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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로 회귀했다 나 남잔데-64화 (6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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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들릴 것이옵니다. 그러나... 소인은 이곳에 살던 사람이 아니옵니다. 다른 곳에 살았사옵니다. 그곳에서 죽었고... 깨어났을 때는 탑에 갇혀 있었사옵니다. 움베르트 대제사장이 찾아온 날은 그날이었사옵니다. 제 처형이 예정되어 있던 날 말씀이옵니다.”

이스마힐은 흐으음, 하고 낮게 깔리는 신음 소리를 내고 해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책상 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빼서 앉으며 해민에게도 앉기를 권했다.

해민은 무겁게 처지는 몸을 이끌고 의자에 앉았다.

“대제사장이 가져온 책은. 제가 사고를 당하면서 쓰러질 때 읽고 있던 책이었사옵니다. 그 책이 대제사장의 손에 들린 것을 보고 저는 당연히 놀랐고... 그리고 그 책에서 그 일을 보았기에 알 수가 있었사옵니다. 폐하께서 저를 따라서 생을 끝낼 거라는 것을 말이옵니다.”

“그러면... 그대는... 일레노이가 아니라는 말이냐.”

이스마힐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것이 해민에게서 나오는 말이라서 신중하게 들었다.

해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 소인은. 저는. 해민이옵니다. 일레노이라 불리는 황비가 아니옵니다.”

“그렇단 말이냐.”

“그렇사옵니다.”

이스마힐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해민은 자꾸만 몸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목을 가누는 것이 점점 힘들어졌고 머리가 자꾸만 숙여졌다.

“폐하... 카란을... 불러주시겠사옵니까. 제 몸에... 제 몸이 다시... 일레노이에게...”

해민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이스마힐의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설마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해민의 말에 의해서 모든 것이 사실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스마힐은 카란을 부르지 않았다.

그저 해민에게 다가가 해민을 안아주려 했을 뿐이었다.

“해민. 그것을 왜 이제껏 말하지 않았던 것이냐. 혼자서 그것을 감당하느라 그대가 얼마나 괴로웠냐는 말이다.”

해민의 어깨에 두 손을 올렸을 때였다.

해민이 고개를 들어 이스마힐을 바라보았다.

단호하고 냉랭한 눈길.

그 눈길은 이내 이스마힐의 손으로 향했다.

지금 누구에게 손을 대고 있냐는 것 같은 냉정한 눈빛을 보며 이스마힐은 깨달았다.

해민이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레노이.”

이스마힐이 나직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일레노이가 이스마힐을 바라보았다.

“부르지 않았느냐. 대답을 하거라.”

차갑게 깔리는 목소리에 일레노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스마힐이 저를 그렇게 대한 적이 없었기에 잠시 혼란스러운 것 같았다.

“예. 폐하.”

“할 말이 있느냐.”

“어찌... 아니옵니다.”

“나는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일레노이는 이스마힐을 바라보았다.

제 앞에서는 한없이 유약하고 비굴하기만 했던 이스마힐이 왠지 달라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보며 두려움을 느끼거나 그의 기세에 눌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에게 이스마힐은 두란트 대공의 자리를 빼앗은 유약하고 불완전한 침략자에 불과했다.

그런 주제에 자신의 몸까지 탐한 파렴치한, 탐욕스런 불구자라고 일레노이는 생각했다.

제 눈길이 닿기를 바라며 개처럼 제 사랑을 구걸하던 남자.

혹시나 자기를 바라봐주지 않을까 해서 온 시선을 일레노이에게만 쏟아붓던 남자.

어쩌다가 손을 내밀어주면 헉헉거리며 세상의 모든 것을 그에게 안겨주고 싶어 안달이 났던 남자.

언제나 쉬웠다.

언제나 너무나 간단하고 단순했다.

그런 이스마힐이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지금은 달랐다.

“일레노이.”

“...예. 폐하.”

일레노이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너는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네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거라. 사라질 수 있다면 사라지거라. 영원히 돌아오지 말거라. 일레노이.”

단호한 그 말에 일레노이는 숨이 막혀버리는 것 같았다.

“폐...하, 어찌... 제 몸을 뺏은 것은 이 자이옵니다. 제가 일레노이이옵니다. 어찌 저를 알아보지 못하시옵니까. 제가 일레노이라는 말이옵니다!”

“알고 있다. 네가 일레노이라는 것을. 알아보니 이러는 것이다. 알아보니 너에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너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일레노이.”

“폐하... 무엇을 알고 그러시는 것이옵니까!”

일레노이의 눈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금방이라도 이스마힐에게 덤벼들 것처럼 분노가 치민 얼굴이었다.

감히.

그가 자기에게 그렇게 대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스마힐이 그런 표정을 짓고 자기를 경멸하듯이 바라보는 모습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이것은 일레노이가 상상할 수 있는 한계를 한참 벗어나 있었다.

"폐하! 이럴 수는 없사옵니다.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옵니다!"

