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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로 회귀했다 나 남잔데-57화 (57/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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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두란트 대공이옵니다. 폐하께서 계속 토비어스 공을 압박하시면 토비어스 공을 주축으로 한 세력들은 황제 폐하께서 그들을 더 이상 신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그때는 자연스럽게 두란트 대공을 중심으로 해서 모일 것입니다. 두란트 대공의 복권을 논의하며 세력을 결집할 것이고 움베르트 대제사장이 폐하께 탄압받고 있다고 주장할 것이옵니다.”

    “이미 예상하고 있는 바요.”

    예상하고 있지만 확실하게 대응할 방법이 없다는 것 역시 아르마리안은 알고 있었다.

    하늘 아래에 공존할 수 없으나 죽일 수 없는 존재.

    하필 두란트 대공이 신의 빛이라 생긴 일이었다.

    아르마리안은 이스마힐이 처연한 모습으로 답하는 것을 보고 생각에 잠겼다.

    “힘드실 것이옵니다. 그러나 견디셔야 하실 것이옵니다.”

    “준비는 되어 있소.”

    "그들이 희망을 갖지 못하게 하실 수는 없는지요. 대안이 없다는 것을 안다면 쉽게 굴복할지도 모르옵니다."

    아르마리안이 은밀하게 말했다.

    그 입에서 나온 말이, 두란트를 죽이라는 의미인 것을 이스마힐은 모르지 않았다.

    해민의 고개가 들렸고 아르마리안을 향한 눈빛이 사나워졌다.

    절대로 안 될 일이라고, 아르마리안에게 말하고 싶은 것 같았고 그 시선이 곧 이스마힐에게 이어졌다.

    이스마힐은 예상했다는 듯이 해민을 바라보고 웃었다.

    "그것은 안 될 일입니다. 그것은 황비에게 굳게 다짐한 약속입니다. 내가 그런 짓을 벌인다면 황비가 나를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황비는 절대로 나에게 신의 저주가 임하는 것을 보고 있지 않을 겁니다."

    이스마힐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폐하... 송구하옵니다..."

    신의 저주.

    아르마리안은 할 말을 잃었다.

    갑자기 변해버린 황비 마마에 대해서 사람들은 많은 말을 했지만 아르마리안은 그때까지도 일레노이 황비가 반격을 준비하며 몸을 숙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완전히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신의 저주가 이스마힐에게 내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들썩들썩하면서 아르마리안을 꾸짖으려는 듯 바라보는 황비의 표정을 보자 자기가 그동안 괜한 걱정을 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황비를 바라보는 이스마힐의 얼굴에는 자신감과 믿음이 있었다.

    그는 다른 어떤 때보다도 존귀해보였다.

    자기가 원하는 자에게서 절대적인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는 자만이 보일 수 있는 표정 같았다.

    이스마힐의 모습은 믿음직스러워보였다.

    이야기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아르마리안은 해민에게 다가왔다.

    두 사람을 바라보던 아르마리안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고 고개가 자연스럽게 끄덕여졌다.

    "이상한 일이지요. 참으로 어려운 문제가 닥쳤는데도 전혀 조바심이 나질 않사옵니다. 폐하께서 혜안을 갖고 계시고 빈틈없이 살피시니 안심이 되옵니다."

    아르마리안이 말했다.

    입에 발린 말이 아니었다.

    아르마리안이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입에 발린 말을 해야 할 처지의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아르마리안은 자신이 느끼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다.

    "황비가 짐에게 늘 힘이 되어주고 있소. 그 공이 황비에게 있으니 황비를 잘 보살펴주시오. 짐에게 하는 것보다 황비에게 해 주는 것이 짐에게는 더 고마울 것이오."

    "그리하겠사옵니다. 폐하."

    아르마리안은 우아하게 이스마힐에게 고개를 숙였다.

    마음으로 승복이 되어 고개를 숙일 수 있는 상대가 저의 주군이라는 것이, 아르마리안에게는 한없이 만족스러웠다.

