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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마힐의 측근들이 이스마힐에게 다가와 자기들이 맡아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지시를 들으려고 기다렸고 이스마힐은 일사분란하게 지시를 내렸다.
해민은 가끔, 자기가 한 추상적인 말들이 이스마힐에 의해 정교하게 구체화되는 것을 볼 때마다 신기해했다.
“꽉 막혀 있었는데 그대 때문에 방향이 잡히는 것 같구나.”
이스마힐은 신하들과 의논을 하는 사이사이에 해민을 보고 말했다.
모두들 그 말에 동의하며 황비 마마께서 혜안을 가지셨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연회가 벌어지는 동안 황후 마마는 어찌하실 것이옵니까. 토비어스 공이 사신단을 불러들인 것에는 그 계산도 깔려 있을 것이옵니다. 먼 곳에서 온 귀한 손님들 앞에 황후 마마가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거라는 계산 말씀이옵니다. 사신들은 황후 마마를 뵙기를 청할 것이옵니다.”
제르반이 말했다.
“황후의 병증은 많이 나아졌으나 아직 미령하여 외부인과 접촉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할 것이다. 황후의 탄신연을 준비한 것은 신하들의 충심에서 기인한 것이라 탓하지 않겠으나 황후의 건강을 담보로 내세울 수는 없어 황후는 얼굴을 비치지 못하게 되었으니 이해를 해 달라고 말할 것이다.”
이스마힐이 말했다.
이스마힐에게 질문하는 자도 답이 궁금해서 묻는 것이 아니었고 이스마힐도 그들에게 답변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나올 수 있는 질문들을 예상하고 거기에 대한 답을 미리 준비하는 거였다.
해민은 이스마힐에게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러는 동안 라비엔은 철저히 배제되었다.
이스마힐이 그러라고 시키지 않아도 사람들은 기류를 감지했고 토비어스를 주축으로 중신들 일부가 황제 폐하를 길들이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 라비엔이 있다는 것도 알아차렸다.
충직하지만 한편으로는 고지식한 면도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었기에 마음을 숨기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렇게 라비엔은 점점 고립되었다.
그러나 라비엔은 이스마힐이 준비한 반격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저 이스마힐과 이스마힐의 측근들이 뒤늦게 사태를 파악하고, 궁지에 몰린 사냥감들처럼 벌벌 떨면서 굴욕적으로 무릎을 꿇을 거라고만 예상하고 있었다.
누이의 탄신연에 조카의 황태자 책봉 소식이 같이 공표되면 라비엔은 자신의 가문이 크게 날아오를 거라고 기대했다.
크게 기대하면 실망도 그만큼 클 것이라 생각하며 더 혹독한 추락을 위해 더 높이 날아오르게 두라는 것이 이스마힐의 뜻인 것을, 라비엔은 결코 알 수가 없었다.
***
아르마리안 후작 부인이 도착하기 전에 이스마힐이 해민의 처소로 찾아왔다.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스마힐은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옷을 벗었다.
문에서부터 해민이 있던 책상까지 오는 길에 그의 옷이 하나씩 떨어졌다.
“폐하...”
해민이 이스마힐을 보면서 뭐하시는 거냐는 표정을 지으며 웃음을 지었다.
“다른 것들이 화가 나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 일 때문에 화가 난다. 그대나 나나, 피곤해서 침궁에 들면 잠에 곯아떨어지기 일쑤지 않으냐. 그대를 안고 잔다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했지만 더 이상은 어려울 것 같다. 이렇게라도 찾아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제르반이 먼저 말을 한 것이다. 황비 마마와 잠시 담소라도 나누시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이다.”
이스마힐이 급한 것을 알아차리고, 이스마힐이 다가오는 동안 해민도 옷을 벗었다.
해민 역시 그동안 이스마힐과 몸의 대화를 나눈지 너무 오래 지났다고 생각했다.
마주 다가간 해민이 이스마힐에게 안기자 이스마힐은 그제야말로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힘들 것이다. 그대가 마음 고생 하고 있다는 것 알고 있다. 해민.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견뎌주어 고맙다.”