일레노이가 광기어린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이스마힐은, 해민의 얼굴에 그런 표정이 깃드는 것을 참기가 점점 더 힘들어졌다.

“폐하. 이 자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옵니까. 이 자가 선한 뜻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하시는 것이옵니까. 이 자가 왜 제 몸으로 다시 돌아왔겠사옵니까. 이 자 역시 마찬가지옵니다. 폐하. 혼자만 선하고 고귀한 자가 아니란 말이옵니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이스마힐은 일레노이가 하는 말을 믿지 않았다.

“신의 빛은 하나여야 했사옵니다. 그러나 신의 빛이 둘이 생겨났사옵니다. 그것은 선황께서 폐하를 죽이지 못한 탓이었습니다. 아시옵니까!"

"부황이 나를 죽이지 않으셔서 참으로 원통하겠구나!"

이스마힐은 감히 불경스러운 말을 지껄이는 일레노이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일레노이는 움찔했지만 이 기회를 잃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듯이 말을 급하게 이었다.

"폐하. 들으셔야만 하옵니다. 헤르만 제국에는 두 개의 신의 빛에 두 개의 신의 그림자가 생겼사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온전하지 않았사옵니다. 사라졌어야 할 폐하가 살아남으며 신의 그림자 하나가 제 안에 봉인되었사옵니다. 그것이 이 자이옵니다.”

“해민이...”

“그렇사옵니다. 이 자는 폐하의 그림자이옵니다. 폐하와 함께 영원히 사라졌어야 할, 폐하의 그림자였사옵니다. 일을 이리 복잡하게 만든 자도 그 자이옵니다. 신께 청원하여 그 자가 벌인 짓이라는 말입니다!”

일레노이는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았다.

이스마힐이 제 뜻대로 쉽게 휘둘리지 않는 것을 알고 조바심이 난 것 같았다.

“그러나 폐하.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옵니다. 잘 된 것인지도 모르옵니다. 그 자의 고집 덕분에 폐하께서 살아나셨지만 소인도 목숨을 잃지 않았고 두란트 대공도 살아났으니 말이옵니다. 모든 것이 출발선으로 되돌려졌습니다. 아시옵니까. 이것은 그 자의 승리도, 폐하의 승리도 아니옵니다. 이제 시작인 것 뿐이옵니다.”

일레노이가 말했다.

어느 순간 일레노이의 눈빛은 처음의 그 눈빛으로 돌아와 있었다.

“승리라 말한 적 없다. 일레노이.”

이스마힐의 말은 더 길어질 일레노이의 말을 잘라내었다.

일레노이는 움찔하며 이스마힐을 바라보았다.

저에게 제대로 반박도 하지 못하던 황제였다.

언제든 제 뜻대로 그를 휘두르고 다룰 수가 있었다.

제가 화를 내면 황제는 제 기분을 맞춰주려고 애를 썼다.

일레노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건 간에 황제는 그것이 불가하다 말하지 않았다.

그러는 대신, 황제는 모든 일이 되도록 만들었었다.

그런데 무엇이 바뀌었다는 것인가.

일레노이는 조급해졌다.

그 사이에, 그 자가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말인가.

자신을 잊을 정도로 황제의 마음이 그 자에게 기울었다는 것을 일레노이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 자는 아무 것도 아니옵니다. 신의 그림자라는 존재가 저에게 눌려 단 한 번도 제 존재를 드러내지도 못했으니 말이옵니다. 그래놓고는 다 끝나버린 일을 두고 신께 청원을 한 것입니다. 숱한 거절. 숱한 배신. 그리고 숱하게 버림받는 운명을 끝낸 후에야 다시 신의 빛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을 듣고도 그 자는!”

일레노이는 자기가 분통을 터뜨리면서 한 말이 무엇을 실토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도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움베르트의 힘이 강해지면서 서서히 돌아온 기억이었다.

그 존재가 자신을 누르고 자신의 몸을 차지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일이 일어나버렸다.

움베르트가 아니었다면 자기가 그 몸에서 영영 깨어날 수도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 일레노이는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다.

이스마힐에게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일레노이는 이스마힐을 바라보았다.

“폐하...”

왜 달라진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스마힐이 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은 이제 일레노이도 확실히 알 수가 있었다.

“폐하. 이제는 염려하실 것이 없사옵니다. 이제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옵니다. 이제는 저를 믿으시면 되옵니다.”

일레노이는 여유로운 웃음을 지었다.

“너는 신의 그림자라 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너의 빛은 두란트인 것이 분명한 것 같구나. 네가 나에게 무슨 볼 일이 있다는 것이냐. 내가 왜 너를 믿겠느냐. 너는.”

이스마힐이 일레노이를 바라보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일레노이인데 말이다.”

"폐하..."

일레노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의 앞에는 그에게 너무도 익숙한 이스마힐이 서 있었다.

그러나 저를 열망하지 않는 이스마힐은 너무도 낯설었다.

"폐하..."

일레노이는 충격에 휩싸인채 이스마힐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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