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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로 회귀했다 나 남잔데-48화 (48/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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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나 바쁜지 한 번씩 새 처소에 가 봐도 해민을 보기가 어려웠었다.

어디로 간 것이냐 물으면 에르모나는 황비 마마가 호위무사에게 끌려갔다고만 말을 했고 자기도 자세한 것은 알지 못한다고 했다.

카란이 해민을 강하게 훈련시키려고 그러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 너무 심하게는 하지 말라고 할까 했지만 그래도 해민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며 그때마다 이스마힐은 카란을 부르고 싶은 마음을 참았다.

제르반 역시 이스마힐의 생각에 동조했다.

보고 싶은 마음을 조금 참으시는 게 나중을 위해서 좋을 거라고 말하며 제르반은, 주위가 평안한 이때에 카란이 황비 마마께 여러 가지 것들을 가르쳐드리는 것이 좋을 거라고 했다.

그렇게 번번이 헛걸음을 하다가 밤이 되어 해민을 기다리면 해민은 침궁에 와서도 그대로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뭐라도 해보고 싶어도 해민은 금방 깊이 잠이 들어 얕게 코를 골았고 그런 해민을 보면 딱하고 안쓰러워서 다른 짓을 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서로 어긋나다보니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카란을 찾아내 당장 그 훈련을 중지하라고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급한 회의 때문에 중신들과 논의를 하다가 이제야 겨우 한가해져서 해민을 보러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해민이 들어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폐하. 황비 마마가 드셨사옵니다.”

시종장의 목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어서 들라 이르라.”

그러면서 이스마힐은 서둘러 책상 위를 모두 정리했다.

해민이 당당하게 들어왔고 귀여운 손은 주먹이 쥐어져 있었다.

밖에서 얼마나 땀을 흘리면서 훈련을 했는지 그 하얗던 얼굴이 분홍빛으로 익어 있었다.

분홍빛으로 익은 얼굴이 한없이 귀여웠다.

“내 황비. 이리 고생이 많아서 어찌한단 말이냐. 많이 힘드느냐. 황비. 당장 그만두라 하겠다. 카란이 그대를 너무 심하게 혹사시키는 것 같구나.”

“아니옵니다. 폐하. 덕분에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의기양양한 얼굴로 다가오는 해민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무엇부터 말을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러하냐. 카란이 그대에게 맞는 칼을 만들어주었다고 들었다. 그것은 잘 맞느냐.”

“그건 잘 모르겠사옵니다.”

“그러...하냐...”

이스마힐은 실망한 빛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하오나 저에게 잘 맞는 것을 찾았사옵니다. 카란이 그러는데 잘만 이용하면 적을 무찌를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옵니다.”

“그러하냐. 그대에게 맞는 암기를 드디어 찾은 모양이구나. 그것이 무엇이냐. 표창이나 단도 같은 것이냐.”

이스마힐의 눈이 다시 빛났다.

해민은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신이 나서 한달음에 이스마힐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그것은 일단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어서 기술을 선보일 수 있는 것이라서 다시 몇 걸음을 물러났다.

그런 채로 해민이 요요를 날리자 이스마힐의 눈이 둥그래졌다.

“무엇을... 방금... 한 것이냐?”

“이걸로 급소를 맞추면. 잘 하면. 적이 쓰러질 수도 있을 거라고 하였사옵니다.”

'잘 하면'이라는 말을 빠르고 작게 날림으로 말하면서 해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거짓말을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그래. 그렇구나... 잘 하면. 그래. 그러면 적이 쓰러질 수도 있겠지 왜 아니겠느냐.”

용케도 그 말을 들은 이스마힐이 말했다.

“소인도 그래서 열심히 연습하고 있사옵니다.”

이스마힐은 아쉬움이 컸다.

아이 장난감 같은 것으로 어떻게 사람을 공격한다는 말인지.

그냥 칼을 쓸 수는 없는지.

그러면서도 해민의 팔로 칼을 휘두르다가는 도리어 그것을 자객에게 뺏기고 그것으로 공격당하기나 십상일 거라고 생각했다.

뺏길 때를 생각하면 저 장난감 같은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이스마힐은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폐하. 너무 근심하지 마옵소서. 소인이 이걸로 아주 열심히 연습을 해서 폐하를 지켜드릴 것이옵니다.”

“그래. 기특하구나. 해민.”

