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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로 회귀했다 나 남잔데-78화 (78/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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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하... 어찌 그리 어리석은 말을 한단 말입니까! 황후 마마와 두란트 전하를 버리더니 이제는 이 할애비까지 버리겠다는 것입니까!”

    토비어스는 어찌나 놀랐는지 목소리를 줄여야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외조부가 무엇을 해야할지는 말했습니다. 결정을 하시지요. 그리고 어떤 결정을 내리건, 이 시간 이후에 외조부를 보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저하...!”

    토비어스는 그때부터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간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았다.

    “저하! 돕는 이도 없이 제국을 다스릴 수 있을 줄 아시옵니까! 제왕이 홀로 통치할 수 있을 거라 보시옵니까!”

    “돕는 이가 없을 거라 왜 장담하십니까. 혹시 외조부가 지금 이러는 것이 나를 돕는 것이라. 그리 생각하는 것은 아닐 테고 말입니다.”

    “할애비에게 이리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리 나와서는 안 되지요! 저하의 그 주먹만한 머릿속에 황비가 그동안 무슨 짓을 해 놓은 것입니까! 이 할애비에게 그리 대하라 하더이까! 그래서 지금 그 건방진 입을 나불거리면서 감히 이 할애비를 능멸하는 것입니까! 저하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머리에 쓰고 몸에 두른 것이 저하를 대단하게 만들어준 것 같사옵니까! 그래봐야 저하는 멍청한 인형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릅니까!”

    그때였다.

    절대로 심상치 않은 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

    그것은 분명히 칼집에서 칼이 나오는 소리였다.

    스륵 소리가 들린 것과 동시에 카란이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해민이 명령을 내릴 시간도 없이, 카란의 몸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토비어스의 손에 들린 것이 빛을 냈지만 가차없는 카란의 공격에 토비어스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해민은 스베인에게 달려가 스베인을 제 품에 안았다.

    겁을 먹고 덜덜 떨고 있는 스베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해민은 유모를 눈짓으로 불렀다.

    “스베인의 귀를 막아주어라.”

    유모는 스베인의 귀를 막았다.

    “소리를 지르지 못하도록 입을 틀어막거라. 카란. 저하께서 놀라신다.”

    카란은 토비어스의 옷자락을 칼로 베어냈다.

    조금도 조심성 없는 움직임에 토비어스의 몸에는 그대로 자상이 생겨났다.

    카란은 토비어스의 옷자락을 구겨 입에 처넣었다.

    문이 열리고 스베인을 모시던 호위 무사들이 달려 들어왔다.

    그들은 눈 앞에 펼쳐진 모습을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순식간에 파악한 것 같았다.

    “토비어스가 저하를 향해 감히 금도를 겨누었다.”

    카란이 말하자 그들은 일제히 칼을 빼들어 토비어스를 겨누었다.

    “아닙니다. 오해입니다. 황태자 저하께서 궁금해하여 보여드린 것 뿐이옵니다. 저하께 드리려고 하였던 것이옵니다.”

    토비어스는 목숨을 구걸하며 해민에게 말했다.

    “가자. 스베인. 이곳에 더 있을 필요가 없다.”

    “황비 마마...”

    스베인은 뒤늦게 울음이 터졌고 작은 가슴을 들썩거리며 흐느꼈다.

    해민이 스베인의 손을 잡자 스베인은 해민을 따라 나오다가 해민에게서 손을 뺐다.

    왜 그러는가 하였더니 제 자리로 돌아가 무언가를 집어들고 다시 돌아와서 해민의 손을 잡았다.

    손에 쥔 것을 보니 요요였다.

    해민은 그것을 보고 갑자기 웃음이 나와서 스베인을 바라보았다.

    “왜 그것을 챙기느냐. 스베인.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 안심이 되느냐."

    "그러하옵니다. 황비 마마."

    훌쩍거리면서 스베인이 말했다.

