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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로 회귀했다 나 남잔데-38화 (38/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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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일들로 심신이 어지러우셨겠사옵니다.”

    움베르트는 혹시 일레노이 황비가 황제 폐하께 두란트 대공에 대해서 말을 하지는 않았는지 그것을 알고 싶었다.

    그러나 황제 폐하는 지극히 평화로운 얼굴을 하고 책상 위에 놓인 책을 한 장씩 넘기고 있었다.

    그것은 평소 때의 습관이기도 했기에 움베르트는 황제 폐하의 그런 행동을 통해서 추측해낼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황비 마마의 별궁에 불을 지른 것은 성급한 짓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두란트 대공을 대하는 황비 마마의 태도가 심상치 않은 것을 보고,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두란트 대공이 황비 마마께 손찌검까지 하는 것을 보고 움베르트는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움베르트와 함께 도망치듯 나가 탑으로 가는 동안 두란트 대공은 아무 말이 없었다.

    크게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다른 사람의 배신은 상상할 수 있어도 일레노이 황비의 배신을 상상하기는 어려웠을 거였다.

    그랬으니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두란트 대공이 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버티면 어째야 할지 그거야말로 걱정이 됐지만 두란트 대공은 순순히 탑으로 향했다.

    혹시 황후전에 들르고 싶은지 움베르트가 물었지만 두란트 대공은 그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황후야, 어차피 두란트 대공에게 크게 상관도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움베르트도 알고 있었다.

    이스마힐이 가진 것을 뺏고 이스마힐이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졌다는 우월감을 느끼고 싶었을 뿐, 두란트 대공이 황후를 취한 것이 애정에 기인한 행동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두란트 대공이 스스로 감옥으로 들어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탑에서 나와 움베르트는 바로 황후전으로 향했다.

    황후 마마가 크게 화를 내더라도 일단 그 일을 상의할 수 있는 사람은 황후 마마뿐이라고 생각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움베르트가 황후를 찾아가 그 일을 고했을 때 황후는 예상했던 대로 크게 화를 냈다.

    황후가 그렇게 크게 화를 내는 것을 본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황후의 본 모습을 아는 사람들은 황후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황후가 화나지 않게 하기 위해 모진 애를 썼다.

    그러나 황후의 화를 피하자고 일을 축소해서 고할 수도 없었다.

    지금은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예상해야 했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비해야 했다.

    황후는 한바탕 난리를 치룬 후에 움베르트를 죽일 듯이 노려보면서도 시녀장과 시종장을 불러들였다.

    “지금 폐하는 어디에 계시냐.”

    황후가 물었을 때 가장 바라지 않던 대답이 나왔다.

    “황비 마마와 후원으로 나가셨다 하옵니다.”

    "일찍 침소에 드시겠다며 나를 보내신 분이 아니냐."

    "그러하오나..."

    "나를 보내고 일레노이의 별궁으로 가셨다. 그리고 일레노이와 함께 후원을 산책하신다 이 말이냐."

    "송구하옵니다, 마마."

    시녀장은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말하였다.

    움베르트는 그 말을 듣고 황후가 한바탕 또 진노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황후는 마음을 가라앉힌 듯 했고 오히려 잘 됐다는 얼굴을 했다

    “그렇다면 별궁은 지금 비어 있겠구나. 일레노이의 별궁을 지키는 시녀도 거의 없지 않으냐. 그 요망한 것이 폐하의 성심을 돌려보겠답시고 시녀들을 돌려보냈다지.”

    "그러하옵니다."

    "비어있겠느냐."

    “그럴 것이옵니다. 마마.”

    “잘 되었구나.”

    황후가 갑자기 일어섰을 때 움베르트는 황후가 무엇을 하려고 그러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황후는 잠시 멈칫하였지만 이내 마음을 정한 것 같았다.

    "이 방 안에서 일어난 일이 밖으로 새어나갔다가는 너희들의 목이 성치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예. 황후 마마."

    방에 있던 자들이 모두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움베르트도 마찬가지였다.

    움베르트는 위험한 계획이 시작되리라는 것을 직감했지만 이제 와서 발을 빼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기가 왜 두란트 대공을 데리고 황비의 별궁으로 간 것인지.

    그러기 전에 왜 황비에게 먼저 황비의 의중을 물어보지 않았는지 후회될 따름이었다.

    황후는 시종장을 불러 커다란 옷장의 안쪽 깊은 곳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게 했다.

    두 사람이 무슨 말을 나누는 지는 듣지 못했지만 나중에 모든 일이 끝나고 났을 때 움베르트는 그때 황후가 시종장에게 준 것이 불을 순식간에 키우는 약품 같은 거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순간적으로 코를 찌르는 매캐한 냄새를 맡고 움베르트가 황후를 바라보았지만 황후는 차가운 눈으로 움베르트를 노려볼 뿐이었다.

