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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로 회귀했다 나 남잔데-5화 (5/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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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는 대제사장 움베르트의 반역에 대한 내용이 나와 있었다.

움베르트가 두란트를 도와 전복을 꾀하다가 발각된다는 내용이었다.

해민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한 채 페이지를 넘겼다.

움베르트는 이스마힐에게, 황족을 감금하고 신체를 구속하는 것이 신의 노여움을 산다고 하며 두란트를 석방하게 했다.

그리고 두란트를 신전에 숨긴 채 황제 이스마힐을 조종하려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신의 대언자인 움베르트의 말은 이스마힐도 감히 거스를 수가 없었지만 움베르트의 탐욕이 짙어지면서 제국민들에 대한 수탈이 지속되자 이스마힐이 움베르트를 압박했고, 그에 반감을 품은 움베르트가 두란트를 황위에 올리기 위해 반역을 도모한다는 내용이었다.

해민은 움베르트에게 그 내용을 말해주지 못했다.

움베르트는 잔뜩 기대를 하면서 해민을 바라보았지만 해민이 해 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해민은 고개를 젓고 움베르트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보이지 않는구나. 아직은 책에 기록될 만큼 중대한 일이 생기지 않는 모양이다. 내가 사형장으로 가지 않고 목숨을 건진다는 건 중요한 일이어서 보였던 것 같다.”

움베르트는 해민의 말을 이해하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그 이야기까지 끝마치자 움베르트는 더 이상 그곳에 남아있을 명분이 없어 돌아갔다.

앞으로 파란만장한 일들이 벌어질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해민은 책상 앞에 가서 앉았다.

에르모나는 해민이 더 이상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고 했는데도 해민의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해민이 고개를 들면 항상 달려올 준비가 되어있는 충성스런 짐승처럼 보이기도 했다.

해민은 혹시 에르모나에 대한 기록이 있을까 해서 책을 떠들어보았지만 에르모나에 대해서는 기술된 것이 없었다.

그런 책에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은 황비의 시녀답게 살다가 죽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일단은 에르모나를 믿어보기로 했다.

“궁을 떠나는 것이 슬프시옵니까, 황비 마마?”

에르모나가 그렇게 말했을 때에야 해민은 자기가 궁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준비할 것이 많을까?”

“많을 것이옵니다. 황비 마마.”

“그럼 서둘러야겠군. 오래 지체하고 싶지 않다. 황제 폐하의 명이 떨어졌으니 바로 움직여야지.”

해민이 일어서려 하자 에르모나가 해민을 막았다.

“황비 마마. 이런 일에까지 황비 마마께서 나서시는 것은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옵니다.”

그러면서 에르모나는 해민을 내보냈다.

정원을 산책하고 돌아오시면 준비는 끝나있을 것이니 지금은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마음을 안정시키는데만 전념하라고 했다.

해민은 에르모나를 도우려고 했지만 에르모나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되자 해민은, 궁을 떠나기 전에 이스마힐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떠나고 헤어지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지금 이스마힐이 뼈를 깎는 고통을 참으며 자기를 밀어내는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를 위로해 주고 싶었다.

자기가 더 이상 이전의 모습과 같지 않을 거라는 것을 믿게 해 줄 수 있다면 자기가 궁을 떠나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믿음을 줄 방법이 없어 아쉬웠다.

정원을 혼자서 거닐고 있을 때 우아하고 기품있는 여자가 다른 사람들의 시중을 받으며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왠지 그 여자가 황후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 해민은 급히 다가갔다.

사람들이 먼저 해민을 발견하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황후 마마.”

가장 가까이에서 시중을 들던 시녀가 말하는 것을 듣고 해민은 자기가 잘못 안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황후 마마.”

황후가 해민을 돌아보았다.

“일레노이.”

황후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들려왔다.

“고개를 들거라. 황비.”

황후의 말에 고개를 들자 황후가 웃음을 지어보였다.