“제가 무엇이 힘들겠사옵니까. 폐하께서 저를 아끼고 믿어주시는데 말이옵니다.”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황후와 움베르트 대제사장에 대한 조치가 내려진 이후에 토비어스를 중심으로 한 사람들이 해민에게 공공연히 적의를 드러내는 것은 사실이었다.
특히 스베인을 황궁에 들이고 해민이 스베인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자 토비어스는 직접적으로 해민을 공격했다.
황비에게 스베인의 교육을 맡길 수가 없다는 거였다.
황비가 일레노이였다면 그 말은 타당했을 것이다.
일레노이가, 황후와 두란트 대공이 낳은 스베인에게 호의를 갖지 않았을 거라는 것은 분명한 일이었고 토비어스도 억지 논리를 펼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해민은 그들이 하는 말에 휘둘리지 않았다.
이제 이 정도가 되니 책을 의지하지 않고도 각 사람의 사람됨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책에 다시 글자가 나타나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그것을 가장 먼저 확인하기는 했지만 전처럼 간절하지는 않았다.
어떤 때는, 책에 다시 글자가 나타나고 이스마힐이나 스베인에 대한 나쁜 예언이 나오면 어떻게 해야할지 걱정이 되기도 해서 차라리 글자가 나타나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되기도 했다.
서로 상반되는 두 마음이 동시에 존재했다.
해민은 이제 자기가 모든 사람들에게서 좋은 평판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자기가 인정하는 사람들에게서 인정받기 위해 조심하고 주의하고 말과 행동에 신경쓰면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스마힐은 해민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보이고 그런 소리가 귀에 들어오면 그것이 신경 쓰였다.
그래도 황위에 있는 자가 하나하나 사사건건 나서서 지적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가만히 참고 넘기는 일이 많기는 했지만 해민이 행여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 해서 여간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스마힐이 이렇게 시간을 내서 찾아온 것은 그런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문이 열리는 순간 그런 생각들은 전부 사라졌고 맹목적인 하나의 계획만이 선명해졌다.
해민을 사랑하고 싶다는 것.
해민에게 위로받고 싶고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것.
해민에게 다가가 해민을 안자 해민이 이스마힐에게 폭 안겨왔다.
아무런 의심 없이 모든 것을 내맡기고 저를 믿고 의지하는 해민을 볼 때마다 이스마힐은 가슴 한 켠이 아릿해질 정도로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그런 해민을 끝까지 지켜주고 싶다는 다짐이 생겼다.
해민을 안고 해민의 몸을 쓰다듬으며 해민을 밀면서 침대까지 다가간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다.
해민은 이스마힐에게 매달려 이스마힐의 입술과 볼과 뺨에 입술을 맞춰왔다.
그리고 잠시 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이스마힐의 얼굴을 보기도 했다.
“얼굴이 상하셨사옵니다. 간밤에도 뒤척이면서 잠을 제대로 못 주무셨사옵니다. 폐하.”
“그래도 사신단들은 돌아가야 쉴 것이 아니냐. 사신단이 돌아가고 나면 행궁으로 가자꾸나. 해민. 그곳에서 내 반드시 이 시간을 보상받을 것이다. 너와 함께 말이다.”
해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금은. 이곳에서 그대의 위로를 받을 것이니라.”
해민을 힘주어 안으며 이스마힐이 말했다.
해민은 이스마힐에게 안긴 채 밀리며 그의 속도와 리듬을 느꼈다.
전과는 달라진 것이 느껴졌다.
전에는 그 정도의 속도로 걸으면 이스마힐이 다리를 전다는 것을 거의 느낄 수가 없었는데 그날은 그렇지 않았다.
환절기에는 다리에 불편과 통증을 더 겪으시는 것 같다고 카란이 알려주었었는데 아무래도 그게 문제인 것 같았다.
이스마힐은 자신의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을 절대로 해민에게 들키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해민은 그것을 느꼈다.
자기가 알았다는 것을 이스마힐이 알고 싶어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폐하. 오늘은 제가 위에서 하고 싶사옵니다.”
