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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로 회귀했다 나 남잔데-56화 (56/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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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맙습니다. 아르마리안.”

    “헌데. 연회때 입으실 옷은 있사옵니까. 토비어스 공은 옹졸하고 비열한 수법으로 사람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사람이지요. 고관대작들이 모두 화려한 옷과 보석으로 치장을 하고 올 것이옵니다. 사신들도 그럴 것이고 말이옵니다. 고관대작들은 벌써부터 옷과 보석을 사들이기 위해 외국의 상인들을 불러들였사옵니다.”

    “그렇다고 해도 황제 폐하께서 그들의 화려함에 빛을 잃으실 분은 아니니 그 점은 염려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물론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할 수 있다면 미리 갖추는 것도 좋지요. 어떤 사람들은 사람의 내면을 보는 눈을 갖지 못하였사옵니다. 그들의 눈에 괜히 낮게 보일 필요는 없는 것이지요.”

    그 말은 아르마리안이 이스마힐과 자기에게 옷과 보석을 빌려줄 수 있다는 말로 들렸다.

    그러나 해민은 그것까지 아르마리안의 도움을 받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이스마힐은 좋은 옷이나 값비싼 보석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충분히 자신의 고귀함을 나타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에 더더욱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마. 제가 드리는 선물이옵니다. 그리고 청도 있사옵니다. 제가 드리는 옷에 황비 마마께서 그림을 그리시어 연회때 입어주시면 어떻겠사옵니까. 그리고 그 옷을 저에게 돌려주시는 것이옵니다.”

    “제가 왜...”

    왠지 밑지는 장사인 것 같다는 생각에 해민이 계산을 시작해 보려고 하자 아르마리안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마마. 저에게 주시는 선물이라 생각하시면 안 되겠사옵니까.”

    결국은 해민도 웃었다.

    그 정도의 선물은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종을 불러주시겠사옵니까. 밖에 제가 데려온 아이가 기다리고 있을 것인데 그 아이에게 옷을 가져 오라 하고 싶사옵니다.”

    해민이 시종을 불러 아르마리안의 말을 전하자 아르마리안을 따라온 하녀가 들어왔다.

    그리고 해민의 눈 앞에 두 벌의 옷이 선을 보였다.

    눈이 부실 정도로 새하얀, 순백의 옷이 해민의 눈 앞에 드러났다.

    어떤 것이 이스마힐을 위한 것이고 어떤 것이 자신을 위한 것인지 해민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스마힐의 것은 딱 떨어지는 세련된 제복 스타일이었고 해민의 것은 바지 위에 얇은 천으로 스커트처럼 한 겹이 더 장식되어 있었다.

    옷을 조금 움직이자 눈 부시게 하얀 옷이 빛을 받아 반짝였다.

    어떻게든 바뀔 수 있고 무엇으로든 채워넣을 수 있다는 것이 해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것은 두 분께 특별히 드리는 보석이옵니다. 이것은 폐하께서 하실 사파이어고 이것은 마마의 옷에 달 루비이옵니다.”

    해민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을 정도로 커다란 보석들을 받았다.

    이 정도면 몇 캐럿이나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돌려줘야 하는 것이지요?”

    그것만큼은 마음에 들어서 해민이 그렇게 묻자 아르마리안은 선물이라고 말했다.

    “옷에 그림을 그려주시는 값이라고 하셔도 무방할 것이옵니다.”

    아까워하는 마음도 없이 인자하게 말하는 것이, 해민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도 주려고 한 것 같았다.

    “고맙게 받겠습니다. 정말 마음에 듭니다. 과분한 선물인 것 같아서 그냥 받아도 될지는 모르겠으나...”

    "마마께서 저에게 더 큰 것을 돌려주시면 되지 않겠사옵니까."

    "그러겠습니다."

    해민의 입가에서는 만족스런 웃음이 떠날 줄을 몰랐고 그런 해민을 보자 선물을 한 아르마리안도 흡족해져서 웃음을 지었다.

    “다른 일도 급할 것이나 옷도 소홀히 하시면 안 될 것이옵니다. 폐하와 마마께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옵니다. 그들의 앞에서 권위를 지키는 것은 마마의 임무이기도 하옵니다.”

    아르마리안은 다시 한 번 당부하듯 말했고 해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마리안. 지금 나와 함께 폐하를 알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트루젠의 상단이 유통시키는 약제와 토비어스가 벌인 짓에 대해서도 소상한 보고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하겠사옵니다. 마마.”

