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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로 회귀했다 나 남잔데-50화 (5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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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와 보겠느냐. 스베인?”

해민이 스베인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하자 스베인이 해민을 바라보았다.

“일레노이를 모르겠느냐. 스베인.”

이스마힐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해민은 이스마힐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스마힐 역시 스베인에 대해 같은 생각을 품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스베인은 해민을 바라보았지만 모르는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이상하게 여겼다.

“스베인, 황비 마마를 모르느냐.”

이스마힐이 희한하다는 듯이 물었다.

“황공하옵니다. 인사 올리옵니다. 황비 마마.”

스베인이 다시 인사를 했다.

스베인이 왜 해민에게 두 번이나 인사를 하는 것인지, 그 곁에 서 있던 사람들은 알지 못했고 어린 아이가 긴장해서 실수를 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베인을 계속 주시하고 있던 해민은, 스베인이 처음에 한 인사와 두 번째에 한 인사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스베인이 알던 일레노이에게 한 인사였고 그 다음에는 스베인이 처음 만나는 해민에게 한 인사 같았다.

스베인이 짧은 다리를 꼬고 인사를 하는 것을 바라보며 해민은 귀여워서 함박 웃음을 지었다.

스베인은 그런 해민을 보고 리베인을 바라보았다.

리베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지어 주었다.

평소에 저에게 웃음이라고는 보여준 적이 없던 두 사람이 웃음을 짓는 것을 보고 스베인은 혼란스러웠다.

황비 마마가 왜 이렇게 다정하게 대해주시는 걸까.

다른 분 같다.

이 분은 전에 알던 황비 마마와 완전히 다른 분 같다.

스베인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말을 했다가는 멍청한 소리를 한다고 혼이 날 것 같았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가까이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바람이 이루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스베인은 이번에도 자기 혼자서 이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베인. 내가 부탁을 한 가지 하여도 되겠느냐?”

황비의 말에, 스베인은 잔뜩 겁 먹은 얼굴로 황비 마마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급히 끄덕였다.

“예, 황비 마마. 하명하옵소서.”

“스베인. 그리 어려운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편하게 말해도 돼.”

“황공하옵니다. 황비 마마. 하명하시면 듣겠사옵니다.”

“그동안 내가 너한테 나쁘고 섭섭하게 군 게 있었다면. 그걸 용서해줄 수 있겠느냐. 스베인?”

해민이 말하자 스베인이 겁 먹은 얼굴로 해민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이스마힐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스마힐이 다가와 스베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주려무나. 스베인. 황비 마마는 너의 용서를 간절히 원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예. 황비 마마. 용서해 드리겠사옵니다.”

스베인이 말했다.

라비엔은 바로 얼굴을 찌푸렸다.

철 없는 것이 멍청한 소리를 했다고 생각했다.

황비 마마께서는 언제나 친절을 베푸셨다고 말을 했어야 할 텐데 그런 소리나 지껄였다는 생각이 라비엔은 스베인을 노려보았다.

얼결에 고개를 들었다가 라비엔과 눈이 마주친 스베인은 깜짝 놀라며 겁을 먹었다.

그때 해민이 일어나서 스베인의 앞으로 다가갔다.

해민이 선 자리는 스베인과 라비엔의 사이여서 라비엔의 시선이 스베인에게 더 이상 이르지 못했다.

“스베인. 내가 새로 이사한 전각에 가 보지 않겠느냐? 거기에는 정원도 있고 게으른 고양이도 있단다. 황제 폐하의 고양인데 거기에서 살아. 항상 땅바닥을 굴러다녀서 엄청 더럽단다. 그리고 내가 장난감을 줄 수도 있고.”

“정말...이옵니까?”

스베인은 어느새 고개를 들어 자기보다 훨씬 큰 황비를 바라보았다.

스베인은 분명히 황비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얘기를 할수록, 이 사람은 분명히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스베인은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겠느냐?”

“예. 가 보고 싶사옵니다.”

“그래. 가자.”

“황비. 스베인은 내 손님이니라. 내가 초청하였다.”

“그러면 폐하도 같이 가시겠사옵니까?”

해민은 뭐가 어렵냐는 듯이 물었다.

이스마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그대로 따라나설 준비를 했다.

