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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로 회귀했다 나 남잔데-30화 (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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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매무새까지 단정히 하고 해민은 서둘러 이스마힐을 맞았다.

이스마힐은 방 안의 분위기가 이상한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무엇이 달라진 것인지 알아차리지 못해 어리둥절한 것 같았다.

“침궁에 왔었다고 들었다. 해민.”

이스마힐을 보자 순간적으로 모든 긴장감이 풀리며 눈물이 핑 돌았다.

늦은 시간인데도, 자기가 침궁 앞에서 발길을 돌려 돌아왔을 것을 생각하고 친히 와준 이스마힐이 고마웠다.

“예, 폐하. 황후 마마께서 드셨다고 하여 돌아왔사옵니다.”

눈물이 고인 것을 감추려고 일부러 환하게 웃으며 해민이 말했다.

“황후에게는 내가 단단히 일러두었다. 황후가 그리 처신하는 사람이 아닌데 오늘은 이상하게 굴어 나도 당황하였다. 원래는 먼저 기별을 넣어 내 허락을 받은 후에 움직이는 사람이 오늘은 무슨 일로 그런 것인지.”

“그런데 어찌 오셨사옵니까. 폐하.”

“네가 그냥 돌아갔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황후가 기별 없이 온 것도 기분이 좋지 않았고 말이다. 먼저 기별을 넣고 다시 오라 하였다.”

“저는 산책이나 할까 하였사옵니다.”

“이 밤중에 웬 산책이란 말이냐.”

“폐하. 저도 가끔은 숨을 쉬고 싶사옵니다. 별궁에만 갇혀서 지내는 것은 숨이 막히옵니다.”

투정을 부릴 생각은 아니었지만 방 안의 빛이 부담스러웠다.

이스마힐이 가까이 다가온다면, 아무리 분칠을 했다고는 하나 알아차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스마힐이 안타까워하는 얼굴로 해민을 바라보았다.

“정무로 바빠 놀아주지 못하였다고 심통이 난 것이구나.”

그렇게 말하면서 웃는 이스마힐을 보면서 해민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예민한 피부에 난 손자국이 사라질 때까지는 잠시 거리를 두어야 할 것 같았다.

“잠시 후원을 걸으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옵니다.”

“그럼 가자꾸나.”

“폐하. 폐하께서는 침소에 드시옵소서. 오늘 하루 너무 고단하지 않으셨사옵니까.”

“후원을 조금 거니는 것으로 힘에 겹지는 않을 것이다. 마음이 시끄러워 나도 후원을 거닐고 싶구나. 후원을 거닐고 너와 함께 침궁으로 갈 것이다.”

“폐하...”

“싫은 것이냐, 해민.”

“아니옵니다.”

해민은 고개를 저었다.

“에르모나. 황비마마가 밤바람에 상하지 않도록 잘 챙겨드리거라. 해민,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마.”

이스마힐이 그리 말하고 나가자 해민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

옷을 갈아입혀 주며 에르모나가 해민의 눈치를 보았다.

“할 말이 있느냐. 에르모나.”

“마마. 소인은. 마마께서 폐하께 말씀을 드리셔야 한다고 생각하옵니다. 마마께서는 폐하의 성심을 헤아리며 말씀 올릴 수 있으나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않을 것이옵니다. 말은 어느 누가 하는가에 따라서, 그리고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하는가에 따라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사옵니까. 움베르트 대제사장이 폐하께 먼저 아뢴다고 생각해 보옵소서. 대제사장은 분명히 자신에게 유리하게 말하려 할 것이옵니다. 황비 마마께서 시키신 일이라고 할 수도 있사옵니다.”

에르모나의 말에 해민도 고개를 끄덕였다.

해민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스마힐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지만, 그리고 이스마힐이 분노해서 두란트를 죽이려고 할까봐서 걱정이 되었지만 그렇게 피하려고 한다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닐 것 같았다.

해민은 에르모나의 말을 듣고 오래 생각에 잠겨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구나. 에르모나. 그리고 두란트에게서 나를 구해주려고 했던 것도 고맙다. 내가 참 운이 좋은 사람이구나.”