    “도와주기로 해서 참으로 고맙습니다.”

    “고마우시거든 그림을 더 그려 주시면 되옵니다. 황비 마마.”

    “폐하를 알현하려면 서두르는 것이 좋겠습니다.”

    틈을 주지 않는 해민을 보고 웃음을 지으며 아르마리안도 기분 좋게 일어섰다.

    ***

    이스마힐은 평정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얼굴이 노여움으로 붉어졌다.

    트루젠 상단에서 중독성이 높은 위해한 약제를 팔고 있다는 말을 들은 직후였다.

    이스마힐은 해민과 아르마리안의 말을 멈춰두고 곧바로 카란을 불렀다.

    카란은 계속해서 아르마리안과 해민이 하는 말을 듣고 있었기에 이스마힐이 불렀을 때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해야하는지 바로 알아들었다.

    “트루젠 상단을 수색하고 어떤 물품들을 팔고 있는지 조사를 하도록 하라. 다만 그 일은 은밀히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토비어스의 죄가 확실해질 때까지 괜한 일이 불거지지 않도록 하여라.”

    “예, 폐하.”

    “사람들을 충분히 데리고 가도록 하여라. 헤르만 제국민들이 그 더러운 것에 중독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예, 폐하.”

    “각 사신단에서 올린 상단과 취급 물품 목록을 상세히 확인하도록 하고 트루젠에서만 일으킨 일이 아닐 수도 있으니 모든 상단에 대해서 조사를 하도록 하라.”

    “예, 폐하.”

    "서둘러라!"

    이스마힐의 말에 카란이 시위에서 떠나는 화살처럼 빠르게 달려나갔다.

    “토비어스 공은 폐하께서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힘을 갖고 있사옵니다. 간단하게 끝날 것이라 생각하시면 아니될 것이옵니다.”

    아르마리안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짐도 알고 있소. 쉬운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소. 허나 내가 해야 하오."

    "왜 그렇사옵니까, 폐하."

    아르마리안이 물었다.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상상하는 말이 이스마힐의 입에서 나오는 것을 듣고 싶어서 그러는 것 같았다.

    "스베인이 황위에 올랐을 때 그 아이가 주변의 다른 것들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제국민들만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오. 스베인은 외척의 손아귀에 놀아나지 않게 할 것이오. 그것이 헤르만 제국민들을 위하는 길이 될 것이오.”

    “소신도 성심껏 돕겠사옵니다.”

    대화는 한참 동안이나 이어졌다.

    아르마리안은 조용하고 차분한 어조로 자기가 생각한 바를 말했고 이스마힐은 아르마리안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스마힐은 말이 잘 통했다.

    지존이었으나 어려서부터 황위에 오르는 것이 당연시되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 자리를 동생에게 뺏기고 자신은 황성 밖을 떠돌아 다니면서 제국민들과 어울려 살았던 사람들이었다.

    이스마힐에게는, 두란트가 이해하고 공감하기 어려웠을 많은 것들이 쉽게 이해되었고 아르마리안이 하는 이야기를 거리낌없이 수용했다.

    아르마리안은 조심스럽게 꺼내 본 몇 가지 이야기에 이스마힐이 시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면서 자기도 좀 더 자신감을 갖고 자기가 보고 겪어왔던 많은 일들에 대해서 얘기했다.

    실제로 정책이 시행될 때 그것을 적용받는 사람들이 느끼는 문제에 대해서도 아르마리안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했다.

    이스마힐은 자기가 예상할 수 없었던 것들이 아르마리안의 입에서 나오는 것을 듣고 신기해했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마리안은 좋은 조언자이자 좋은 멘토가 되어줄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을 이스마힐도 부정할 수가 없었다.

    "후작 부인이 우리 스베인과 자주 시간을 같이 가져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스베인이 바깥 세상을 구경하고 싶어할 때는 친구도 되어 주시고요."

    이스마힐이 말하자 아르마리안은 활달한 웃음을 지으며 그러마고 대답했다.

    "저야말로 영광이옵니다. 폐하."

    두 사람은 시간이 가는줄 모르고 얘기를 했다.

    그러나 그들이 해결해야 할 가장 어려운 문제가 아직 뒤로 미뤄진 채 남아 있었고 결국 아르마리안이 먼저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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