 묶여있었고 두 발이 공중이 떠 있었지만 그 외에는 대단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채로 시간이 얼마간 지속되자 라비엔은 자기가 얼마나 큰 오해를 했던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야말로, 사신이 서서히 목을 죄어오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저를 거기에 둔 것을 잊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며 겁이 났다.

    라비엔은 소리를 질러댔다.

    사람들이 다시 자신의 존재를 기억해내고 자기를 찾아오면 그 후에는 더 험악한 일이 기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거였지만 라비엔은 그런 생각까지 할 정신은 없었다.

    라비엔의 소리를 듣고 그런 것인지, 아니면 원래 나오려고 했던 것인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왔다.

    말 없이 이루어지는 무지막지한 폭력.

    두 손목이 묶인 채 몸이 떠 있던 라비엔은 그 무자비한 폭력을 피하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당했다.

    “이제 슬슬 보내줘야지.”

    누군가 말했지만 라비엔은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설마 자기를 그냥 보내준다는 말인 건가 해서.

    이 꼴로 만들어 놓고.

    토비어스 가문의 장자를 이 꼴로 만들어놓고 보내줄 생각을 하다니 제정신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라비엔은 이들이 제정신이 아닌 것이 너무 고마웠다.

    “여기에서 있었던 일들은 누구에게도 말 하지 않겠습니다.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고 하겠습니다. 기억나는 게 없다고 하겠습니다!”

    라비엔은 마지막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왜? 못 봤어? 왜 못 봤어?”

    “어떻게 못 볼 수가 있어?”

    “안 보여?”

    “잘만 보는 것 같던데?”

    여기 저기서 한 마디씩을 거들었다.

    라비엔은 자기가 실수를 한 건가 하면서 그들의 눈치를 살폈다.

    “풀어서 데려다 주고 와.”

    누군가 다시 명령을 내리자 두어 사람이 다가와 라비엔을 풀었다.

    “내일. 시간을 맞춰서 네 발로 다시 여기로 와 있어야 될 거다. 내일도.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계속. 스스로 오지 않으면 우리가 찾아갈 거고. 그때는 너희 가문이고 너희 가문을 따르던 사람들이고 다 끝난다는 것만 알아둬.”

    낮고 굵게 울리는 소리가 번졌다.

    라비엔은 자기가 그곳에서 완전히 풀려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잠시 집으로 돌아가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다시 돌아와야 하는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근데 이 인간이 올까? 저 혼자 살 궁리 하기 바쁠 것 같은데. 가문이나 다른 사람들이야 어찌되건 상관 안 하고.”

    “올 거야. 오게 돼 있어.”

    무슨 자신감으로, 자기를 어떻게 안다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조금 전에 그 말을 한 사람을 보고 싶어졌지만 라비엔의 코 밑으로 무언가가 들어왔다.

    즙이 담긴 작은 약병 같았다.

    “쭉 들이마시라고.”

    라비엔의 한쪽 콧구멍이 꾹 눌렸다.

    입까지 틀어막혀져서 라비엔은 숨을 깊이 들이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순간 역하고 독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들어와 폐부까지 이르는 것 같아 라비엔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냄새를 맡고 싶지 않았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코로 들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마치 가시가 마구 달린 것으로 코를 쑤시는 것 같기도 했고 불이 붙은 것을 콧구멍 속으로 밀어넣어 그걸로 몸 속까지 태우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게 뭔지 궁금할 것 같은데. 네 아버지가 가져온 물건들이지. 헤르만 제국의 제국민들을 중독시키고 제 배를 불리려고 가져온 것들. 미안하게도 헤르만 제국에 들어온 건 모두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한 사람이 전부 사들였거든. 네 아버지는 장사를 제법 잘 했다고 생각했겠지만 정말 그럴까? 이제는 우리가 그 값을 다 받아낼 거거든. 너한테.”

    그렇게 말한 남자가 라비엔의 뺨을 톡톡 건드렸다.

    바로 눈 앞에서 목소리가 들렸는데도 그 남자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다른 쪽 코가 눌리고 지금껏 눌려있던 콧구멍이 뚫렸다.

    그리고 그곳으로도 강렬한 향이 들어왔다.

    라비엔은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점점 정신이 혼미해지고 통증도 사라졌다.

    자신의 몸이 부유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모든 걱정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더 이상 자신의 문제가 초조하게 느껴지지 않고 모든 집중력이 사라졌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제 몸이 이리 저리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마차에 태워져 돌아가고 있었지만 라비엔은 그 사실도 깨닫지 못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 라비엔은 자기가 자기 방에 돌아와 있는 것을 알았다.

    시중드는 자들이 그의 곁에 모여 있었다.

    이제야 정신이 드냐면서 가문의 중요한 사람들을 부르러 나가려는 사람들을 불러 세워놓고 라비엔은 시간이 얼마나 지난 것인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서둘러 몸을 추스르고 일어났다.

    “말을 준비하거라.”

    “이런 몸을 하시고 말이라니요. 대체 어딜 가신다고 이러시옵니까.”

    “잔말 말고 말을 준비시키거라.”

    “그러면 마차를 준비시키겠습니다.”

    퍽 소리가 나면서 라비엔의 주먹이 날아갔고, 시종의 몸이 바닥으로 나가떨어졌다.

    “죽고 싶은 것이냐. 죽여주랴!”

    잠시 후에 말이 준비되었다.

    몸에 슬슬 퍼지기 시작하는 통증 때문에 라비엔은 점점 더 예민해지고 있었다.

    “아무도 나를 따라오지 말거라.”

    라비엔은 그리 말하고 말에 올랐다.

    약 기운이 사라지는 순간 얼마나 끔찍한 통증이 제 몸을 장악하게 될지 상상하자 벌써부터 땀이 흐르고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일어설 것 같았다.

    덫에 걸려든 라비엔은 도망갈 생각도 하지 못하고 매번 그 길을 오갔다.

    몸은 점점 망가졌다.

    학대의 강도는 점점 더 높아졌고 몸의 일부는 괴사되었다.

    그러나 라비엔은 그 사실조차도 모르는 것 같았다.

    토비어스 가문의 사람들은 라비엔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온몸이 검푸른 멍으로 뒤덮이고 혈색이 말할 수 없이 나빠졌는데도 라비엔은 단 하나의 의지만을 가지고 움직이는 시체처럼, 눈을 뜨면 말을 타고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날을 기점으로.

    그는 더 이상 돌아오지 않았다.

    사라지기 전에 그의 행적이 워낙 기이했기에, 그리고 토비어스와 라비엔으로 인해 그들이 점점 궁지에 몰리고 있었기에 라비엔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고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라비엔이 아르마리안 후작 부인의 지하 감옥에서 약에 취한 채 오만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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