“마마. 혹여라도, 두란트 대공이 한 말을 듣고 제가 황비 마마를 다르게 여길 거라 생각하지 않으셔도 되옵니다. 전에는 황비 마마를 모시게 되었다는 것에 대해 이렇게까지 자긍심을 갖지는 못하였사옵니다. 폐하의 총애를 받으시는 황비 마마의 별궁을 지키는 이로서 편학는 했사옵니다만 제 상전에 대한 존경심이나 사랑은 없었사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옵니다.”

에르모나가 말했다.

에르모나도 자신의 감정을 허물없이 터놓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에르모나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이 꽤 어려운 일이었을 거라는 것을 해민은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에르모나는 그 말을 꼭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

“고맙다. 에르모나.”

“마마. 폐하께서는 오랫동안 외로운 분이셨사옵니다. 폐하께서 그리 밝고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을 소인은 처음 보옵니다. 폐하를 그리 웃으실 수 있도록 만드실 수 있는 분은 마마뿐이옵니다. 부디 마마께서. 폐하를 행복하게 해 주시면 좋겠사옵니다.”

“에르모나. 나는... 내가... 에르모나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였던가보다.”

“예에? 어찌 생각하셨는데요?”

아니. 나는 그냥...

사실대로 말을 했다가는 좋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냉각돼 버릴 것 같아서 해민은 입을 다물고 씨익 웃어주었다.

“폐하께서 기다리시겠구나.”

해민이 나가자 이스마힐이 해민을 기다리고 있었다.

“춥지 않겠느냐. 밤에는 쌀쌀하다.”

“저는 괜찮사옵니다.”

해민이 웃으며 다가가자 이스마힐도 미소를 지었다.

이스마힐이 해민과 후원을 걷는 동안 사람들이 이스마힐을 수행했지만 일정한 거리를 두었고 그 이상은 조금도 더 가까워지지 않았다.

해민은 이스마힐이 그들에게 미리 그렇게 말을 해 두었다는 것을 깨닫고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

“폐하의 손을 잡아도 되옵니까.”

“그리하거라.”

이스마힐이 웃었다.

해민은 이스마힐의 손을 잡고 이스마힐에게 머리를 기댔다.

해민의 긴 머리카락이 이스마힐에게 흘러내리자 이스마힐이 웃음을 지었다.

“그대에게 가기 전에는 마음에 풍파가 이는 것 같았는데 그대와 같이 걷고 있으니 그 풍파가 잠잠해졌구나.”

“그러하옵니까.”

“해민.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

이스마힐이 물었다.

해민은 속으로 심호흡을 했다.

지금이 아니라면 말을 하기가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힘이 들어갔고 이스마힐의 손을 잡고 있던 손에도 마찬가지였다.

“말해보거라. 해민.”

이스마힐이 해민을 향해 몸을 돌렸다.

이제 더 이상, 헛된 걸음을 옮기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해민은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상태였고, 혹시라도 자기가 하는 말을 이스마힐을 믿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그 상황을 자기가 감당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해민은 에르모나의 말이 맞을 거라고 생각했고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었다.

“폐하...”

“편히 말하여도 된다. 해민. 그대가 하는 말을 들을 것이다.”

“제가 드리는 말씀을. 믿으실 수 없으면 어찌하실 것이옵니까, 폐하?”

해민이 물었다.

“해민. 그냥 말을 해 주면 안 되겠느냐.”

“저도 말씀드리고 싶사옵니다. 그런데. 걱정이 되옵니다. 겁이 나옵니다. 제 충정이 오해받을까봐. 만약 폐하께서 저를 의심하시면... 저에게는 그것이 큰 상처가 될 것 같사옵니다. 그것을 제가 견디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그것을 모르겠사옵니다.”

“그것은. 말을 듣기 전에는 나도 약속해줄 수 있는 말이 없구나. 그렇다면 좀 더 생각해 보고 말을 하거라.”

이스마힐이 말했다.

네가 하는 말은 뭐든 믿을 거라고 말해주지 않는 것이 서운하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해민도 알고 있었다.

더 이상은, 자기가 상처받을 것을 염려하며 이스마힐을 위험에 처하게 둘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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