해민이 말하자 이스마힐이 해민을 바라보았다.
짧은 순간동안이었지만 이스마힐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자신의 변화를 해민이 민감하게 알아차린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해민은 이스마힐의 뺨을 감싸고 이스마힐이 정확히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이스마힐이 모르기를 원했지만, 만약 안다면 그것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기를 원했다.
“폐하. 소인은 폐하의 앞에서 소인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그래야 폐하께서 소인을 더 잘 지켜주실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옵니다. 폐하께서 아프고 불편하실 때는 소인에게 알려주시고 의지하시면 안 될지요.”
“그러고 싶지 않다. 해민. 나는 그대에게 언제나 견고한 성이고 싶다.”
그렇게 말하는 이스마힐의 표정이 슬퍼보였다.
그러나 해민은 그의 가슴으로 더욱 파고들면서 턱 밑에서 이스마힐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폐하는 저에게 언제나 견고한 성이옵니다. 저는 제 성이 언제까지나 견고하기를 바라옵니다. 오래오래 말이옵니다. 제 성이 약해지면 저는 제 성을 보수하고, 아끼고 싶사옵니다. 그래야 제 성이 오래오래 견고하지 않겠사옵니까.”
해민이 말하자 이스마힐이 그윽한 눈으로 해민을 바라보았다.
“그대에게만큼은 완벽한 모습을 보이고 싶은 욕심이 드는구나.”
“그러하옵니다. 폐하. 제게 폐하는 완벽하시옵니다. 하오나 제가 폐하께 더 바라는 건, 폐하께서 폐하의 모습 그대로 저에게 의탁해주시는 것이옵니다. 폐하는 제 남편이오나 저도 폐하의 남편이 아니옵니까.”
해민이 말하자 이스마힐이 해민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웃음을 지었다.
“그렇구나. 해민. 그 생각은 못하였다.”
“폐하. 폐하께서 눈을 감으실 때 저는 반드시 폐하의 곁에 있을 것이옵니다. 소인은 절대로 폐하보다 일찍 눈을 감지 않을 것이옵니다. 버티고 버티어, 폐하의 마지막 순간까지 폐하의 눈과 귀가 되어 드리고 손과 발이 되어 드리고 폐하께서 영면에 드시거든 저도 그때 폐하를 뒤따를 것이옵니다.”
“그리하거라. 해민.”
이스마힐은 해민의 부드러운 손길에 떠밀려 침대에 누웠고 해민은 이스마힐의 허리 위에 올라탔다.
이스마힐의 입가에 부드럽고 평온한 웃음이 감돌았다.
해민이 이스마힐의 몸을 쓰다듬다가 뒤로 팔을 뻗어 이스마힐의 허벅지 안쪽을 쓸어 올리자 이스마힐은 눈을 감았다.
그 부드러운 감촉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나도 섣부르게 날려버리고 싶지 않았다.
해민이 열어주는 천국의 길을 모두 기억해두고 싶었다.
아직 발기되지 않은 해민의 페니스와 고환이 이스마힐의 배 위에서 천천히 비벼졌다.
이스마힐은 금방이라도 해민의 안에 넣고 싶어질 정도로 급격히 흥분이 되었지만 해민의 느긋한 속도에 맞춰 천천히 즐기고 싶은 마음 역시 그의 것이었다.
해민이 이스마힐의 손을 잡고 이스마힐의 손가락을 하나씩 입 안에 넣고 빨기 시작했다.
새끼 고양이가 혀로 핥는 것 같은 간지러운 감각에 이스마힐은 아득한 만족감을 느꼈다.
이렇게 여유를 부릴 시간은 없었는데 해민과 함께 있다보니, 그리 서둘러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늑장을 부리고 싶어졌다.
해민의 혀가 이스마힐의 손바닥을 핥을 때는 이스마힐의 페니스가 반응을 보였다.
손바닥 한가운데를 자극받는다고 해서 그렇게 반응이 올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이스마힐은 해민의 허리를 잡고 쓰다듬다가 천천히 해민의 엉덩이로 손을 가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