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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로 회귀했다 나 남잔데-3화 (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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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흠, 하는 소리가 들렸을 때에야 해민은 책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그가 입고 있는 옷 때문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이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함부로 입을 수 없을 것 같은 좋은 옷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황제의 옷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머리에 관을 쓰고 있지도 않은 그를 보면서 해민은 처음에 그가 누굴까 했다.

그러다가 그의 눈을 보면서, 감히 몇 개의 단어로는 형용조차 할 수 없는 그 복잡미묘한 눈빛을 보면서 해민은 깨달았다.

지금 그곳에서 그런 눈빛으로 자기를 바라볼 사람은 한 사람뿐이라는 것을.

해민은 급히 일어섰다.

그러다가, 황제를 그렇게 빤히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듯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들어라.”

황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민은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황제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했지만 끝내 그 말을 그대로 삼켜버렸다.

그리고 해민이 보고 있던 책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해민은 그를 따라 시선을 돌리다가 아, 하고 작은 탄성을 냈다.

“대제사장에게서 얘기를 들었다.”

황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차가운 목소리였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을 해민은 알고 있었다.

일레노이라는 자가 그의 가슴을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 알고 있었기에 해민은 그를 원망할 수가 없었다.

해민이 그를 바라볼 때마다 황제는 서둘러 해민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나 그것은 늘 꼬리를 잡혔다.

황제가 자신을 보고 있다가 시선을 돌리는 거라는 것을 해민은 알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더 마음이 좋질 않았다.

“뵙고 싶었사옵니다.”

해민은 자기가 황제에게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지금뿐일 거라고 생각했다.

“목숨을 구걸하고 싶더냐.”

차가운 말투였지만 해민은 그 말이 저에게 어떤 상처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아니옵니다. 폐하를 곁에서 모실 수 있었으면서도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 그리고 폐하께서 저에게 베푸신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사옵니다.”

해민의 말에 황제가 놀란 얼굴을 했다.

그러나 그는 곧 고개를 돌렸다.

일레노이의 언변에 넘어가 자신의 뜻을 꺾고 유혹당하여 어리석은 결정을 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해민은 황제를 살피고 있었다.

책에 나온 것을 봤을 때는 이스마힐이 심각한 추남일 줄 알았지만 그의 앞에 서 있는 남자는 전혀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조각처럼 잘 생겼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선한 인상에 매력적인 얼굴이었다.

만약 해민에게 자신의 얼굴과 이스마힐의 얼굴 중에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이스마힐의 얼굴을 선택하고 싶었을 정도였다.

황제는 해민이 말없이 자신을 오래 들여다보는 것을 알고 해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기에게는 해민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듯 해민을 바라보았다.

“그 책에 대해서 물을 것이 있다.”

“하문하옵소서. 폐하.”

저에게 어색하기 짝이 없는 그런 말투가 어찌 그리 술술 나오는 것인지 해민은 의아했지만 지금은 이스마힐이 묻는 말에 집중하려고 애썼다.

“그 책에 쓰인 글을 네가 읽을 줄 아는 것 같다고 대제사장에게서 들었다.”

“그것은...”

해민은 대제사장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대제사장의 눈길은 우호적이지 않았다.

지금은 누구도 해민에게 우호적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민은 황제가 저에게 질문한 것을 들었지만 대답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황제가 자신의 주검을 끌어안고 죽을 거라는 사실을 떠올리고 있었다.

자기를 따라 죽을 사람.

이 사람은 지금 어떤 마음으로 이곳에 서 있는 걸까.

저 가슴은 지금 얼마나 미어지고 있을까.

결코 밀어낼 수 없는 사람으로 인해 자신의 제국민들의 삶이 피폐해지는 것을 보며 그가 내린 결단을 해민은 알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그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싶었다.

어쩌다가 자기는 그런 죽음을 당하고 이 시간으로, 이 공간으로 건너와버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황제의 상처가 이렇게 절절하게 와 닿지는 않았을 텐데.

그냥 무시해 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어차피 이곳에서의 짧은 삶을 마치고 형장에서 눈을 감아버리면 모든 게 다시 끝이 날 텐데.

해민은 그런 생각을 했다.

“묻고 있지 않느냐.”

황제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해민은 그가 한 말을 통째로 놓쳐버린 후였다.

해민이 죄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황공하오나 하문하신 것을 듣지 못하였다고 하자 황제는 다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하는 것이냐.”

그의 목소리가 누그러져 있었다.

이 사람은 절대로 일레노이라는 남자를 미워할 수가 없었던 거라는 생각이 다시금 해민의 머릿속에 들었다.

“폐하. 소인이 죽으면 폐하께서는 소인을 마음에 담지 마시고 강녕하옵소서. 황후 마마와 함께 오래오래 사시옵소서.”

해민은 그거야말로 자기가 바라는 단 하나의 소원이라는 듯이 말했다.