    "왜 하필 그것이냐. 안심이 되기는, 검을 들고 있는 것이 더 안심되지 않겠느냐. 그런데 왜 그것을 챙긴 것이냐. 검은 챙기지 않고서 말이다.”

    “황비 마마와 황제 폐하의 곁에 있으면서 감히 그런 것을 들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사옵니다.”

    스베인의 말을 듣고 해민은 놀랐다.

    아무도 어린 스베인을 의심하지 않았는데도 스베인은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 때문에 안타까웠다.

    “스베인.”

    해민이 스베인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스베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스베인은 훌쩍거리다가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런 꼴을 보였다고 외할아버지에게 꾸지람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민이 스베인의 손을 잡았다.

    “스베인. 폐하는 너를 믿으신다. 나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우리는. 너라는 덫에 걸린 사람들일 거다. 우리를 어찌할지는 너한테 달려있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건 그런 일이다. 내 미래와 운명이, 내가 믿은 사람에게 달리게 되는 거지. 누군가를 믿기로 결심을 하면 그 후에 할 수 있는 건 그 사람의 자비를 바라는 것 뿐이다. 내가, 믿어도 되는 사람을 믿은 것이기를 바라면서 자비를 바랄할 수밖에 없는 거란다.”

    스베인은 이제 어깨까지 들썩여가면서 울었다.

    “황비 마마. 저는 어찌 해야 하는 것이옵니까? 저는 어마마마와 아바마마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이옵니까?”

    “그것은 너를 위해 어른들이 근심해야 할 것이지 네가 근심할 것이 아니다. 스베인. 사사로운 마음을 버리거라. 너에게는 네가 돌봐야 할 헤르만 제국의 제국민들이 있다. 그들을 사랑하기 위해서 먼저 사랑받고, 그리고 어떻게 사랑하고 보살펴야 하는 것인지 배운 후에 네가 돌려주면 될 것 같구나.”

    “저는 비열하고 비겁하옵니다.”

    “그렇지 않다. 스베인. 너는 선하고 영민한 아이다. 네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지 말거라. 그 말은, 너를 믿고 너에게 기대한 우리를 실망시키는 말이다. 스베인. 근심하지 말거라. 황제 폐하와 내가 너를 도울 것이다. 네가 좋은 황제가 될 수 있도록 잘 가르칠 것이다.”

    스베인은 여전히 눈물이 맺힌 눈으로 해민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민은 스베인의 옷에 튄 토비어스의 핏자국을 보고, 그들을 따라나온 스베인의 유모에게 말했다.

    “저하의 옷에 더러운 것이 튀었구나. 새 옷을 가지고 오너라. 저하와 함께 별궁으로 갈 것이니라.”

    “예, 황비 마마.”

    스베인을 데려가 스베인을 안심시키는 동안 이스마힐이 찾아왔다.

    이스마힐은 토비어스의 일을 보고받고 화를 가누기가 힘들었던 듯했다.

    이스마힐이 굳은 얼굴로 들어오자 스베인은 겁을 먹은 얼굴로 머리를 조아렸다.

    스베인은 제 외조부가 저지른 짓을 용서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저주받은 피를 물려받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스베인은 낙심한 얼굴을 펴지 못했다.

    해민은 이스마힐을 보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스베인의 앞에서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말하려는 것 같았다.

    “폐하...”

    스베인은 사죄하고 싶어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외할아버지가 저지른 일에 뭐라도 말을 해야한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스베인은 황비 마마가 어디까지 알고 온 것인지 알지 못했지만 자기는 외할아버지가 황제 폐하의 옥체를 상하게 하려고 계획을 세운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역모였다.

    폐하께서 정사를 돌보지 못할 정도로 옥체를 상하시게 하고 자기를 황위에 올려 외할아버지 자신이 섭정을 하려고 한 거라는 것을 스베인도 모르지 않았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황송하고 망극해서 감히 폐하의 앞에서 고개를 들고 용서를 구할 수도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스마힐은 스베인을 향해 말을 하려다가 저도 모르게 해민의 눈치를 살폈다.

