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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로 회귀했다 나 남잔데-67화 (67/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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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움베르트를 찾을 것이다. 움베르트가 일레노이를 강하게 하고 있으니 움베르트를 찾아낼 것이다.”

    “허나... 대제사장을 죽일 수는 없는 것 아니옵니까. 대제사장은 신의 손으로 세워진 자가 아니옵니까. 대제사장도 신의 빛과 마찬가지로...”

    해민은 말을 하다가 멈추었다.

    그도 모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알고 있다.”

    이스마힐이 말하자 해민이 그를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그때까지는 이스마힐의 것이 제 안에 있는 것이 자연스러워서 이질적인 감각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몸을 일으키면서 새삼스럽게 그 감각을 다시 깨우쳤다.

    해민은 잠시 그곳으로 쏠린 신경을 다시 이스마힐에게 집중시켰다.

    “폐하. 폐하의 손으로 움베르트를 죽이시겠다는 생각을 하셔서는 아니되옵니다.”

    “해민. 그대에게, 나야말로 묻고 싶었다. 그대가 그러고 싶은 것은 아닌지 말이다. 움베르트나 두란트를 그대의 손으로 죽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아닌지 말이다.”

    “폐하...”

    해민은 움찔했고 자기가 놀란 것을 이스마힐이 알아차렸을지 걱정이 됐다.

    “맞는 것이냐, 해민. 그리 생각했더냐.”

    해민은 곧바로 대답을 하지는 못했다.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으면 거짓말이 될 거였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몸이 일레노이에게 점령당하는 것을 알고는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 있었다.

    어찌해야 할지 알지 못한 채, 자기가 왜 그곳에 있는지 모르는 상태로 낯선 곳에서 의식을 되찾을 때, 그리고 자신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과 마주하고 그들의 당혹한 표정을 보게 될 때 점점 자신감이 사라졌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도 없게 됐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 없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그때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두란트와 움베르트를 죽이고 자기가 끝내는 것이 맞다고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일레노이는 만만치 않았고 해민은 그것이 순탄치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해민에게는 잘 된 일이었다.

    일레노이가 해민을 막은 것은 저의 욕망 때문이었지만 해민을 구원한 것이기도 했다.

    어느 날 해민은, 자신의 끝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이 끝난다는 것이 이스마힐과의 이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기는 결코 이스마힐보다 먼저 죽지 않을 거라고 이스마힐에게 약속했던 것도 떠올랐다.

    해민이 이스마힐에게 그렇게 약속했을 때 이스마힐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도 해민은 알고 있었다.

    그런 기억들이 해민을 견고하게 만들었다.

    이스마힐이 해민에게 주었던 믿음들이.

    그래서 지금 해민은 이스마힐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을 수가 있었다.

    “폐하. 소인은, 폐하께서 평온하게 눈을 감으실 때까지 폐하의 곁을 지킬 것이옵니다. 그리고 폐하께서 평온한 잠에 드시는 것을 본 후에 폐하를 따라 영원히 잠들 것이옵니다.”

    해민의 말에 이스마힐의 얼굴에 그야말로 만족스러운 미소가 깃들었다.

    “나는. 신의 축복을 받은 자다. 해민. 그대를 보면 안다. 신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축복하셨는지 말이다.”

    해민의 머리를 쓰다듬고 해민의 이마에 입술을 맞추며 그가 말했다.

    해민은 제 안에서 버티던 이스마힐의 것이 조금씩 더 단단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직 정액이 빠져나올 틈도 없었다.

    “폐...하...?”

    해민이 당황한 듯 얼굴을 붉히며 말하자 이스마힐이 짓궂게 웃었다.

    “그대 때문이다. 너무 오랫동안 나를 외롭게 한 탓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 그대에게서 모든 것을 보상받을 것이니라.”

    이스마힐의 말에 해민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우느라고 부은 눈은 더할 나위없이 사랑스러웠다.

    “하아아아으읏!”

    짓쳐올린 이스마힐의 허릿짓에 해민의 입에서는 새된 비명이 새어나왔다.

    ***

    사신단의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기이한 광경이었다.

    황후의 탄신연을 축하하기 위해 저마다 선물을 준비해 왔지만 그곳에 황후는 오지 않을 거였다.

    헤르만 제국에 도착한 사신들은 이제 그 연회의 성격을 거의 짐작하고 있었다.

    황제는 무능력하고 조정 대신들은 강한 권력을 갖고 있으며 그 중 중심이 되는 자의 외손자가 황태자로 책봉될 거라는 소문이 그들 사이에 은밀하게 퍼졌다.

    그들은 헤르만 제국과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토비어스 가문에 줄을 대느라고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면서도 황제와 황비에 대해 관심이 쏠려 있었는데 드디어 오늘 그들을 직접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가벼운 열기마저 느끼고 있었다.

    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호화로운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그들 각 사람을 꾸미는데 들어간 비용이면 황성에서 집 한 채를 살 수도 있을 정도로 갖가지 보석과 화려한 옷으로 치장을 한 사람들은 서로 곁눈질을 하며 누가 자기들보다 나은지, 자기들이 뒤처지지는 않았는지 그런 것들을 가늠하기에 바빴다.

    음악이 연주되면서 흥이 돋우어졌다.

    무희들은 아름다운 춤을 추었고,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어깨를 들썩거리며 연회를 즐겼다.

    드디어 연회가 무르익었을 때 사람들은 주인공이 언제쯤 나타날지 궁금해했다.

    특히 트루젠의 사신단들은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충분하고도 넘치게 황제와 황비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그들은 과할 정도로 호사를 부렸다.

    누가 보더라도 연회의 주인공이 그들처럼 보일 정도의 호화로움이었다.

    연회의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겸양을 부린다는 태도는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트루젠의 사신단을 본 사신들은, 자기들도 그다지 남을 생각하고 옷차림을 한 것은 아니었으면서도 트루젠의 사신단은 정말로 심했다고 자기들끼리 쑥덕거렸다.

    음악이 바뀌고 분위기가 술렁거렸을 때 사람들은 드디어 헤르만 제국의 황제를 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가 어떤 의복을 갖추고 나올지에 더 관심이 쏠려 있었다.

    토비어스의 말에 의하면 황실의 재정은 극도로 궁핍해서 연회를 베푸는 것도 힘들 정도라고 했으니 황제가 연회의 수준에 걸맞게 차려입으려고 한다면 상당한 출혈이 불가피했을 거라는 계산이 가능했다.

    황제 폐하와 황비 마마가 납신다는 말에 사람들은 일제히 형식적인 예를 갖추었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곧 이스마힐이 등장할 곳으로 향했다.

    음악은 다시 바뀌어 있었고 일반적인 연회에서 연주되는 것에 비해 느린 곡이 나왔다.

    이스마힐의 걸음 속도를 생각해서 맞춘 것이었지만 사람들은 그런 것까지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새하얀 옷을 맞춰입고 등장하는 이스마힐과 해민을 보았다.

    두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은 그들의 모든 시도를 경멸하는 것 같았다.

    어떤 사람도, 어떤 장식으로도 감히 그 두 사람에게 견줄 수 없었을 거라는 것을, 그들은 헤르만 제국의 황제와 황비의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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