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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로 회귀했다 나 남잔데-80화 (8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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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가 자기를 보러 오는 것이 얼마나 거리끼는 일이었을지 황후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도 스베인을 생각해서 그런 마음을 참고 자기를 찾아온 것이 황후에게는 놀랍고 한편으로는 무서웠다.

황비에게 스베인이 도대체 어떤 존재라는 말인가 하고 생각하면서 황후는 머리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저절로 손이 이마로 갔다.

끙, 하고 신음 소리가 나올 뻔 했지만 그 소리는 가까스로 참았다.

황후는 황비를 노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오너라.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카란은 역겨움을 느꼈다.

제 자식을 두고 협상을 벌이려고 하는 것인가 해서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애초에 이 곳에 오는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며 당장이라도 황비 마마를 설득해서 이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황태자 저하를 생각하면 안 된 일이었지만 황비 마마가 이런 대우를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가 않았다.

그러나 해민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 말씀해 주셔서 고맙사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약조하지 않았다."

"알고 있사옵니다."

"그런데 뭐가 고맙다는 것이냐."

"거절하신 것은 아니지 않사옵니까. 생각해보신다면, 어찌 하셔야 할지 아시게 될 것이옵니다. 그럴 거라고 생각하옵니다."

"건방지구나."

"그리 말씀하셔도 상관 없사옵니다. 얼마든지 그리 하셔도 되옵니다."

"스베인을 위해서 참을 수 있다는 것이냐!"

황후는 다시 화가 나서 물었다.

해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불이 번지도록 그 앞에 마른 가지를 늘어놓을 필요가 전혀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기별도 없이 갑자기 찾아와서 송구하옵니다. 오늘은 그러면 이만 물러가겠사옵니다. 내일 다시 오겠사옵니다."

“그거면... 된 것이냐.”

일어서려는 해민에게 황후가 말했다.

“무엇이 말이옵니까.”

“달리 원하는 것이 있는 게 아니었더냐. 황후의 자리에 오르고 싶다거나... 그런 것을 말하려고 온 것이 아니냐.”

“제가 그것을 원했다면 폐하께 말씀을 드렸겠지 왜 아무 힘도 없는 황후 마마를 찾아 왔겠사옵니까.”

해민의 말을 듣고 황후는 황비에 대해서 가져볼까 했던 호감이 확 사라져버리는 것을 느꼈다.

“황후 마마. 소인을 미워하십시오. 누군가를 열심히 증오하다보면, 자기는 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되기도 하고, 그렇게 조금이라도 자기애가 자라게 되면 자기 삶에 애착이 생기기도 하게 되니 말이옵니다."

"지금 네가 감히 누구에게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스베인에게, 미워할 수 있는 어마마마라도 있는 것이 좋지 않겠사옵니까. 스베인의 얼굴에서 그늘을 거두어주실 수 있는 분은 마마뿐이옵니다.”

해민의 말에 황후는 기습 공격을 당한 듯이 할 말을 잃었다.

황후는 옆으로 돌아앉아 버렸고 그때부터는 해민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해민이 나가면서 해민의 등 뒤로 문이 닫히려고 할 때 황후가 말했다.

“내일은...”

해민이 돌아보자 황후가 작은 소리로 말을 이었다.

“올 때 스베인을 데리고 올 수 있느냐.”

해민은 잠시 카란을 바라보았다.

카란도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이라 뭐라고 말을 할지 몰라서 멍하니 해민을 바라볼 뿐이었다.

“원한다면 올 것이옵니다.”

해민이 말하자 황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를 잘 보살펴드리거라. 황비.”

“그리 말씀하셨다고 전해올리겠사옵니다.”

“전해올릴 필요는 없다. 좋아하지도 않으실 것이다. 진심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으실 것이다. 폐하를 탓할 수는 없는 일이지.”

잠시 침울한 표정을 짓던 황후는 더 이상 해민을 붙잡을 명분이 없다고 생각한 듯 휘휘 손을 저었다.

"황비 마마. 황태자 저하는 아직 황후 마마를 뵐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을 것이옵니다."

황후전을 나오며 카란이 말했다.

"나도 그리 생각한다."

"하오면..."

"스베인에게는 말 하지 않을 것이다. 스베인은 맑고 여린 아이다. 황후 마마가 저리 계시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러면 어째서 약속을 하신 것이냐는 표정으로 카란이 해민을 바라보자 해민은 뭐 잘못된 거라도 있냐는 듯이 카란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런 것이 협상의 법칙인 것이다. 카란. 해줄 수 없더라도 일단 최선을 다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지. 그러면 감동 받는 것이다. 아닐 수는 있지만 그래도 해 볼 수 있는 것은 해 보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이럴 때보면 황비 마마도 참 도덕 관념이 해이한 것 같고 정직하지 못하신 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서 더 믿음직했다.

“이제 별궁으로 돌아가시옵니까.”

카란이 물었다.

“두란트 대공을 볼 것이다.”

“...꼭. 보셔야 하옵니까. 마마.”