    해민은 이스마힐의 말을 막으려는 것처럼 이스마힐을 노려보았다.

    해민은 이스마힐이 화난 표정을 감추지 않고 들어왔다는 그 자체만으로 이미 화가 나 있었다.

    “아, 아니, 스베인, 나는.”

    다시 한 번 스베인을 부르던 이스마힐은 또다시 해민의 눈초리에 걸려 버렸다.

    “폐하. 그것이 어찌 스베인의 잘못이겠사옵니까.”

    해민이 말했다.

    “황비. 스베인의 잘못이라 한 적 없다.”

    “그러면 어찌 표정이 그리 무섭사옵니까.”

    “스베인에게 화난 것이 아니니라. 스베인에게 감히 금도를 겨눈 토비어스에게 화가 나서 그러는 것이다.”

    “그러나 스베인은 폐하의 표정을 보고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할 것이옵니다.”

    “그... 그렇지만... 아니, 그래... 아니, 나는. 스베인. 너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다...”

    이스마힐은 여전히 해민의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그러는 두 사람은 꼭 투닥거리며 부부싸움을 하는 평범한 부부 같아서 제르반이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짓고 있다가 이스마힐에게 걸렸다.

    “재미있느냐.”

    “아, 아니옵니다. 폐하.”

    이스마힐은 스베인을 카란에게 맡기고 해민과 라플리를 밖으로 불러냈다.

    “라비엔이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 이렇게까지 대응이 빠를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토비어스가 황궁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모두 계획된 일이었던 모양이지. 어떻게 됐는지 알아보고 바로 대응을 한 것 같다.”

    “대응이라면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우리가 뭐라고 말을 하건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하겠지.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지만.”

    이스마힐이 해민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그대를 공격하려고 할 것이다. 그대가 황후를 음해하고 황후전에 가두고... 그리고 이제는 토비어스를 모함한다고 할 것이다. 카란에게서 모든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스베인과 토비어스가 하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그대라는 것 때문에 그들은 그대가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주장할 거라는 말이다. 나는 물론 그대를 믿는다. 그러나 라비엔과 토비어스의 추종자들은 자기들이 살기 위해 그대를 물고 늘어질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것도 화가 나는구나.”

    해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야 뻔한 레파토리라고 생각했고 라비엔과 토비어스가 조용히 숨 죽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해민도 끝까지 한다면 제대로 싸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사이에서 스베인이 괴로움을 겪어야 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어찌하실 것이옵니까, 폐하.”

    해민이 묻자 이스마힐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번에는 정면 승부를 하셔야 할 것이옵니다.”

    라플리가 말하자 이스마힐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위험부담을 안고 시작한 것일 것이옵니다. 그리고 시도해볼 수 있는 마지막 패라고 생각할 것이옵니다. 그러니 여기서 물러서시면 안 될 것이옵니다.”

    이스마힐은 라플리가 하는 말이 맞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해민을 바라보았다.

    해민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 수 있어서였다.

    “그대는 어찌 생각하느냐.”

    이스마힐이 묻자 해민이 이스마힐을 바라보았다.

    자기가 아끼는 사람들이 상처입는 것을 보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확실하게 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이 문제가 두고두고 스베인의 발목을 잡을 거라는 것을 해민도 알고 있었다.

    “오늘은 날이 길어질 것 같구나. 스베인은 그대가 위로해주도록 하여라.”

    이스마힐이 말하자 해민이 이스마힐에게 다가갔다.

    “폐하. 스베인에게는 폐하의 위로도 필요할 것이옵니다. 여린 마음이 상처가 남지 않도록 폐하께서 스베인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옵소서.”

    해민이 말하자 이스마힐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스마힐이 스베인을 부르자 스베인은 어두운 얼굴로 이스마힐에게 나아왔다.

    "스베인."

    "예, 폐하."

