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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로 회귀했다 나 남잔데-6화 (6/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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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 할 것이옵니다.”

    라고 말을 하는데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고 서두르는 기색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게 뭔지 알 수가 없었다.

    황제가 황비 마마를 특별히 침궁으로 불러들이는 것을 보고, 침궁에서 황제 폐하의 기분이 풀어지면 나가지 않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속으로 혼자서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해민은 모르고 있었다.

    에르모나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최대한 뒤로 미루고 있었다.

    “이제 내가 하겠다.”

    계속해서 옆에서 도와주고 싶어하는 에르모나를 간신히 떼어내고 해민이 말했다.

    에르모나는 아쉬워하면서도 방을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해민은 뜨악한 표정으로 에르모나를 바라보았다.

    “옷도 갈아입고 해야 하니. 이제 나가거라.”

    “에에? 황비 마마. 황비 마마의 옷을 갈아입혀 드리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 아니옵니까? 알몸까지 다 씻겨 드렸는데 이제 와서 무슨 말씀이옵니까?”

    에르모나야말로 자기가 더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목욕을 할 때는 중요한 곳을 수건으로 덮었으니 그럭저럭 괜찮다고는 하지만.

    옷을 갈아입을 때까지 에르모나가 거들도록 할 수는 없었다.

    해민은 절대로 타협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에르모나를 내보냈다.

    그리고 이스마힐이 말했던 대로, 이스마힐이 좋아한 옷과 같은 스타일의 것을 골랐다.

    그러다가 에르모나를 다시 불러들였다.

    “에르모나. 황제 폐하께서는 어떤 색을 좋아하시느냐? 황제 폐하께서 가장 좋아하셨던 옷을 아느냐? 내가 입었던 것과 같은 스타일이어야 한다.”

    “아아아아. 그거라면. 황제 폐하께서는 진한 남청색을 좋아하시옵니다. 황비 마마께서 입으신 것을 보고 황제 폐하께서 입이 닳게 칭찬을 하셨던 옷이 있사온데. 마마께서는 그 일을 잊으셨사옵니까?”

    에르모나는 정말로 무심함의 극치라는 듯이 해민을 바라보았다.

    해민은 그럴 때마다 할 말이 없었다.

    “미안하다. 기억이 잘 나지를 않는구나. 그것도 다 충격을 심하게 받아서 그런 것일 테니 너무 화를 내지 말고 나를 도와주려무나. 내가 잊은 것들을 다시 기억할 수 있게 말이다. 그게 너한테도 좋을 것이다. 네가 섬기는 사람이 미친 사람이라고 하면 너는 좋겠느냐?”

    “아니옵니다. 그리고 농으로라도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시옵소서.”

    에르모나가 말했다.

    에르모나는 해민에게 옷을 찾아주고 머리 장식과 악세사리들을 챙겨왔다.

    해민은 기겁을 하면서 자기가 그런 것들을 왜 하겠냐고 손을 내저었지만 에르모나는 그때야말로 걱정이 되는 얼굴로 해민을 바라보았다.

    “황비 마마. 정말로 이런 것들이 전부 다 기억이 안 나시옵니까? 이걸 사 달라고 황제 폐하를 얼마나 볶아대셨사옵니까? 이 티아라 하나면 영지 사람들을 석달 동안 먹일 수 있다고 폐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사옵니까. 그런데도 황비 마마께서 너무 원하셔서 폐하께서 그것을 선물하신 거고요.”

    “뭐?”

    해민은 어이가 없어서 에르모나가 가져온 티아라들을 보았다.

    그런 것이 스무 개도 넘었다.

    찬찬히 세어보니 서른 개가 거의 되었다.

    “미쳤어. 미쳤어.”

    “예에?”

    “아니. 아니다. 나한테 한 말이다.”

    해민은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라면 이스마힐에게도 문제가 있는 거라고 생각하자 조금씩 이스마힐에게 화가 났다.

    처음에는 일레노이에게 빠진 남자라고만 생각했는데 이건 정도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안 되겠어!”

    해민이 말하자 에르모나는 황비 마마가 왜 이러시는 걸까 하면서 전전긍긍했다.

    “이렇게 생긴 걸 전부 다 가져오너라. 돈이 될만한 내 장신구 말이다. 아. 에르모나. 이런 옷들은 얼마나 하느냐?”

    옷이라고 해서 값이 대충 나가는 것이 아닐 것 같아서 묻자 에르모나가 해민의 눈치를 보았다.

    “솔직하게 말하거라. 네가 고한 말에 조금이라도 거짓이 있다는 게 밝혀진다면 내 결코 너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해민의 말투가 엄해지자 에르모나가 고개를 푹 숙였다.

    제가 잘못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기가 질린 모습이었다.

    “그것들 역시... 비싼 것들이옵니다. 특히, 두란트 대공 마마가 좋아하신 옷들은 궁궐의 한 달 살림에 드는 비용에 맞먹었사옵니다...”

    “하...”

    해민은 고개를 저었다.