카란은 이제 더 이상 일레노이가 황비 마마의 몸을 장악하는 일은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황비 마마가 오랫동안 정을 나눠왔던 두란트 대공을 보러 가신다고 하니 속으로 걱정되는 마음을 감추기가 힘들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불쌍한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보면 괜히 동정이 생기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황비 마마는 다른 사람에게 마음 쓰는 것이 특히나 더 남다른 분인데 두란트 대공의 모습을 보고 혹시라도 마음이 흔들리지는 않을지 걱정이 이만 저만 되는 게 아니었다.

해민은 카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다 들여다보이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웃어보였다.

“걱정할 것 없다. 둘이서만 보지 않을 것이다.”

“소신도 같이 들어가옵니까.”

“그래야 하지 않겠느냐. 나만 들여보낼 생각이었느냐.”

“그리 생각한 것은 아니옵니다만.”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더는 스베인이 토비어스 공에게 휘둘리게 하고 싶지 않구나.”

해민은 스스로의 의지를 다지듯이 말했다.

“성심을 다 해서 황비 마마를 지킬 것이옵니다.”

“고맙다. 카란.”

“황비 마마. 부디. 마마께서도 마음을 지켜주시기를 청하옵니다. 물론, 그럴 것이라고는 생각하오나...”

카란은 그렇게 말하는 것이 주제 넘은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말을 했다.

“고맙다. 카란. 그런 충언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으니 나도 갑자기 잘못 되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구나.”

카란은 환하게 웃는 황비 마마를 보며 불안한 기분을 가라앉혔다.

두 사람이 탑으로 향했을 때는 사위에 옅은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간수들은 두 사람을 알아보고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길을 안내했다.

온화하고 상냥한 모습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조금이라도 잘못된 것이 발견되거나 원칙에서 어긋난 것을 알게 되면 봐주는 법이 없는 황비 마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행동거지 하나 하나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잘못한 것이 없다면 그리 겁을 먹을 필요가 없느니라.”

그들이 왜 그리 경직되었는지 모를 리 없는 해민이 미리 말을 하였다.

“예, 황비 마마.”

해민은 길게 이어진 탑의 계단을 올라갔다.

벽을 밝히는 불이 흔들렸다.

아마도 이번이 두란트를 보게 되는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하며 해민은 두란트가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기를 바랐다.

그것이 들어주기 힘든 부탁이라고 하더라도.

***

간수는 긴장을 감추지 못했고 해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문을 여는 손이 떨렸다.

황비 마마가 일으킨 피바람에 대해서 모르는 이가 없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나중에는 인내심이 고갈된 듯 해민이 간수를 바라보고 말했다.

“수전증이라도 있느냐. 그렇다면 네가 이 자리에 적합하지 않은 것을 미리 고해야 했을 것이 아니냐. 너는 황실과 헤르만 제국에,”

다행히 해민의 불평이 길어지기 전에 문이 열렸다.

“송구하옵니다. 황비 마마. 그런 것이 아니오라... 전에 있던 간수들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 소문을 들었던 터라 겁이 나서 저도 모르게 그만... 송구하옵니다. 황비 마마.”

거듭거듭 허리를 숙이며 사죄를 하자 해민도 고개를 끄덕였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그러는 사람은 아니다. 맡겨진 일을 성실히 한다면 해가 미치지 않을 것이다.”

“깊이 새기겠사옵니다. 황비 마마.”

덕분에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두란트는 황비를 볼 수 있었다.

그 뒤에 그림자처럼 서서 일레노이를 지키고 있는 카란도 있었지만 두란트의 눈에는 일레노이만이 보였다.

일레노이가 저를 향해 돌아섰을 때, 그리고 두 사람의 눈길이 서로 닿았을 때 두란트는 무언가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번도 헤어진 적 없던 사람을 향해 고개를 들었는데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선 기분이 드는 경험을 할 수 있다면 바로 그런 것일 거라고 두란트는 생각했다.

일레노이가 아니었다.

일레노이가 아닐 수 없는 사람인데도 그는 일레노이가 아니었다.

두란트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로 해민을 바라보았다.

해민은 해민대로, 그동안 늘 가까이서 지내던 스베인의 얼굴이 그대로 담겨진 두란트를 보고 놀랐다.

그리고 두란트가 자신을 처음 보는 것처럼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자기를 제멋대로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자기에게 함부로 굴었던 기억을 갖고서 대하던 전과는 그 태도가 확연히 달랐다.

두란트는 잠시 망하니 있다가 허리를 숙였다.

일레노이에게 하대를 했다가 호되게 당한 마지막 만남의 기억 때문이었다.

“할 말이 있어 왔소.”

해민이 말하자 두란트는 해민을 바라보다가 곧 시선을 거두었다.

이해되지 않는 이질감은 너무나 불편했다.

해민은 황후에게 했던 것과 별다를 것 없는 이야기를 두란트에게 했다.

