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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로 회귀했다 나 남잔데-63화 (6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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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라도 그 그림을 보며 이스마힐을 상상하기를 바라면서.

    해민은 제가 입기로 되어 있던 옷을 보았다.

    저절로 움직인 듯, 붓은 이스마힐을 그려냈다.

    해민은 옷에 그려진 이스마힐을 바라보았다.

    한없는 그리움이 솟구쳤다.

    그를 떠나서 살아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지만 지금 자기가 머뭇거리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었다.

    스베인에게 가는 것도 점점 겁이 났다.

    이제는 더 자주 의식을 잃는 것 같았고, 그리고 한 번 의식을 잃을 때마다 그 시간이 더 길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이 되지 않을 때는 아무리 시간을 잡고 앉아 있어도 잘 되질 않더니 그 때에는 그 많은 그림들이 한 번에 그려졌다.

    해민은 에르모나를 부르기 위해 일어섰다.

    소리내어 부르면 들어오겠지만 에르모나를 직접 보고 말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문을 열고 해민이 나갔을 때 그곳에, 이스마힐이 있었다.

    뒤돌아 선 채, 앉지도 않고 얼마나 오랫동안 그곳에 서 있었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폐하...”

    해민이 황급히 이스마힐에게 다가갔다.

    해민의 목소리가 들리자 이스마힐이 해민을 바라보았다.

    “황비.”

    이스마힐의 얼굴에 웃음이 지어졌다.

    피곤에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그의 표정만큼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해민은 가슴이 추욱 가라앉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어이하여 부르지 않으셨사옵니까.”

    “그대가 이리 나왔으니 되었다. 그대와 후원이나 같이 걸을까 하여서 왔느니라.”

    “잠시만 기다려주실 수 있사옵니까.”

    “그리하거라. 그러고 나가기에는 쌀쌀할 것이니라.”

    해민이 에르모나를 바라보자 에르모나가 곧 해민을 뒤따랐다.

    안으로 들어간 해민은, 고작 후원을 산책하는 것에 어울리지 않을만한, 가장 화려하고 좋은 옷으로 골랐다.

    “머리를 빗겨주겠느냐, 에르모나.”

    “예, 황비 마마.”

    “그리고. 아르마리안이 두고 간 장신구도 하고 싶고. 그 보석도 꺼내주겠느냐.”

    “예, 마마.”

    에르모나는 황비 마마가 무엇을 준비하는 것인지 왠지 알 것 같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참으며 황비 마마의 시중을 들었다.

    잠시 후 밖으로 나갔을 때 이스마힐은 해민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그대는 참으로 가혹한 짓을 하였다.”

    이스마힐이 말했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옵니까, 폐하.”

    해민이 다가가며 물었다.

    이스마힐은 해민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그 좋은 보석이, 그대 때문에 초라해 보이지 않느냐.”

    해민의 얼굴에 부드러운 웃음이 지어졌다.

    “춥지 않겠느냐.”

    “소인은 괜찮사옵니다.”

    그런데도 이스마힐은 해민을 감싼 팔을 내려놓지 않았다.

    “스베인이 문안 인사를 올리러 왔더구나.”

    “스베인이 말이옵니까.”

    정말로 그리했구나.

    해민은 스베인이 떠올라 대견해하며 미소를 지었다.

    "장하더구나."

    이스마힐이 말했다.

    아직 황태자로 책봉된 것도 아니고 정식으로 양자로 들인 것도 아니라 중신들 중 일부는 스베인이 지금 아무런 직위도 갖고 있지 않다고 트집을 잡곤 했다.

    토비어스를 중심으로 그 소리는 연일 높아졌다.

    자신의 외손자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스베인을 흔드는 것이 자기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그리 방향을 잡은 것 같았다.

    스베인은 황후 마마를 구하는 것이 먼저고 그 후에 황태자의 자리에 올라 절차에 따르면 된다는 것이 토비어스를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의 주장이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흔들기 위해 단합하는 것을 보며 스베인은 두려워했고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린 스베인에게 다른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며 이스마힐은 스베인이 지금 자신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벌이는 일을 모르고 지나가기를 바랐다.

    그러나 스베인이 문안 인사를 올리러 갔다고 하였다.

    어린 스베인이 혼자서 자신의 싸움을 시작한 거라는 것을 해민은 뒤늦게 깨달았다.

    황제 폐하께 문안 인사를 올리러 가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고도 해민은 스베인을 신경 쓰지 못했다.

    그러나 스베인은 황비 마마와의 약조를 반드시 지키겠다고 생각한 듯, 유모와 시종과 시녀들의 만류를 뒤로 하고 황제 폐하의 침궁으로 찾아가 기다렸다.