    “그것들은 모두 어디에 있느냐.”

    “걱정하시지 않아도 되옵니다. 황비 마마. 빼놓지 않고 제가 가장 먼저 전부 챙겼사옵니다.”

    “그것은 가지고 나가지 않을 것이니 모두 가져오너라.”

    “예? 어찌 하려고 그러시옵니까?”

    에르모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황비 마마의 입에서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몰라서 걱정을 멈출 수가 없었다.

    “너는. 이런 것들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거라. 귀한 보석을, 좋은 값을 주고 사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옷도 마찬가지다.”

    “그럴 분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사옵니다.”

    에르모나가 해민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거야 걱정할 일이은 아니지만 정말로 그걸 전부 다 팔 생각인지 그 의중을 알고 싶은 것 같았다.

    “그럴 것이다. 황실의 살림도 말이 아니겠구나. 폐하께서는 어쩌자고!”

    해민은 그렇게 말했다가 자기가 불충한 말을 한 것을 깨닫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에르모나가 해민에게 다가왔다.

    “황비 마마.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사오나. 노여움을 푸시옵고... 황제 폐하께서 황비 마마에 대한 화를 푸시도록 단장을 하시지요.”

    에르모나에게는 그것이 최선이었겠지만 해민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이런 남자를 어디다 써! 하는 생각까지 들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사랑하는 남자 때문에 상처 입은 남자라고만 생각을 했지만 이제는 제국 제1의 호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더 어이가 없는 것은, 그 남자에게 빨대를 꽂고 피를 쪽쪽 빼 먹은 사람이 바로 자기였다는 사실이었다.

    “에르모나. 당장 가 보거라. 이것들을 사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안다 하지 않았느냐.”

    해민은 다른 일보다 그 일에 우선 순위를 두었다.

    “예, 마마. 아르마리안 후작 부인이라면 전부 다 사려고 할 것이옵니다. 옷도 같이 사겠다고 할 것이옵니다. 후작 부인은 황비 마마의 안목을 늘 존경해왔고 후작 부인의 미동들에게 늘 황비 마마가 입으신 옷을 입혀보고 싶어 했으니까 말이옵니다.”

    “그러하냐."

    에르모나는 정말 황비 마마가 그 일에 대해서도 완전히 잊어버린 건가 하는 표정으로 해민을 바라보다가 잊어버린 게 맞다고 생각한 듯 일화를 얘기했다.

    "후작 부인이 황비 마마께 황비 마마의 옷을 지은 사람이 누군지 여쭈었던 일을 잊으셨는지요."

    "그런 일이 있었느냐.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그래서 내가 뭐라고 말을 했느냐."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사옵니다. 더러운 것이 감히 바라본다는 듯이 경멸하는 눈으로 후작 부인을 노려보셨을 뿐이었지요."

    "내가 그랬다는 말이냐. 그러면 후작 부인은 나에 대해서 감정이 좋지 않겠구나."

    "그런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후작 부인만 딱 찍어서 그리 대하시는 것도 아니니 후작 부인은 아마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을 것이옵니다. 저에게 따로 선물을 주면서 후작 부인이 입으시는 옷이나 사용하시는 장신구를 만드는 사람들을 알려달라고 한 적도 있었지요. 집착은 대단한 사람이니까요."

    "나 때문에 네가 재미가 좋았다는 말로 들리는구나."

    "마마. 그래도, 그런 낙이라도 있으니 제가 마마를 모시는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정말로 마마는..."

    에르모나는 자기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한 건가 하고 동그래진 눈으로 해민을 바라보았다.

    해민은 웃음이 났지만 에르모나를 놀려주고 싶어서 짐짓 화가 난 척을 했다.

    "마, 마마... 죽여주옵소서."

    "정녕 죽기를 바라느냐."

    "아, 아니, 아니옵니다. 살려주시옵소서, 마마."

    그러자 해민이 웃음을 지었다.

    "그 이야기를 계속 해 보거라. 그래서 어찌 되었느냐."

    "후작 부인은. 황비 마마께 악세사리와 옷들이 셀 수도 없이 많고 더이상 잘 꺼내보지도 않는 것들이 많을 테니 그것을 자기에게 팔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새 것보다 더 비싸게 살 거라고 하였고요. 황실의 형편도 좋지 않으니 그렇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하였사옵니다."

    "그랬더냐. 그래서 나는. 뭐라고 했느냐."

    "황비 마마께서 왜 황실의 형편을 신경 써야 하느냐고... 그러셨사옵니다... 황비 마마께서는 제국의 꽃이고 제국의 꽃이 제국의 태양께 즐거움을 드리는데 왜 다른 것을 신경 써야 하느냐 하셨사옵니다."

    그렇군.

    일레노이는 늘 한결같았던 것이군.

    해민은 이제 웃음조차 나오지 않아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젓기만 했다.

    "그러시고는. 그걸 처박아두어서 먼지를 앉게 하건 좀이 슬게 하건 상관하지 말라 하셨사옵니다."

    "그래. 알겠다. 충분히 알아들었다."