    “그 자리라도 계속 지키려는 생각이라면 앞으로는 제대로 처신을 해야 할 것이다. 한 번만 더 이런 멍청한 짓을 저질렀다가는 네가 섬기는 신께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될 것이다. 그것은 너에게 협박도 되지 않겠구나. 너는 네 신을 가까이에서 섬기고 싶지 않으냐.”

    황후의 거친 목소리에 움베르트는 고개를 숙였다.

    “다시는 실수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마마. 송구하옵니다.”

    “너의 잘못이겠느냐. 천박한 일레노이가 이제 황제 폐하께 붙어먹기로 해서 그리 된 것을. 그러나 다시 한 번 더 멍청한 짓을 하면 그때는 네 살가죽을 벗겨서 화풀이를 할 거라는 것만 알아두어라.”

    “명심하겠사옵니다. 황후 마마.”

    신심이 없는 황후에게는 움베르트의 말이 먹힌 적이 거의 없었다.

    결혼을 축복하면서 태의 축복이 임할 거라고 자신 있게 말을 하였었는데 그게 보기좋게 빗나가버린 이후, 황후는 늘 움베르트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자기가 그렇게 된 것이 움베르트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 직접적으로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움베르트가 진짜 대제사장이고 신과 소통하는 자라면 황제폐하가 남색의 저주에서 벗어나고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게 해 줬어야 했다고 수도 없이 말해왔다.

    두 사람은 애초에 가까워질 수도 없었고 서로가 그것을 원하지도 않았다.

    황후는 시종장을 가까이 불러 들였다.

    “책을 찾아라. 그리고 그 책만은 반드시 불태워라. 형체도 남지 않게. 아니. 그래도 그 책이 어떤 책인지는 알아야 할 것이니 형체는 남게 태워라. 이 일은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맡겨라. 윗선이 누군지는 절대로 모르게 해야 할 것이다.”

    황후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시종장은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움베르트. 내일 대전에 들거라. 그리고 황비에 대한 계시를 받았다고 하여라. 신의 노여움으로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고 하여라. 일레노이를 죽이셔야 한다고 말씀드리라는 말이다. 알겠느냐.”

    움베르트는 놀란 얼굴로 황후를 바라보았다.

    “황후 마마. 그렇다고 어찌...”

    그러자 황후가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냐. 움베르트. 너는 내게 태의 축복이 임할 것이라 말하였을 그때도 사실은 신의 계시를 듣지 못하였던 것이 아니냐. 그러면서도 뻔뻔스럽게 그렇게 지껄이고 나에게서 성물을 받아 챙겼지. 그 입을 놀려 네가 그동안 해 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폐하를 기망하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해야 스베인이 황위에 오를 때까지 네놈이 목숨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알겠느냐!”

    목소리는 엄하게 이어졌다.

    움베르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 일이 벌어졌다.

    한밤중에 황비의 별궁이 불에 탔고 황후는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간수들이 잡혀간 사실을 움베르트는 알지 못했다.

    황제 폐하의 호위무사와, 그들이 심어두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지하 감옥으로 잡혀가 신문을 받은 사실도 알지 못했다.

    그 일은 비밀리에 이루어졌고 그 비밀은 엄중히 유지되었다.

    움베르트는 그저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황후 마마가 알려주었던 시간이 되었을 때 신전을 나왔다.

    황후 마마가 황제 폐하를 먼저 알현하고 돌아갔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는 이야기가 오갔을 거라 여겼다.

    성지는 이미 어느 정도 굳어졌을 것이니 자기는 황제 폐하가 그 뜻을 더욱 견고히 하도록 몇 마디의 말만 덧붙이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할 말이 있거든 하거라.”

    이스마힐이 말했다.

    움베르트는 황후보다 이스마힐이 상대하기 쉽다고 생각했다.

    이스마힐의 앞에서 하기 어려운 말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황후에게 말하는 것보다는 그냥 여기에서 말하는 게 나았다.

    움베르트는 입을 열었다.

    그리고 황후가 알려주었던대로 말을 해 나갔다.

    신의 노여움이 헤르만 제국에 임하였고 그것은 일레노이 황비 때문이라고 하였다.

    신께서는 황제 폐하께서 남색하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으실 것이고 그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일레노이 황비를 처형해야 할 거라고 했다.

    “계시를 받았느냐. 움베르트.”

    이스마힐은 책에서 고개를 들지도 않고 말했다.

    “그러하옵니다. 폐하.”

    “그렇군.”

    이스마힐이 말했다.

    그렇군, 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그는 알 수가 없었다.

    그렇군이라는 말 다음에 다른 말이 나온 것도 아니었다.

    한참동안 침묵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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