라비엔이 따라갈 준비를 했지만 이스마힐이 고개를 저었다.

“너는 나를 따라오지 않아도 좋다. 라비엔.”

“하오나 폐하. 스베인은 아직 어리고 제 보살핌이 필요하옵니다.”

“황비의 별궁은 멀지 않다.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곧 사람을 보내 너를 부르겠다.”

“예... 폐하.”

이스마힐의 말은 더 이상의 반박을 허용하지 않는 말투였다.

라비엔은 더 이상 성심을 어지럽히지 않으려고 급히 고개를 숙였다.

“가자. 스베인.”

해민이 손을 내밀자 스베인이 해민의 손을 꼭 잡았다.

황비 마마의 손을 잡아본 적은 없었지만 이것은 황비 마마의 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비 마마의 손은 얼음보다도 더 차가울 거라고 생각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는데 이 손은 너무나 부드러웠다.

처음에는 해민이 손을 내밀었지만 어느새 스베인이 더 꼭 잡고 있었다.

“다리가 아프지는 않으냐? 내가 안아줘도 되겠느냐?”

해민이 말하자 스베인이 대답은 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나름대로 부끄러운 듯한 얼굴이었다.

해민은 귀여운 스베인을 안아들었다.

스베인을 가까이에서 보니 정말 두란트의 얼굴이 있었다.

이 녀석도 자라면 여자 꽤나 울리겠구나 하다가 남자를 울리려나? 하는 망상을 하다가 혼자서 웃음을 지었다.

스베인에게서 아기 특유의 냄새가 나는 것이 좋았다.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스베인은, 자기가 황비 마마께 안겨 있었다는 것을 외할아버지가 알게 되면 자기에게 화를 내지 않을지 걱정이 됐다.

다시 지하실에 갇히지는 않을지.

그런 생각이 들자 스베인의 조그만 손에 힘이 들어갔다.

“스베인. 겁 나는 거라도 있어?”

해민이 물었지만 스베인은 고개를 저었다.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절대로 안 된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그 말이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말하면 안 된다.

스베인은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아니옵니다. 황비 마마.”

“스베인. 나에게 오너라. 황비 마마가 너를 어찌 안겠느냐.”

이스마힐이 은근히 욕심을 냈지만 해민은 지지 않았다.

스베인은 해민의 옷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있었다.

호기심이 생겼는지 그걸 한동안 바라보더니 손으로 문질러 보기도 하고 선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여보기도 했다.

“스베인. 마음에 들어? 마음에 들면 형이 스베인 옷에도 그려줄까?”

아니지.

형 아니지.

“황비 마마가?”

자기를 그렇게 칭하는 게 꽤나 어색했지만 해민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가 한 말을 못 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재빨리 수습했다.

“제 옷에 이런 걸 그리면 혼날 것입니다.”

스베인이 말했다.

“누구한테...?”

“외할... 아니옵니다. 황비 마마.”

스베인의 귀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외할아버지의 말이 다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스베인. 그럼 내가 새 옷을 만들어줄게. 내가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고 내 시녀 에르모나가 만들어줄 거야. 그 옷에 그림을 그려주면 다른 사람들이 옷을 망쳤다고 너를 혼내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예.”

스베인은 확신하지 못한 채로 말했다.

외할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려 봤지만 외할아버지가 어떻게 나올지는 알 수가 없었다.

외할아버지는 스베인이 잘못해서 혼내기 보다는 자기 기분대로 혼내는 사람이었다.

혼내기 위해서 혼날 상황을 만드는 사람이기도 했다.

한 번에 모두 할 수 없는 일을 시켜놓고 그걸 다 못했다고 혼을 내기도 하고 벌을 주기도 했다.

스베인은 그동안 계속해서 그런 대우를 받으면서 살아왔고 자기 또래의 다른 아이들이 사는 모습을 본 적도 없었기에 그게 잘못된 거라는 생각을 하지도 않았고 그다지 억울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그러나, 황비 마마에게서 듣는 말들은 왠지 달콤하게 느껴졌다.

스베인은 황비 마마가 하는 다른 말에도 끌렸지만 장난감을 주겠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 이야기를 잊어버리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스베인은 혹시 황비 마마가 그것을 잊어버릴까봐 노심초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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