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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색을 그저, 취미 정도로만 하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들었다.
그런데 왜 황제 폐하는, 여자의 몸을 보고서는 발기조차도 되지 않는 그런 사람이어서 일을 이렇게 난감하게 만든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밤 생활에 대해서 딸에게서 얘기를 들은 토비어스는 하다하다 그런 제안까지 했다.
일레노이와 함께 침소에 들어가 황제 폐하를 같이 모시면 안 되겠느냐고.
황제 폐하께서 일레노이와 행위를 하실 때에 그 자리에 같이 있다가 황제 폐하께서 정수를 쏟으실 때 그것을 받으면 되지 않겠냐고 하면서 딸에게 화를 냈었다.
이야기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토비어스도 그것이 이스마힐의 문제라는 것을 알았지만 늘 딸에게 원망과 분노가 쏟아졌다.
너라는 것은 왜!
여자가 되어서 남자의 기능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냐고 쏟아부었던 말들로 인해 토비어스는 결국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넌 것이 되어버렸고 어느 순간부터 부녀간에는 대화가 단절되었다.
스베인을 낳은 후 황후는 더 이상 토비어스에게 사사로운 문제를 의논하려 들지도 않았다.
특히나 이스마힐이 스베인을 귀여워하고, 스베인을 양자로 삼고 싶다는 황후의 말에 귀를 기울인 후부터는 더욱 당당해졌다.
스베인이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밝힐 수는 없었지만 그것은 대수로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황후는 황제 폐하가 죽고 난 후에, 그동안 자신을 조롱하던 모든 사람들에게 작은 것 하나까지 갚아줄 생각이었다.
아버지를 무서워하던 딸은 이제 어디에도 없었고 황후는 두란트가 갇혀 있는 곳으로 찾아가곤 했다.
형식적으로는 남편의 동생을 위로하고 교화시키고 형제를 화해시키는 것이 목적이라고 하였지만 그런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두란트가 갇힌 탑을 찾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자 토비어스가 직접 황후전을 찾아가 황후를 설득하려고 했지만 황후는 토비어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스베인을 낳은 이가 누구인지 알면 황제 폐하의 분노가 단순히 자기에게만 미치지는 않을 거라고 하면서 황후는 패악을 부렸다.
토비어스는 그동안 자기가 딸에게 해 왔던 대로 고스란히 받는 것이라서 딸에게 화를 내지도 못하고 숨을 죽였다.
스베인은 인질이었다.
토비어스는 황후의 화를 돋우었다가 한동안 스베인을 멀리에서도 보지 못하게 된 일이 있었다.
그 인고의 시간을 통해서 깨닫게 된 것들이 많았다.
피는 다른 데로 가지 않는다는 것.
자신의 딸이 자기를 안 닮고 다른 사람을 닮는다면 그거야말로 이상하다는 것.
토비어스는 결국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자기가 딸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가 재정립되었다.
황후는 스베인을 토비어스에게 자주 보냈고 토비어스는 스베인의 교육을 맡으며 사람들을 끌어 모았다.
일부러 토비어스가 나설 필요도 없었다.
저절로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왔다.
토비어스 내외의 생일 파티라도 벌어지는 날이면 황궁에서 사람들이 나와서 그 모든 절차를 도와주었다.
황제 폐하의 명을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작은 힘을 가지고 그것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인력을 동원하여 토비어스의 눈에 들려고 안달을 낸 거였다.
헤르만 제국의 실제 권력자가 누구인지 일찍부터 간파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토비어스에게 모여들었고 그 결과 지금의 토비어스가 있게 되었다.
토비어스는 황후와 결탁하여 중요한 자리에 자기 가문의 사람들을 앉혔고 관직을 팔기도 했다.
처음에는 정말 그렇게까지 해도 되는 것인가 하고 겁이 나기도 했지만 하다보니 나중에는 자신이 생겼다.
자기가 하지 않더라도 누군가 할 것 같았고, 그럴 거라면 자기가 해서 스베인을 더욱 든든하게 후원해 주는 것이 헤르만 제국과 황실을 위해서 좋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멋대로 해 버리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지내온 세월이었다.
영화롭고 찬란한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갑자기 균열이 생겼다.
가장 큰 문제는 일레노이의 변화였다.
토비어스도 일레노이를 보았다.
사람들은 일레노이 황비가 변했다고 했지만 토비어스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사람의 성정이라는 것이 어떻게 하루 아침에 변할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일레노이에 대해서만큼은 자신이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기가 일레노이 같은 부류를 안다고 생각했다.
일레노이는 쉽고 단순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예측이 가능했다.
평생 단 하나의 주인만을 섬길 수 있는 개가 있었다.
그런 개는 자신의 주인이 죽으면 스스로 죽음을 맞이했다.
모든 곡기를 끊고 물도 마시지 않고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다.
일레노이는 그런 특이한 개들과 같은 부류였다.
주인을 섬기는 것에 이유는 없었다.
그저 자기가 그를 자신의 주인으로 선택했기 때문에.
그가 자신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운명으로 여겨서 그러는 것인지 충성심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일레노이는 그 단순하고 절대적인 충성심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일레노이가 두란트를 버리지 못할 거라는 것에 토비어스는 모든 것을 걸 수 있었다.
그런데 탑에 갇혀 처형을 기다리다가 나온 후, 일레노이는 갑자기 변해버렸다.
일레노이를 먼발치에서 본 사람들은 일레노이의 변화에 당혹스러워했다.
차가운 얼음장 같던 일레노이가 뭔가, 어딘지 모르게 어눌해보이고 부자연스러워보였다.
주위의 모든 것들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처럼 자주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황제 폐하가 일레노이에게 안겼던 보석들을 팔았다는 것은 더이상 이야기꺼리도 되지 않았다.
매일매일 신기록을 갈아치워버리는 것 같은 그의 모습 때문에 사람들은 당황했다.
사람들은 일레노이가 살 궁리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토비어스는 일레노이와 얘기를 해 보고 싶었다.
둘 사이에는 할 이야기가 많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도무지 그럴 시간과 기회를 찾기가 쉽지를 않았다.
토비어스가 다가가도 일레노이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 스쳐지나가는 것처럼 토비어스를 스쳐 지나갔다.
눈이 마주쳐야 신호라도 보낼 텐데 일레노이는 토비어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것이 단순히, 일레노이가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조심하고 경계하는 몸짓이라고만 생각했다.
갇혀있으면서 경고를 받은 탓에 몸을 움츠리고 황제 폐하의 눈밖에 나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것들이 많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점점 더 명확해졌다.
‘저 자가 왜 나를 모르는 척 하는 것인가!’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화를 냈지만 나중에는 그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레노이가 자기를 모른다는 사실을.
토비어스는 눈을 감은 채 그 일들을 생각했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어디서부터 수습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황후 마마에게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라는 말인가.
토비어스의 침묵이 길어지자 모두가 숨을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