    “나는 너를 아들로 삼기로 하였다. 아느냐. 스베인.”

    “아옵니다. 폐하. 참으로 황공하옵니다.”

    "스베인. 나는 너의 어미와 아비가 누구라는 것 때문에 너를 양자로 삼은 것이 아니다. 네가 스베인이기 때문이었다. 스베인 스카르탄. 너는 내 별이다. 스베인. 알겠느냐. 내 하늘에 존재하는 두 개의 별. 그 중에 하나가 너다."

    "다른 별은. 황비 마마이옵니까?"

    "그래. 맞다. 두 별이 모두 이상한 장난감을 늘 손에 들고 다니면서 그걸로 나를 지켜주겠다고 해서 못미덥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러하다."

    이스마힐이 장난스럽게 말하며 스베인의 콧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자 스베인이 입술을 씰룩거리며 수줍게 웃었다.

    “스베인. 나는 내가 아들을 갖게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지만 어떤 아버지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했다. 그리고 너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어줄 것이다. 네가 하는 말은 믿어주고 네 허물을 나눌 것이다. 네가 바르게 자라서 헤르만 제국의 제국민들에게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도록, 좋은 아버지의 모습을 너에게 먼저 보여주고 싶다. 스베인.”

    스베인의 눈에 눈물이 고이자 이스마힐이 손가락으로 스베인의 조그만 턱을 올리고 눈물을 닦아주었다.

    이스마힐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보면서 스베인은 마음을 놓는 것 같았다.

    "그러니 용기를 잃지 말거라. 네가 그런 모습을 하고 있으면 황비 마마가 화를 낸단 말이다. 그러니 짐을 위해서 웃도록 하여라."

    "그리하겠사옵니다. 폐하."

    스베인은 여전히 울먹이는 얼굴로 말했다.

    이스마힐은 스베인을 꼭 안아주었다.

    앞으로 험난한 세월이 스베인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혹 험난하더라도, 자기가 버팀목이 되어주겠다고 생각했다.

    해민과 눈이 마주쳤을 때 이스마힐은, 칭찬해주고 싶다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해민을 보았다.

    그 얼굴을 보면서 이스마힐은 자신에게 어느덧 해민이 지표가 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전처럼 고독하고 어렵지 않았다.

    마음을 정할 때, 해민이라면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찌해야 한다고 말할지 생각을 해 보면 결정을 내리는 것이 쉬워졌다.

    해민이 동조하고 격려를 해 주면 자기가 대단한 짓을 한 것 같아서 저도 모르게 으쓱해졌다.

    망치고 싶지 않고 칭찬받고 싶은 마음은 스베인이나 저나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이 들자 스베인이 더욱 가엾게 느껴졌고 위로하고 싶어져서 이스마힐은 스베인의 조그만 머리를 커다란 손으로 한없이 쓰다듬어주었다.

    ***

    “황비 마마. 꼭 마마께서 하셔야 하는 일은 아니옵니다.”

    에르모나의 말에 귀를 닫고 해민은 두 팔을 벌려 에르모나가 입혀주는 옷을 입었다.

    “마마께서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토비어스 공은 이제 더 이상...”

    “에르모나. 되었다. 되었다고 하질 않느냐.”

    해민은 더 이상 말을 듣지 않겠다는 듯이 에르모나를 간곡하게 바라보았다.

    에르모나는 한숨이 나오는 것을 숨겼다.

    그러면서 어떻게 좀 해 보라는 듯이 카란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카란은 해민과 똑같이 에르모나를 외면했다.

    “가자. 카란.”

    해민은 카란만을 데리고 별궁을 나섰다.

    그들이 향한 곳은 황후전이었다.

    사람들은 황제 폐하의 노여움이 그렇게 깊고 짙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황후전으로 가는 길도 열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시간은 끝나지 않았다.

    토비어스 공을 위시한 누구도 황후를 보지 못한 채 여섯 번의 계절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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