    이야기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아르마리안은 해민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함께 따라온 시종에게서 제법 커다란 보퉁이를 받아 해민에게 내밀었다.

    “무엇입니까.”

    “이것을 드릴 일이 없기를 바랐사옵니다만 필요할 것 같사옵니다. 황비 마마. 이것은 트루젠의 약제이옵니다.”

    "트루젠의 상단이 판다는 그것 말씀이십니까."

    "맞사옵니다."

    “그런데 이것을 왜 나에게 주시는 것입니까.”

    “폐하께서 힘들어하실 때 이것이 고통을 잠재워 줄 것이옵니다.”

    아르마리안이 말했다,

    “폐하께... 왜 이것이 필요하다는 말이오.”

    “폐하의 아랫입술이 유난히 붉었사옵니다. 그리고 가끔 폐하의 답이 늦게 나올 때도 있었사옵니다. 통증을 참느라고 입술을 깨물고 숨을 죽이고 있느라 그런 것이겠지요. 폐하께선 해마다 이 즈음에 다리의 통증을 심하게 느끼시곤 하였사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연회 때문에 약도 쓰지 않고 계시는 것이지요. 온전한 정신으로 폐하께서 스스로 처리해야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하셔서 그런 것일 것이옵니다.”

    해민이 아르마리안을 바라보았다.

    “폐하께서는 스스로 연약함을 드러내려 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그러니 황비 마마께서 폐하를 잘 보살피셔야 하는 것이고 말이옵니다.”

    “허나 이것은. 이 약은... 중독성이 크고 인체에 유해하다 하지 않았습니까.”

    해민은 아르마리안이 내미는 것을 쉽게 받지 못하고 말했다.

    “그러니 정확하게 사용을 하셔야 하옵니다. 폐하도 어느 정도는 그 약의 효능에 대해서 아실 거라고 생각하옵니다. 황의가 지금껏 그것에 대해서 말씀드리지 않았을 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옵니다. 그런데도 폐하께서 그약제를 사용하지 않으신 것은, 명료한 정신을 유지하겠다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고 약물에 중독되느니 차라리 통증을 참겠다는 생각이 컸을 것이옵니다. 그러나 말씀드렸다시피 매년 이 시기에는 폐하의 증세가 심해졌사옵니다.”

    “그것은... 어찌 알았습니까.”

    “황비 마마. 황궁에는 제 눈과 귀가 되어주는 자들이 수도 없이 많사옵니다. 하오나 염려하지는 마시옵소서. 저는 그저 황궁 안의 일이 궁금하여 정보를 수집하는 것 뿐이었으니 말이옵니다.”

    해민은 아르마리안이 하는 말을 거의 듣지 않고 있었다.

    이스마힐이 그렇게까지 아파하는 동안 자기는 그것도 알지 못한 채 이스마힐의 웃는 모습에 속고 있었다는 것이 참담했다.

    아프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르마리안이 말하는 그런 정도로 심하다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르마리안은 해민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황비 마마. 황제 폐하는 자부심을 느끼셨을 것이옵니다. 폐하께서 느끼시는 통증을 마마께 숨기시면서 말이옵니다. 황비 마마께서 황제 폐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아신다면 황제 폐하께서는 마마를 걱정하실 수밖에 없었을 것이옵니다.”

    “허나...”

    “마마라면 어떠셨겠사옵니까.”

    나라면...

    해민은 아르마리안의 말을 듣고 나자 이스마힐이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었다.

    “용량을 잘 지키셔야 하옵니다. 이것은 황비 마마께서만 아시는 곳에 두시옵소서.”

    해민은 아르마리안에게 용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가슴이 떨렸다.

    아르마리안이 하는 말에 집중을 해서 듣고 해민이 아르마리안에게서 보퉁이를 받아들자 아르마리안은 궁을 떠날 준비를 했다.

    아르마리안이 떠나고 난 후 해민은 괜히 가슴이 진정되지 않아 후원을 거닐었다.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드는 이유를 해민은 알지 못했다.

