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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로 회귀했다 나 남잔데-88화 (88/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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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심스런 움직임은 이스마힐을 향했다.

    그게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지만 해민이 발견했을 때 이미 그가 이스마힐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 버린 바람에 소리를 지르지도 못했다.

    어둠 속에서 바람 소리를 내며 그의 팔이 들리는 순간이었다.

    이스마힐은 꿈결을 헤매는 듯, 침입자의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침입자의 팔이 이스마힐을 노리고 내려오는 순간 침입자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카란과 제르반이 장막으로 뛰어 들어왔다.

    이스마힐은 본능적으로 몸을 굴려 피했고 해민이 이스마힐에게 달려갔다.

    “으아아아아악, 놔라. 놔라, 이놈들아!!”

    카란에게 붙잡힌 남자가 소리를 질러댔다.

    카란은 감히 황제 폐하의 장막에 숨어들어 옥체에 금도를 겨눈 자의 머리카락을 휘어 잡은 채 몇 번이나 바닥에 얼굴을 부딪쳤다.

    남자의 얼굴은 순식간에 피범벅이 되었고 코가 뭉개지고 이가 덜렁거렸다.

    제르반의 도움으로 카란은 남자의 손을 뒤로 모아 묶고 발로 어깨를 밟아 눌렀다.

    아무리 해도 화가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때 제르반이 이스마힐을 살피더니 바닥에 엎드려있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자기들이 도착하기 전, 위촉즉발의 순간에 남자가 왜 비명을 질렀는지 그것이 아직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제르반의 눈에 희한한 광경에 눈에 띄었다.

    카란도 그것을 발견했다.

    남자의 목에서 피가 흥건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것은 어느 한 곳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제르반이 카란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된 거야? 누가 이런... 거야...?”

    카란도 이유를 알 수 없어 고개를 저었지만 다음 순간 카란의 시선이 황비 마마에게로 향했다.

    이스마힐은 어느새 몸을 가다듬고 해민을 챙기고 있었다.

    괜찮으냐.

    놀라지는 않았느냐.

    해민은 그런 황제 폐하의 품에 다소곳이 안겨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 하고 있었다.

    바닥에는 요요가 떨어져 있었고 요요의 줄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줄에서 떨어진 진한 핏방울이 바닥에 고였다.

    카란이 제르반을 바라보았다.

    설마... 황비 마마가?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지만 그것이 아니고는 다른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

    요요의 줄을 언제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인지 알 수 없었던 두 사람은 멍하니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데리고 나가서 문초를 하거라. 나는 다치지 않았으니 걱정할 것 없다. 제르반이 문초를 맡고 카란은 곁을 떠나지 말고 지키도록 하여라.”

    “예, 폐하. 송구하옵니다.”

    제르반과 카란은 자기들의 실책을 스스로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그래봤자 집중력만 흩어질 뿐이라는 것을 알고 마음을 다잡으려 애썼다.

    이스마힐이 해민을 바라보았다.

    “허언이 아니었구나. 그대. 정말로 나를 지켜주었구나.”

    “라비엔이 보낸 자일 것이옵니다.”

    해민은 여전히 떨리는 마음으로 말했다.

    “라비엔이 저런 자를 몇 번이나 보내도 나는 걱정할 것이 없을 것 같구나. 그대와 함께 있다면 말이다.”

    이스마힐은 정말로 장하다는 듯이 해민의 어깨를 감쌌다.

    해민은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 듯했고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추국은 엄했고 침입자는 고초를 겪던 끝에 라비엔이 사주한 일임을 밝혔다.

    아무리 의지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해도 버텨낼 수 없는 추국이었다.

    “라비엔은 저에게 맡겨주시면 어떨지요, 이스마힐.”

    해민이 그런 말투를 쓴다는 것은 저만의 상념에 아주 깊숙하게 빠져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 정도로 감정이 깊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생각할수록 뒤늦게 두려움과 불안이 밀려들었다.

    감히 황제 폐하를 시해할 수 있다고 계획을 세우고 시행을 했다는 것을, 해민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더욱 용서할 수가 없었다.

    추국장에서의 모진 고문 끝에, 침입자는 혀를 깨물고 죽음을 택했다.

    그럴 거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는 방관을 했다.

    그의 입에서 들어야 할 말은 거의 들은 후였고 고문을 가하는 자라고 해서 고문을 당하는 자가 당하는 고통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제발 이 지겨운 짓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동안 라비엔이 보낸 자객은 제 혀를 깨물었다.

    깨물린 혀가 입 안에서 부풀어 오르며 입안을 가득 채웠고 카란은 한결 개운해진 마음으로 그의 죽음을 황제 폐하와 황비 마마에게 고했다.

    해민이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하는 것과 대비되게, 이스마힐은 잠잠했다.

    해민은 그런 이스마힐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었다.

    만약 공격당한 사람이 해민이었다면 이스마힐은 화를 참지 못했을 터였다.

    그러나 자기였기에, 그리고 해민이 그 자랑스런 요요로 자기를 구해주는 것을 경험했기에 이스마힐이 느끼는 분노는 해민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강도가 약했다.

    나에게 다시 그런 일이 생겨도 그대가 나를 지켜줄 것이 아닌가, 하고 이스마힐은 여전히 태평스런 말을 했다.

    당연히 그럴 것이지만! 이라고 말하면서 해민은 끝내 이를 바득 갈았다.

    황제 폐하의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야 너무 잘 알고 있었지만 라비엔을 생각하면 저절로 주먹이 쥐어졌다.

    이스마힐은 해민이 그 부드러운 손을 바득 움켜쥘 때마다 웃음이 나와서 웃음을 감추느라 애를 먹었다.

    그럴 때마다 해민은 폐하가 자기를 너무 믿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됐다.

    해민은 라비엔의 문제를 이번에는 확실히 뿌리 뽑고 가겠다는 생각이 대단했다.

    그러나 이스마힐은, 그런 모든 일 조차도 절차에 따라서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지존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공정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차가운 이성을 유지하려고 하는 이스마힐이 때때로 해민은 답답했지만 그랬기에 그를 더 존경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카란도, 제르반도, 그리고 라비엔의 조사를 특별히 맡게 된 감찰부도 섣부르게 행동하지 않도록 주의를 들었다.

    이스마힐은 언제나, 자기가 하는 일을 스베인이 보고 배우고 따라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했다.

    그랬기에 모든 일을 처리할 때 원칙과 절차에 따라서 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더 애를 썼다.

    스베인이 젊은 나이에 황위에 올랐다가 황권을 도전받으면 젊은 혈기가 스베인의 총기를 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내린 조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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