토비어스가 스베인을 어떤 말로 괴롭히는지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스베인이 앞으로 토비어스에 의해서 그런 고통을 당하지 않게 되도록 토비어스를 설득해 달라고 말했다.

두란트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카란이 나섰다.

“황비 마마께서 말씀하고 계시지 않소!”

“알겠사옵니다. 황비 마마.”

두란트가 말했다.

시선은 먼 허공으로 향했다.

잠시 두란트의 시선이 해민에게로 향하는 순간이 있었다.

무엇이 달라졌다는 것인가.

일레노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어찌 생각을 합니까. 어떻게 하면 좋을 거라고 보십니까. 좋은 생각이 있습니까.”

해민이 묻자 두란트는 생각에 잠겼다.

이스마힐은, 아무리 이해해보려고 해도 이해할 수가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베인이 누군지 알면서 스베인을 기어이 황태자로 책봉한 이스마힐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여자와 관계할 수 없는 몸이라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인가.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훗날에 큰 화를 불러 올 수도 있는 일임을 알지 못한다는 것인가.

스베인의 마음에 저를 향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자라고 있다면 훗날 스베인이 이스마힐에게 반기를 들 수도 있다는 것을 정녕 모르는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던 두란트가 고개를 들었을 때 두란트는 저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황비를 발견했다.

그 시선은 너무도 처연했다.

아무런 사사로운 감정도 읽히지 않았다.

일레노이가 저를 그렇게 바라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매순간, 타버릴 것 같은 갈증과 탐욕이 일레노이의 눈빛에서 묻어났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들이 느껴지지 않았다.

일레노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한 것인가.

두란트는 그것이 궁금했다.

그러나 그것을 물을 수는 없었다.

해민은, 생각에 깊이 잠긴 두란트를 보면서 그가 스베인과 정말로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두란트에게서 지워지지 않는 불만족과 증오와 광기 비슷한 것이 스베인에게는 전혀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안심했다.

처음 스베인을 봤을 때는 그렇지 않았었다.

스베인을 품에 안은 채 스베인의 몸에 돋아난 가시에 온몸을 고스란히, 무방비로 맡겨야했던 순간을 떠올리게 됐다.

스베인이 영영 달라지지 않으면 어째야 좋을지 불안했던 순간도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스베인은 해민의 믿음에 보답을 했다.

스베인과 닮았지만 스베인과 전혀 다른 분위기를 하고 깊은 어둠에 침잠된 것 같은 두란트를 보았을 때에야말로 해민은 스베인이 어떤 운명을 벗어난 것인지, 그리고 헤르만 제국이 어떤 운명을 벗어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두란트는 황비를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곧 시선을 치웠다.

눈에서 물러난 시선이 목덜미로, 그리고 부드러운 손으로 이어졌다.

그 시선의 탐욕스러움을 느꼈는지 카란이 그 사이를 막아섰다.

명백히 도전적인 모습이었다.

해민은 카란이 왜 그러는 것인지 알지 못했지만 카란을 다그치지는 않았다.

“토비어스를 이곳으로 불러주실 수 있을지요.”

두란트가 말했다.

“아니. 그리 할 것이 아니라 제 옆 방에 가두어도 되지 않을지요. 왜 그렇게 하지 않사옵니까. 황제 폐하에 대해 명백한 위협을 한 자인데 말이옵니다. 그 자야말로 헤르만 제국에서 사라져야 할 해충과 같은 자가 아니옵니까.”

두란트는 제 마음을 번잡스럽게 핥고 지나간 것 같은 정념을 애써 무시하며 말했다.

제 감정을 카란에게 들켰다는 것이 더 수치스러웠다.

“토비어스와 얘기를 하고 싶다면 이리로 데려오겠습니다. 알고 있겠지만 둘이서 나누는 대화는 모두 간수들이 듣게 될 테니 허튼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대공은 지금까지 황제 폐하의 은혜를 넘치도록 받았으니 다시 성은을 배신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해민의 말에 두란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봤자 카란에게 가려져 그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다.

밖으로 나가자 카란이 해민을 바라보았다.

“저 자가 약속을 지킬 거라고 보시옵니까, 황비 마마.”

“그러기를 바라야 하지 않겠느냐. 되더라도, 되지 않더라도 말을 해 보기는 해야 했다. 스베인 혼자서 싸우게 하고 방관만 하기에는 스베인이 너무 가엾지 않으냐.”

“마마...”

카란은 황비 마마를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런 고귀하신 황비 마마를 두란트가 바라볼 때는 어찌나 기분이 나빴는지 두란트의 눈을 칼로 그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었고 지금도 황비 마마의 옷을 털어 드리고 싶었다.

감히 그런 더러운 눈으로 황비 마마를 바라본 것이 자꾸만 떠올라서 카란은 제 마음을 쉽게 가라앉히지 못했다.

부글부글 끓는 채로 황비 마마의 곁을 지켰지만 황비 마마는 더할 나위없이 평온한 모습이었다.

두란트를 본 것이 황비 마마의 동요를 일으키지 못했다는 사실에 카란은 겨우 마음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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