“저승길을 가는 동안 내내 폐하의 안위를 빌겠나이다. 폐하와 황후 마마의 안위를 빌것이옵니다.”

“그리 말한다고 내가 너를 죽이라는 명령을 거둘 것으로 생각하느냐.”

이스마힐이 말했다.

“아니옵니다. 폐하. 그 명을 거두지 마옵소서. 폐하께서 그 명을 거두신다면 제가 스스로 죽을 것이옵니다. 하오나. 결코. 저로 인하여 옥체를 손상시키지는 마옵소서.”

이스마힐은 해민이 하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 악마의 힘을 가진 자란 것인가 하는 생각조차 잠깐 들었을 정도였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자기가 혼자만 가슴 속에 품고 있던 계획을 안다는 것인가.

이스마힐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해민을 바라보았다.

“저를 아끼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폐하. 꼭 제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옵소서. 그리하셔야 제가 편히 생을 마감할 것 같사옵니다.”

이스마힐은 고개를 돌렸다.

움베르트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채 황제의 표정을 살폈다.

저 간사한 세 치 혀에 또다시 용단이 흔들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대제사장이 내 말에 증인이 되어라. 폐하께서 나를 사면하시겠다 하신다면 나를 성궤를 두는 장막에 밀어넣거라. 그러면 나는 마땅한 벌을 받게 될 것이다.”

해민의 말에 움베르트 마저도 할 말을 잃고 놀라워하며 해민을 바라보았다.

이 자가 정말로 죽으려고 작정을 한 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겨우 제 목숨을 이어보자고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움베르트도 똑똑히 알 수가 있었다.

“곧. 시간이 되옵니다. 폐하.”

움베르트가 말하자 이스마힐이 움베르트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착잡해 보였다.

움베르트는 황제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일레노이를 죽이는 것이 절대로 그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움베르트는 자기가 잘 하는 것인지 확신하지 못한 채 입을 열었다.

“성궤를 둔 장막에 나타난 책이옵니다. 황비 마마께서 해독을 하셨다면 제가 알아야 하옵니다. 헤르만 제국에 내릴 재앙에 대한 책일 수도 있사옵니다. 폐하.”

움베르트가 말하자 이스마힐의 얼굴에 한 줄기 희망이 보인 것 같았다.

일레노이를 죽일 수 없는 이유가 생겼다는 것이 이리 기쁠 줄이야.

그러면서도 이스마힐은, 자기가 다시 결단을 내릴 수 있게 될지 걱정이 됐다.

이스마힐은 돌아서며 말했다.

“대제사장이 판단하여라.”

해민은 그게 어찌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나... 죽지 않게 되는 건가?

해민은 황제가 나가는 동안 허리를 숙이고 있다가 황제가 보이지 않게 되자 곧바로 책을 펼쳤다.

사형당하는 장면을 찾아 펼치자 해민이 봤던 것이 착각이었던 것처럼 그곳에는 전혀 새로운 내용이 적혀 있었다.

황제가 일레노이를 찾아와 대제사장이 찾아온 책에 대해 말한 것이 세세하게 적혀 있었고 일레노이의 처분을 대제사장에게 맡겼다는 것도 나와 있었다.

‘바뀌...다니...?’

해민의 가슴은 심하게 뛰었다.

해민은 그 후에 일어날 일을 알아보려고 책장을 넘겼다.

일단 자기가 죽지 않았으니 자신의 시신을 침궁으로 가져가지는 않겠지만 황제가 자결을 포기한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서둘러 페이지를 넘겼지만 그런 내용은 나와있지 않았다.

똑같은 책이고, 계속 같은 자리에 있었는데 순식간에 그 내용이 바뀌어 있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조금 뒤에 문이 열리고 여러 명의 시녀들이 들어왔다.

그때까지도 해민은 자기가 왜 황비여야 했던 건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자신의 신분이 낮아서 보호해주기 위해 내린 조치였다고 한다면 대귀족 칭호를 내려주었으면 될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볼까 했지만 내게 우호적인 사람이 없는 것 같은데 그런 질문까지 했다가는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기에 딱 좋을 것 같아서 해민은 책만 꼭 끌어안았다.

책까지 없었으면 정말 큰일날 뻔 했겠다고 생각하면서.

시녀들이 해민에게 다가와서 해민을 부축하려고 했다.

이래봬도 자기는 남잔데, 아무리 이상한 이유로 황비가 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시녀들의 부축을 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해민은 시녀들을 물리쳤다.

시녀들은 오늘은 또 무슨 변덕을 부리려고 그러는 건가 하는 표정으로 해민을 바라보았다.

그런 시선은 아무리 받아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았고 그런 시선에 익숙해지고 싶지도 않았다.

해민은 시녀들에게 말했다.

“앞으로 내가 특별히 말을 할 때까지는 따로 들지 말거라.”

그리고 해민은 자기가 죽기 직전까지 그곳에서 자기 시중을 들었던 시녀만을 지명했다.

