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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로 회귀했다 나 남잔데-74화 (7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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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될 것 같으냐. 제르반.”

    집무실에서 그 광경을 내려다보던 이스마힐이 제르반에게 물었다.

    “그 방법이 맞다고 생각하옵니다. 폐하. 사람의 손을 써서는 안 되니 말이옵니다. 아르마리안 후작 부인의 사냥개들은 원래 용맹하고 머리가 좋기로 소문이 자자했사옵니다. 사냥감을 정확히 인식하기만 한다면 사냥에 실패하는 일은 없을 것이옵니다. 움베르트가 황궁 안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곧 잡힐 것이옵니다. 폐하.”

    “그렇구나.”

    “폐하. 오래 참으셨사옵니다. 움베르트가 죽으면 더 이상 일레노이가 강해지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황비 마마께서도 이제 더이상 그 문제로 고통당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이스마힐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 끝이 난 것도 아닌데 미리 좋아할 것은 없었다.

    움베르트가 이런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 아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움베르트가 그동안 얼마나 잔인하고 패악한 방법으로 해민의 영혼을 고통스럽게 속박했는지 알고 있는 이스마힐로서는 아르마리안의 제안이 더없이 고마웠고 이 일이 꼭 성공을 거두기를 바랄 뿐이었다.

    컹컹컹 짓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아르마리안의 사냥개가 달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황궁 안에 있는 작은 숲속으로 사라지자 이스마힐은 창문에 얼굴을 대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사냥개가 짖는 소리는 점점 더 멀어졌다.

    ***

    움베르트에게 이제 사람으로서의 성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이제 기계적으로 움직일 뿐이었다.

    눈에 보이는 사람을 죽여서 장기를 적출하고 일레노이가 강해지기를 바라며 주문을 외우고 시체를 치우고 도망치는 것.

    그 일련의 과정만이 머릿속에 들어있을 뿐 이제는 왜 자기가 그것을 해야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자각도 거의 없었다.

    그저, 그렇게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어둠을 기다리는 것도 귀찮았다.

    무리에서 떨어져나와 걷는 사람들을 공격해서 희생제물로 삼고, 저를 다스리고 조종하는 악마의 힘이 강해지기를 바라는 것.

    그것이 움베르트가 원하는 모든 것이었다.

    숨어다니면서 먹는 것을 훔치는 것도 지쳤다.

    그래서 이제는 희생제물의 일부를 떼어내 생으로 먹었다.

    그것은 제가 섬기던 신이 엄격히 금지하던 것들이었다.

    그러나 움베르트는 더 이상 그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 모든 계율이 자신의 몸을 거치적거리게 하는 구속구 같다고만 여겨질 뿐이었고 그것이 자신을 위해서 도움이 되었던 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생각은 갈수록 강퍅해져갔다.

    더 이상 희망은 없었다.

    두란트 전하.

    두란트 전하.

    이제 그의 머릿속에 남아서 그를 이끄는 이름 중에 그 이름이 있을 뿐.

    멀리에서 사냥개가 짖어대는 소리가 들렸을 때 움베르트는 한 무리의 시녀들을 뒤따르고 있었다.

    움베르트는 움츠린 채 귀를 세웠다.

    맹렬하게 짖어대던 소리가 일순간 멈추었다.

    짖지 않는 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움베르트는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냥감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자기를 노리고 자기를 목표로 해서 다가오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 소리가 신경 쓰였다.

    맹렬히 달리는 그 소리가, 말도 아니고 고작 사냥개에 불과했으면서도, 지축을 때리는 그 소리가 여간 살벌하게 들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 소리가 분간될 정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움베르트는 제 앞에서 재잘거리면서 걸어가는 시녀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탐스러운 그들의 장기를 떠올렸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을 터였다.

    그러나...

    그러나 아무래도 사냥개의 속도에 붙잡혀버릴 것만 같았다.

    움베르트는 어두운 숲 속으로 몸을 날렸다.

    나무를 타고 한참이나 올라갔다.

    가까워지던 소리는 기어이 그의 지척까지 다가왔다.

    킁킁거리면서 냄새를 맡는 소리가 나무 아래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갑자기 사라져버린 냄새 때문에 사냥개는 길을 잃었다.

    움베르트는 메마르고 퀭한 눈빛으로 사냥개를 노려보았다.

    함께 있는 사람은 황제의 호위무사였다.

    황궁 안에서 움베르트가 기를 쓰고 피해야 할 사람으로 첫 손에 꼽히는 자가 하필 그 자리에 나타난 것이다.

    움베르트는 숨을 죽였다.

    움베르트의 냄새를 쫓아왔던 사냥개는 그 아래에서 컹컹 짖어댔다.

    확신 없는 눈초리로 나무 위를 바라보았지만 나무 위에서 가지를 타고 다른 곳으로 옮겨간 움베르트는 이미 그 나무와 멀어져 있었다.

    사냥개가 짖는 소리는 이제 꽤 멀어졌고 움베르트는 자기가 별궁 안에 파놓은 구덩이 아래로 내려가 그 위를 나뭇가지 엮은 것으로 덮었다.