“얼굴이 많이 상하였구나. 그래도 폐하께서 노여움을 푸셔서 다행이다. 고생이 많았다.”

해민은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해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럴 때 쓸만한 외교적인 수사들이 있을 텐데 그런 게 바로바로 떠오르지 않아서 곤욕을 치르는 중이었다.

“제 경솔한 언행으로 폐하와 마마께 심려를 끼쳐드리고 죽을 죄를 지었사옵니다.”

해민의 말에, 황후를 제외한 사람들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누구도 그것을 황비의 진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럴 법도 했다.

쉽게 이해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기에 해민은 속으로 한숨을 숨길 뿐이었다.

“출궁한다 들었다.”

“그러하옵니다. 마마.”

“내 폐하께 말씀드려볼 터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황비.”

“아니옵니다. 마마. 그리하는 것이 옳을 것이옵니다.”

황후는 안타깝다는 얼굴로 해민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걱정하는 것일까.

해민은 황후의 속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책의 기록대로라면 황후는 양자를 들이고 양자를 대신해 헤르만 제국을 통치했지만 그것은 이스마힐의 유언에 의한 거였을 것이다.

황후가 들인 양자가 누군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황후가 독단적으로 정한 양자도 아니었을 거였다.

해민은 기품있는 황후의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절세의 미인이라고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고 후덕해 보였지만 이스마힐과의 사이가 좋았다고 기록된 것을 보면 이스마힐도 황후를 좋아한 것 같았다.

단지 성적인 매력을 느끼지 못했을 뿐.

“바람이 차다. 너무 얇게 입고 다니지 말거라. 황비.”

황후의 말에 해민은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였다.

고개를 들었을 때 황후는 거느린 자들을 데리고 멀어지고 있었다.

해민은 이곳에서 모두의 미움을 받느니 그냥 궁을 떠나는 게 편하겠다고 생각했다.

움베르트의 말에 의하면 황제에게서 하사받은 땅에 가서 영지를 다스리면 될 거라고 했다.

그동안 영지를 오래 방치해두었으니 이참에 영지를 돌보는 것도 황제 폐하를 위하는 일이 될 거라고 했다.

잘 할 수 있을지 자신은 없었지만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잘 가꿔진 정원을 거닐다가 문득 어떤 시선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을 때, 해민은 언제부터 서 있었던 것인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스마힐을 발견했다.

“폐...하...”

놀라며 황급히 허리를 숙인 해민을 향해 이스마힐이 다가왔다.

***

다가오는 황제의 곁에 호위는 아무도 없었다.

궁 앞의 정원이라서 마음을 놓았던 것인가 하면서도 해민은 그가 너무 무방비로 다니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됐다.

두란트도, 움베르트도 수시로 이스마힐의 목숨을 노린다고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

지금의 움베르트는 위험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필연적으로 그 결론에 이를 거라고 생각했다.

이스마힐은 해민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마땅히 멈췄어야 했을 지점을 지나 이스마힐은 해민에게 가까워졌다.

몸이 거의 접촉할 정도였다.

이스마힐이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탐욕스럽게 해민의 체취를 들이마시는 모습이었다.

“폐하...”

“짐의 침궁에 들겠느냐.”

이스마힐의 말에 해민의 가슴은 미친 듯이 뛰었다.

해민은 이스마힐을 바라보았다.

이 남자.

눈이.

회색이었다.

이스마힐을 본 것이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는데도 그 상세한 정보는 천천히 자리잡기 시작했다.

제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동안에는 그런 것들을 머릿속에 집어넣을 여력이 없었던 듯했다.

그대로 빠져들어버릴 것 같은, 안개 자욱한 호수 같은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해민은 잠시 숨 쉬는 것조차 잊을 지경이었다.

“말하거라. 황비. 그리하겠느냐.”

이스마힐이 답을 재촉했다.

벌어진 입술을 닫지도 못하고, 헐떡이는 숨소리를 감추지도 못하고 해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해주신다면... 너무도 원하옵니다. 폐하.”