“앞으로 나는 이 아이의 시중만 받겠다.”

시녀들은 그 일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듯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시녀장 정도로 보이는 여자가 해민을 보더니, 자기들은 황제 폐하께서 특별히 해민을 위해 내린 시녀들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시녀들을 물리칠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윤허를 받으면 되겠구나.”

해민이 고집을 꺾을 생각을 하지 않고 그렇게까지 말하자 시녀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해민은 황제가 자기 때문에 그동안 너무 많은 낭비를 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절약을 해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더라도 지금은 시중을 받으시는 것이 좋을 것이옵니다.”

처음부터 해민의 곁에 있었던 여자가 말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에르모나이옵니다.”

“에르모나. 네가 내 시중을 들거라.”

“그리하겠사옵니다. 하오나. 지금은 저 혼자만의 힘으로는 벅차옵니다. 목욕도 하셔야 하고 머리도 치장을 하시고 옷도 갈아입고 황제 폐하를 알현하셔야 하옵니다.”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다.”

“꽃기름은 어찌 바르시겠다는 것이옵니까.”

꽃기름?

무슨 짓을 하고 살았던 거야, 이 남자는?

해민은 잠시 할 말을 잃었지만 그대로 굴복할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번복하지 않겠다. 나 혼자 준비하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폐하께서 나를 보시겠다 하셨다면 기다리시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냐.”

시녀들은 해민의 말이 진지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때부터는 표정이 굳었다.

이대로 해민이 자기들을 물리친다면 그대로 실직 상태가 되는 거였고 그렇게 되면 그 중 몇몇은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수도 있었다.

해민은 그런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런 사사로운 이유로 인해서 황제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면. 나는 이제. 나가도 되는 것이냐.”

에르모나를 바라보며 묻자 에르모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앞장 서거라.”

길을 알지 못했기에 에르모나의 도움이 절실했다.

에르모나는 해민에게서 책을 받아들려 했지만 해민은 고개를 저었다.

“이것은 내가 들 것이다.”

이 남자.

이런 것도 자기가 안 들고 시녀들한테 맡겼었나봐.

해민의 머릿속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으로만 하고 있었던 것을 에르모나에게 물었다.

자기가 어땠었는지 알려줄 수 있겠냐고 하자 에르모나는 그런 것을 어찌 말하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해민이 간청을 하듯이 거듭거듭 말하고 나중에는 협박까지 하자 에르모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황비 마마는 걷지도 않으셨사옵니다. 가마를 대령하게 해서 가마에 타시거나 시종들에게 손가마를 만들게 해서 그것을 타고 다니셨사옵니다.”

정말로 뜨억하는 표정이 돼서 해민이 에르모나를 바라보자 에르모나는 자기가 한 짓을 왜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하는 얼굴로 해민을 바라보았다.

“황비 마마. 어찌 그러시옵니까. 그런 일들이 전부 기억이 나질 않으시옵니까. 충격을 받으셔서 그런 것이옵니까. 그렇더라도 심력을 강하게 하옵소서. 이제는 지나간 일이 아니옵니까. 황제 폐하께서 뜻을 거두셨으니 황비 마마께도 다시 기회가 생긴 것이 아니옵니까.”

“나는... 왜... 내 다리를 놔두고 가마를 타고 다녔다는 것이냐?”

해민이 물었다.

그런 질문이 이상하게 들릴 거라는 것은 알았지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리와 발에 굳은 살이 박히면 보기 흉하다 하지 않으셨사옵니까.”

허어어얼...

해민은 턱이 빠진 것처럼 입을 벌리고 멍하니 있었다.

더 이상은 묻고 싶지도 않았고 듣고 싶지도 않았다.

에르모나야말로 그 괴상한 질문 공세에서 벗어나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조금 서두를 수는 없겠느냐. 빨리 가자. 나는 마음이 급하다.”

해민이 재촉하자 에르모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호화로운 궁궐을 구경하는 재미를 느낄 틈도 없었다.

해민은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빨리 목욕도 하고 황제도 알현하고 그 후에는 책을 정독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책을 정독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해지면서, 목욕은 그냥 생략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팔을 들고 킁킁 냄새를 맡아보니 나쁜 냄새도 나지 않았다.

좋아. 목욕은 패스.

그래도 황제를 알현하는 것까지는 뒤로 미룰 수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해민은 더욱 서둘렀다.

에르모나는 해민이 왜 그렇게 서두르는지 알지 못한 채 해민의 걸음을 따라가지 못하고 손으로, 해민의 별궁을 가리키며 저곳이라고 알려주었다.

그것을 알려주면서도 에르모나는 자기가 왜 그것을 알려주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탑에 갇히기 전까지 살던 곳도 잊어버렸을까 하기는 했지만 황비의 표정을 보니 새롭게 깨달은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충격이 컸던 거야, 라고 생각하면서 에르모나는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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