    계속 얘기를 듣다가는 혈압이 올라 쓰러질 것 같아서 해민이 에르모나를 막았다.

    "그럼. 내가 팔겠다고만 하면 확실히 사고 싶어 하겠구나."

    "그러하옵니다. 마마."

    "그런데 그 후작 부인이 그만한 재산을 갖고 있느냐. 아르마리안이라 하였는가. 그 후작 부인이 그리 대단한 사람이냐. 옷 한 벌이 궁궐 살림 한달치와 맞먹는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러면. 이걸 전부 사려면...”

    대충 가늠을 해 보려고 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지만 에르모나는 걱정할 것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걱정하실 것 없사옵니다. 아르마리안 후작 부인은, 국외에도 여러 개의 작위를 갖고 있고 넓은 영지를 갖고 있사옵니다. 이곳 저곳의 황실과 연관이 있지요. 트루벤의 국왕에게는 육촌이 되고 리젠테의 왕비는 후작부인의 사촌 언니이옵니다. 테레즈에서는 왕위 계승 순위가 30위 정도 될 것이옵니다."

    해민은 점점 그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 가문은 대대로 대륙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들을 배출한 집안으로 명성이 자자했지요.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미모가 한 물 가서 그렇지, 후작 부인이 젊었을 때는 헤르만 제국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이 자자했사옵니다. 선친에게서 상속 받은 재산도 많았고 여러 번 결혼을 하고 유산을 불리며 지금의 부를 축적했는데 돈 쓸 곳을 찾지 못해서 그것이 걱정이라면 모를까 돈이 없어서 걱정 하는 일은 없을 것이옵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이냐. 대단한 행운이로구나. 그 정도라면 금수저들 중에서도 으뜸이겠구나."

    해민은 헛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후작 부인이 다른 면에서도 운이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사옵니다. 자기가 아름답다는 것을 알고 교만해서 그랬겠지만 자기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사람들은 무시해버리기가 일쑤였지요. 결혼했던 많은 남자들 중에 누구도 서로가 진심으로 사랑해서 결혼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옵니다."

    "그런 것을 너는 어찌 그리 소상히 알고 있느냐. 에르모나."

    "제가 말씀 올리지 않았사옵니까, 마마. 후작 부인은 집착이 대단하고 마마의 장신구를 얻기 위해서 끊임없이 저에게 줄을 댔사옵니다. 그래도 저는 목숨이 무서워서 감히 아무 것도 빼돌릴 생각을 하지는 못했사오나 마마께, 안 쓰시는 것들은 처분하고 새로운 것을 사시면 어떨지 건의하기는 했지요."

    에르모나가 말했다.

    "계속해 보거라. 후작 부인이 앞으로 나에게 큰 유익이 될 것 같구나."

    "그리할 것이옵니다. 마마. 그래서. 잃어버린 젊음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 후작 부인은 미동이라면 사족을 못 쓰지요. 황비 마마께 이걸 사서 그 많은 미동둘에게 한 두 개씩만 선물을 주어도 미동들은 후작 부인에게 더 찰싹 달라붙을 것입니다.”

    에르모나는 해민의 장신구들을 보면서 말했다.

    판다고 생각하니, 한 번도 제 것이었던 적이 없는 물건이었다고 하더라도 서운한 마음이 조금은 드는 것 같았다.

    “제국의 사정이 어렵다고 하더니. 그래도 그 사이에서 배를 불린 자는 있었던 것이구나.”

    해민이 씁쓸하게 말하자 에르모나는 절대로 그게 황비 마마가 할 말은 아니라는 듯이 잠깐 해민을 바라보았다.

    해민도 그 눈빛의 의미를 알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해민이 계속 이것 저것 머리를 굴리려는 것을 보고 에르모나가 제법 단호하게 해민의 앞을 막아섰다.

    “황비 마마. 지금부터는 아무 것도 하지 마시옵소서. 황비 마마는 제국의 꽃이옵니다. 제국의 태양이신 황제 폐하께서 원하고 아끼신 단 한 분이 아니시냔 말이옵니다. 물론. 황후 마마도 있사오나... 어쨌든. 황비 마마께서 지금 신경 쓰셔야 할 것은 다른 것들이 아니옵니다. 일단 황비 마마께서 명을 내리셨으니 제가 그것들은 제 값보다 후하게 받게 팔아올 것이옵니다. 그러니 황비 마마께서는 지금부터 다른 것은 신경 쓰지 마시고 침궁에서 황제 폐하를 위로해 드릴 궁리만 하옵소서.”

    에르모나의 말을 듣자 해민은 정신이 번쩍 들면서 얼굴이 붉어졌다.

    자기가 이곳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인지 이제야말로 새삼스럽게 깨달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 알겠다... 그 말이 맞다. 에르모나. 그렇게 말해주어서 고맙구나. 너는 나에게 참으로 도움이 되는 아이였을 것 같구나.”

    해민이 그렇게 말하자 에르모나는 정말이지 적응 안 된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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