헤어지기 전에, 궁을 떠나기 전에 한 번은 그와 그런 시간을 갖고 싶었다.

그리고 이스마힐을 위로해주고 싶었었다.

“내게 무엇을 원하느냐. 황비. 출궁하라는 명을 거두어주기를 바라느냐.”

이스마힐의 목소리가 다시금 차가워졌다.

해민은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아니되옵니다. 폐하. 출궁을 명하신 것은 잘하신 결단이옵니다.”

“내 곁에 있는 것이 그리 싫었더냐.”

“그런 것이 아니옵니다. 폐하께서 저로 인해 얼마나 고통 당하셨는지 알기에 드리는 말씀이옵니다. 저는 악마였사옵니다. 폐하. 부디. 소신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해민이 말했다.

자기가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고하며 용서를 구하는 것이 자칫, 가식적으로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해민은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이스마힐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나는 조금 더 처리해야 할 것이 있다. 시종을 보낼 테니 그때 침궁으로 들거라.”

“그리하겠나이다, 폐하.”

해민은 허리를 숙였다.

떠나려던 이스마힐이 해민을 돌아보았다.

“그 옷을.”

“예?”

“그 옷을 입고 올 수 있겠느냐.”

“그리하겠나이다. 폐하.”

이스마힐의 입가에 잠시 웃음이 돋아나는 듯 하다가 금세 사라졌다.

이스마힐이 떠나는 것을 보다가 해민도 서둘렀다.

이제부터는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다.

속도 비워야 하고.

아마도 길고 뜨거운 밤이 될 테니 그의 몸을 속속들이 위로해주고 황제의 몸을 제 안에 깊이 받을 생각을 하자 저절로 몸이 뜨거워졌다.

처음에는 황제를 위로하겠다는 충심이었다지만 황제의 눈빛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고 황제의 음성이 계속 가슴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해민은 별궁으로 돌아가자마자 에르모나를 찾았다.

“침궁에 들라 하시는구나. 목욕을 돕거라. 꽃기름이라 하였던가. 그것도 준비하거라. 에르모나.”

“예에?”

에르모나는 더더욱 놀란 얼굴이었고 경사가 난 것처럼 들떴다.

해민은 자신에게 시종이 아닌 시녀만 그렇게 많은 이유를 알지 못했었지만 이제는 알 것도 같았다.

일레노이를 아끼고 사랑한 이스마힐이라면 일레노이의 몸을 시종에게 보이는 것도 싫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에르모나는 정성스럽게 해민의 머리를 감겨주고 몸을 씻겨 주었다.

해민 역시 에르모나의 손길을 느끼면서 전혀 반응을 하지 않았고 편안하게 몸을 맡겼다.

“참으로 고우시옵니다. 황비 마마.”

에르모나는 지치지도 않고 그렇게 말했다.

그런 말에 들뜰 해민이 아니었지만 왠지 들떴다.

이스마힐을 만나러 가게 될 거라고 생각하니, 이스마힐이 자기를 좋아해준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이스마힐을 동정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정말 그것 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이스마힐과 마주친 것은 몇 번 안 되었지만 이스마힐이 혹시라도 다시 찾아와주지는 않을지, 그와 다시 만나게 될 수 있지 않을지 기대하게 되었고 밖에서 조금이라도 소리가 들리면 이스마힐이 온 것은 아닌가 하고 고개를 돌리게 됐다.

에르모나도 그 사실을 아는 것 같았고, 황비 마마가 황제를 대하는 태도가 전과 완전히 달라진 것을 신기하게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에르모나는, 황비 마마가 죽음 앞에서 살아 돌아왔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에르모나. 혼자서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은 힘들지 않으냐.”

이제 단장은 자기 혼자서 하면 될 것 같고 에르모나는 궁을 떠나기 위한 준비를 해야할 것 같은데 너무 편안해 보여 묻자 에르모나가 들켰다는 듯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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