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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로 회귀했다 나 남잔데-83화 (8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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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민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고 황후가 하는 말을 제대로 따라가지도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두란트 공의 아이가 아니라고 하였다.”

    “... 그게... 무슨...”

    해민은 황후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모두가 속고 있었다는 것인가, 하였지만 이내 해민은 황후의 본심을 알 수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의심한다고 하더라도 해민만은 알 수가 있는 일이었다.

    피가 섞이지 않고서야 스베인이 두란트 대공을 그렇게까지 닮을 수는 없다는 것을 해민은 알고 있었다.

    “황후 마마... 어찌 그런...”

    “이제와서 그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스베인이 어떤 혈통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그게 공격의 대상이 되기만 한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라는 말이냐.”

    “무어라 말씀하신 것이옵니까, 황후 마마.”

    “스베인은 그저 대전에서 황제 폐하의 시중을 드는 시종의 아이일 뿐이라고 하였다.”

    그것이 사실이냐고 물을 필요도 없었다.

    그것이 황후가 만든 거짓말이라는 것은 너무도 명백했다.

    잠시 그곳에서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카란을 포함한 세 사람은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무거운 침묵을 버텨냈다.

    “일레노이. 한 가지 물어도 되겠느냐.”

    황후가 한참만에 입을 열었다.

    “하문하옵소서.”

    “왜 변심하였는지 물어도 되겠느냐. 다른 모든 사람들이 두란트 대공에게서 마음을 돌리더라도 너만은 그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였다. 두란트 대공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두란트 대공보다 네가 더 괴로워하지 않았느냐. 너는 두란트 대공에게 붙어서 대공의 생명력을 나누어서 사는 사람 같았다는 말이다. 나는 네가 이리 된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직 믿기지도 않아. 고작. 생명에 대한 탐욕 때문이었느냐. 살고 싶었던 것이더냐. 일레노이.”

    황후는, 정말로 해민의 진심을 알고 싶은 듯했다.

    해민은 그런 황후를 바라보았다.

    “폐하께서는 존귀하신 분이옵니다. 그런 일을 당할 이유가 없었던 분이옵니다. 뒤늦게 제 과오를 깨달았고 조금이라도 제 죄를 사함받고 싶었사옵니다.”

    “그리 마음 먹는다고... 그것이 그리 되더냐... 그대는 두란트 대공을 잊을 수가 있더냐. 오랫동안 사모해온 분이 아니냐.”

    황후가 물었다.

    덫을 놓으려는 의도같은 것은 없이, 한 사람을 같이 사랑했던 연적에게 마지막 순간에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는 것 같은 그런 얼굴이었다.

    “마마. 믿지 않으실지 모르오나. 소인은 폐하만을 사모하였사옵니다.”

    해민이 말했다.

    황후에게는 절대로 이해되지 않을 말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렇다고 황후의 눈높이에 맞추어 거짓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황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대답해주어 고맙다.”

    “마마께서 해 주신 일에 대해서도 감사드리옵니다.”

    “건방진 소리 말거라. 스베인은 내 아들이니라. 아들을 위해서 어미가 한 일인데 내가 어찌하여 황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받겠느냐.”

    황후의 대찬 소리에 해민은 웃음을 지었다.

    “비웃는 것이냐, 감히!”

    그렇게 말을 하기는 했지만 진지하게 화를 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해민도 알 수 있었다.

    “부질없는 삶이었다. 무엇을 쫓아왔던 것인지 모르겠다. 폐하를 사모하였다. 황비.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폐하께, 내게 주실 마음과 몸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할지 알지 못했다. 폐하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드린 것은 내 잘못이다. 나는. 폐하께서 허락하시기만 한다면 황궁을 떠나 먼 곳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다. 더 이상 이곳에 들어앉아 산 사람도, 죽은 사람도 아닌 채로 아버지의 방패막이가 되고 싶지는 않다.”

    황후의 말에 해민은 대답할 바를 알지 못한 채 황후를 바라보기만 했다.

    “폐하께서 두란트 대공에게 은혜를 베푸실 수 있다면... 그 외에 더 바랄 것은 없을 것 같구나. 폐하께서 스베인을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해주시니 더 바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 황비.”

    황후가 해민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어찌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어려웠고 그 아이는 내 삶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그대가 스베인에게 해 준 일들에 대해 들었다.”

    “토비어스 공에게서 말이옵니까.”

    해민이 물었다.

    토비어스 공이 그런 이야기들까지 해 주었을 리가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폐하께서 해 주신 말씀이었다.”

    “폐하...께서...”

    “폐하께서 어떻게 여기에 오셨냐는 물음이냐.”

    황후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왠지 회한과 부러움 같은 것이었다.

    “어제 황비가 가고 나서 폐하께서 찾아오셨었다.”

    “이곳에... 말씀이옵니까.”

    “그렇다.”

    폐하께서 어찌... 라고 묻고 싶었지만 왠지 그것은 황후에게 상처가 될 것 같아서 해민은 그 말을 참았다.

    그러나 황후에게는 해민이 참아낸 말이 전부 보인 듯했다.

    “그대가 스베인을 많이 아낀다고 하시더구나. 폐하께서... 그 모습을 보면서, 폐하께서 그대를 참으로 많이 아끼신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스베인도 아끼신다는 것도 알았다. 내가 빠진 그 그림이 참으로 아름답고 화목하고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스베인에게 내가 해 주지 못한 일을 그대가 해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셨구나.

    폐하께서는 모르는 척 하시면서도 신경 쓰고 계셨구나.

    내가 혼자서 분주하지 않도록.

    일이 잘 되도록 뒤에서 폐하께서 걸음을 해 주고 계셨구나.

    해민은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황후전을 찾는 것이 싫었을 거라는 것.

    그것을 해민보다 더 잘 알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자신을 배신하고 자신의 동생과 통정하여 아이를 낳은 아내를 다시 보는 것이 괴로웠을 텐데도 스베인과 자기를 위해서 그곳에 다녀갔다는 말을 듣자 해민은 가슴이 벅찼다.

    “황비. 앞으로도 스베인을 부탁하여도 되겠는가.”

    황후가 말했다.

    “그리하옵소서. 황후 마마.”

    해민은 고개를 숙였다.

    황후는 고개를 돌려 먼 곳을 응시했다.

    황후의 눈에 별빛이 박히는 것 같았다.

    곧 눈물을 쏟아낼 것 같아서 해민은 그곳에 오래 있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어찌 나올지는 모르겠다. 내가 미쳤다고 소문을 내고 다닐지도 모르지.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분이다. 욕심이 사나운 분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처지가 될지는 모르겠다만. 내가 스베인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말해다오.”

    “그리하겠사옵니다. 황후 마마.”

    “고맙네. 이리 걸음을 해 주어서. 이제 가보시게. 나는 곤하여 이제 쉬어야 할 것 같으니.”

    어서 가라고 재촉을 하듯 황후가 말했다.

    해민은 황후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리고 카란과 함께 황후전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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