    '나를 노린 것인가? 설마. 그럴 리가 없지. 감히 나를 죽였다가는 신의 저주가 임할 거라는 것을 알 텐데.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움베르트는 자꾸만 떠오르려는 불안한 생각을 떨쳐내려고 애썼다.

    멀리에서 사냥개 짖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 밤이 안온하기를 바라면서 움베르트는 잠을 청했다.

    안구를 덮을 눈꺼풀도 사라져버려 눈이 가려지지도 않았지만 그런 것쯤은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듯 움베르트는 순식간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스베인. 폐하께 문안 인사를 올리러 가는 길이다. 같이 가지 않겠느냐.”

    일찍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고 황제 폐하의 침궁으로 갈 준비를 하던 스베인은 갑자기 들어와버린 황비 마마를 보고 놀랐다.

    그러나 당황한 표정이 지어지기보다는 뜻밖의 손님 때문에 기쁜 기색이 가득했다.

    “황비 마마. 평안히 주무셨사옵니까.”

    다리를 구부리면서 절을 해 오는 스베인을 볼 때마다 해민은 항상 웃음이 났다.

    저 짧은 다리로, 어려운 것을 잘도 해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리 오너라. 스베인.”

    해민이 무릎을 꿇고서 두 팔을 벌리자 스베인이 부끄러워하면서 해민에게 다가갔고 해민이 두 팔을 더욱 벌리자 그 안에 포옥 안겼다.

    “우리 황태자. 좋은 꿈을 꾸었느냐.”

    “예. 황비 마마.”

    “무슨 꿈을 꾸었느냐?”

    “제국에 큰 비가 내렸사온데 황비 마마께서 요요를 던졌더니 그게 하늘에 난 구멍을 막아서 비가 그쳤사옵니다.”

    “그랬느냐. 내가 또 활약을 하였구나.”

    “예. 그러셨사옵니다.”

    “그래서 어찌 되었느냐?”

    “폐하께서 마마께 장하다 하셨사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트루젠이 변방을 공격한 것이옵니다. 마마께서 소자에게, 가서 적들을 물리치자고 하셔서 따라갔사온데 적은 많고 우리의 수는 적었사옵니다. 그런데 마마께서 순식간에 병사들을 그려내셨사옵니다.”

    “그랬느냐. 그래서 어찌 되었느냐.”

    "마마께서 그리신 병사들이 살아났사옵니다. 그 병사들은 원래의 병사들보다 키도 훨씬 크고 창기술과 궁술이 모두 능해서 순식간에 트루젠 병사들을 쫓아냈사옵니다."

    "그랬느냐. 나는 어찌하고 있더냐. 그림을 다 그리고 말이다."

    "그 후에는... 쉬셨사옵니다."

    "그랬구나. 그래도 나 때문에 이긴 것이구나."

    "예, 마마. 그리고 소자도 열심히 싸웠사옵니다. 마마께서 소자에게, 역시 헤르만 제국의 황태자니라 라고 하셨사옵니다."

    "꿈에 나라를 구하느라고 이렇게 피곤했던 것이구나."

    "마마. 미령하시옵니까?"

    해민의 농담을 알아듣지 못하고 스베인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걱정을 하며 묻자 해민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것이 아니다. 나는 괜찮다. 황태자."

    해민은 웃음을 지우지 못한 채로 스베인의 손을 잡고 나란히 밖으로 나갔다.

    그 이야기는 침궁에 다다를 때까지 계속 되었다.

    “황비. 언제 갔던 것이냐.”

    늦게 잠이 들어, 늦게까지 잠을 자던 이스마힐은 이불을 덮고 몸만 일으킨 채 두 사람을 맞았고 스베인과 해민은 스베인의 꿈 이야기를 서로 경쟁적으로 들려주며 웃어댔다.

    밖에서 그들의 웃음 소리를 듣던 자들도 덩달아 웃음을 지었다.

    “스베인. 너는 이제 황태자이니라. 헤르만 제국의 미래가 너에게 달렸다. 이 아비는 황비 마마와 함께 일찍 너에게 황위를 물려주고 편히 쉴 것이다. 그러려면 네가 더 열심히 준비하여야 하느니라. 준비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느냐.”

    이스마힐이 웃음 가득한 얼굴로 말하자 스베인은 상기된 얼굴로 그렇다고 말했다.

    이스마힐은 선황이 어렵고 무섭기만 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이 기억나서 스베인에게는 황실의 법도에 어긋나더라도 친근하고 따뜻하게 대해주고 싶어했다.

    스베인 역시 황제 폐하가 자기에게 그렇게 대하는 이유를 아는 듯, 이스마힐이 저를 풀어줄수록 더욱 깍듯하게 예를 갖추었다.

    그렇지 않아도 영민했던 스베인이었지만 그동안은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분위기에 짓눌려 마음껏 능력을 펼치지 못하다가 이제는 물 만난 고기가 된 것처럼 제 능력을 마구 펼쳤다.

    “너는 헤르만 제국의 국본이니라. 국본은 스스로를 지킬 줄 알아야 한다. 실력 좋은 호위 무사들이 너를 훈련시켜줄 것이다. 배울 수 있을 때에 배워둬야 하느니라. 후회할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예, 폐하.”

    해민은 그런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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