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비로 회귀했다 나 남잔데-46화 (46/103)
  • 00046  =========================

    “우리 가문의 도움이 없이는 폐하 혼자서 헤르만 제국을 다스리실 수는 없다는 것을 아시게 해 드려야겠지요.”

    라비엔느가 입을 열자 주위는 일순간 조용해졌다.

    무거운 적막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계책이 있느냐.”

    토비어스는 드디어 라비엔느가 말을 하자 속으로 크게 안심을 하며 물었다.

    “주변국에 사신들을 보내시지요. 큰 연회를 베풀 거라 하시면 될 것이옵니다.”

    “폐하의... 인가도 없이 말이냐.”

    토비어스가 걱정된다는 얼굴로 물었다.

    “지금 상황에서 어떤 위험 부담도 없이 타개를 해 나갈 방법은 없습니다.”

    “생각한 것이 무엇인지 말해보거라.”

    “주변국에 은밀히 사신을 보내 연회를 베풀 것이라 말씀하시고 사신들을 초대하는 것이옵니다. 크고 성대한 연회가 될 것이라 알리시고 사신단의 규모도 섭섭하지 않게 꾸려달라고 미리 언질을 넣어두시면 더 좋을 것입니다.”

    “무슨 연회라고 하면 되겠느냐.”

    “황후 마마의 탄신축하연과 함께 황태자로 책봉될 스베인을 주변국에 소개하는 자리라고 하시면 될 것 같사옵니다.”

    “허나 스베인은...”

    “예. 폐하께서는 황태자 책봉을 미루겠다 하셨지요. 그러나 손님들 앞에서 폐하께서 무어라 말씀하시겠사옵니까. 집안에서 싸움이 일어나도 손님들이 들이닥치면 그 앞에서는 급히 화해를 하지 않사옵니까.”

    라비엔느의 말에 토비어스는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묘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칫, 사이가 더욱 틀어질 수도 있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지금으로서는 달리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았다.

    토비어스는 그 일을 같이 결정할만한 사람들을 하나씩 바라보았고 그들은 토비어스와 눈이 마주치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라도 페하께서 이 일로 진노하시면...”

    아무래도 그 후의 일이 걱정되는 듯, 누군가 말을 하자 라비엔이 말했다.

    “그래도 한 번은 보여드려야 합니다. 우리 가문의 도움이 없이 황제 폐하께서 헤르만 제국을 이끌어가실 수 없다는 것을 말이옵니다.”

    “허나...”

    “무엇이 문제라는 말이요.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제왕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 아래에 있는 하찮은 인간들이 하는 것이지요. 폐하는 높은 곳에 계신 존귀한 분이나 폐하께서 모든 일을 일일이 챙기실 수는 없지요. 그 일은 나와 여러분이 하는 것입니다.”

    라비엔의 어조에서 사람들은 그 일이 뒤집힐 가능성은 이제 없을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스베인은 라비엔느와 토비어스 사이에서 조용히 눈망울을 굴렸다.

    이제 곧 이 자리가 파할 것 같아서, 스베인은 오로지 그것 때문에 기분이 좋아졌다.

    ***

    카란은 한숨을 쉬었다.

    황비 마마는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대책 없는 몸치였다.

    간혹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다른 것들은 문제없이 다 잘 해내는데 유독 몸을 쓰는 일에서만 둔한 사람.

    운동도 그렇고 무예도 그렇고.

    그런데 왜 하필 황비 마마가 이러시는 것인지.

    아무리 그래도 카란은 자기가 성인을 가르치는 수준에서 시작을 하면 될 거라고 생각 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초반부터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제르반 이 자식은!

    원래 제르반의 일이었던 것을 카란이 조금 도와주기로 했던 것 뿐이었는데 황비 마마의 실체가 드러나자 아예 뒤로 빠져버렸다.

    황비 마마는 체술을 배우실 수 있는 분이 아니니 네가 해야 한다고 딱 잘라서 말을 하더니 황비 마마에게도 그리 설득을 해버린 것 같았다.

    황비 마마께서 이제 와서 몸을 단련하시는 훈련을 받으시는 것보다는 암기를 사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훨씬 빠르고, 그것을 가장 잘 가르쳐줄 수 있는 자가 바로 카란이니 카란을 꽉 잡으셔야 한다고 해 놓은 듯 했다.

    황비 마마가 그런 말에 휙 넘어가버릴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황비 마마도 계산이 꽤나 빠른 분이었고 몸을 직접적으로 움직이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암기를 사용하는 법을 습득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선 모양이었다.

    카란은 제르반이 황비 마마의 호위무사가 되자 그 사이에 자기가 제르반의 빈 자리를 채우고 황제 폐하를 지근 거리에서 호위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꿈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제르반이 황제 폐하께도 말씀을 드려 놓았는지 황제 폐하도 이제 카란을 자주 찾지 않으셨고 카란이 보이면 어서 황비 마마께 더 가르쳐 드리지 않고 무엇을 하는 것이냐고 등을 떠밀기에 바빴다.

    황비 마마는, 잘 하는 것이 정말로 없었다.

    어떻게 저렇게 다방면에 걸쳐서 무능할 수 있는 걸까 하고 생각하면서 카란은 점점 근심이 깊어졌다.

    하다하다 안 돼서 카란은 황비 마마와 허심탄회한 대화를 해 보기로 했다.

    “황비 마마. 이리 좀 와서 앉아 보시옵소서.”

    아랫사람을 훈련 시키는 일이라면 이골이 난 몸이었다.

    자기가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며칠 안에 군기가 바짝 든 무사로 거듭나게 할 수가 있었다.

    아니. 그것도 성급한 일반화일지 모른다.

    지금까지 카란이 황비 마마를 만난 적이 없었기에 내릴 수 있었던 일반화.

    황비 마마는 모든 원칙에 변칙을 만들어내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꾀를 부린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고, 가르쳐준 것을 정말로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못한다는 게 문제였다.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러는 것 아닙니까! 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엄청난 열의를 보이면서 열심히 했으니까.

    집중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까! 라고도 할 수가 없었다.

    눈빛만큼은 철광석에 글씨를 새겨넣을 것처럼 예리하게 빛났다.

    그냥.

    몸의 움직임이 둔할 뿐이었다.

    그렇게나 감각이 없을 수가 있을까 하면서 카란은 방법을 찾기 위해 고심했다.

    빨리 황비 마마에게 맞는 암기를 만들어서 그것으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훈련을 시켜놓지 않으면 어렵게 얻은 황제 폐하의 호위무사 1인자 자리를 다시 제르반에게 뺏길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래도 불가능한 일이었고 때로는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마마. 송구한 말씀이오나. 마마는 제르반이 항상 지근거리에서 모시면서 잘 지키는 수밖에는 없을 것 같사옵니다.”

    “그...렇지? 아무래도 내가 너무 못하지?”

    해민은 낙심한 얼굴로 말했다.

    이놈의 몸뚱아리.

    예쁘고 황제 폐하를 기분 좋게 해 드릴 줄만 알지, 다른 데는 쓸모도 없다고 생각하면서 해민은 괜히 심통이 나서 제 손이며 팔을 바라보았다.

    주먹을 쥐어도 위협적으로 보이지도 않고 그냥 예쁘고 심쿵하고.

    내 미모로 심장을 공격해서 죽일 수는 있겠는데, 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곧 제정신이 들면서 그런 생각은 사라졌다.

    ============================ 작품 후기 ============================

    너도 얼굴만 예뻐서 걱정이구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