이스마힐은 고개를 끄덕였다.

해민이 저걸 돌리면 도대체 뭘 하자는 건가 하면서 자객들이 얼이 빠져 죽을 수도 있을까.

그렇다면 승산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웃기는 건, 그런 얘기를 하는 동안 해민의 얼굴이 굉장히 진지했다는 거였다.

호미나 곡괭이를 찾다가 그것을 찾지 못하고 작은 나뭇가지를 발견한 아이가 그걸로 구덩이를 파겠다고 덤비는 꼴이었지만 해민의 표정을 보아서는, 해민은 정말로 그것으로 구덩이를 다 팔 때까지는 절대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해민. 그것 때문에 몸이 상해서는 안 될 것이니라.”

“예, 폐하.”

“내 옷에 그림을 그려주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느니라. 잊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믿겠다.”

뜨끔하여, 해민의 몸이 작게 튕겨 올랐지만 이스마힐은 모른 척 해주었다.

“폐하. 황후 마마와 움베르트 대제사장의 일은 어찌 되었사옵니까?”

해민이 얼른 관심을 돌리려고 그것을 묻자 무슨 뜻으로 그것을 묻는지 짐작을 한 이스마힐이 웃었다.

“관련된 자들을 색출하고 있다. 이 일은 조용하고 느리게 진행될 수밖에 없어서 시간이 걸리는구나.”

“제가 오기 전에 중신 회의가 있었다 들었사옵니다. 그들의 움직임은 어떻사옵니까? 황후 마마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것에 대해서 저항하는 움직임은 없사옵니까?”

“그들도 가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겠지. 무슨 수를 쓰려 하는지는 나도 궁금하구나. 그래도 그들도 결국 내 백성이고 내 사람들이 아니더냐. 그들이 말도 안 되는 멍청한 짓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이것이 꽤 명승부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스마힐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폐하. 걱정이 되지 않으시옵니까.”

해민은, 이스마힐이 혹시라도 자기가 걱정할까봐서 일부러 그렇게 말하는 것인가 해서 이스마힐에게 물었다.

그러나 이스마힐은 고개를 저었다.

“해민. 그대가 나에게 돌아왔을 때 말이다. 그리고 그대가 나에게 그대의 이름을 새롭게 알려주었을 때. 나는 그 후로 하루하루를 새롭게 살아가고 있는 기분이다. 그동안 나는 살아있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없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그대를 죽이고, 그대를 따라서 죽으려고 했던 그 날 이후. 그 후에 내가 사는 삶은 모두 덤이다. 나는 더 이상 아무 것에도 연연하지 않는다. 그대의 웃음을 보면서 살 수 있는 하루를 더 얻었다는 것. 그것 외에 내가 바라는 것은 없다. 그리고 사소한 것 한 가지는.”

이스마힐이 해민을 바라보았다.

“내 가여운 제국민들이 탐욕스러운 자들의 발치에 무릎 꿇지 않게 하겠다는 것 뿐이다. 욕심이 사라지니 두려운 것도 많이 사라졌다. 나를 담대하게 만들어준 사람은 그대다. 해민.”

“저를 너무 믿으시는 것 아니옵니까. 폐하. 하온데. 앞으로는 저를 믿으셔도 될 것 같기도 하옵니다.”

또 요요를 손에 꽉 쥐며 해민이 말했다.

순진한 얼굴로 진지하게 하는 말이 도무지 농담은 아닌 것 같아서 웃지도 못하고 이스마힐은 해민을 바라보다가 마침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밖에서 지키고 있던 자들의 얼굴에도 절로 웃음이 번졌다.

저 웃음을 얼마동안 듣지 못했던가 하면서, 역시 황비 마마가 찾아오시니 단번에 해결되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어두운 손길이 움직인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모두들 자기들이 선 자리에서 그것에 맞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스마힐도 마찬가지였고 해민도 마찬가지였다.

실체는 알지 못했지만 실체를 알지 못한다고 해서 막연한 두려움이 목을 조이는 것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이스마힐은 상대가 반격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차근차근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해나갔다.

황궁에서는 날마다 새로운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두란트 대공과 황후의 끄나풀이 되어서 이스마힐을 속이고 그들을 위해 움직였던 자들은 어느날 사신처럼 나타난 자들에게 이끌려 지하 감옥으로 끌려갔다.

느리지만 쉼없이 그 일은 계속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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