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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로 회귀했다 나 남잔데-55화 (55/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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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젊은 남자가 꾀를 부리려고 하는 거라는 것을 아르마리안도 알 수가 있었다.

    그 침묵으로 자신의 감정을 조종하려고 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대로 되어주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르마리안은 그런 것에 조종당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오히려 상황을 조종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해민이 만들어내는 침묵이 길어지자 아르마리안은 조급증이 느껴졌다.

    빨리 그의 입에서 어떤 말이든 나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르마리안은 해민의 대답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했고 어느덧 부채를 부쳤다.

    그제야 해민은 만족스럽게 아르마리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를 가지실 수 있게 될 겁니다. 제가 아르마리안의 친구가 되어 드리지요. 아르마리안이 제 힘을 필요로 할 때 도움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아르마리안은 동그랗게 눈을 뜨고 해민을 바라보았다.

    그가 내놓은 제안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값 없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지금 그것보다 더 달콤한 제안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그것이 저에게 얼마나 좋은 제안인 것입니까.”

    아르마리안이 물었다.

    “나도 모릅니다. 이 제안이 가치있는 제안이 되게 하고 싶으면 후작 부인이 나를 키워주면 됩니다. 내가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후작 부인에게 내가 큰 도움이 되어줄 수 있겠지요.”

    아르마리안은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아르마리안이라고 부르세요. 그렇게 불리는 것도 괜찮군요. 나를 그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이 한동안 없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그러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드리는 옷에 그림을 그려주셔야 합니다.”

    “그러지요. 다섯 벌이면 되겠습니까.”

    해민의 말에, 그때까지 한 번도 평정을 잃지 않았던 아르마리안이 흔들렸다.

    “다, 다섯... 벌이라니요... 이 일을 위해서 제가 얼마나 많은 돈을 내 놔야 하는 건지 몰라서 그러시옵니까.”

    아르마리안이 말했다.

    “그러니 아르마리안을 위해서 하는 말입니다. 너무 많은 것이 유통되면 그 가치는 떨어지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단 다섯 벌 뿐이라면. 그 가치는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그래도. 일곱 벌은 그려주셔야 합니다. 서로 다투게 할 수는 없어요. 아이들이 상처받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단 말입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우리 우정을 위해서 그 정도는 해 드릴 수가 있지요.”

    해민이 너무 쉽게 대답하는 것을 보고 아르마리안은 자기가 그의 계략에 넘어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황비 마마. 제가 그동안 사람을 잘못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드옵니다.”

    “아닐 겁니다.”

    해민이 단호하게 말하자 아르마리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웃음을 지었다.

    “한 가지 더 청을 드릴 것이 있습니다. 각국에서 온 사신단들을 맞을 사람들을 아르마리안이 추천을 해 준다면 좋겠습니다. 아시겠지만 토비어스 공은 이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적극적으로 나선다고 하더라도 황제 폐하께서 토비어스 공을 믿고 전권을 주어 일을 맡기실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아르마리안은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여드릴 것이 있습니다."

    아르마리안이, 자기가 가져온 가방에서 작은 봉투를 꺼내며 말했다.

    “트루젠의 사신단에 상단이 동행을 했는데 그들이 취급하는 품목 중 하나입니다.”

    “상단에서 물건을 팔고 있다는 말입니까.”

    “그것은 허가 받은 일이니 그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것을 허가한 사람은 아마도 토비어스 공일 것이고 황제 폐하께서는 그 일에 대해서 형식적으로만 보고를 받으셨거나 아니면 보고를 아예 받지 못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토비어스 공은 그 사이에서 막대한 이권을 챙겼을 것이고 말입니다.”

    해민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에까지 토비어스의 계산이 미쳤을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기가 아는 것은 제한되어 있었고 아르마리안이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아르마리안은 해민의 표정을 보고 짐작을 하는 것 같았다.

    “우선은 이것을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사옵니다.”

    아르마리안이 봉투에서 꺼낸 것은 말린 잎사귀들이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환각 작용을 일으키는 약제입니다. 트루젠에서는 오래전부터 사용되다가 강한 중독성과 유해성 때문에 유통이 금지 되었습니다.”

    “그것이 왜 헤르만 제국에 돌고 있다는 말입니까.”

    “트루젠에서 팔지 못하는 것을 헤르만 제국에서 팔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으니 그런 것이겠지요.”

    “그것도... 토비어스 공이 허락을 한 것이라는 말입니까.”

    해민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말했다.