    황제 폐하께서 기침하시자 시종장에게 고해주기를 부탁하고 스베인은 안으로 들어가 문안 인사를 올렸다.

    해민이 침궁에 들지 않는 이유를 짐작하며 외로운 밤을 보냈던 이스마힐은 스베인을 보고 얼굴 가득 웃음이 지어지는 것을 참지 못했다.

    “그래. 스베인. 네가 와 주었구나.”

    스베인은 그때까지도 자기가 문안 인사를 올리러 온 것이 잘 한 것인지 확신하지 못한 채 덜덜 떨고 있다가 황제 폐하의 얼굴에 웃음이 지어지는 것을 보고 마음을 놓았다.

    “스베인. 아침에 너의 얼굴을 보니까 참으로 기분이 좋구나. 나를 찾아와 주어서 고맙다.”

    “황비 마마께서 그리 하라 하셨사옵니다. 폐하.”

    스베인이 말했다.

    “그랬구나. 황비가 알려준 것이구나.”

    “예, 폐하.”

    “스베인. 얼마나 일찍 일어난 것이냐. 어린 아이는 푹 자야 한단다.”

    “하오나. 소신은 괜찮사옵니다.”

    “참으로 장한 아이로구나.”

    이스마힐은 스베인을 가까이 불러 스베인을 쓰다듬어주고 돌려보냈다.

    그리고 미룰 수 없는 일들을 마치고 달려오듯 해민에게 온 길이었다.

    해민은 수척하고 야위어 있었다.

    황의에게 보였지만 황의는 별다른 원인을 발견하지 못한 채 연회로 인한 부담감 때문인 것 같다고만 했다.

    분명히 해민에게 변화가 생기고 큰 근심거리가 생겼는데 해민이 말을 하지 않는 것 같아서 이스마힐은 답답했다.

    “폐하. 평안한 잠을 이루셨사옵니까.”

    해민이 물었다.

    “그대가 침궁에 와 주지 않으니 다시 불면의 밤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올 것이냐.”

    “지금은 어떠신지요. 폐하. 지금 침궁으로 가시겠사옵니까.”

    해민이 말하자 이스마힐이 해민을 바라보았다.

    “정말이냐.”

    이스마힐은 기대하는 얼굴로 해민의 어깨를 안았다.

    “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니오나. 제르반이나 카란이 방에 같이 있으면 좋을 것 같사옵니다.”

    해민의 말에 이스마힐이 해민을 바라보았다.

    그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일부러,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부러 눈을 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해민에게서 그 말까지 듣고나니 너무 확실해져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제르반과 카란에게서 움베르트가 사라졌다는 보고를 받고 이스마힐은 사람들을 신전으로 보냈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도 움베르트를 찾을 수가 없었다.

    신전에서 죽은 사람들의 장례는 은밀하게 이루어졌다.

    하필 사신단들 때문에 일이 더욱 복잡해졌다.

    이스마힐은 계속해서 움베르트를 찾게 했다.

    움베르트가 사라진 것과, 해민이 자꾸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일에 연관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제르반과 카란이 수시로 그 일에 직접 투입되었지만 움베르트는 대기 중으로 휘발되어버린 것처럼 자취를 완전히 감추었고 어디에서도 그를 찾을 수가 없었다.

    황궁에서 아무도 모르게 빠져나가는 것이 가능한 일이 아니었는데도 움베르트는 종적을 감추어버렸다.

    이스마힐은 움베르트로 인해 자기가 근심하고 있다는 것을 해민에게 감추고 싶었다.

    이스마힐은 해민에게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일찍 침궁으로 들자 모두가 놀랐지만 이스마힐은 신경 쓰지 않았다.

    “카란. 안으로 들거라.”

    “예, 폐하.”

    카란이 말하자 해민이 이스마힐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아니옵니다. 폐하. 잠시. 폐하께 따로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카란은 그 후에 부르는 것이 좋을 것 같사옵니다.”

    “그럼 그리하여라.”

    이스마힐이 카란을 바라보자 카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으로 들어간 해민은, 이제야말로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스마힐에게 중요한 일들이 닥쳐있는 때라서 마음이 더없이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폐하. 폐하께 이 말씀을 어찌 올려야 할지, 참으로 많은 시간 동안 번민하였사옵니다. 폐하께서는 제 말을 믿기 힘들 것이옵니다. 믿지 않으셔도 되옵니다. 믿기 힘들다면 그냥 소인이, 심신이 미령해져서 이상한 말을 한 것이라 여기셔도 되옵니다.”

    “들을 것이니라. 그러니 말을 해 보거라.”

    이스마힐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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