    에르모나와 카란이 해민을 걱정하며, 몸이 불편하신 것인지 여러번 물어왔을 정도였다.

    해민은 아니라고만 말을 하고 속으로 제 상태를 감추려고 했다.

    해민의 발걸음이 스베인의 별궁으로 향했다.

    자신의 모습을 이스마힐에게 보이면 이스마힐에게 괜한 걱정을 끼치게 될 것 같았다.

    그것이야말로 해민이 가장 원하지 않는 일이었다.

    스베인은 해민을 반겼다.

    반가운 표정을 감추지 않은 채 해맑게 웃으며 조르르 달려와 다리를 꼬고 무릎을 구부리며 황비 마마께 인사를 드리옵니다, 라고 인사를 하였다.

    해민은 웃음을 지었다.

    귀여운 스베인을 보자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 것 같았다.

    스베인은 이스마힐의 고양이가 그려진 옷을 입고 있었다.

    해민이 그려준 옷이었다.

    스베인의 유모는 스베인이 그 옷을 가장 좋아한다고 알려주었다.

    그런 이야기들이 귓가에서 웅웅거리는 것 같다가 멀어졌다.

    황비 마마, 라고 스베인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고 스베인이 해민의 손을 꼭 잡는 것이 느껴졌다.

    “스베인...”

    해민은 스베인이 걱정하지 않기를 바라며, 괜찮다고 말해주다가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어버린 것 같았다.

    눈을 떴을 때 해민은 자신의 침대 위에 있었고 그 곁에는 걱정스런 표정을 한 이스마힐이 앉아 있었다.

    “해민.”

    “폐하...”

    해민은 자기가 왜 거기에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한 채 일어났다.

    “누워 있거라. 해민.”

    “아닙니다. 그런데 왜 제가 여기에 있는 것이옵니까? 저는 스베인과 함께 스베인의 별궁에 있었는데... 스베인은 어디에 있사옵니까?”

    “별궁에 있다. 그대의 걱정을 많이 하고 있을 것이다. 내일 스베인에게 다시 가 보도록 하여라.”

    “예. 폐하... 그런데 제가 어찌된 것이옵니까?”

    “스베인과 카란의 말로는 그대가 갑자기 의식을 잃었다고 하였다. 카란이 그대를 이곳으로 데려왔다. 황의가 살펴보았지만 아무 이상도 없다고 하였다.”

    “맞사옵니다. 폐하. 아무렇지도 않사옵니다.”

    “기억 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느냐.”

    “모르겠사옵니다.”

    “그대가 많이 긴장을 하여서 그런 것 같다. 내가 그대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운 것 같아서 미안하구나.”

    “아니옵니다. 폐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옵니까.”

    “해민. 이 일이 처음이 아니라서 나는 더 걱정이 되는구나.”

    “무슨... 말씀이옵니까, 폐하?”

    “전에도 이런 일이 있지 않았느냐. 그대와 사랑을 나눌 때 그대가 정신을 잃었었다. 우리가 나눈 말을 그대가 기억하지 못한 일이 있었느니라.”

    “그게... 무슨 말씀이옵니까, 폐하?”

    이스마힐은, 기억 나지 않는 것인가 하는 얼굴로 해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해민의 얼굴을 안았다.

    “해민. 그대에게 어떤 일도 생기지 않게 할 것이다. 내가 그대를 지킬 것이다. 알겠느냐.”

    “폐하. 심려치 마옵소서. 소인은 괜찮사옵니다. 피곤하였던 모양이옵니다. 걱정하실 일이 아니옵니다.”

    해민은 이스마힐의 팔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프면 말해야 하느니라.”

    “그러겠사옵니다.”

    이스마힐은 해민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해민이 쓰러지기 전, 카란이 했던 말이 자꾸만 신경 쓰였다.

    해민의 곁에 있던 스베인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고 도망쳤다는 말과, 해민이 그런 스베인을 무심하게 노려보고 서 있다가 풀썩 쓰러졌다는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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