    “알고 묵인한 것인지, 모르고 허락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이것이 유통되었을 때 미칠 파장을 생각한다면 실수로 그런 것이라고 하더라도 용서받기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얼마나 위험한 물건입니까.”

    “트루젠에 이것이 한창 유행했을 때 이것을 사기 위해서 강도와 살인을 벌이는 사람들이 많았사옵니다. 귀족들도 그런 범죄에서 안전하지는 못했사옵니다. 그래서 더 조속히 유통이 금지된 측면도 있사옵니다. 사용하기에 따라서 마취 효과가 뛰어나 유용하기는 하나 그럼에도 폐기하도록 한데에는 그만큼 폐단이 컸다고 보시면 될 것이옵니다.”

    “당장 폐하께 알려드려야겠군요.”

    “그러는 것이 좋을 것이옵니다.”

    “아르마리안.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도와주길 바랍니다.”

    “그러면 이 기회에 제 아이들을 출사시키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아르마리안이 말했다.

    “아이...요?”

    해민이 묻다가 아르마리안의 미동들을 떠올렸다.

    “아르마리안이 아끼는 미동들을 말하는 것입니까.”

    해민이 묻자 아르마리안이 웃었다.

    “그리 부르셔도 되옵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은. 황비 마마나 황제 폐하께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가치가 충분한 아이들이지요. 다른 사람들이야 그 아이들을 뭐라고 부르건 말이옵니다.”

    아르마리안의 말을 들은 해민은 아르마리안이 말한 바를 이해해 보려고 갸웃거렸다.

    “황제 폐하와 황비 마마께 도움이 될 아이들이옵니다. 그 아이들을 크게 쓰신다면 분명 폐하께도 큰 도움이 될 것이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그 아이들을 드러내는 것이 좋지 않을 것 같아 감춰두고 있었던 것 뿐이옵니다.”

    “허면...”

    사욕을 위해서 모은 미동들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해민은 잠시 충격을 받았다.

    “아르마리안. 왜 황제 폐하를 도우려고 하는 것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아르마리안은 헤르만 제국을 떠나서도 얼마든지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해민이 말하자 아르마리안이 크게 웃었다.

    “제가 여기에 오기 전에 어디에 들른 줄 아시옵니까.”

    “입궁하자마자 이곳으로 오신 것이 아닙니까.”

    “아니옵니다.”

    아르마리안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황태자 저하를 뵙고 왔사옵니다. 곧 황태자로 책봉되실 분이니 미리 그리 불러도 되겠지요.”

    “스베인을 보고 오셨다는 것입니까. 스베인을 알고 계십니까.”

    “그것은 아니옵니다. 허나. 황태자 저하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제 마음을 정할 수가 있을 것 같았사옵니다.”

    “그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폐하. 저는 많은 나라에 이런 저런 이해 관계를 갖고 있고 복잡한 혈연으로 얽혀있사옵니다. 그래서 정쟁이라면 진절머리가 나옵니다. 복수는 다시 복수를 부르고 피는 다시 피를 부르옵니다. 그렇다고 용서해야 한다는 사탕발림 같은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옵니다. 저는, 헤르만 제국의 황위가 평화롭게 계승될 것인지, 헤르만 제국의 평화가 다음 세대에도 이어질 것인지 그것을 보고 싶었사옵니다.”

    “그래서. 보셨습니까.”

    아르마리안의 말을 알 것도 같아서 해민이 물었다.

    “보았사옵니다. 황태자 저하는 제가 상상하지 못했던 얼굴을 하고 계셨사옵니다. 제가 멀리서 보는 것도 모르시고 고양이를 쫓아 다니고 이상한 것을 손에 쥐고 놀고 계시더군요. 딱 그 나이의 아이다웠고 평화롭고 천진해 보였사옵니다. 믿고 의지하는 어른이 있는 것처럼 보였고, 그러면서도 절제할 줄 아는 영민한 아이였사옵니다.”

    “잘 보셨습니다. 스베인은 그런 아이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해민의 얼굴에 자랑스러움이 깃들었다.

    아르마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비 마마. 황비 마마께서 그리 말씀을 해 주시니 지금이야말로 믿음이 가옵니다.”

    “헤르만 제국을 믿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황제 폐하와 황비 마마를 믿는 것이옵니다. 헤르만 제국을 믿는다는 것은 너무 광범위하지 않사옵니까. 황제 폐하와 황비 마마가 계시는 이 헤르만 제국에 기대를 걸어보는 것이옵니다.”

    아르마리안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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